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40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3-22 1

 본부로 돌아온 뒤에 곧바로 고이지 씨가 대형 스크린에 문제 화면을 띄웠다. 일본 정예 클로저들이 출동했는데도 한 사람을 잡지 못했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릭스마이너는 한국 정예 클로저들도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그것도 있지만, 우두머리로 보인 그 검은 제복 남성도 보통이 아니었다. 

"현장에 기절했던 정예 클로저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결과, 그 검은 제복 입은 사내는 검은색 위상력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위상력 기운은 아니었습니다."

 고이지 씨의 말에 생각에 잠겼다. 인간이 사용하는 위상력과 차원종이 사용하는 위상력으로 구분 되었지만, 그 두 가지 성질을 가진 위상력도 있었다. 제 3의 위상력, 반인반차원종이 사용하는 거로 알려져 있으며 아직 연구중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곧바로 내 생각을 말했지만 고이지 씨는 고개를 저으며 답변했다.

"제 3의 위상력은 아니었습니다. 저희 일본도 제 3의 위상력 연구에 매진하고 있지만 정예 클로저 경험담으로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제 3의 위상력이 아니었다고요? 제 1도, 2도 아니면, 제 4의 위상력은 아니겠죠?"
"거기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릭스마이너가 CKT부대와 협력하고 있었다는 건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정예 클로저들이 약한 건 절대 아니었다. 릭스마이너는 한국에 나타났을 때도 정예 클로저들을 압도할 만한 실력을 가졌으니까. 레비아가 최대 힘을 발휘해야 겨우 상대할 수준이었다. 전에 봤던 S급 클로저 코이츠 씨도 상처 하나 없는 거로 봐서 릭스마이너와 대등할 만 실력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일단 언론 통제는 하고 있습니다. 정예 클로저들이 대부분 동원되었는데 놓쳐버렸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니까요."
"주제 넘은 발언일 수도 있지만, 일본 클로저는 잘못한 게 없었습니다. 릭스마이너는 저희 한국 정예 클로저도 상대하기 어려운 차원종이었습니다."

 고이지 씨의 의욕을 조금 높이려고 한 말이었다. 유키코 씨도 안색이 조금 어두운 게 보였다. 클로저 한 명의 잘못으로 다른 요원들까지 욕먹게 되어 있었다. 신해랑을 데려간 그 남자도 신원 파악을 하는 게 중요했다. 분명히 한국말을 쓴 거 같았는데 그 사람이 미스터 블랙이었을까?

"마침, 내각정보조사실에서 보내준 정보가 도착했군요. 그 남자를 분석한 결과 신원이 밝혀졌습니다."

 일본 첩보기관은 사람 얼굴로 신상을 파악하는 게 전문이었나? 한국도 뒤지지는 않겠지? 우선 고이지 씨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분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깜짝 놀랐다.

"조재현입니다. 한국에서 타임머신 계획을 벌이다가 알파퀸과 클로저 이세하 일행에게 저지당해 체포되었지만 CKT부대에 의해 구출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군요."

 내가 편의점에서 알바하고 있는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났을 줄이야. 난 아직 클로저가 얼마나 어려운 일을 겪었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히 세하와 그 애도 그 싸움을 힘겹게 이겨냈겠지?

"신해랑을 검거하는 데 실패했으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거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벌쳐스 요원님들이 협력해주신 건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도움이 안 되어서."
"별말씀을요. 신해랑의 전투기술을 가장 먼저 파악한게 한석봉 요원님 아니십니까? 어떻게 그걸 알아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에 정예 클로저들이 쉽게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지원군은 예상하지 못했지만요."

 그 지원군만 아니었으면 확실히 확보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아무튼 이제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끝났다. 휴가도 다 끝났으니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벌쳐스에서 일해야겠지. 가서 또 고생하겠군. 벌쳐스 사람들은 설마 일부로 내게 불이익을 주려고 휴가를 이렇게 보내게 만든 건 아니겠지?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비는 계좌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유키코 씨도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두 사람과 악수를 나누었다. 하피 씨도 유키코 씨와 조금 친해지셨으려나? 어째 두 사람이 악수하는 데 전류가 흐르는 게 보이는데 숙명의 라이벌이라도 되는 건 아니겠지? 이름하여 한일전?

