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소드&걸스의 여름휴가
큰까마귀보라 2019-07-10 2
나중에 만나서 밥이라도 같이 먹어요, 태스크포스 결성 직후 유리는 나머지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으며 말한다. 파이도, 바이올렛도, 세 사람 사이의 공통점이 꽤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이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하루 정도는 셋이 만날 시간이 있겠지. 그때의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벌써 반년 이상 지났네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부산의 어느 거리. 바이올렛은 차에서 내리며 선글라스를 쓴다. 하이드는 그녀가 다 내리기도 전에 이미 양산을 들고 서 있었다. 고마워요, 바이올렛은 그에게 양산을 받아들고 주위를 둘러본다.
“끝날 때쯤 연락할게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그날 이후로 반년이 흘렀다. 그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셋은 만나자는 이야기만 실컷 하고는 도통 만날 수가 없었다. 여유가 생겼다 싶으면 새로운 사건이 터지고, 수습하고, 다시 그것의 반복. 결국 최근에야 일이 대강 마무리되어 사흘의 짧은 휴가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사흘 중 하루를 바이올렛은 소드&걸스 멤버를 만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마침 나머지 두 사람도 시간이 맞아 만남은 빠른 속도로 성사되었다.
“바이올렛 언니!”
멀리서부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바이올렛은 고개를 돌린다. 유리와 파이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바이올렛도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든 뒤 그곳을 향해 걸어간다.
“어머, 두 분 다 처음 보는 느낌의 옷이네요. 잘 어울려요.”
“언니도 오늘 너무 예뻐요!”
늘 일에 관련되어 만나서 그런지 셋은 늘 서로의 정복만 보고 있었다. 사복은 좀처럼 볼 기회가 없었기에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신기해하고 있었다. 바이올렛과 유리가 서로의 옷에 대한 칭찬으로 책을 몇 페이지나 써낼 무렵, 파이는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유리 양,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에이, 괜찮다니까요. 제가 아까도 이야기했는데!”
바이올렛이 합류하기 전 한 시간 정도 먼저 만난 파이와 유리는 옷 쇼핑을 하고 있었다. 옷을 안 산 지 꽤 되었다며 파이가 유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유리가 파이를 위해 고른 옷은 파란색의 세일러 원피스였다. 치마의 길이를 본 파이는 기겁했지만, 유리가 괜찮다며 밀어붙였고, 결국 둘은 이 옷을 구매한 것이다.
“그래요. 파이 씨에게 잘 어울리는 옷인데,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그, 그런가요….”
“자자, 그럼 우리 빨리 출발해요.”
유리는 중간에 서서 두 사람에게 팔짱을 낀다.
“어디부터 갈 거예요? 밥? 언니들 밥 드셨어요?”
“마침 점심 먹을 시간이네요.”
“그럼 식사부터 해결하고 돌아다니죠. 배가 든든한 게 좋으니까요.”
***
“바, 바이올렛 언니…? 제가 지금 보고 있는 메뉴판, 제대로 된 거 맞죠?”
“처음으로 두 분과 함께하는 점심인데, 아무거나 먹을 순 없죠.”
유리는 눈이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점심은 바이올렛이 미리 알아본 곳에서 해결하기로 했고, 그녀가 두 사람을 데리고 온 곳은 고급 횟집이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전혀 가볍게 한 끼 할 만한 가격이 아니었다. 파이 역시 메뉴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의문을 표한다.
“1/3로 나누면 1인당 가격이…”
그녀는 손가락을 접으며 머릿속으로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계속 숫자에 허덕이고 있자 바이올렛이 목을 가다듬는다.
“흠, 흠! 여러분? 점심은 제가 산다고 얘기했을 텐데.”
“가격이 이럴 줄은 몰랐죠. 이걸 어떻게 그냥 얻어먹어요?”
“유리 양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돈 계산이 해결되기도 전에 요리는 하나둘 나오고 있었다. 아직 주문 안 했는데, 유리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여러분이 계속 고민하고 계셔서 제가 그냥 가장 비싼 C 코스로 주문했어요.”
접시가 하나둘 놓일 때마다 유리의 눈이 반짝인다.
“언니, 진짜 얻어먹어도 돼요?”
“그럼요.”
“그, 그럼… 잘 먹겠습니다.”
“유리 양, 벌써 고민은 포기하신 겁니까?”
파이의 말에 회를 한 점 입에 넣으려던 유리가 행동을 멈춘다. 빨개진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는 그녀.
