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7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02 4
병원에서 나와서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유리는 다른 볼일 때문에 유니온 본부로 갔고, 나는 뒷 좌석에 타서 운전하는 김유정 요원 누나를 힐끔 보다가 창문쪽으로 향했다. 말을 함부로 걸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처럼 느껴질 수준으로 진지한 얼굴이다. 일단 뭐라도 말을 꺼내야 될 거 같은데 그만둬야되나?
"저, 세하야.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클로저가 될 생각은 없니?"
운전하시면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신다. 외모와는 다르게 상냥한 말투다. 내 예상대로 나같은 아이들에게는 꽤나 친절하신 사람이신 거 같았다. 누나의 말에 나는 고민이 되었다. 아까 차원종 싸움에 난입했던 것은 그저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거 뿐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차원종은 사람을 위협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적으로 규정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에는 반대하는 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요, 잘 모르겠어요."
고개를 아래로 떨구면서 답했다. 유리의 말대로 요원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면 그녀가 부담해야 될 일이 더 많아지게 된다. 부상을 당한 그녀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로 나서서 싸운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건 언론에 나가지 않는 정보인데, 현직 클로저들이 차례대로 누군가에게 습격당해서, 숫자가 가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유니온은 긴급사태니까 어떻게 해서든 인원 보충을 위해 전직 클로저들의 복귀를 요청중이야. 물론 너희 어머니에게도 부탁을 했었어. 거절당했지만."
사태가 심각한 편이라는 얘기는 유리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다. 누나도 많이 힘든 상황인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핸들을 잡는다. 누군가라는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아직 습격자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단서라도 잡았냐고 물어봤는데 고개를 저으면서 없다고 대답하셨다.
"개인적으로 들어와줬으면 하지만, 억지로 끌어들일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렴. 세하 너에게도 선택의 자유가 있으니까."
그렇다. 나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클로저는 다름 사람이 해도 된다. 내가 굳이 나설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전직 클로저들도 활약할 수 있는 기회인데 내가 끼어들 틈이 없겠지. 그나저나 엄마도 거부했을 줄이야. 의외라고 생각했다. 혹시 내가 안한다고 해서 엄마도 안할 생각으로 그랬던 건지도 모르지.
그나저나 유정 누나는 듣는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는 발라드 음악수준이었다. 흥분한 사람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는 듯한 말투로 내게 대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다정한 초등학교 선생님 수준이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아마 유니온 내에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어른에게는 저렇게 다정할 수 없다면 차라리 유니온은 그만두고 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노릇을 하는 게 더 어울릴 거 같다.
"김유정 요원님?"
"누나라고 불러도 좋으니 편하게 하렴."
"그럼 누나.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유리는 부상을 당하면서도 앞으로 차원종들을 더 많이 상대해야 되는 건가요?"
"응. 아마도 그렇게 될 거야. 요원의 수가 보충되지 않고, 차원종이 한 지역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니까. 원래는 차원종이 나타나지 않아야 정상인데, 위상력 억제기가 정상 작동하고 있음에도 차원종이 발생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억제기가 작동되고 있는데 차원종이 생성 된다고? 차원종이 나타나는 차원문을 막기 위해서 설치한 게 바로 억제기이며 아버지의 발명품인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누나는 그 원인을 잘 모른다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클로저 인원 부족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내 일상생활이 평화로워지는 것도 오래가지 못할 테니까.
"다 왔다. 세하야. 여기 내 명함을 줄테니, 혹시 생각이 있으면 연락해줄래?"
"네. 그럴게요."
누나에게서 명함을 받고 차에서 내렸다. 내가 클로저가 되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성격이 변하지도 않고, 다정함을 유지하는 것을 보니 사람이 좋은 게 느껴진다. 미성년자 클로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선생님같은 존재일 거다. 중학생 시절 때도 미인 선생님 오면 학생들이 난리 법석을 벌였는데, 클로저들이 그 중학생들 처럼 행동할 거 같다.
날이 벌써 어두워졌다. 원래 집에 오는 시간보다 조금 늦은 시간대였다. 엄마가 조금 걱정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발걸음을 빠르게 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우왓!"
예상치 못한 기습에 내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런 내 몸을 깔고 있는 음흉한 미소를 가지면서 고양이처럼 맑은 눈동자를 하고 있는 아줌마, 또 당했다. 요즘은 하지도 않다가 갑자기 이렇게 덮쳐질 줄이야.
