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19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14 2
다음 날에도 훈련을 받고 난 뒤에 집으로 귀가한다. 양 쪽 어깨에 통증이 올 정도였다. 가상 훈련은 그럭저럭 할만 했는데 톤파 무술을 배우는 게 쉽지 않아서 힘들었다. 톤파의 날이 회전하는 형식이었다는 게 좀 놀라웠다. 우선 그 무기에 익숙하기 전에 나무로 만들어진 톤파로 기본적인 무술을 배우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학교에서는 평범하게 유리와 인사하고, 노트 보여주고, 공부를 좀 도와준 일 밖에 없다. 항상 하던 일이니까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훈련 받는 와중에도 차원종들이 출현해서 지금도 싸우고 있는 그녀였다. 힘이 되어주고 싶지만 나는 아직 훈련을 수료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장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루빨리 전투에 익숙해지는 몸이 되어서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오늘 저녁은 뭐해 먹을까?"
그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집에 식료품이 다 떨어졌으니 뭘 해 먹어야 될지 알아보기로 했다. 평소대로 재료를 사고 가는 게 낫겠지. 그게 가장 좋은 일이니까. 김밥 재료라도 사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걸어가던 중에 묘한 상황을 보고 눈을 반쯤 감았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만나고 싶지 않는 유형을 가진 중학생 여자애라고 생각한다. 무지하게 딱딱한 말투를 가진 그 분홍머리 소녀 말이다. 하지만 머리색깔과 외모만 똑같을 뿐, 성격은 다르게 보였다.
"냐앙!"
"냐, 냐, 냐."
버려진 상자 안에 있는 고양이, 그 앞에 쭈그려 앉아서 마치 고양이와 대화하고 있는 것 같아보이는 소녀였다. 고양이가 실제로 우는 소리보다 더 귀여운 목소리로 재현하는 모습이다. 내가 잘못본 사람이겠지 생각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동일인물이 확실했다. 그 증거로 UNION 마크가 새겨진 검은색 제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전에 만났을 때는 차가워보였는데 지금은 무척이나 상냥해보였다.
"저기, 실례지만 뭐하고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
"헉!, 너, 너, 너, 이세하!?"
고개를 어렵게 돌리시더니 얼굴이 붉어진 채로 절망에 빠진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들켜버렸으니 금방이라도 자살할 기세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 엄마의 모습을 보는 거 같다. 겉보기에는 차갑고, 보수적으로 행동하면서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목숨을 걸고 수행할 거 같은 모습인데, 의외로 이런 귀여운 면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너무 우스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왼손으로 입을 가린 채로 웃었다.
"우, 웃지 마! 그것보다 이세하, 왜 여기있는 거야!?"
"응? 대형마트로 가는 길이야. 저녁 반찬을 사려고 했거든. 여기서 뭐하는 거야?"
이 녀석은 이슬비, 내가 싫어하는 성격을 가진 미성년자 클로저다. 내가 클로저로 들어간 이후로 처음 만나는 거다. 그나저나 이 고양이, 슬비의 품에 뛰어드는 걸 보면, 그녀가 맘에 든 모양이었다. 슬비는 아까처럼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상냥한 미소를 보이면서 부드럽게 말한다.
"그래, 착하지. 우리 집으로 갈래?"
"냐아-"
고양이를 좋아하는 구나. 의외였다. 어떠한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그렇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돌아다닐 수 있는 장소를 조금 구분해주었으면 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시골이라면 몰라도 도시라면 어려울 수도 있다. 훈련을 시켜주면 될 일이지만 클로저 같은 경우에는 방을 비우는 경우가 많았기에 고양이를 훈련시키는 것이 어려워서 집안이 난장판이 되는 것이 골치아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굳이 키우겠다면 그냥 맘대로 하게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내가 뭐라할 이유도 전혀 없으니까. 별로 할 말은 없는 거 같으니까 이만 가보겠다고 하는데 그녀가 내 등 뒤에서 옷깃을 잡았다. 궁금해서 고개를 뒤로 돌리는 데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양 볼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워, 원하는 거 있으면 뭐든지 들어줄게."
"뭐?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그게... 비밀로 해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야."
비밀로 해주었으면 하는 일? 그건 누가 봐도 자기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낸 것을 말하는 거잖아. 그런 거라면 나는 딱히 공개적으로 밝힐 생각은 없다. 나는 필요없다고 말하면서 비밀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답했지만 그녀는 내 말을 믿지 않았는지 나를 놔주려고 하지 않았다. 쉽게 안 넘어간다 이건가? 아니면 속고만 살아서 그런 건가?
"내가 비밀을 안 지킬까봐 그러는 거야?"
"그래. 너 같은 애를 내가 어떻게 믿어?"
이 아가씨 완전히 속고만 살았네. 내가 확신을 가득찬 대답으로 말했는데도 거짓말을 한 것처럼 보일 수가 있는 건가? 그나저나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귀여웠다. 우리 엄마와는 다르게 그녀에게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아니, 그런 생각할 때가 아니지.