“그, 계속 고민하니까 배가 너무 고파서…”
“파이 씨도 어서 드세요. 계속 그러시면 화낼 거랍니다?”
“그럼 염치 불고하고…”
파이는 자신의 앞에 놓인 조개 요리를 입에 가져간다. 우물우물 씹던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바이올렛의 양손을 잡는다.
“산해진미란 이런 것을 보고 말하는 것이군요! 입에서 파도가 넘실거립니다!”
“이,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이에요.”
“어, 저 그거 만화에서 본 것 같아요! 입에 넣자마자 파도가 쏴-”
음식 이야기를 하고, 또 이때까지 있었던 일상에 관해 이야기하며 세 사람은 식사를 계속한다. 그렇게 1시간 정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뒤 그들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앞서가던 유리가 몸을 돌려 두 사람을 쳐다본다.
“이번엔 제가 언니들을 모시겠습니다!”
이번은 유리가 두 사람을 리드하기로 했다. 기분이 좋은지 한참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던 유리가 멈춘 곳은 어느 푸드트럭이었다.
“여기 씨앗호떡이 가장 맛있다고 SNS에서 봤어요.”
호떡 세 개 주세요, 유리는 방긋 웃으며 주문한다. 반죽 세 개가 기름에 지글지글 튀겨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사장이 종이컵에 담긴 호떡 세 개를 각각 나눠준다. 뜨거우니 조심해서 드세요, 유리의 말에 두 사람 다 호떡을 불고 있다.
“유리 양, 이거 언제까지 불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한참 동안 호떡을 호호 불고 있던 파이가 유리에게 묻는다. 이제 괜찮을 건데요, 벌써 양 볼 가득 호떡을 우물거리고 있는 유리. 한편 바이올렛은 호떡을 한입 베어 물고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언니, 혹시 입에 안 맞아요?”
“소영 씨가 붕어빵을 줬을 때 이후로 받은 두 번째 쇼크에요.”
“……네?”
호떡을 쥔 바이올렛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언니, 호떡 터져요! 유리가 당황하며 그녀를 말려**만 지금 바이올렛은 무아지경의 상태였다.
“식품 쪽 사업은 손대지 않으려 했는데, 역시 생각을 바꿔야겠어요.”
“음, 바이올렛 양의 두 눈이 굳은 의지로 빛나는군요! 멋있습니다.”
“아니, 파이 언니까지.”
“돌아가면 할 일이 많겠네요. 고마워요, 유리 양.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어요.”
바이올렛의 감사인사에 유리는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겨울 되면 자주 호떡 만들어서 가져다 드려야겠다, 어느 새 겨울 계획까지 세우게 된 유리였다.
***
소란 이후 다음 코스는 빙수였다. 슬슬 들어갈 곳이 없는데요, 파이가 배를 붙잡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지만 나머지 둘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이런 말이 있죠.”
“저 그거 알 거 같아요, 밥 배랑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
“맞아요, 제 말이 바로 그거에요.”
합이 잘 맞는 두 사람을 보며 파이는 고개를 흔든다. 대단하십니다, 여러분. 파이의 칭찬에 유리가 얼굴을 붉힌다.
“인간이라면 다 가능한 거예요!”
결국 손에 컵 빙수 하나를 들게 된 파이. 그들은 나란히 벤치에 앉아 빙수를 먹는다. 급하게 먹다 머리가 띵해진 유리. 천천히 먹을 법도 한데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후에도 세 사람은 부산의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시장에서 처음 보는 해산물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해상 케이블카를 타기도 하고. 파이가 높은 곳에 올라가자마자 멀미가 난다며 한차례 소란이 있었지만 어떻게 해결한 후 그들은 다시 관광을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우리 야경 구경해요!”
마지막 코스는 광안대교였다. 깜깜해진 하늘을 형형색색의 불빛이 밝게 비추고 있었다. 화려한 그 모습에 매료된 그들. 셋은 나란히 모래사장 위에 서서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파이가 먼저 입을 연다.
“고향에 있을 때도 친구들과 이렇게 놀아본 적이 없어서… 두 분 덕분에 좋은 경험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네요.”
“마찬가지에요. 이렇게 놀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저도 엄청 즐거웠답니다.”
“언니들만 괜찮다면 이제부터 자주 만나면 되죠! 겨울엔 같이 스키 타러 가요!”
유리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손을 각각 잡는다.
“좋아요.”
“좋습니다!”
소드&걸스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다음 약속은 이번보다는 좀 더 길게, 그리고 빨리 다가오기를. 똑같은 생각을 하며 셋은 서로를 보고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