*  *  *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왔다. 유키코 씨는 우리와 헤어지는 게 조금 아쉬웠는지 직접 찾아오셨다. 누가 알아볼 거 같은데 괜찮으시려나? 

"유키코 씨. 감사합니다."
"한석봉 씨. 전에 심하게 말한 건 미안했어요. 당신은 민간인이지만, 거슬리는 존재는 아니였어요. 오히려 도움이 되는 존재였거든요. 한석봉 씨는 클로저를 동경하고 있고, 우리같은 사람을 도우고 싶어했죠?"
"네. 클로저는 인류를 위해 목숨걸고 싸우고 있어요. 클로저가 사람을 지켜주지만, 클로저를 누가 지켜줄까요?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클로저가 전사한 사건이 보도되는 뉴스를 많이 봤다. 정예 클로저들 몇 명도 그 현장에서 사망했다. 그들이 민간인을 지키지만, 클로저를 지켜줄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단지, 좋아하는 여자애를 지켜주고 싶어서 그런 거였지만, 동시에 목표가 생겼다. 그들이 죽지않게 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낸다. 그들만 고통받는 건 눈 뜨고 볼 수 없다. 지금 늑대개 팀이 처한 상황이야말로 내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별 의미없는 행동이라고 손가락질 하겠지만, 시도는 할 생각이었다. 말로 가능성을 운운하는 거보다 행동으로 증명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클로저를 지키는 건 클로저 자신 밖에 없어요.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꿈도 다 끝나게 되었죠. 저도 성우라는 직업을 하고 있지만, 그 직업도 자주 하지 못해요. 많은 작품에서 활동하고 싶어도, 남들처럼 그러지 못하니까요. 언젠가는 성우 자리에서 물러나야겠죠."

 목소리가 들어가야 하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보이스 목소리 등 다양한 작품에 출현하고 싶어도 클로저는 상시 대기해야 하기에 기껏 참여하는 건 단편 스토리를 가진 만화나 게임 엑스트라 뿐이었다. 그녀가 고민하는 이유를 짐작했다. 게임 시연회 때 성우들을 만나 미팅을 한 적이 있었다.

"한석봉 씨는 클로저가 아닌 게 부럽다고 생각해요. 클로저가 되면 강한 힘을 얻은 대가로 꿈을 빼앗기게 되죠."

 정상적인 사회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유니온에 소속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민간인들은 위상력을 가진 이들을 기본적으로 두려워했으니까. 세하도 어렸을 때 친구가 많이 없었던 이유가 그거였다. 그가 잘한 게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강한 힘을 가졌기에 두려워해서 그런 거였다. 유키코 씨의 표정은 진지했다. 위상력을 가져서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던 세하의 어두운 모습을 보는 듯 했었다. 차라리 이런 힘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유키코 씨."
"클로저를 도우려고 하지 마세요. 한석봉 씨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유키코 씨의 말은 틀렸습니다."
"네?"

 이런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었다. 차라리 위상력을 가지지 않았으면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았을 거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했었다. 정말로 클로저가 되면 꿈을 빼앗길까? 나는 아니라고 확신했다.

"인간은 원하는 만큼 꿈을 꿀 수 있습니다. 클로저가 되면 매일 목숨걸고 싸워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다른 일을 아예 할 수 없다는 운명을 가진 것도 아니에요. 유키코 씨가 이미 증명하셨잖습니까? 조금이지만 성우 일을 동시에 하고 계시잖아요."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일에 불과해요. 저는 주연을 맡고 싶었어요."
"엑스트라면 어떻습니까? 적어도 유키코 씨는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어떤 클로저는 목숨을 걸고 차원종과 싸웠는데 아무도 그와 가까이 어울리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그 친구도 나와 게임을 함께했었다. 클로저가 아니었다면 나와 같이 게이머로 활동할 생각이었다. 프로게이머, 그것도 좋지. 우리 둘다 게임을 좋아했고, 서로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졌으니까.

