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41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7-06 2
다음 날, 점심시간, 오늘도 평소와 같이 유리와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유리에게 오늘 슬비와 같이 티어매트 봉인실 경비를 맡게 되었다고 말했다.
"오오, 슬비와 같이? 이왕이면 내가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하는 유리. 친한 사람끼리 근무를 서는 게 더 좋은 법이겠지. 슬비와 나는 그냥 대화만 몇 마디 나누는 사이였기에 근무 서는데 있어서 별로 좋은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슬비도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상부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겠지. 어차피 클로저가 된다면 좋은 임무든 싫은 임무든 무조건 받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티어매트에 대해서 혹시 아는 거 있어?"
"음, 위험한 차원종이었다는 것만 알아."
"그렇구나. 봉인되어 있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저기, 세하야. 부탁을 좀 해도 될까?"
양 손을 모으면서 조심스럽게 말하는 유리였다. 부탁을 하는데 뭘 그렇게 어려워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직도 그 일이 생각나서 그런 걸까? 뭐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지만 그냥 참기로 했다.
"응. 무슨 부탁인데?"
"슬비를 잘 부탁해줬으면 해서. 그 애는, 아카데미 졸업한 후에 계속 혼자였거든. 어쩌다가 한 번 만나는 게 전부라서. 그래서 말인데, 세하 너에게 좀 거칠게 대해도 이해는 좀 해줬으면 해서."
"외톨이였다고?"
예상대로다. 그 애의 딱딱한 말투, 또래의 아이들과는 다른 보수적인 성격,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임에서 흘러가는 스토리 중에도 그러한 타입의 캐릭터도 있었으니까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애도 아마 혼자서도 잘 이겨낼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도 한 때는 외톨이었으니까.
"유리야. 혹시 슬비를 걱정하는 거야?"
"응. 나는 동생들이 있어서 괜찮은데 슬비는 가족이 아무도 없거든. 그래서 매일 걱정이야."
"잘 이겨낼 거야. 혼자서도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잘 이겨내겠지."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하나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냉담한 표정에 원칙주의적인 보수 성격을 가진 슬비가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약해진다는 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별로 신경쓸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자 유리는 조금 삐졌는지 입술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세하야. 너무 냉정한 거 아니야?"
"응? 냉정하다니?"
"세하 너도 따돌림을 당해서 혼자였다는 거 잘 알고 있어. 그치만 너는 어머니가 계시잖아. 슬비는 그런 사람도 없이 혼자서 다 극복해야했어. 겉으로는 강한 척 해도 마음이 여리단 말이야."
유리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상체를 약간 숙이면서 조금 화내는 모습을 보이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속으로는 마음이 여리다고?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는데 유리에게는 그런 게 보였던 걸까? 그러고 보니, 고양이와 의미없는 대화를 나눈 것도 혹시 외로움을 타서 그랬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설명이 충분히 된다.
"그러니까, 제발 부탁할게. 나를 도와줬을 때처럼 슬비도 도와주면 안 될까?"
간절함이 드러나는 유리의 말에 나는 두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슬비같은 타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유리의 말대로 힘들어 하는 애라면 도와줘야 될 거 같기도 하다. 유리는 혼자 힘으로 많은 것을 떠받드는 게 누가 봐도 힘들어보여서 그냥 내가 도와준 것 뿐인데 슬비에게는 그런 게 없다. 그러니 딱히 도와주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도와주면 된다는 거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잘 안하고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알았어. 해볼게."
정말로 힘들어한다면야 도와줄 생각이다. 가족 없이 혼자서 살아왔다는 기분은 나보다 아마 더 비참할 거다. 그것도 여자애가 혼자서 견뎌냈다고 생각하니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응. 슬비한테도 말해놓을게. 세하라면 반드시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거라고."
"아니, 그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잖아."
기운빠지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그냥 아무 말도 안하는 게 좋을텐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왜 상부에서는 나와 슬비를 지명한 걸까? 아니, 어쩌면 이게 나을 수도 있겠다. 유리는 동생들을 돌봐줘야 될 테니까. 가면을 쓴 그 남자 때문에 인원이 부족해서 그렇게 된 거겠지. 계란 말이를 하나 더 입에 넣으면서 눈을 감고 잠깐이나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 * *
교문 앞에서 기다리던 차량이 보인다. 기자들이 여전히 그짓거리를 하고 있었지만 데이비드 국장님이 제지를 해서 촬영을 멈추게 되었다. 국장님 덕분에 조금은 편하게 리무진 차량에 탑승했다. 이번에 티어매트 임무를 향하는 것도 극비리에 진행이 되기 위해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세하 요원. 이번에 조금 힘든 일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네. 티어매트 봉인실 경비 말일세."
"그냥 지키면 되는 거 아닌가요? 누가 들어오는지 확인하고."