"엄마, 아들을 이렇게 맞이하는 게 어디있어요?"
"냐앙, 우리 아들, 오늘은 조금 늦었네. 안 그래도 찾으러 갈까 생각하던 참이었어."
"고양이처럼 들러붙지 말고 일어나요. 여긴 현관이잖아요. 신발 좀 벗자고요."
"히잉, 너무해."
어우, 진짜, 못말릴 우리 엄마다. 금방 또 풀이 죽어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쪼그려 앉은 게 꼭 주인을 기다리는 거대한 고양이같다. 거기에 꼬리까지 달려있으면 살랑살랑 거리는 그림이 나올 수준이었다. 엄마가 나이가 좀 더 어렸으면 쓰다듬기라도 했을 거 같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참 끔찍한 놈이다.
"아들, 오늘 저녁은 뭐야?"
"오자마자 그 얘기 하기야!?"
하여간에 내 요리를 탐내는 못말리는 사람이라니까.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 * *
오늘 저녁은 메추리알 장조림이다. 매일 같이 똑같은 요리보다는 다른 요리도 먹는 것도 좋으니까. 포크로 알을 찍어 드시면서 품위가 있는 미식가처럼 맛을 보는 우리 엄마였다.
"흐음, 입안 가득히 노른자가 가루처럼 씹히는 구나. 부드러운 흰자에 섞인 간장과 노른자의 맛이 합쳐지는 게, 마치 삶을 달걀을 먹는 거 같구나."
"엄마, 다 좋은데 오버하면서 미식가 흉내내지 마세요."
저절로 두 눈이 반쯤 감기게 할 정도로 못봐줄 만한 수준이었다. 미식가라면 아마 다른 방식으로 돌려서 묘사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떤 미식가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지. 바다와 용을 포함해서 특이한 방식으로 평가한 사례가 있다. 예를 들면 신선도가 가득한 요리를 맛보게 되면 용이 살아서 숨을 쉬면서 깨끗한 숨결을 내뿜으며 날아가는 듯이 보인다고 말을 한다. 그 반대의 요리는 용이 검은 연기를 입가에서 내뿜으면서 캄캄한 어둠속으로 추락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었다.
그 외에 엄청 유명한 독설로 요리를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엄마는 그런 사람들의 발 끝에도 못 미치는 편이었다. 그러니 내가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는 거다.
"히잉, 한 번 정도는 해도 되잖아."
"엄마, 그냥 맛있으면 맛있다. 맛이 없으면, 맛 없다고 하시면 된다고요."
"에이, 평범하게 하면 재미 없잖니."
으악, 소름 돋아. 양쪽 검지로 볼을 찌르면서 귀여운 표정을 지은 채로 느끼하게 말하시니까 금방이라도 먹던 음식을 토해낼 거 같았다. 엄마와 18년을 살았지만 아들을 향한 애교는 적응하기 힘들다. 클로저 시절 때 활약하던 영상이 TV에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여전사의 모습이었다. 차원종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학살하면서 시민들의 영웅이라고 떠받들여지는 위엄있는 모습, 존경하던 사람이 그녀의 본 모습을 알게 되면 심장마비에 걸릴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고 보니, 엄마. 오늘 유니온에서 복직 제안을 받으셨다고 하셨죠?"
"응. 그거 거절했어."
"의외네요. 엄마는 신나면서 싸웠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머, 너무해. 엄마가 그렇게 매정한 사람처럼 보였니?"
눈썹을 약간 내리면서 삐진듯이 말한다. 사실이잖아요. 예전에도 아빠와 계실 때 차원종 사냥한 거 가지고 실컷 자랑했으면서, 그렇게 보면 누가 나처럼 생각 안하겠냐고?
"그래도 엄마는, 세하 네가 더 소중해. 그러니까 거절한 거야."
"오늘 유니온 요원을 만났어요. 클로저가 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당연히 거절 했겠지?"
"잘 모르겠어요."
"응? 무슨 말이니?"
기대에 찬 말투로 웃는 얼굴을 하다가 내 대답에 입가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뭐야? 저번에는 클로저가 되는 것을 바라시더니, 잘 모르겠다는 말에 갑자기 정색하고 있다. 보통 이럴 때는 '어머, 그럼 클로저가 되는 거야?' 이렇게 물어 볼 거 같았는데 의외였다.
To Be Cotn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