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46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3-31 1

"이번에도 수고 많았어요. 위상력 기운이 없는 차원종이라, 그거 참 이상한 수준이군요."

 플레인 게이트에 다녀온 지 하루가 지나고 나서 곧바로 감시관님에게 보고했다. 위상력 기운이 없는 차원종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차원종이 아니라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게 아닐까요? 생명공학기술로 만들어진 생명체 말이에요."
"흠, 일리가 있는 말이군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생명체를 만들어낸 거라면 설명이 가능하겠어요. 그 일은 나중에 유니온과 공동조사를 할 테니, 요원님은 다음 임무에 나서주세요."
"다른 곳에 또 파견되나요? 늑대개 팀은......"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사장님께서 당신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셔서 내리는 임무니까요. 이번에는 늑대개 팀 대장인 트레이너 씨와 함께하면 되는 일이에요."

 트레이너 씨라면 무서운 아저씨 이미지를 가지신 분이셨다. 말 한 마디에 주변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들 수준이었다. 말로는 그렇게 가능하지만, 그 분도 목줄을 차고 있으니 상부를 거역할 수 없는 몸이었다. 늑대개 팀 감시 요원인데 왜 자꾸 그들과 함께하지 않은 임무를 주는 걸까? 

"들어오세요. 트레이너 씨."

 성큼 성큼 걸어오시며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트레이너 씨는 언제봐도 긴장이 넘치게 만들었다. 다른 늑대개 팀은 잘 있다고 해도 불안했다. 

"자세한 건 트레이너 씨에게 들으세요. 데리고 나가세요."
"알겠소."

 여전히 묵직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였다. 이번에는 대장님과 함께하라니, 이번 임무 내내 긴장 안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장님께서 나를 높게 평가했다고?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단지 운 좋게 살아남았을 뿐인데 나를 그렇게 높게 대하셨을 리가 없다. 벌쳐스 현장 요원과 처리부대 소속 클로저들이 나보다 더 험한 일을 하고 있는데, 나만 높게 평가한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복도로 나오며 트레이너 씨 뒤를 따라갔다. 이번에는 대체 무슨 임무를 맡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분은 과거 전쟁에도 참전하여 정예 클로저를 압도할 만한 실력을 가지신 분이었다. 굳이 내가 이분과 같이 갈 필요가 있는 건지 의문이었다. 

"대장님.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건가요?"
"넌 그냥 내 뒤를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솔직히 나도 이번 작전은 맘에 안 들지만 상부의 지시라 따르는 거다."

 그냥 뒤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건가? 내가 가지고 있는 발명품이 있지만,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어쩌면 거절하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호위 임무다. CKT부대가 이끄는 차원종 문제로 사장님께서 UN으로 가게 되셨다. 그곳에서 높은 분들과 중요한 회담을 가지게 될 거다. 전세계에서 오는 커다란 행사니까 각국 정예 클로저들이 모여들 거다."

 헉, 그런 엄청난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고? 다른 유능한 요원들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나에게 맡기신 건지 모르겠다. 사장님을 호위하는 일은 나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많이 있지 않았나?

"왜 네가 가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이군. 한석봉, 넌 네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 인천에서 노다지 군단을 막아내고, 레비아가 본래 힘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일본 유니온에서 보낸 공문에는 네 공적을 높이 사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CKT부대 요원의 전력을 꿰뚫어볼 정도로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다는 걸 인정했다는 의미지. 실은 나도 개인적으로 기대가 된다."

 씩 웃으면서 이야기하시니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날 이렇게 대해줘도 되는 건가? 나보다는 다른 요원들의 공적이 더 클 거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바이올렛 아가씨가 한 짓이었나? 그 분은 자꾸 나를 벌쳐스에 붙잡아두려는 행동을 보이셨으니까.

