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Believe in Magic

SummerDia 2019-04-07 3

※ 이전편의 세하 시점 버전

※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 주의

 

 

 

 

 

 말이 짧다. 과묵하다. 감정을 잘 내비치지 않는다. 생각보다 담담해한다. 사실은 실제로 그러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도 세하하고 잘 알고 지낸 이들은 이런 점을 대체적으로 간과하고 있었다. 대강 아는 것이기에 가끔은 세하의 본심과는 많이 다를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맞아 떨어질 때가 많았다. ‘많다’ 라는 건 그 예감이 어떤 때는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게다가 세상에는 말을 꺼내서는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하면 더 괜찮을 걸, 이라는 제3의 관점을 가진 것도 있는 법이었다. 세하가 늘 침묵을 하려고 하는 것은 이 세 가지의 경우에 다 해당이 되었다.

 

 긍정, 부정, 아니면 애매함. 세하는 대체적으로 3번 선택지를 택한다. 즉, 말을 너무도 아끼고 삼키는 것.

 

 중립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있다고 해도 상당히 어려운 것임은 틀림이 없어서 거의 없는 거라고 치부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까지 다 하면서 한다면 더 힘들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뜬 세하는 지금 자신이 처한 처지에 대해 짧은 한탄을 했다. 막 잠에서 깨서 그런지 입안이 상당히 씁쓸했다. 곧장 일어나서 머리맡에 둔 생수를 한 모금 마셨지만 텁텁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입안을 감도는 이 괴상망측한 감각이 사실 현실인지 아님 그냥 세하 자신의 기분에 따라 느끼고 있는 착각인지도 잘 가늠이 가지 않았다.

 

 요즘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몸 상태가 나빠서? 아니, 그건 아니었다. 위상능력자가 몸이 아픈 경우는 딱 한 경우, 평범한 무기 이상의 것으로 공격을 당했을 때뿐이었다. 외부에서의 찰과상 같은 걸 제외하고 몸이 자기 혼자 나빠지는 상황은 별로 없었다.

 

 혹은 심리적으로? 연관이 무척이나 많아서 무엇부터 설명할지가 고민에 앞설 정도였다. 그래도 최대한 짧게 설명을 해보자면, 앞에서부터 설명했듯이 세하는 지나치게 말을 아낀다. 그 탓에 무엇 하나에 뚜렷한 감정을 내비치는 것이 별로 없었다. 최근에는 그래도 감정 표현을 자주 하기는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 때뿐이었다. 분노, 좌절, 우울...대표적인 것 3개만 나열해도 벌써부터 좋은 감정은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다.

 

 최근 자신의 이런 변화에 세하는 기뻐했으나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한꺼번에 그것도 갑자기 실행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좋은 것과 피곤함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작은 감정 변화라도 조금씩 내비추려고 해도...이상하게 거짓으로 포장된 좋아하는 ‘척’ 하는 감정의 리액션이 더 크게 나타난다.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그냥 대놓고 튀어나온다.

 

 이와는 반대로 가장 안 나오려고 하는 감정이 하나 있었다. 이 사실은 세하가 항상 자각할 때마다 한없이 작은 원이 될 것만 같은 것이었다. 그건 바로...

 

 “아, 여기 있다!”

 

 자학은 잠시 여기서 멈추도록 하자. 지금은 자기 앞으로 쫄랑쫄랑 다가오는 소녀와의 대화에 더 집중하는 것이 중요했다. 세하가 대꾸했다.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이야?”

 

 바보, 조금은 다정하게 말은 꺼내라고! 그냥 잠에서 깬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목이 가라앉은 거라고 치부하고 싶었다. 적어도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리는 평소와 다르게 쭈뼛쭈뼛, 세하 앞에서 망설이는 것이 보였다. 혹시 유리가 방금 자신이 한 말에 섭섭함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세하는 유리가 자신의 앞으로 내미는 선물 상자에 ‘아, 선물 때문이구나.’ 하고 안도했다.

 

 내용물은 포장을 뜯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유리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준 덕이었다. 아마도 세하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부끄러운 탓이었다. 특히 날이 날이다 보니.

