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72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8-06 1
김유정 요원의 차량이 한참 앞으로 나아가서 본부장의 차를 막아냈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앞서 가는 차량을 요리조리 피한 뒤에 앞을 가로막으면서 정차했고, 뒤에 따라오던 본부장의 차도 정차했다. 그런 뒤에 김유정 요원이 운전석에서 먼저 내렸고, 상대방도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내렸다.
"소속을 밝혀주십시오."
"유니온 신서울 지부 김유정 요원입니다. 본부장님, 클로저를 습격한 범죄자와 내통한 혐의로 체포하려고 왔습니다."
"유니온 요원에게는 체포 권한이 없습니다. 월권행위를 하지 말아주시죠."
"무슨 일이야?"
뒷좌석에 앉아있던 본부장이 기다리다 못해 차에서 내렸다. 경호원들이 그에게 인사를 하며 사정을 설명하자 본부장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보며 말했다. 어차피 다 드러날 거라고는 예상했었다. 누군가는 자신을 쫓아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설마 그녀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직급도 낮은 관리요원에 불과한 자가 올 거라고는 예상도 못했다.
"하아... 김유정 요원이라고 했나? 자네에게는 나를 체포할 권한이 없네. 그러니 지금 당장 길을 비키기 바라네. 여기 지금 느림보 거북이처럼 천천히 지나가는 차량이 안 보이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본부장님. 아이들을 포함한 클로저들을 수차례 다치게 만들었고, 타임머신 계획에 가담해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데에 동조했습니다. 이를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하는 법이다. 어차피 클로저들은 과거로 돌아가면 다시 태어나게 되어있어. 어찌되었든 자네는 나를 체포할 권한이 없네. 자꾸 그렇게 나오면 공무집행방해로 입건시킬 수도 있어."
본부장은 지금 해외로 업무차 나가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공무를 집행하는 상황인데 이를 방해하는 행위를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될 수 있었다. 검은 정장의 남자들이 그녀에게 다가갔지만 총을 꺼내든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본부장은 또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인지 아나?"
"알고 있습니다. 전 오늘, 제 관리요원직을 걸고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래? 담력은 인정하도록 하지. 그런데 말이야. 자꾸 이런식으로 나오면 이쪽도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좋은 말 할 때 비키게."
검은 정장을 입은 자들도 권총으로 조준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경찰차들이 도착했고, 순경들이 김유정 요원을 둘러쌌다. 차에서 나오기 전에 미리 경찰에 신고했던 것, 김유정 요원은 총구를 돌렸지만 순경 한 명이 틈을 노리고 권총을 잡아내고 나머지 한 명이 그녀의 한 쪽 팔을 잡아 권총의 손잡이에서 떨어뜨린 뒤에 수갑을 채웠고, 나머지 손도 떼어내서 마저 연결했다.
"선생님. 공무집행방해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순경들이 그녀를 곧바로 순찰차에 태우려고 했고, 본부장 일행은 다 끝났다는 듯이 차량에 탑승하려고 했지만 한 순경이 무전연락을 받고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김유정 요원의 양 손을 묶은 수갑을 풀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본부에서 지시가 내려왔어. 유니온 본부장을 체포하라는 지시야."
순경들이 이번에는 그들에게 다가갔고, 본부장 일행은 고개를 돌리면서 당황해하면서 붙들린 채로 포박되고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입장이 바뀔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유니온 본부장도 경찰 이상의 권력을 가지기 때문에 처음에는 경찰들이 그의 말만 듣고 따르고 있었지만 경찰들을 움직일 만한 권력을 가진 인물은 한 명 더 있다. 바로 신서울 지부장이다. 본부장은 이를 뿌득 갈면서 차재욱 지부장을 떠올렸다.
"그 녀석이 감히 배신을."
"배신이 아닙니다. 정의를 집행하는 겁니다."
"실례했습니다. 김유정 요원님이시죠?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아니에요. 저들이 무사히 잡힌 것만으로도 된 겁니다."
자신의 직책을 걸고 저지른 일이었다. 커다란 기대는 하지 않았었는데 신서울 지부장이 뒤에서 강력하게 지원해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건 본부장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가 이런 선택을 한 건지는 모르지만 데이비드 국장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그녀는 판단했다. 그리고 마침 하늘 위에서 헬기가 다가오는 게 보였고, 그곳에서 손을 흔드는 데이비드 국장의 모습을 보고 쓴 웃음을 보였다.
* * *
검은색 배경으로 되어있는 공간이다. 발 밑에도 검은색, 하늘을 포함한 다방향도 검은색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엎드려 있었다. 지금 일어나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강했으니까. 그의 본래 힘은 나같은 위상력 능력자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공간에서 빠져나갈 곳은 보이지 않았다.
우우웅-
하나로 합쳐진 건 블레이드가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왜 갑자기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나는 몸을 일으키며 건 블레이드를 천천히 주워들었다. 그러자 푸른색 빛줄기가 눈부시게 빛나서 놀란 나머지 그것을 놓쳐버린 채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허억. 갑자기 왠 빛이?"
