하늘에 고하는 진혼곡 2화
슈퍼갤럭시캬루단 2020-12-27 0
세계는 빠르게 변한다. 대중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지향점 또한 달라진다.
세상과 인간이 어떻게 변해야만 하는가를 논하는 것이 정의라고 한다면 마땅히 따라야 한다.
순응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멸시와 비난을 받을 테니까.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한가지 모순을 발견했다.
대중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거나 사회적 힘을 가진 자에게는 그것이 관대하게 작용하거나 오히려 받아치는 모습이 보였다.
중요 권력자의 도덕성을 비판하면 대치하고 있는 정당의 인물에게로 시선을 돌려 지지하고 있는 사람이 더 우월하다는 걸 상기시킨다.
일개 월급쟁이였다면 얼굴도 못 들고 다닐 혼외자식 같은 이슈를 떳떳이 감당해낸다.
여기엔 과연 어떤 사회적 작용을 했는가 추론을 해보았고 결과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 사람이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존재에게는 다른 대상과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같은 조직에 속해있다면 더더욱.
그러니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힘과 도덕을 저울질하는걸 굴욕적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정의 같은 건 자신의 이익에 반할 때 힘없이 무너진다.
그래서 모순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중들 앞에서는 정의를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조직 위에 있는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
아니, 아니군.
어쩌면 모순이 아닐지도 모른다. 힘과 권력에 무기력하게 굴복하는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기 싫어서 스스로 변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사람은 본래 그런 존재였으니까.
그럼 그런 어처구니없는 모순과 정면에서 싸우려는 인간이 있다면 뭐라 평가해야 할까?
무모하다? 멍청하다? 글쎄... 그건 이제부터 천천히 생각해볼까.
다만 확실한 건 조금 있으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뿐이지.
자, 보여줄 시간이야. 너의 그 잘난 게임 실력처럼 흥미로운 전개를, 보통 인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신선한 이야기를.
과연 네가 그려낼 수 있을까? 나는 언제나 기대하고 있다고.
그럼 위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부디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세하.
***
근 2년 사이, 유니온에서는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유니온 관계자가 참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표면상의 이유는 대 차원종 작전에서 사실상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으로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다수의 미성년 클로저가 제대로 된 육체적, 정신적 케어도 받지 못한 채로 작전에 투입되고 있고 신서울의 안보를 담당하고 있던 클로저가 사실상 20명 남짓이었다는 언론의 폭로가 있었다.
이에 시민들은 유니온의 소극적인 움직임에 대해 심한 불신을 가지게 되었고 대한민국을 비롯한 상위 7개국은 유니온에 대한 자본적, 행정적인 지원을 철회할 수 있다고 공표했다. 더구나 총장 건이 각국 정보기관에 알려진 것 또한 유니온의 대외적인 신뢰도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결국, 김유정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고 유니온의 각 지부는 기나긴 회의 끝에 자신들이 담당하고 있는 지역 국가의 통제를 일부 따르기로 하였다.
"지금부터 대통령 주재로 NSC(National Security Council)회의를 개최합니다. 각자 제자리에 착석해주시길 바랍니다."
"......"
등 떠밀리듯 참여한 이 자리가 김유정에게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차원종 관련 안건에 대해서 치밀하게 전략을 구상하지 않으면 곧바로 질타가 들어오고 심지어 그들은 차원종과 클로저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편이 아니라 그걸 설명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이래나 저래나 한소리 듣는 건 매한가지라는 뜻.
"시간이 없으니 예식은 생략하고 결론부터 들어가지. 그럼 현재 홍콩 상황에 대해 유니온 측에서 보고해 줄 수 있겠나?"
"네......"
대형스크린에 준비해둔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비쳤다. 좌측에 홍콩섬 지도가 띄워지고 그 주변을 둘러싼 여러 그래프가 나왔는데 이 지표를 해석할 리가 만무한 정부의 관료들에게는 생략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지도 여러 곳에 찍혀있는 붉은 점, 차원종이 출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이다.
"현지 시각으로 21시 2분, 홍콩섬 전역에 동시다발적으로 차원 간섭현상이 관측되었습니다. 다수의 차원종이 출현했을 것으로 유니온은 확신하고 있고 이에 주변 경계 레벨을 높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확신하고 있다고? 자료 같은 것은 없나?"
"그건... 외부로 향하는 망이 모두 끊겼고 전파 재밍이 심해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지에 파견된 클로저와 지속해서 연락을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원래 같으면 기밀로 취급되는 상황조차 순순히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유니온의 현재 위상을 알려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외교적인 도움이 불가피하기에 이러한 리스크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현지에 나가 있는 은하는 공안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채로 잠입해있기에 그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상황... 몇 년 전에 신서울의 사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안보실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칼바크턱스라는 자가 일으킨 사건 말씀이로군요. 만약 이번 상황도 유사한 방법으로 벌어졌다면 그와 함께했던 테러리스트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양쪽으로 길게 찢어진 눈으로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예리하게 바라보고 있던 중년 남성이 응답했다.