 

 “초, 초콜릿이야! 오, 오늘이...바, 발렌타인데이...라나? 뭐라나?”

 “아.”

 

 세하의 상황답지 않은 심각한 표정에 유리는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되는 걸 추가로 덧붙였다.

 

 “거, 걱정 마! 내가 만든 거 아니야! 사온 거니까 초콜릿에서 소금 맛이 나거나 그러진 않을 거야!”

 “...”

 

 세하는 자신이 들고 있는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누가 봐도 선물용 업소용 초콜릿 상자였다. 샀든 아님 직접 만들었든 그건 세하에게 상관이 없었다. 오늘이 날이 날이다 보니, 또 그 날에 맞추어 자신에게 유리가 초콜릿을 준 것이 가장 중요했다.

 

 치밀어 오르는 들끓는 기쁨과는 다르게 세하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이미 이 말을 하면서 세하는 포장지를 뜯고 있는 중이었다.

 

 세하는 단 걸 좋아했다. 매운 걸 가장 좋아하지만, 단 것도 그만큼 좋아했다. 무엇보다 아직도 입이 씁쓸했기에 단 걸 먹어서 씁쓸함을 지우고 싶기도 했다.

 

 초콜릿 하나가 세하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혀로 조금 녹이자 초콜릿 특유의 식감이 입안으로 빠르게 퍼졌다.

 

 ‘다크 초콜릿이네.’

 

 일반 초콜릿과 다르게 쓴 맛이 가미된 제품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초콜릿은 초콜릿이라고 달은 건 똑같은 사실이었으니까. 부드럽게 사라지는 뒤끝이 마음에 들어 세하는 또 초콜릿을 입에 우겨넣었다. 단 걸 좋아해도 한꺼번에 많이 먹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세하는 이 초콜릿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이 사온 초콜릿을 흡입하는 세하를 보자니, 유리는 자연스럽게 물어보았다.

 

 “맛있어?”

 

 세하가 ‘신기하다’ 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세하가 단 걸 이리 먹는 걸 본 적이 없는 유리가 물어볼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세하가 할 대답은 ‘응, 맛있어.’ 라고 직접적으로 초콜릿 맛을 평가하거나 ‘어디서 샀어?’ 라며 간접적으로 초콜릿 맛을 칭찬하는 그런 것일게 분명했다.

 

 그런데 영 생뚱맞은 말이 나가버렸다.

 

 “예쁘다.”

 “응?”

 

 이 한 마디에 두 사람 사이에 감돌던 공기가 미묘해졌음은 지나가던 제3자가 봐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먼저 이 말이 생뚱맞은 걸 깨달은 건 유리였다. 유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하지만 막상 듣고 보니 기분은 나쁘지 않아 얼굴이 살짝 상기된 채로, 애인의 농담을 되받아쳤다.

 

 “아하하, 너 왜 그래...생전 나한테 그런 소리 안하던 애가...”

 ‘어...?’

 

 그제야 세하도 자신이 이상한 말을 꺼냈다는 걸 자각했다. 분명 맛있다, 라고 입술을 움직인 거 같은데, 막상 나간 말은 그게 아니었나? 세하는 멍하니 이제는 텅 비어버린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유리는 그 실수로 내뱉은 소리가 불만은 아니었는지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그, 그런데 이상하게 세하한테 들으니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네...? 뭐랄까, 평소 그런 말 잘 안하는 세하가 하니까 더 신빙성이...!”

 “너, 진짜 예뻐.”

 “...!”

 

 그, 그렇다고 2연타는 좀 그렇지 않니!? 유리의 얼굴은 이제 상기되다 못해, 빨개져서 홍당무라고 놀려도 될 정도였다. 세하와 달리 유리는 감정 표현이 이렇게 잘 나타났다. 이 점을 세하는 퍽 부러워했던 거 같았는데.

 

 아니, 지금의 세하는 또 모르겠다. 지금의 세하는 필요 이상으로 솔직한 상태였다. 이제 유리의 목소리에는 부끄러움과 당혹감이 뒤섞여 있었다.

 

 “너, 너 오늘 왜 그래!? 뭐 잘못 먹었어?!”

 “...그게...”