"미국 대통령 존 . F . 케네디가 말한 겁니다. 한국에서 이런 이야기도 전해졌어요. 전교 꼴찌했던 문제학생이 미국에서 노력한 끝에 월 300억 매출을 내는 사람도 있어요. 집안도 가난했고, 낙제생이었던 그 사람이 해낸 겁니다. 유키코 씨는 집안배경이 좋지 않나요? 전교 꼴찌라도 하셨어요?"
"그...... 그건 아니지만......"
"클로저가 되면 하고 싶은 일을 못할 거라는 생각은 버리세요. 지금은 엑스트라 뿐이지만, 언젠가는 주연을 맡게 되실 날이 반드시 올 거에요. 인간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어라? 두 사람 반응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내가 너무 말을 많이했나?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놀라워하고 있었다. 나이도 한참 어린데 주제넘은 소리를 한 거처럼 느껴졌다. 게임을 하다보니 어느 인물이 말한 명언이 가끔 언급되기도 했었다.

"말씀하시는 게 어른스럽군요."
"죄송합니다. 주제넘은 말을 했어요."
"괜찮아요. 실제로 저보다 더 안좋은 환경에 있는 클로저도 저처럼 하고 싶어하는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제가 이러는 건 부끄러운 짓이었네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스스로 생각할 일이었다. 세하는 그 어두운 시절을 이겨냈다. 그 녀석도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었다. 나도 클로저를 위해 위험한 곳에 뛰어들 수 있게 된 것도 세하 덕분이나 다름없었다.

"전 유키코 씨 팬이기도 해요. 성우 일은 그만두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 바램일 뿐이지만요. 하하하."
"고마워요. 덕분에 기운이 좀 나는 거 같네요. 하긴, 엑스트라도 어떻게 보면 중요하겠죠. 주연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니까요."

 내가 클로저를 도우려고 하니까 안쓰러워서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난 그만둘 생각 없었다. 클로저가 가지지 못하는 민간인만의 장점을 포기하면서까지 도울 생각이었으니까. 한 번 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끝까지 나아가는 게 도리다.

"지금 막 저는 주연이 된 느낌이에요."
"네?"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신지 모르겠다. 저게 무슨 말인지 하피 씨에게 물어봤지만 이해가 안 되셨는지 고개를 저었다. 

"주연을 더욱 밝게 빛나게 해주는 게 바로 엑스스타라고 하셨죠?"
"네. 그런데 주연이 되셨다는 말씀이....."

 어리둥절했지만 갑작스러운 유키코 씨의 행동에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부드러운 뭔가가 내 뺨에 닿아서 당황스러웠다. 순식간에 내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손으로 그 부분을 만지며 눈을 깜빡였다.

"이게 뭐하는 짓이죠? 당신."
"어머, 저는 단지 의미를 설명한 거에요. 하피 씨. 그렇게 화내실 필요 없잖아요."
"뭐라고요? 지금 그 행동이 방금 말한 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죠?"
"바로 석봉 씨가 저를 밝게 빛내줄 엑스트라라는 뜻이에요."

 에? 내가 엑스트라라고? 정확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었다. 나는 유키코 씨에게 이런 취급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한 거 같지 않았는데 아무튼 조금 혼란스러웠다. 유키코 씨는 방긋 웃어보이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음에 일본 오실 때 연락해주세요. 이만 가볼게요."

 그대로 작별인사했다. 머리가 하애진 느낌이었다. 내가 그 성우분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이야. 하피 씨가 무섭게 도끼눈으로 나를 노려보자 기겁했다.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죠?"
"네? 아...... 아니, 전 그러니까."
"흥!"
"저, 잠깐만요. 같이가요."

 설마 질투하시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럴리가.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2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