"호위 임무에 다른 팀원들은 안가도 되는 겁니까?"
"그 녀석들은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말썽을 부리는 녀석들인데, 너를 은근히 맘에 들어하더군. 특히 레비아는 매일 같이 자네를 찾고 있었어. 더는 사람을 죽일 위험을 가지지 않아서 굉장히 기뻐하더군."
"잘 지내고 있는 건가요?"
"플레인 게이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괜찮다면 내게 이야기해줄 수 있나?"
"네."

 벌꿀오소리 팀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곳에서 겪었던 맨트란 타입의 차원종, 검은색 차원문에서 새로운 차원종이 드러내 고전했던 일까지 전부 말했다. 트레이너 씨는 발걸음을 멈추며 두 눈을 반쯤 감으셨다. 어우, 저럴 때마다 무서워.

"그거 이상한 일이군. 과거에 나타나지 않았던 차원종들이 지금 나타난다는 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아. 자네 생각에는 그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노다지 군단을 이끄는 릭스마이너도 CKT부대와 협력관계였다. 분명히 이번 일로 녀석들이 뉴욕에 있는 정상을 습격하러 올 거라 확신했다. CKT부대는 반 유니온 조직, 그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정상들이 모이는 곳에 공격을 퍼부을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였다. 그건 각국 정상들도 예측하고 있었다.

"검은색 차원문도 과거에는 없었어. 차원종 군단장이 저지른 짓일까 생각했는데 그곳에는 CKT부대 요원이 나왔다고 하지? 그 말은 즉, CKT부대가 차원이동을 사용하는 수단일 지도 모르겠어. 그 검은색 차원문 안으로 들어가면 녀석들의 본부로 단번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설마 그럴 리가요. 만약 그런 거라면 검은색 차원문을 왜 오래 열어두겠습니까?"

 트레이너 씨 생각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자신의 본진으로 향하는 차원문을 오래 열어둔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들이 본거지를 숨기며 활동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전세계를 상대로 정면 공격하는 게 아직까지는 무리라는 얘기였다. 한 나라 국가를 상대로 압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원래 테러 조직은 자금줄만 끊어놓으면 장기간 활동하는 게 어려운 법이었다. 전세계적으로 테러 자금줄이 될만한 곳을 엄격하게 감시하고 처리했다. CKT부대는 주로 어디서 자금줄을 얻는 걸까? 

"아직 궁금한 점이 많이 남아있지만, 지금은 눈 앞에 있는 임무에만 집중하도록 하지."

 이야기를 하다가 입구로 나왔다. 검은색 리무진 차량이 앞에 있었다. 사장님 전용 차량이겠지. 트레이너 씨와 옆에서 사장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VIP를 경호하는 거니까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거 같았다. 사장님이 날 믿고 맡기는 일이라고 하니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트레이너 씨가 문을 열어주었다. 어라? 바이올렛 아가씨와 하이드 씨도 같이 가시는 건가? 검은색 드레스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내셨다.

"오랜만이에요. 한석봉 씨. 이번에 잘 부탁드릴게요."
"아, 네. 저야말로."

 허리가 저절로 숙여질 정도로 품위가 있는 자세였다. 검은색 드레스가 너무 잘 어울려서 그런지 제대로 얼굴을 못 마주칠 거 같았다. 세 분이 차에 탑승하자, 곧바로 리무진이 출발했고, 우리는 뒤따라온 승용차에 탑승해 리무진 뒤를 따라갔다. 설마 그 정상회담에 바이올렛 아가씨도 가실 줄은 몰랐다. 

*  *  *

 차량은 공항으로 도착했고, 우리는 곧바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전에 일본 갈 때도 비행기 타고 갔었는데 이번에는 뉴욕으로 가게 되었다. 당분간 해외 임무는 쉬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원래 직장인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편이니까. 그런데 자리 배치가 조금 이해가 안 되었다.

"저, 아가씨, 제가 옆에 앉아도 되는 건가요?"
"어머, 무슨 말씀이세요? 당신은 제 경호원으로 가는 거에요. 한 명도 좋지만, 두 명은 더 좋은 법이에요."