그는 유니온의 경영지원팀에서 근무했던 이력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워낙 유니온 안팎의 사정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듯 훤히 꿰고 있는 터라 김유정을 난처하게 만드는 주요인물 중 한 명이었다.
"칼바크의 잔존 세력이라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위상능력자의 출입국은 국제적으로 매우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으니까요. 홍콩 같은 통제 지역이라면 더더욱."
"그런 자가 얼마 전까지 신서울을 제집 앞마당 돌아다니듯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한국은 국제적인 범위에서 벗어나 있나 보군."
"안보실장님. 그건......"
사실 유하나를 내버려두다시피 한 것은 여러 위험 상황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후순위로 밀어놓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잠적해있었다.
인력은 항상 부족하고 장비도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니온의 사정이고 밖에서 보는 입장에서는 못마땅하게 느낀다고 해서 이상하지는 않다.
"그건 그렇고. 탈주했던 클로저가 홍콩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왜 보고하지 않고 있나?"
"....?!"
검은양의 이세하, 사냥터지기의 루나 아이기스.
분명 3시간 전에 은하로부터 보고받은 소식이다. 분명 유니온 내에서도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알고 있는 정보일 텐데 안보실장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에 김유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이 서늘한 온도임에도 식은땀이 흐른다. 여기서 잘못 이야기하면 그들의 신상에 큰 해가 될 수 있다는 걸 직감했기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진다.
"따로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그들과 이번 사태와의 접점을 찾지 못해서 일단 보류하고 있었습니다."
"연관이 있는지는 우리가 판단할 문제일세! 다음부터는 빼놓지 말도록."
"그... 안보실장님, 탈주했던 클로저라면?"
그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던 대통령이 물었다. 김유정은 내심 이 이야기가 더 퍼지지 않기를 바라봤지만 안타깝게도 안보실장은 전혀 그녀의 눈치를 ** 않고서 그의 상관에게 사실대로 보고한다.
"알파퀸의 외동아들입니다. 유니온의 클로저로 있다가 희망의 여명 작전에서 무단으로 이탈한 이후, 현재까지 도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 그 유명한 서지수 씨의... 안타깝게 되었군요. 그렇게 대단한 클로저인데도 자식농사는 실패했으니."
김유정의 두 손이 저절로 떨리고 있었다. 그가 어떤 이유에서 탈주했는지는 지금 이 시점에도 알지 못하지만 어찌 되었든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료.
누군가가 이세하를 비난한다면 자신이 관리요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간신히 연락이 닿았다고 생각했지만 따라주지 않는 현실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게 느껴졌다.
"국정원에서는 그가 이번 일과 관련되었을 확률을 높게 보진 않지만, 가능성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 칼바크턱스와 정면에서 싸운 몇 안 되는 클로저니까, 칼바크의 방식을 눈여겨보았다가-"
"그건 말도 안 되요!"
김유정은 벌떡 일어나 탁자를 강하게 치며 반발했다. 지금까지는 얌전히 있었지만 이세하를 노골적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발언을 듣고서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크게 당황한 대통령과는 대조적으로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 안보실장은 그녀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고 있다.
"여기가 무슨 자리라고 눈을 부라리고 있는 건가? 대통령님 앞에서 예의 지키시게!"
"예의를 지켜야 하는 사람은 안보실장님이십니다. 근거도 없이 저의 아이들을 함부로 매도하지 말아 주십시오!"
김유정은 냉정함을 잃을 정도로 격분한 상태였다.
그동안 아무리 신경을 긁혀도 순순한 자세를 보이던 그녀가 갑자기 이런 모습을 보이자, 대통령조차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자자, 김유정 부국장. 아직 확실한 건 아니고 가능성일 뿐일세. 가능성! 사실상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봐야 하지 않겠나?"
"아니요! 만에 하나라도 세하는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닙니다. 이미 둘은 유니온 측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다시는 근거 없는 억측은 안 나왔으면 좋겠네요."
"......"
이야기가 여기까지 전개되자, 그 독하기로 소문난 안보실장조차 조용히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 다수의 정부관료가 그녀의 눈치를 보느라 회의가 진척되지 않자, 흘러가는 것은 오직 벽지에 걸려있는 시계의 초침뿐이었다.
***
"이슬비 요원님, 잠시 기다려주세요!"
신서울 공항의 활주로, 바람이 너무나도 강하게 불어 정신이 없을 정도였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걷는, 그녀는 검은양 팀의 리더다.
