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흑신후나 2020-07-07 3
BGM과 같이 들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날이 좋은 어느 날이었다. 언젠가 다 같이 소풍 가자고 한 적이 있었다. 큰 나무 아래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도시락도 먹고, 불어오는 바람에 누워 평온한 날을 즐겨보자고, 꼭 다 같이 가자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누군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어느 날이었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면서도 쓸쓸해졌다.
“죄송합니다. 더는 방법이…”
의사는 고개를 숙였다. 모두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의사는 계속해서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 의사잖아! 뭐든지 해보라고!”
“그…그래도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제이 아저씨는 의사의 멱살을 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의사도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저 화가 나 이성을 잃을 것 같은 아저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말을 계속했다.
“세하 형…”
“세하야…”
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의사의 한 마디만이 정적 속에서 홀로 고개를 들었다.
“왜…지금…하필…”
아저씨는 드디어 현실을 받아들인 듯 허탈하게 의사의 멱살을 놓았다.
“앞으로 남은 기간은 얼마나 되는 건가요?”
착잡한 듯 유정 언니가 말했다. 의사는 길어봤자 3개월이라고 말했다.
3개월, 3개월이라…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의사는 이런 자리가 거북한 모양인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겠다며 자리를 떴다.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씩 훌쩍이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이세하…”
세하는 마취에 취해 곤히 잠들어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근거리며 자는 모습에 의사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세하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허름한 카페의 문이 달랑거리며 열렸다. 익숙한 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옮긴 자리에는 누군가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네가 무슨 일이냐? 먼저 전화를 다 하고.”
나는 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그 모습에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세하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왔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내리깔았다. 그의 얼굴을 도저히 볼 자신이 없었다.
“커피나 한잔할까?”
나직이 말했다. 세하는 웃으며 알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마음대로 움직여도 괜찮아?”
“상관없어. 병원에서도 큰 병 아니랬어.”
세하는 미소를 머금은 채 커피 한 잔을 홀짝였다. 나는 그저 침묵했다.
세하는 지금 자신의 병이 죽을병인지 몰랐다.
병원에서는 그저 별거 없는, 치료 가능한 병이라고 속였다. 자신이 죽는 것에 관한 쇼크는 예상외로 크기에 세하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가 남은 기간을 울면서 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약은?”
“먹었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병원과 입을 맞추어 최대한 고통 없이 남은 생을 같이 보내는 것뿐이었다.
지금 세하가 약으로 생각하며 먹고 있는 약 또한 일반적인 진통제였다.
우리는 무기력하게 세하가 죽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아무리 제때 약을 먹는 게 중요하다고 해도 다들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야? 아까도 제이 아저씨가 약은 꼭 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라고…누가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세하는 웃으며 말했다. 표정 관리가 더욱 힘들어져 숙인 고개를 더욱 숙였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자 세하는 뻘쭘해 했다. 괜히 그는 나에게 사과했다. 그냥 농담 한 번 쳐 봤다고 했다.
미안한 듯 사과하는 목소리에 상냥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더욱 할 말이 없었다.
어색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커피를 다 마시고 거리를 걸을 때까지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 동생!”
세하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세하는 바로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제이 아저씨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귓속말로 무엇인가 속닥거렸다. 아마 나 때문인지라.
흠. 아저씨는 짧게 침음성을 흘리더니 다시 웃었다. 무엇인가 세하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다. 세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별것 아닌 일에 이렇게 걱정해주는 사람 없다?”
그 말을 끝으로 아저씨는 웃었다. 다행히 세하는 별 의심 없이 넘긴 것 같았다. 세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네요.”
한 달이 흘렀다.
세하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점점 여위어갔다. 세하는 일시적인 약의 효과라는 거짓말을 믿었다.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잃어가는 세하를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았다.
“내가 한다니까…”
“안 돼. 이참에 나도 엄마 노릇 좀 해보자.”
한 날은 세하가 집에서 다 같이 밥을 먹자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부랴부랴 할 일을 끝내고 세하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세하는 앉아 있었다. 세하가 앉아 있었지만, 음식은 나왔다.
음식은 맛이 정말 없었다. 그래도 세하는 음식을 다 먹었다. 그러고는 엄마의 요리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이야기했다.
세하는 우리를 보고 웃었다. 나도 세하를 보며 웃어주었다. 하지만 마음 깊숙이 올라오는 감정은 차마 세하를 보고 웃지 못했다.
두 달이 흘렀다.
나는 병원의 병실에 서 있었다. 피어오르는 복잡한 감정들을 간신히 갈무리하고 병실의 문을 조용히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초췌한 몰골의 세하의 모습이었다.
“…어서 와.”
나는 억지로 웃으며 병실로 들어왔다.
“…”
“괜찮아.”
세하는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나에게 건네준 따스한 한 마디가 애처로웠다. 다들 나와 같은 것 같았다. 억지로 웃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우리는 거짓말을 했다. 세하는 우리의 말을 믿었다.
“소풍 가고 싶어.”
병실에서 세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가면 되지! 다 같이 가는 거야! 도시락도 준비해서 나눠 먹고, 다 같이 이야기도 하는 거야! 앉아서 게임도 하고!”
유리는 말했다.
“이 형님이 좋은 자리를 알고 있지. 거긴 나무가 크고 예뻐서 꽃 구경을 하기에 좋아. 곧 있으면 동생도 성인이 되니까, 술도 한잔하자.”
제이 아저씨도 말을 거들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썩 좋아 보였다. 결국은 언젠가 다 같이 놀러 가기로 약속했다. 세하는 웃었다. 하지만 나는 왜인지 그 미소가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 같아서,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은 모습이라서, 괴로웠다.
그래도 나는 억지로 웃었다. 아니, 웃어야만 했다.