"하는 일은 자네가 말한 대로 간단한 일이네. 하지만, 경계 임무라는 건 어떠한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예측불가한 시간이라서 말이네."
안경을 손가락으로 끌어올리면서 말씀하신다. 경계하는 것, 게임 NPC 병사들이 마을 입구를 지키는 거와 마찬가지였다. 신경쓰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비 일이라는 게 상당히 지루하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우선 자네들이 설 근무 시간은 지금부터 밤 12시까지네. 원래대로라면 1시간 30분 정도 경계 근무를 세우려고 했는데 자네도 아시다시피 클로저 요원 수가 줄어드는 바람에 미성년자 클로**지 투입해야 되는 상황이라네."
이 모든 게 다 그 가면의 사내 때문이라는 거다. 그 때 한 번 보고 이후에 본 적은 없었다. 처음에 봤을 때 이후로 죄다 안드로이드로 자폭을 했다. 처음에 봤던 녀석은 진짜였을까? 아니면 가짜였을까? 가짜였다면 그냥 끝까지 싸우다가 자폭하는 게 더 빨랐겠지.
"아, 그러고 보니 자네에게도 알려줘야 될 거 같군. 그 가면을 쓴 녀석 말인데, 인간에 대한 증오가 심한 것으로 보여지네. 그리고 안드로이드 생산 연구소와 연관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판단되네."
"연구소 말인가요?"
"안드로이드 부품을 조회해본 결과 국내에 있는 생산 연구소와 연관이 있다고 판단되네. 우리 나라에는 한 군데밖에 없지. 그곳을 조사하러 감찰 요원이 투입되었네."
안드로이드 생산 연구소,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 중에 흑백 가면을 쓴 자가 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이 들었다. 거기를 직접 조사하는 사람이 제대로 알게 되겠지만. 그 조사는 그냥 맡기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유니온의 감찰 요원들도 정보수집이 뛰어날 테니까.
"연구소 직원 중에 그 흑백의 남자가 있지 않을까요?"
"나도 그 생각을 했었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어. 그 연구소 내에 생산된 안드로이드 거래 내역을 살펴보면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을 거네. 정체를 파악하는 것도 시간 문제라고 판단하네."
금방 확인할 수 있다는 거구나. 당연한 일이지. 만약 정체를 알아내게 된다면 그 남자를 잡을 계획도 수립하고, 실행함으로서 사건은 해결되는 셈이다.
"혹시 뭐 궁금한 거라도 있나?"
"아, 네. 혹시 괜찮다면 슬비에 대해서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가족도 없이 외톨이로 지냈다던데요."
"흠, 원래 요원의 개인 정보는 함부로 알려주면 안 되는 일이지만, 자네에게는 알려줄 수밖에 없겠군."
"꼭 알아야 되는 건 아니에요."
억지로 알 생각은 없다. 단지 유리가 말한 게 신경이 쓰여서 물어봤던 거 뿐이니까. 국장님은 커다란 한숨을 내쉬면서 의자에 등을 완전히 밀착할 정도로 뒤로 젖힌 뒤에 말씀을 했다.
"아니, 실은 그녀가 좀 걱정이 되어서 말이네. 다른 클로저 요원들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는 편이긴 한데, 이슬비 요원은 다르더군.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네. 괴로운 감정이 계속 쌓이고 쌓여서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을 정도네. 어른의 입장으로서는 그대로 내버려두기가 어려워."
"그 정도입니까?"
"보시다시피 관리 요원들이나 관리 국장이 요원 한 명씩 돌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네. 할 수 있는 건 방향 제시 뿐, 나머지는 이슬비 요원 본인이 해결해야 되는 문제라네."
관리해야 되는 클로저가 한두 명이 아니니까 당연한 말이다. 한 사람만 돌봐줄 수도 없는 노릇이지. 다른 미성년자 클로저들도 많이 활동하고 있으니까. 그런 건 당연한 거다.
"아마 그녀의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자네라고 판단되네."
"제가요?"
"얼마 전에 서유리 요원이 전보다 밝아진 모습을 보였더군. 내 부탁을 들어준 자네의 활약이라고 판단되네."
"아뇨. 저는 그냥 조금 도와준 거 뿐이에요."
"작은 선행이 누군가에게는 밝은 미래로 작용할 수 있는 법이라네."
밝은 미소를 보이면서 말씀하시는 국장님이다. 그 말씀대로 유리에게는 긍정적으로 작용한 모양이었다. 혹시 유리도 국장님과 같은 생각이라서 나에게 부탁을 한 모양이다.
"이걸 받게. 그리고 내 얘기를 잘 들어주게. 그녀가 어렸을 때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 말이네."
굳이 억지로 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이야기해주시니 경청하기로 했다. 자세를 반듯하게 한 채 두 눈이 저절로 동그랗게 뜰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