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궁쥐팀/미래,철수] 외출 中 - 1
Forgetter 2020-02-22 13
※ 배경 시점은 시궁쥐 시즌1 재해복구지역쯤
※ 시궁쥐 팀 시즌1 스토리 배경은 정확히 잘 모르지만, 크리스마스 기념 마을에서 자주 돌아다니다보니 12~1월 쯤으로 자리잡고 썼습니다.
※ 이전편 : (上) http://closers.nexon.com/board/16777337/15230/
총을 쥐고 있으면 익숙한 긴장감이 몰려온다. 주변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게 된다. 오로지 보이는 것은 쏘아서 맞춰야 할 것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과녁을 향해 조준을 겨냥하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긴다.
탕-
한 발의 총알로 목표물이 쓰러지고 나면 그제야 주변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대부분은 죽어가는 상대방의 단말마가 들리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님...?”
자신을 정중하게, 그러나 당혹감은 전혀 감추지 못하는 일반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손님?”
미니 게임을 펼치고 있던 남자가 철수의 어깨를 툭- 잡았다.
철수는 그제야 한 차례 깨어난 듯 했다. 총을 잡은 순간은 기억하지만,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총을 집고 방아쇠를 잡아당긴 것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총을 쏠 때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등은 전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손님...?”
“아.”
철수는 한 번 더 자신을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에 총을 내려놓았다. 남자는 지금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철수는 남자가 왜 자신을 그런 표정으로 보는지, 자신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자신의 앞에 있는 망신창이가 된 과녁을 보고 깨달았다.
분명 자신과 미래가 여기 오기 전까지는 상자 안에 알록달록 가득 찼던 풍선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터진 풍선의 잔해는 바닥에 가득 뒹굴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철수의 앞에 남아있는 풍선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잠시 자신의 안에 있는 어떤 스위치가 눌렸던 모양이다. 철수는 멋쩍게 뺨을 긁적였다.
당혹스러운 것은 철수 뿐 아니라, 장사를 하는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여기 거리에서 풍선 터트리기 미니 게임을 펼친 것은 불과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목표물을 다 맞춘 사람은 없었다. 처음 남자는 철수를 보았을 때 말쑥하게 입은 차림으로 보아 이런 게임 같은 거 잘 못할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총을 잡은 순간 철수는 확 달라졌다. 그것도 무감정하게, 거의 기계적인 습관마냥 쏘아대는 사람은 더더욱이나 없었다. 남자는 바로 철수 옆에 있었기에 총을 쥐고 있던 순간의 철수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남자는 이 세상에 저렇게 아무런 감정 없이 총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특히 그 무감각한 얼굴 속에서 유일하게 영문 모를 빛을 발휘하던 게 눈동자뿐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 그랬다.
이 사람은 어쩌면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도 있을지도 몰라. 그것도 별로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남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철수는 이런 남자의 복잡한 속내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자신이 처참하게 만들어낸 청소시켜야 하는 것들에 대해 짧은 사과를 내뱉었다.
“...이거 실례했군.”
“아니요, 아주 훌륭한 솜씨네요.”
무서웠다, 놀라웠다는 평처럼 이것도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빠른 속도, 정확한 조준, 이건 명백히 칭찬해도 되는 것이었다.
이런 철수의 솜씨에 홀린 것은 비단 남자뿐만이 아니었다. 지나가던 행인들조차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할 정도였다. 어떤 이들은 휴대전화 카메라를 통해 사진이며 동영상을 찍고 있기까지 했다.
원래부터 미래가 가지고 싶다고 했던 쥐 인형과 더불어, 서비스로 몇 개의 인형을 더 받아낸 철수가 물건을 챙기는 동안 남자가 빙긋 웃으며 물어보았다.
“아주 엄청난 솜씨셨어요. 그래서 말인데 손님은 혹시...”
‘혹시...?’
철수는 순간 긴장했다. 혹여나 위상능력자라던가, 교단에 소속된 처형인이었다던가 라는 터무니없는 말이 나올까봐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인이 장난감 총이라고 해도 이렇게 능숙하게 하나의 직업처럼 사용하는 일은 별로 없을 테니까.
다행이도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선이었다.
“혹시, 사격 선수라든지...?”
“...”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난이도 좀 올리는 건데. 뭐, 그래도 매우 훌륭했습니다.”
철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그런 단어...이런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나올 말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자신은 왜 긴장을 했고, 또 안도를 느끼는 걸까.
...여러모로 복잡하다.
* * *
“...그렇게 좋은가?”
“응.”
미래는 아까 전부터 철수가 미니게임을 통해 뽑아준 인형 – 하얀색 쥐 모양의 – 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인형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철수는 미래의 그 모습을 보며 뽑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뭐, 저 인형 하나만 아니라 어쩌다 보니 도장 깨기 격으로 격파를 해버려서 양손에 솜뭉치 짐이 생기기는 했어도, 기분이 좋았다. 이 뿌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를 철수는 금방 찾았다.