세하가 많이 앓았다. 원래부터 그랬지만, 오늘은 특히 더 심한 것 같았다. 우리는 감기가 심하게 온 것뿐이라 둘러댔다. 세하는 그저 웃기만 했다. 나는 그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기…세하야…”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를 속이고 있는 것 같은 마음에 괴롭다. 자신의 병에 대해 알지도 모르는 채 세하가 떠나게 둘 수는 없었다.
모두가 빠진 어느 날에 나 혼자서 세하를 만나러 갔다. 세하는 병실에서 홀로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작게 심호흡을 했다.
세하는 나를 그저 바라보았다. 한 달 전에도, 두 달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괴로움만이 가득했다. 절로 고개를 숙였다.
“넌…넌…”
“괜찮아.”
세하는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세하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세하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알고 있었어?”
“모두가 그렇게 걱정스럽게 쳐다보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세하는 병원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바람이 조금씩 일렁이며 세하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울컥 화가 솟았다.
“뭐가 괜찮아! 너 죽는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이 밖으로 나왔다. 나쁜 것은 세하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버틸 수 없었다.
“너 바보야? 왜 그렇게 바보처럼 웃기만 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 너한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정작 당사자는 너면서!”
악으로 토해냈다. 악에 받쳐 소리쳤다. 병원이 시끄러워졌다. 사람들이 몰려왔고 나를 말리기 위해서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계속 소리쳤다.
“어릴 때는 다른 사람들한테 괴물 소리 들어가면서 차별받고! 조금 자라고 나니까 이상한데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이제는 불치병이라니! 너는 억울하지도 않아? 억울하지도 않냐고!”
세하는 그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뭐라도…말 좀…해…”
“…괜찮아.”
나는 쏟아지는 슬픔 사이로 세하는 나를 포근히 안아주었다. 세하는 나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미안해하지 마.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정말이지…바보 같아…”
나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세하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했다. 우리는 소풍 가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세하의 몸이 가루가 되어 작은 병에 담겼다. 그의 머리카락, 그의 몸, 그의 손, 그의 모습이, 그와의 추억이 재가 되어 내려앉는 모습을 우리는 무력하게 지켜보았다.
많은 사람이 그를 슬퍼했다. 눈물을 흘리고 울었다.
하늘도 비를 내리며 같이 슬퍼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모두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이전과 같지는 않았다. 말이 없어졌고 분위기는 조용했다. 아직도 세하를 잊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을 정리하던 와중에 발견했어요. 고인의 유품 같아서…”
간호사가 나에게 물건을 전달했다. 자그마한 게임기였다. 나는 조용히 그 게임기를 받아들였다.
게임기는 군데군데 손때가 묻긴 했지만 거의 새것 같았다. 마치 아직도 세하가 전원을 켜고 게임을 할 것만 같았다.
약속한 듯 게임기의 전원을 켰다. 나는 게임기 속의 세하의 흔적을 따라가 보았다.
그리고 나는…
“소…풍?”
유리는 당황한 듯 말했다. 유리는 화장을 조금 짙게 한 듯했다. 하지만 퉁퉁 부은 눈은 차마 다 가리지는 못한 것 같았다.
“응. 전에 말했던 큰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자. 지금쯤이면 예쁠 거야.”
유리는 머뭇거렸다.
“그렇지만…세하가…”
“괜찮아 다 같이 갈 수 있어.”
유리는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안쓰러운 듯 나를 쳐다보았다.
“슬비야…세하는…”
“가자. 소풍.”
제이 아저씨는 선글라스를 매만지면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날씨는 화창했다.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적당한 날이었다. 모두가 옷을 차려입고 소풍 분위기를 냈다.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죽었는데, 한가하게 소풍 간다고 우리에게 욕을 했다.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큰 나무 밑에 돗자리를 폈다. 점심을 먹고 이야기도 했다.
“세하 보고 싶다…여기 왔으면 좋았을 텐데.”
유리가 흐르듯 이야기를 꺼냈다.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다 같이 왔어.”
나의 말에 모두가 의아해했다.
“세하는 먼저 기다리고 있었어.”
나는 일어나서 나무를 만졌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찾아보았다.
“찾았다.”
나무의 작은 옹이구멍이 있었다. 나는 그 구멍에 손을 집어넣었다. 조그마한 상자 하나가 손에 집혔다.
“이건…”
상자를 열어보았다. 모두와 함께 찍은 사진과 작은 MP3가 있었다.
“동생…”
“세하야…”
“형…”
나는 MP3의 전원을 켰다. MP3에는 한 곡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녹턴…이라…”
왠지 그답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조용히 앉아서 그 곡을 들었다. 옆에 그가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필시 그러리라 생각했다.
날이 좋은 어느 날이었다. 언젠가 다 같이 소풍 가자고 한 적이 있었다. 큰 나무 아래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도시락도 먹고, 불어오는 바람에 누워 평온한 날을 즐겨보자고, 꼭 다 같이 가자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약속을 비로소 지킬 수 있었다.
어느 날에 우리는 다 같이 소풍을 왔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면서도 아름다운 날이었다.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래도록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클로저스를 하면서 글을 썼었는데, 클로저스를 그만 두었으니, 자연스레 글과도 멀어지더군요.
시궁쥐팀이 업데이트가 되고 철수와 미래가 나오고, 곧 있으면 은하라는 캐릭터도 새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스토리를 읽기도 전에 가지각색 캐릭터들이 나와 제가 점점 뒤쳐졌습니다. 시궁쥐팀은 글을 쓰는 것도 힘들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클로저스 팬픽을 쓰는 게 좋습니다. 아마 관심을 가져주시는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잡소리가 너무 길었습니다. 이상한 글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오타나 내용의 지적이 있으면 감사히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