 

 그러게 말이야, 나도 참 이상해. 라고 말하려던 세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참 로맨틱하긴 하나, 너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나, 너 많이 좋아한다?”

 “...”

 “...”

 

 그 직후, 유리는 도망가 버렸다.

 

 

 

* * *

 

 

 

 세하는 지금 쥐구멍으로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면 우주의 먼지가 되어서 사라져버리거나...

 

 세하는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입을 열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결국 도망쳐버린 유리를 쫓아가다가,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탓이었다. 세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왜? 왜 이상한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온 걸까? 그것도 심지어 평소에는 ‘부끄러워서’ 라는 명목으로 꾹 누르고 있던 본심이? 마법에라도 걸린 거 같잖아? 아니, 조금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자백제라도 먹은 거 같잖아...

 

 ‘하하하...’

 

 에이 설마, 어떤 정신 나간 회사가 자백제가 들어간 초콜릿을 시장에다 팔았겠어?!

 

 그런데 파이에게 설명을 다 듣고 온 유리에게 이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들은 세하는 그만 납득했다.

 

 아! 벌쳐스라면 그럴 수도 있는 거였구나! 라고.

 

 “...”

 “...”

 “미안해...”

 

 유리는 사과했다. 세하는 그 사과를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유리가 설마 이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자백제를 넣은 초콜릿을 개인 주문했던 거라면 몰라도, 그건 아니니까. 유리는 그저 순수하게 세하에게 초콜릿을 주고 싶었던 것뿐이니까.

 

 그래서 화가 나지 않았다. 그건 벌쳐스의 어떤 – 이 사태의 원흉인 자백제가 들어간 초콜릿을 만들라고 시킨 – 이름 모를 간부에게도 해당이 되었다. 유리는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토로했다.

 

 “그런데 신기하다. 부끄럽긴 한데 기분이 아주 좋아.”

 “...”

 “세하의 마음은 사실 잘 알다가도 모르겠거든.”

 “...”

 “안심이 된다고 할까? 나만 세하 좋아하는 거 같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서...”

 

 그 후로 말하는 유리의 뒷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세하는 지금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세게 내리친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서로 좋아는 하는데, 정작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유리가 압도적이었다. 100과 0을 비교하라고 하면 누구나 100의 손을 먼저 들어줄 것이다. 100은 유리였다. 좋아한다, 라는 말로도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행동, 표정 등등에서도...

 

 ‘아.’

 

 나는 너무 숨기려고만 했구나. 마법처럼, 정말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이 일어나야 나는 겨우 이렇게 밖으로 내뱉는 거구나...

 

 덤으로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해...’

 

 그렇다, 이 감정은...세하는 아까부터 든 이 당황스러움과 같이 공존하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이미 자백제 – 효과는 언제까지 갈 지는 모르겠으나 - 도 먹은 판인데, 숨기려고 해도 일단 입으로 툭- 하고 튀어나올 거 같았다.

 

 “나도 기분 좋아.”

 “응?”

 

 후련하고, 편안했다. 전전긍긍해할 필요도 없이, 이렇게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그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꼭 표현해야할 중요할 사항이라는 것에서부터.

 

 “지금부터 하는 말, 아주 각오하고 들어야할지도 몰라.”

 “응? 그, 그렇게 심각해?”

 “심각한 건 아니고...”

 

 좀 길어질지도 몰라. 나는 너무 마음에 담아두고만 있었거든. 세하의 기나긴 이야기를 유리를 끈기 있게, 전부 다 들어주었다.

 

 

 

* * *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 어느 날 유리가 말했다.

 

 “있잖아.”

 “응?”

 

 유리의 무릎에 누워, 게임기에 눈을 떼지 않은 채 세하가 반문했다. 유리가 달콤하게 말했다.

 

 “나 말이야, 세하 정말 좋아해.”

 “...”

 

 아무런 답이 없을 줄 알았는데, 세하는 게임기에서 곧장 눈을 떼었다. 그리고 유리의 물빛 눈동자를 보며 답해주었다.

 

 “나도.”

 

 그 청명한 미소도 덤해서.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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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z We Still Believin’ Magic~♬

2024-10-24 23:22:5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