“그러고 보니,”
“...?”
“오늘 처음으로 웃은 거 같군.”
“...나, 안 웃었어?”
자신이 오늘 계속 안 웃었다는 말에 미래는 적잖이 놀라하며 되물었다. 미래는 감정 표현이 작아서 그렇지, 의외로 얼굴에 현재의 기분 같은 것이 잘 드러난다. 철수는 피식 웃었다.
“나와 이렇게 있는 것이 싫은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싫지 않아. 그런데 나랑 당신이랑 이렇게 있어본 적이 없잖아.”
그랬다. 미래와 철수가 단 둘이 있는 경우는 임무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임무가 아닐 때에도 항상 수현이나 저수지, 감찰관이 꼭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랬다...그랬구나...처음 철수가 미래와 같이 휴가를 가**다는 사실을 수현에게서 들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싫은 게 아니라, 어색한 거다.
지금도 어색해 죽을 거 같아서, 미래와 나란히 걷지도 못하고 어느 정도 보폭을 유지한 채로 뒤만 따라가고 있었다.
저수지 밑에서 같이 일하는 심부름꾼 동료. 선후배 사이. 잠깐이기는 했지만 생과 사의 고비를 같이 넘나들었던 사이...자신과 미래가 처했던 상황은 좀 특수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보니 이렇게 거리로 나와 걸어 다니고, 붕어빵을 먹고, 인형 뽑기를 하는 등의 평범한 일상 같은 것이 영...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수현이 웃으며 말했던 게 떠올랐다.
-그렇게 큰 걱정 마세요. 형만 그런 건 아니니까.
“...그 말이 맞는 거 같군.”
“응...?”
철수의 혼잣말에 미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철수는 별 일 아니라며 손 사레를 쳤다. 별 거 아니었다. 그냥 한 고비 넘어가는 것일 뿐.
어색한 것을 도저히 못 참는 두 사람이었지만, 대화는 천천히 이어지다가도 금방 툭- 끊겼다. 그렇기에 항상 새로운 대화 주제를 찾아야만 했다. 예를 들으면 이런 것.
“그보다 이 인형들은 어떡할 건가?”
“저수지와 감찰관한테 주면 되잖아. 선물이라고.”
“선물이라고?”
“응, 선물.”
“선물 따로 챙겨오지 말라고 했었는데.”
뚝- 또 대화가 여기서 끊어버렸다. 이번에는 미래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붕어빵이라는 거 맛있었어.”
“또 먹고 싶은가?”
“괜찮아.”
아, 이번 대화는 더 오래 잇지도 못했다. 무슨 말만 하려고 해도 이렇게 엉성하게 끊어지니까, 그저 말없이 걷기만 하는 것이었다. 찬바람 속에서 계속 걷는 건 그렇게 추천할 일은 아니었는데. 게다가 이미 그 추위 속에서 몇 시간째 걷기만 하는 상태라서 더 그랬다. 그런 철수의 앞에 구세주 같이 등장한 것이 있었다.
철수는 미래를 불러 멈춰 세웠다.
“미래.”
“응?”
“...저기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철수가 가리킨 곳은 이 근방에서 유명한 대형 쇼핑몰이었다.
* * *
“크다...”
처음 쇼핑몰에 들어갔을 때 미래가 꺼낸 첫 번째 말이었다. 그 다음 두 번째는,
“사람도 많아.”
“그렇군.”
게다가 따뜻하기까지 했다. 찬바람 속에서 계속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이렇게 실내에 있는 것이 훨씬 그들의 몸 상태에 더 좋을 것이다. 아무리 위상능력자가 일반인들에 비해 강하다 하더라도,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차디찬 길을 해매는 것보다는 이 편이 훨씬 좋으리라고 생각했다.
미래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미래는 철수에게 말했다.
“여기가 쇼핑몰이구나.”
“그래.”
“거기와는 다르게 사람도 많이 있어.”
거기라고 한다면 아마 임무 배정으로 인해 몇 번이나 찾아갔던 파괴된 쇼핑몰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곳은 차원종의 습격으로 파괴된 이후로 다시 재건되지 않았던 곳이었으니까. 미래가 처음 접한 쇼핑몰이라는 곳이 그런 곳이다 보니 이렇게 사람이 우후죽순으로 몰려다니는 일반 쇼핑몰의 풍경이 낯선 것도 어쩌면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기억을 잃은 자신은 왜 그 파괴된 쇼핑몰이 일상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걸 무의식으로 깨닫고 있었을까. 참 기억이란 오묘한 거 같았다.
“김철수.”
“왜 부르지?”
“일단 들어오기는 했는데,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야?”
“...”