 아니, 그건 나도 잘 알지만, 하이드 씨의 능력이 의심되어서 그러시는 거 같아서 잠시 그의 눈치를 봤지만, 나를 무섭게 노려** 않았다. 이상하네. 어느 게임에서는 주인공이 재벌가 사람과 가까이 지내려고 할 때 집사 쪽에서 은근 견제하려고 했었는데, 하이드 씨는 오히려 미소를 보이며 괜찮다는 듯이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나는 아가씨보다 훨씬 약한데 나같은 사람을 경호원으로 쓴다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게 들렸다. 

"저, 저같은 사람이 정말로 경호원으로 자격이 있을까요?"
"전에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언젠가는 저를 지켜주는 사람이 되겠다면서요? 지금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어떠신가요?"

 아가씨가 웃는 게 왠지 무서웠다. 너무 과도한 기대를 가지시는 건 오히려 오싹하게 들렸다. 저번에 내가 괜히 그런 말을 내뱉었나? 확실히 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조금 곤란했다.

"한석봉 씨는 비행기 두 번 타보시는 거죠?"
"수학여행 때도 탔었어요."
"이번에 UN에서 중요한 회의가 열릴 거에요. CKT부대에는 미스터 블랙이라는 존재에 대해 전체적으로 의논을 나눌 거에요. 적을 궤멸시키려면, 우선 우두머리부터 처리해야 하니까요."

 역시나 미스터 블랙이 화제인물로 올라왔었다. 일본에서도 언급되었는데 아무래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경계하는 인물인듯 했다.

"미스터 블랙에 대해 알아낸 사실은 없나요?"
"전혀 없어요. 모든 걸 완벽하게 은폐하고 있어요. 다만, 그의 정체가 한국인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어요."

 한국인이라, 조금 이해가 되었다. 한국인은 원래 승부욕이 강한 전투민족이기에 전세계를 상대로 테러를 저지를 만한 배짱이 있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세하 요원이 한석봉 씨 친구분이라면서요?"
"네."
"그 사람이 상대했던 조재현이라는 사람이 CKT부대에 가담하고 있어요. 일본에서 정예 클로저와 교전한 문제의 선글라스 남성은 조재현으로 밝혀졌어요."

 아가씨의 말에 나는 놀란 얼굴을 했다. 혹시 또 다시 타임머신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처음부터 미리 되돌릴 거면, CKT부대가 목숨 걸고 죽어라 그들과 싸우지는 않겠지. 과거를 바꿔서 세력이 유리하게 만들면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한석봉 씨는 생각이 참 많으신 거 같군요. 게임을 많이하면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해요."
"게임에서 얻는 지식이 실생활에 적용될 때가 있었어요. FPS 게임을 했던 소년이 수류탄을 알아보고 그걸 조심해서 목숨을 건졌던 사례도 있었습니다."

 게임은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생각도 하지 못한 곳에서 이익이 되기도 했었다. 그러고 보니, 하이드 씨는 괜찮은데 사장님이 나를 경계하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어우, 무서워.

"한석봉 씨. 뉴욕에 가면 뭐부터 하고 싶으세요?"
"네? 저희는 일하러 가는 거 아닌가요?"
"해외로 가는 데 아무것도 건지고, 귀국할 수는 없잖아요."

 해외여행 베테랑 같은 말씀을 하셨다. 하긴, 재벌가라면 해외 여행도 수십 번 이상 했을 테니 어쩌면 당연했다. 이마에 땀이 날 정도로 부담스러웠다. 

"그럼 제가 가는 곳에 함께하도록 해요. 어차피 정상회담은 3일 뒤에 하니까요."
"네?"

 뉴욕에 가서 하고 싶어하시는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뉴욕까지 거리는 14시간 정도 소모되었다. 원래 미리 도착해서 각 정상들과 미리 만남을 가지는 게 일이었다. 일정이 끝나면 곧바로 귀국해야 하는 건가?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2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