"휴우, 고양이 좋아할 수도 있잖아. 그리고 너에게는 그 모습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우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렇게나 부끄러워할 일이었나? 여자애들은 모르겠네. 강아지나 고양이, 병아리 등을 좋아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유니온 내에서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거는 금지하고 있는 건가? 내 얼굴을 똑바로 못 볼 정도로 고개를 돌린 채 부끄러워하는 걸 보면 적어도 이 애에게는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는 자신의 속내였던 모양이었다.
"야, 일단 이것 좀 놓지 않을래? 사람들이 다 보고 있잖아."
"어, 응."
어느 새 사람들이 구경하고 지나간다. 사진까지 찍은 사람도 있었다. 아이고, 이제 SNS에 돌아다녀서 소문이 날 거 같네. 슬비는 유니온 클로저라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기자들에게 주목을 받는 그 사람의 아들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이럴 때는 그녀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할 수 없다.
"알았어. 나, 지금 대형마트로 갈 건데, 식재료 고르는 법을 도와줄래? 그렇게 해주면 아무에게도 말 안할게."
"어? 응. 그런 건 어렵지 않은데, 그걸로 충분한 거야?"
"그래. 딱히 큰 것을 바랄 생각도 없으니까."
사소한 것 가지고 커다란 걸 바라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 애초에 비밀 같은 게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원래 사람마다 부끄러운 일을 감추려고 하는 편이니 그런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 모습은 정말로 귀여웠다. 아무리 차가운 성격을 가져도 귀여운 본능이 감춰져 있는 것 같다.
* * *
대형마트로 와서 카트를 밀었다. 이런, 이렇게 보니까 더 눈에 띄네. 평소 혼자 왔다면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는데 오늘은 유니온 요원과 와서 쳐다보는 모양이었다. **, 이러다가 엉뚱한 소문이 나겠네. 벌써부터 현기증이 올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세하. 여기 종이가 적힌 대로 사면 되는 거야?"
"어, 응."
오늘 살 식재료 목록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더니 주머니에 들어있던 볼펜을 들어서 뭔가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야 갑자기?
"이런 건 사면 안 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조금 불쾌하다. 내가 식재료를 사겠다는 데 슬비가 강제로 식재료를 바꿔버린 것이다. 원래 사려고 했던 이름에는 X표시로 하고, 새로운 재료 목록을 추가했다. 간만에 통조림으로 된 햄을 사려고 했는데 건강에 안 좋다면서 각하했고, 대신에 종이에 없던 미나리와 브로콜리를 추가했다.
"너무 고기 재료만 편중되어있어. 이런 건 각하야."
"야, 사람이 고기를 먹든 야채를 먹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중요해. 성인병의 원인은 대부분 육류를 먹은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법이야. 그러니까 야채를 섭취할 필요가 있어. 양파와 마늘 만으로는 모자라니까 좀 더 맞출 필요가 있어. 이 미나리의 효능은 어떤 거냐면......"
긴 설교가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알만한 지식이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지금 과학 시간 강의하는 선생님처럼 보인다. 남의 건강을 생각해주는 건 알겠지만 내가 먹고 싶다는 데 왜 이런 식으로 나오는지 모르겠다. 괜히 식재료 골라달라고 했나? 다음 부터는 이 애와 절대 마트로 안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세하, 듣고 있어?"
"네, 네. 잘 들었어요."
"클로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도 중요한 법이야. 이세하. 너는 그것을 자각하도록 해."
어느 새 차가운 성격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마트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귀여운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런 건 어딘가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엄마 상대하는 것도 힘든데, 여기서 잔소리 여왕과 상대해야 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일단 네가 말한 것들만 추가로 살게. 그러니까 이런 것도 사는 것 좀 봐줘라.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이라고."
"어, 엄마?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좋아. 오늘은 봐줄게."
아니, 이 여자가 지금 뭐라는 거야? 자기가 무슨 내 쇼핑 감독관이라도 돼? 순간적으로 화를 내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아니잖아. 커다란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는다. 참자. 참아야지.
"자, 이세하. 여기. 제일 좋은 야채를 골랐어."
"응?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속재료만 보면 알 수 있어. 이렇게."
그녀의 손에서 분홍색 위상력이 조금 흐르면서 야채를 잠깐 감쌌다가 사라졌다. 내부를 투시하는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그녀가 내민 오이를 만져보았다. 확실히 싱싱해보이긴 한데, 제일 좋은 건지 아닌지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녀는 그걸 한 번에 파악한 것이다.
"염동력, 그게 내 위상력이야. 이걸로 내부까지 침투해서 품질이 좋은 건지 구석구석 확인할 수 있지."
"그렇구나. 그런데, 네 능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네."
"언젠가 같이 싸우게 될 지도 모르는데 미리 알린다고 해서 손해볼 것은 없잖아. 자, 다음으로 가자."
슬비는 다음 코너로 가서 식재료를 하나하나 만져보면서 위상력을 사용한다. 진열되어있는 재료 중에 가장 좋은 것을 고르는 것을 반복하다보니 어느 새 나는 카트만 끌고 있었고, 슬비 혼자만 재료를 골라서 넣는 역할만 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내가 시킨 줄 알겠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