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하X정미 ] Highschool Of The End, And... 上
치파리P 2015-02-20 0
피로도 다써서 끄적여본 글. 형편좋게 제멋대로 설정을 바꾼 것도 있으니 너그럽게 넘어가주시길 바람.
上
초여름의 하늘은 제법 마음에 든다.
무료하기 짝이없는 잿빛 세상에도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당당히 표현하듯 일망무제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고민같은 것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가 있다. 마치 속세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것만 같다.
그렇기에, 나는 하늘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수업 시간에 말이다.
“거기, 우정미! 수업에 집중해라!”
“…아, 네.”
문득 자신의 이름이 귀를 때렸기에 나는 곧장 고개를 돌리고 마지못해 칠판을 바라본다.
진한 초록색으로 물들어있는 넓은 칠판은 이미 순백색 분필이 지나간 길들에 의해 빼곡하게 덧칠되어 있었다.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는 복잡기괴한 공식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집합소, 칠판을 보자 난데없이 두통이 밀려온다. 살살 관자놀이를 문지르고, 어지러진 생머리를 어깨 뒤로 넘긴다.
─월요일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니, 것보다 싫어한다. 하물며 월요일의 1교시는 더더욱 싫어한다. 아니, 것보다 혐오한다.
이건 나만 이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된 사실이다. 블루 먼데이라고 들어보았는가? 휴일이 지난 후의 월요일은 절로 우울해진다는, 대충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블루 먼데이는 초록 포털 사이트에 쳐보면 사전으로 나올 정도로 널리 알려진 말이다. 이 것은 즉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이라는 뜻으로 휴일 후의 월요일은 모두 싫어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나는 재차 고개를 돌려 창문 바깥을 바라본다. 하늘을 바라본다.
월요일을 싫어한다는 말에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본다는 결과가 도출되냐고? 뭐, 세세한건 넘어가라.
각설하고,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초여름, 녹음(綠陰)의 계절에 맞춰 화사한 파스텔 톤으로 물들어있는 광활한 하늘은,
─역시나, 내 마음에 든다.
내가 홀로 그렇게 주절주절 감상을 늘어 놓고 있자니,
드르륵.
난데없이 교실 문이 열렸다. 물론 뒤 쪽 문이.
그리고 그 문으로부터 당당한 걸음새로 어느 한 학생이 들어온다.
베이지 색의 교복을 제외하고는 온통 새까만 학생이었다. 약간 찰랑거리는 머리카락도, 의욕이 없어보이는 커다란 눈동자도, 그리고 그 눈가 밑으로 드리운 그림자마저도. 아니, 다크서클은 원래 검은 색이지. 흠흠, 아무튼.
저 남학생의 이름은 이세하. …그 뭐냐, 클로저였나? 아무튼 그런 놈이다.
학교에서의 행실은 썩 좋지 못하다. 수업 시간에는 잠을 자거나, 혹은 지금처럼 교과서를 세워놓고 그 뒤로 신나게 게임을 하거나. 굳이 말하자면 불량학생은 아니지만 모범적인 학생도 아닌, 어중간한 학생.
어찌 이리 잘 아냐고? …굳이 흥미가 있어서 그런건 아니니까. 저, 정말로 아니니까.
아, 아무튼. 이세하는 오늘도 여전히 게임기를 만지작거린다. 바로 옆 자리에 앉아있는, …그 이름이 뭐였지? 훈 삭봉이었나? 아무튼 그 애와 같이 말이다. 뭐, 구태여 말하자면 훈 삭봉(?)이라는 애는 이세하에게 이끌려 마지못해 게임을 하는 느낌이 조금 들지만.
“거기, 우정미! 수업에 집중해라!”
“…아, 네.”
하아, 왜 나만 가지고 저럴까.
─역시나,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Χ Χ Χ
먼지가 잔뜩 내려앉아 있는 스피커로부터 무미건조한 종소리가 울려퍼지고, 따분하고 무료했던 6교시가 끝났다.
그와 동시에 반 아이들은 해방감을 잔뜩 맛보며 저마다 포효를 내지른다. 뭐야 저게, 조금 괴상해.
어제 본 TV 프로그램 이야기, 미팅 이야기, 화장품 이야기, 게임 이야기 등등…. 다방면의 화제들로 이루어진 잡담들이 교실이라는 한 공간에 엉망진창으로 어우러져 불협화음을 자아낸다. 덕분에 이 쪽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정말, 시끄럽다구.
그러던 와중, 돌연 교탁에서부터 성대한 소음이 잔뜩 얽혀있는 잡담 소리를 비집고 울려퍼졌다.
“자, 잠시만 조용해줘~”
그와 동시에 방금까지의 불협화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교탁에 서 있는,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을 일으킨 장본인을 바라본다.