미처 그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단 실내로 들어가자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기에. 그래도 이곳은 제법 규모가 큰 쇼핑몰이었다. 먹고 놀고 구경할 매장은 얼마든지 있었다. 철수는 대충 쇼핑몰의 약도를 그렸다. 대략 5층까지 있다고 했었다.
미래는 아직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건물 안인데도 굉장히 넓다.”
그 증거로 1층 로비에는 아까 만났던 광장과 비슷한 것이 있었다. 한가운데에는 고급스럽게 생긴 분수대가 놓여 있었다. 그 분수대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길이 뻗어져 있었다. 하나의 도시와 같은 생김새에 철수는 미래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군.”
그 후, 미래는 철수의 입장에서는 약간 가슴이 철렁한 말을 서슴없이 뱉었다.
“자칫하면 길 잃어버릴 거 같아.”
“걱정 마라.”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계속 지켜봐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것만은 왜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냥 자신의 절망적일 정도의 말주변 실력을 원망을 해야 할까.
이런 철수의 절망과는 다르게 미래는 사뭇 희망차게 말했다.
“응. 괜찮을 거야.”
“미래...”
그 다음 미래가 꺼낸 말은 철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항상 내 뒤를 지켜봐주잖아.”
“...알고 있었나.”
“그림자가 있으니까, 알게 돼. 뒤에 누가 있는지. 그게 누구인지.”
미래가 수줍게 웃었다.
“그래서 알고 있어. 당신이 항상 내 뒤에 있다는 걸. 그리고 항상 날 봐준다는 것도.”
“...”
“그 점이 뭐랄까...약간 안심이 돼. 하늘이 언니는 항상 옆에서 내 손을 잡아주었는데, 그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래는 철수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어색할 뿐. 철수의 그 무뚝뚝한 배려를 어느 순간 눈치 챈 이후부터, 미래는...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잘 가늠이 가지 않았다. 이렇게 단 둘이서,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대화를 한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 항상 정수기처럼 여과기 하나는 거쳐야 했다. 그래서 지금 단 둘이, 이렇게 외출을 하고 있는 상황이 무척 어색하고 직접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조금...무섭기도 했다.
그래도 표현하지 않고서는 영원히 전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처음 저수지와 세린이 철수와 같이 외출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뚱-함보다는 오히려 기대감이 더 컸다. 그 기대가 새로운 세상을 한 번 맛보고 온다는 점에서도 있었지만, 드디어 항상 고맙다고는 생각하지만 차마 말을 하지 못했던 감사 인사를 할 때가 왔다는 것에서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고맙다는 말은 천하의 미래조차 차마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철수는?
철수도 미래를 싫어하지 않는다. 미래의 말처럼 묵묵히 미래의 뒤를 챙겨주는 것도 그러한 일환 중에 하나였다. 미래는 철수에게 있어서 같은 심부름꾼 동료이기도 했지만, 지켜야 하는 섬의 아이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자신이 조금이라도 속죄할 수 있는 길. 물론 완벽하게 죄를 털어놓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원래부터 이 일을 했어야 했다. 교단에 속해있든, 기억을 잃기 전이든. 명백하게 어떤 형태로라도.
그렇기에 미래가 기특한 한편으로, 조금 더 부드럽게 대해주고 싶은 것과는 반대로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같은 방향으로 향한 거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목적지의 방향이 살짝 비틀어져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조금 나누는 사이, 어느 새 인파가 몰려왔다. 넓게만 느껴지던 광장도 사람이 가득 들어차서 발 딛을 틈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인파 속에서도 철수는 용케도 미래를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 쫓고 있었다. 미래 또한 간간히 뒤를 돌아보며 철수가 있는 것을 곧장 체크했다.
그렇게 현재 두 사람이 쇼핑몰에 정한 것은, 쇼핑몰 안 맛집 투어라는 명목의 디저트 가게를 순회였다. 저수지와 세린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달콤한 것들이 많았지만, 신중해야 했다. 가지고 있는 돈은 한정적이다. 그러니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반짝거리는 것들이 너무 많은 지금, 미래는 고민에 빠졌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던 미래는 철수를 낮게 불렀다.
“김철수.”
“왜 그러지.”
“거기 가게 말이야...”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지만, 철수는 그 뒷말을 듣지 못했다. 이유인 즉슨, 갑자기 누가 밀어낸 탓에 무게 중심을 잃어버려, 한순간이지만 시야 안이 뒤죽박죽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 사이 시선 처리가 엉망진창이었다.
철수는 미래를 불렀다.
“미래...?”
그러나 답이 없었다. 불안감은 여기서 엄습했다. 철수는 다시 한 번 미래를 불렀다.
“미래?”
자신이 미래에게서 한눈을 판 건 아주 짧은 찰나일 터. 그리고 그 짧은 찰나에도,
“미래!”
분명 한 발자국 앞에 있던 미래는 사라져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