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47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4-01 1

 거대한 테이블에 한 자리에 모인 CKT부대 요원들이 자리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 모이라는 문자를 받고 도착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조재현이 선글라스를 낀 채로 배원형을 보며 말했다.

"배원형 요원, 이세하 클로저 친구라고 알려진 한석봉과 만났다고 하던데, 그 사람을 만나보니 어땠지?"
"겉보기에는 싸움을 무서워하는 겁쟁이같은 이미지였는데, 하는 행동을 보면 대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죠."
"어머, 벌쳐스에서 활동하던 감시 요원 아닌가요? 우리 적이나 다름없을 텐데, 잡아오던지, 아니면 처리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신해랑의 말투가 공격적이었다. 원형은 그녀의 말에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반격하듯이 말했다.

"자력으로 탈출하지 못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무능한 요원에게 듣고 싶지 않군요."

 그 말에 해랑도 발끈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수리검을 꺼냈고, 원형도 따라서 일어났다. 같은 소속이지만, 성격이 맞지 않아서 갈등을 겪는 조직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단숨에 잠재울 수 있는 요원이 있었다.

"두 사람 다 그만 둬라. 이런 자리에서 추하게 뭐하는 거지? 그만 자리에 앉지 그래? 더 한다면 가만 안 둘 거야."

 레이 아르젠토, CKT부대 중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양팔로 가슴을 끌어안은 채 폼을 잡는 모습을 보이니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살기는 다른 이들을 움츠리게 만들 정도로 강렬했다. 해랑과 원형은 서로를 노려보며 자리에 동시에 앉았다. 

"조재현, 네가 사용하는 힘은 아직 완전한 게 아니라는 거 알고 있어. 그렇게라도 복수하고 싶은 거냐?"

 레이가 그에게 물어보자, 재현은 피식 웃었다.

"복수는 이제 관심 없습니다. 이미 그 날로 불완전하게 끝났습니다. 제가 이 힘을 다시 사용하는 건 단지 조직을 위해서입니다. 힘을 잃은 민간인처럼 무능하게 있는 거 보다는 차라리 불완전한 힘이라도 사용해서 조직에 도움이 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미스터 블랙님도 말씀하셨으니까요."

 조재현의 대답을 들은 레이는 입꼬리를 올렸다. 훌륭한 마음가짐이었다. 조직은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 속한 이상, 조직이 정한 일을 해야 하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게 할 수는 없었다. 미스터 블랙이 마음에 들어했은 이유이기도 했다. 조직을 위해 개인의 원한을 잠시나마 잊어버리려고 했으니까.

"오래 기다리게 했군."

 메리의 등장에 전원 일어나서 맞은편 상대를 쳐다보았다. 메리 도미레인, 미스터 블랙과 가장 가까이 있는 CKT부대 2인자였다. 그녀가 자리에 착석하자, 요원들이 동시에 앉았다.

"회의를 시작하지. 이번에 너희들을 모이게 한 건, UN에서 조만간 벌어질 정상회담에 대한 거다. 세계 각국 유니온 본부장과 차원종 잔해를 수집하는 거대기업 사장들이 한 곳에 모이는 자리지. 이번에 우리 조직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주제로 회의한다. 우리가 반 유니온 조직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거대한 임무다. UN을 습격하여 각국에 있는 유니온 정상들을 제거한다."

 근엄한 목소리로 알아듣게 설명했다. 이에 반발하는 요원은 없었다. 유니온과 싸우면서 이러한 기회를 놓칠 이유는 전혀 없었으니까.

"우두머리들을 제거한다는 겁니까?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두머리가 없으면 조직이 흔들리는 법이니까요."

 레이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다른 요원들도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가 말한 건 미스터 블랙의 말이기도 했기에 이에 의문을 가지는 일은 없었다. 

"강자들을 많이 상대하는 자리인가? 마음에 드는 군."

 쥐죽은 듯이 조용히 있었던 릭스마이너가 한 마디 했다. 그도 CKT부대 소속이나 다름없었기에 다른 요원들이 그를 차원종이라며 멸시하는 일은 없었다. 

"그 자리에 세계 각국 S급 클로저도 모여들 테니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거다. 가능하면 살아서 오길 기원하겠다. 릭스마이너, 군단은 어느 정도 되지?"

"30만이 모였다. A급이든 S급이든, 압도적인 숫자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지휘관들은 세계 각국에서 전사했지만, 녀석들은 더 강해진 우리 군단을 보게 될 것이다."

 30만이라는 숫자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이는 수백명의 S급 클로저라도 장기전으로 가면 지치기 마련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정상회담이 열린 곳으로 공격할 수 있는 거였다.

"이번에 저희가 가진 인력이 총동원합니다. 전부 죽음을 각오하고 행동하도록."
"네!"

 요원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  *  *

 뉴욕에 도착했다. 이곳은 과거에 마피아들로 활동하던 도시였지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마피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총기관련 범죄는 빈번히 발생했었다. 세계에서 가장 부흥한 도시인 뉴욕에 UN본부가 있었고, 그곳에서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었다.

"뉴욕에는 처음 와보시죠? 한석봉 씨."
"네. 처음 와봤습니다."
"여기는 세계에서 가장 부흥한 도시에요. 한 시장의 노력으로 된 거였죠. 석봉 씨도 그런 사람과 비슷해요. 마피아를 상대로 겁을 먹지 않고, 그들과 싸웠던 점이 비슷했으니까요."