그 곳에는 한 여학생이 서있었다.
이름은 유하나. 반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떠맡고 있는 고운 용모를 하고 있는 학생이다.
허리까지 늘어져있는 웨이브 진 머리는 약간 연보랏빛이 감돌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고, 여고생 특유의 앳된 용모와 보기 좋게 융기해있는 가슴은 부럽… 아, 아니, 그녀의 위엄을 돋보이는 데에 한 몫했다.
유하나는 교탁에 서 조용해진 교실을 둘러보았다. 약간 의기소침 해 있는 겉모습과는 달리 그 안에서부터 뿜어져나오는 자태는 그야말로 위풍당당. 절로 입이 다물어질 정도였다.
교실 안의 시선을 모조리 빼앗는 데에 성공한 그녀는 잠시동안 교실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곧 다가올 문화제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어.”
“““오오오~”””
유하나의 선언과 동시에 반 아이들의 함성이 이곳저곳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함성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유하나의 무언의 제재에 의해서 말이다.
“일단, 우리 반은 특별하게 가볼까 하는데….”
유하나는 검지 손가락을 자신의 턱에 가져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메이드 카페는 어떨까? 여자 아이들은 메이드 복을 입고, 남자 아이들은 집사 복 쪽으로.”
“푸우우웁!!”
무심코 뿜어버렸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돌연 내 쪽으로 몰렸기에 나는 아무 짓도 안한 듯 깨끗하고 얌전한 모범생 코스프레를 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재차 유하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메이드 카페를 하자는 유하나의 의견에 반 아이들은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저마다 친구들끼리 낄낄대며 마음에 드는 아이를 힐끔힐끔 바라보는 행실을 보자하니, 아무래도 문화제 당일 날 메이드 복을 입는건 기정사실이 되어버린 것 같다.
무심코 이세하에게 눈길이 간다.
다행스럽게도 이세하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여전히 게임기를 만지작대고 있었다. …아니, 것보다 내가 왜 다행스러워 해야하는 거야.
이윽고, 유하나가 재차 큰 소리로 말했다.
“어때? 모두 찬성?”
“““찬성!!”””
아아, 큰일 났구나. 메이드 복이라니… 그런거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다구.
절로 몸에 힘이 빠진다. 당일 날 내 메이드 복 차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웃을까.
책상에 몸을 맡기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시간아, 되돌아가라! 라는 심정에서 비롯된 본능적인 기피 행동이었지만, 내가 무슨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아니고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만무하다. …괜히 에너지 소비량만 늘린 것 같다. 안 그래도 이미 지쳤는데 말이야.
나는 심신으로도 외적으로도 지쳐버린 몸을 풀기 위해 한껏 기지개를 켰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쭈욱!
“음… 그리고 옷을 사올 사람이 필요한데…. 아, 정미가 하게? 고마워!”
“……응? 자, 잠시만!”
이, 이게 무슨!!
내가 변명을 늘어놓기도 전에 이미 유하나는 칠판에 내 이름을 집채 만하게 적어 놓는 것을 끝마쳤다. 저렇게 일을 벌여놓으면 빼도박도 못하겠잖아… 정말….
“아, 이세하도 하려구? 정말 고마워!”
“……응? 자, 잠시만!”
이, 이게 무슨!! 이세하가 심부름을 한다구!?
저도 모르게 놀라버려 나는 당장 이세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랬더니 얼핏 봐도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불쌍하고도 초라한 이세하가 보였다. 눈가에 맺혀있는 투명한 눈물 자국을 보아하니 아마 나와 똑같이 기지개를 켜다가 지목되어 버린 듯 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나와 이세하가 얼빠진 채로 입을 벌리고 있자니, 유하나는 마치 노리고 하는 것 같이 칠판에다가 나와 이세하의 이름을 커다랗게 적어놓고는 선언했다.
“메이드 복이랑 집사 복은 정미랑 세하가 사오는 걸로! 돈은 학급비를 줄테니 주말에 두 사람이 사와줘~”
“““수고해~~”””
순식간에 정해져버린 심부름꾼들의 탄생에 축복을 하듯, 반 아이들은 입을 맞춰 나와 이세하에게 잠자코 다녀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을 울려퍼뜨렸다. 이러면 할 수 밖에 없어보이잖아….
뇌가 따라오지를 못할 정도로 삽시간에 벌어진 황당무개한 일에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이세하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보이는 이세하도 나와 마찬가지로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피곤해 보이는데 정말 불쌍하다. 나도 충분히 불쌍하지만.
“하아….”
본능적으로 나오는 한숨을 땅이 무너져라 내쉬자, 이세하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은 뭔가 매서웠다.
…주말에 잘 부탁할게, 이 멍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