잠시 후에 나는 건 블레이드 위에 떠 있는 홀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완벽하게 재현해낸 모습이다. 하얀 가운에 안경을 쓰신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연구원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버지. 이게 어떻게......"
말을 잇지 못했다. 건 블레이드에서 빔 프로젝트 같은 빛이 나와 아버지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말씀하신다.
[나의 아들 이세하에게. 아들아. 이 메시지를 보고 있다면 난 이미 죽은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을 거라고 확신한다. 너에게 말도 하지 않고, 계획한 일이 있었는데 그걸 말하지 않아서 미안했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직접 너에게 진로를 도와주려고 했다.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세하 네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선택하는 순간에 왔다고 믿는다.]
"아버지. 무슨 말씀을......"
[본래 인간은 마음 속의 고통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존재란다. 일시적으로 극복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나타나게 되어있다. 항상 미안했다. 아버지로서 해준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미안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 타임머신을 준비했다. 세하 네가 계속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보다 다시 새로 시작하는 게 나았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바보같은 생각이지. 지금 너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천재 과학자라고 불린 내가 왜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는 건지 말이야.]
정말로 궁금했다. 아버지는 머리가 좋다. 정신력이 강하다. 고등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기 때문에 타임머신으로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해결책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충분히 알고 계실 것이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선택을 하신 건지 모르겠다. 그러자 아버지의 입이 열어지는 순간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고, 동공지진이 오는 것을 느꼈다.
[당연한 일이란다. 원래 부모는 자식 앞에서는 바보가 되는 법이란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현명하지 않는 행동이라도 뛰어들 줄 알아야 되는 거란다. 아버지란 원래 그런 존재지. 엄마도 마찬가지란다. 항상 고통당하는 너를 보면서 어떻게 도와줘야 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셨단다. 나도 그랬고.]
씁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엄마 아빠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했다. 나를 도와주고 싶어도 입장상 도와줄 수가 없었다는 것을. 두분 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매스컴에 주목을 받고 있어서 맘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을.
[만약에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면 지금 건 블레이드를 잡고 메시지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거라.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보다 현재의 길을 계속 걸어나가기를 선택한다면 그 선택 또한 존중할 것이다. 잊지 마렴. 아버지는 천재 과학**만, 언제까지나 항상 네 편만 들어주는 바보라는 존재라는 것을.]
그 말을 마치고 아버지의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그러자 건 블레이드가 푸른색 섬광을 일으키면서 주변에 있는 검은색 배경을 흰색 배경으로 만들고 있었다. 어둠이 빛에 의해 걷혀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보안코드 3단계 해제.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건 블레이드가 푸른색 파동을 사방으로 퍼뜨린다. 잠시 후에 나는 조재현과 싸웠던 장소가 눈에 보이는 것을 보았고, 동시에 그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재현의 양 손에 낀 하얀 장갑이 스파크를 일으키면서 불에 타고 있었고, 금방 타버린 부위에는 조재현의 흉측한 양 손이 드러났다.
"이... 이럴 수가... 안 돼!!"
아버지의 목적은 이거였다. 원래 조재현의 역할을 아버지가 맡을 예정이었다. 타임머신을 개발함으로서 괴롭지 않던 시절로 되돌아가 과거를 바꿀 것인지, 아니면 고통을 가진 채 현재의 길을 걸어갈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아버지는 그 선택을 존중하셨다. 선택지를 주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서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만 조재현 녀석의 장갑이 타버린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여자애들과 제이 아저씨가 나를 보며 무사했냐면서 한 마디씩 했다. 다친 모습을 보니 내가 사라진 뒤에 그들과 교전을 벌인 모양이었다.
* * *
서지수의 주변에는 메카 차원종들의 잔해가 쌓여 있었다. 그렇지만 회장은 계속해서 메카 차원종들을 보냈다. 그만큼 많은 인력들을 이용해 수많은 메카 차원종들을 만들어 냈었으니까. 서지수는 큰 기술만 쓸 수 있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제이 일행이 아직 빠져나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차마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슬슬 힘이 들어서 자세가 약간 흐트러지려고 했다.
"하하하하! 슬슬 한계가 보이는 군. 이제 그만 포기해라."
"절대로 그럴 수 없어! 겨우 이 정도로 포기하면 내 명성이 울지."
건 블레이드에 푸른 위상력을 주입하면서 다시 한 번 메카 차원종들과 싸우려고 했지만 갑자기 타임머신에 스파크가 발생하다가 폭발하는 게 보였다.
"뭐, 뭐야!? 왜 갑자기 폭발하는 거야?"
회장이 달려가서 타임머신 기계를 살펴보았지만 시스템에 음성 메시지가 흘렀다.
-보안코드 3단계 감지됨. 자폭모드 실행.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