 그 인물이 누군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 사람 이름을 따서 공항까지 만들어졌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많이 있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의 칭찬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들이 내가 유능하고,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해도, 그 시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가씨, 슬슬 출발할 시간입니다."

 하이드 씨의 말에 바이올렛 아가씨가 갑자기 내 팔을 잡으며 리무진으로 이끌었다. 사장님과 트레이너 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뭐지? 갑자기 우리가 이렇게 따로 행동해도 되는 건가?

"아버지는 트레이너 대장이 경호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우리는 느긋하게 관광하기로 하죠."
"네? 네."

 회담까지 아직 시간 있으니 그동안에 관광을 즐겨도 되는 건 알겠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데이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이드 집사님이 나를 무섭게 째려** 않고, 오히려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사장님은 그러지 않으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리무진에 탑승하 때도 아가씨는 내 팔을 잡으며 놓지 않으셨다. 너무 가까워, 향수 뿌리셨는지 좋은 냄새도 났다. 킁킁거리면 ** 취급받겠지? 이런, 잘못하다가 진짜로 넘어갈 거 같았다. 이럴 때 그녀를 생각하니 조금은 나아졌다.

"어머, 한석봉 씨. 정말로 신사네요. 제가 이렇게 하는데도 덮치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저, 아가씨. 죄송하지만, 저희 단 둘만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하이드 씨도 계신데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갑자기 왜 심술궂은 얼굴로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다. 뉴욕에 와서 들떠서 그러시는 건가? 내가 재벌가 아가씨와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난 내 자신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은 편인데도?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전 한석봉 씨를 제 소유로 삼을 거에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놓치고 싶지 않은 유능한 존재니까요. 조직에서도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셨고, 그리고 남자로서도 마찬가지에요."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남자로서 뛰어나다고요? 너무 과대평가하셨습니다."

 마지막 말에 나는 정색했다. 내가 남자로서 좋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클로저에게 있어서 민간인은 거슬리는 존재나 다름없다. 그리고 나는 어디까지나 게임 대사에서 나온 걸 그대로 베껴서 말한 거 밖에 할 줄 몰랐다. 하도 많이 해봐서 여성에게 인기 많은 남성 캐릭터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한 거 뿐이었다.

"어머, 한석봉 씨는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군요. 겸손하려고 보이는 건 이해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해가 되는 법이에요. 가끔은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시는 게 어떤가요?"

 아가씨의 말씀에 나는 할 말을 잃고, 고개를 푹 숙였다. 왜 하필 나일까? 나보다 유능하고 남자다운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하필 나인지 모르겠다.

"왜 저를 선택하신 거에요?"
"한석봉 씨. 저는 수많은 남자를 만났어요. 전부 가진 게 많고, 자신을 어필하면서 제 마음을 빼앗으려고 했었죠. 그들의 본심은 제가 가진게 아니라 아버지가 가진 걸 보고 접근한 거였어요. 전 그 사람들을 전부 멀리했죠."
"전부 뒷조사 하신 거에요?"
"그래요. 한석봉 씨를 만났을 때도 당신에 대해 뒷조사를 했었어요. 당신만큼은 그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가진 거 따지지 않고, 한 여성만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제 이상형에 가까웠거든요."

 아니, 분홍 머리 클로저에 마음이 있는 걸 알면서 왜 아가씨가 나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시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재벌가와 이어지는 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생활하는 환경이 달랐으니까. 재벌가와 흙수저의 삶이 너무나 차이가 났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 사귄다해도 금방 헤어지게 되어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전 좋아하는 여성이 있는 걸 알면서도 이러시는 건가요?"
"그래요. 한석봉 씨는 영광으로 생각하셔야 할 거에요. 가진 게 많은 제가 이렇게 당신을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저, 한 가지 물어봐도 되나요?"
"말씀하세요."
"벌쳐스 사장의 딸이라는 존재와 돈, 리무진, 집사, 고급 드레스, 위상력을 제외하고 가지고 있는 게 어떤 건가요?"

 내 질문에 아가씨는 당황한 얼굴을 보였다. 어떠한 환경에서 살아왔더라도 인간이 가지는 본질은 똑같은 일이다. 나도 아무 이유없이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세하에게서도 들었고, 참된 클로저 일을 하고 있는 걸 직접 목격했었으니까. 어린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해주기도 했고,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용감하게 나서는 걸 알았으니까. 단순히 위상력을 가진 게 아니라, 그녀가 보여준 성품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거였다. 그에 반해 바이올렛 아가씨는 아니었다.

"저, 한석봉 씨,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요."
"아가씨는 만약 제가 무능력자라면 언제든지 회사에서 내쫓으려고 하셨을 거 같아요. 아가씨가 방금 전에 말씀하셨죠? 모든 남자를 거절한 이유는 사장님이 가진 걸 보고 접근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죠? 아가씨도 마찬가지 아니신가요? 제가 보이는 재능을 보고 접근하신 거잖아요. 하루 아침에 제 재능이 사라진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순간 아가씨는 내 시선을 피하며 혼란스러워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대답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벌인 일이 아무것도 아닌 거로 느껴진다면, 당연히 나를 버릴 것이다. 게임에 나온 설정에도 나왔다. 뛰어난 재능을 보고 호감을 가졌던 여성이 하루 아침에 재능이 사라진 남성을 버리고, 새 남자를 얻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좀 더 생각해하셔야 할 테니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2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