뒤늦은 밤에 김유정에게 대기명령을 받은 채였지만 참다 못했는지 결국 공항으로 향했다. 오랜 기간 행방이 묘연했던 동료의 소식은 그녀의 마음에 기폭제가 되어 터지고 말았다.
"......"
김유정은 이 일이 검은양에게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했지만 유니온 감찰국 말단직원의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검은양 팀에게까지 전파되어 팀장인 바이올렛이 수습에 나섰다.
"아무리 무인조종이 가능한 기체라지만 아직 승인도 나오지 않았는데 함부로 격납고에서 꺼내시면... 곤란해요."
"그래서 이 좌표에 세하가 있다는 게 틀림없는 사실인가요?"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동료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자신의 행동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판단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실제로 주변 인물들이 뜯어말려도 전혀 듣지 않고 공항으로 왔을 정도니까.
검은양 팀의 보호자였던 제이가 유니온 아카데미로 발령받은 상태에서 사실상 그녀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전무했다.
"네... 하지만 그 곳은 현재 공안으로 인해 통제되고 있는 지역이에요. 클로저에게만이라도 입국 요청을 한 상태이지만 언제 승인될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니까 좀 더 마음을 다잡으시는 편이-"
"어떻게 다 잡으라는 말이에요!"
"?!"
이세하가 홍콩에서 발견되었다는 알람이 표시된 디바이스를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슬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바이올렛을 노려보고 있다. 평소 이슬비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머리에 듬성듬성 튀어나와 있는 잔머리는 그녀가 지금 어떤 심정에 처해 있는지 짐작게 한다.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바이올렛으로서는 말문이 닫힐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2년, 2년을 기다렸어요! 그 바보 멍청이가 어딜 싸돌아다니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혹시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건 아닌지.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한 지가 벌써 2년이라고요! 아직도 더 기다리는 건가요? 2년이라는 시간조차 충분하지 않은가요?"
"이슬비 요원님......"
"서지수님을 뵐 때마다 면목이 없어요. 그분은 자책하지 말라며 절 위로했지만, 사실은 바쁘다는 핑계로 이야기조차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은 저의 책임이라고요!"
"그래. 네 책임이다. 범생이."
비행기에서 유유히 걸어 나오고 있는 하늘색 머리의 남성. 과거 벌처스 소속이었다가 현재는 시궁쥐 팀으로 편입한 클로저. 그리고 이 일의 발단이 된 희망의 여명 작전 중심에 있었던 사람 중 한 명.
딱히 화나지도 기뻐하지도 않는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나타......"
오랜 동료와의 재회였지만 반기고 있을 만한 여유 같은 건 없었다. 현재 부산에 있을 터인 그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가 의문은 충분히 해소할 수 있었지만 만일 예상하고 있는 사실이 맞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 여기에 있어요? 같은 팀의 동료들은요?"
"알게 뭐야. 어딘가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있겠지."
"뭐라고요?!"
원래부터 제멋대로 행동하는 클로저로 분류되긴 했지만, 최근에는 꽤 잠잠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세하와 루나 아이기스가 유니온에서 이탈한 이후였는데 겉으로는 태연해 보여도 그 스스로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경로에서 심문했지만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중에서 가장 반발이 심했던 사람은 이슬비였는데 눈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심하게 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건 그렇고. 탈 거야? 말 거야? 30분 뒤에 출발할 거니까 빨리 정해."
"무슨 소리에요? 외교적인 문제도 겹쳐있어서 그렇게 경솔하게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고요."
"그거 해결하라고 아줌마가 거기 나와 있는 거 아니야. 부국장 직함 달아줬으면 그 정도는 알아서 처리해야지."
너무나도 뻔뻔한 그의 말에 바이올렛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원래의 나타가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어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자신이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할 목표가 생겼다는 의미니까.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하는 모습은 그답지 않다.
"......"
이슬비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곧바로 비행기 안으로 들어섰다. 사실 소극적으로라도 감사의 표현을 할 법하지만 아직 어색하게 느끼는 모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전혀 없어 보였으니까. 무리도 아니다.
"너는?"
바이올렛의 의사를 확인한다. 사실 확인한다기보다는 떠본다는 뉘앙스가 강했는데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흐르고 있다는걸 나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직감한 바이올렛은 어쩔 수 없이
"아... 알았어요! 같이 가면 되잖아요! 하여튼 시간이 지나도 나타, 당신은 도대체 바뀌지를 않네요."
"흥. 너도 마찬가지거든. 송충이 눈썹."
나타는 피식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의 검은색 코트 왼쪽 가슴 편에는 트리아이나 리벨리온의 문양이 붉게 빛나고 있었는데 세상이 그들의 재회를 직감하기라도 한 듯 보였다.
이미 엎질러진 길을 건너는 것에 대해 각오를 하며 전 동료의 손을 힘차게 부여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