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의 집에 2분대의 아이들이 온다면 - 2
루시터 2019-01-26 9
“그래서,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야?”
“둥실이가 알려줬다. 여기로 가면 땅딸이를 볼 수 있다고.”
“내 말은, 여기로 온 목적이 뭐냐는 거야.”
루나의 말에 세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는 어째서 그런 걸 물어보냐는 얼굴로 답했다.
“당연히 심심해서 온 거다. 집에 있어봤자 아무도 그림책을 읽어주지 않는다. 그래서 땅딸이가 있는 곳에 찾아온 거다.”
“···결국 심심해서 루나를 보러 온 거네.”
“오, 그렇다. 이제야 세트의 말을 이해한 거냐? 게임 중독자 녀석, 눈치가 빠르구나!”
“게, 게임 중독자?”
“그렇다! 게임 중독자! 땅딸이가 항상 말했다. 매일 게임에 빠져서 자기를 신경 써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둥실이가 알려줬다. 너는 게임 중독자 녀석이라고.”
세하는 고개를 돌려 루나를 바라보았다. 이에 루나는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고는 두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저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고요! 세트! 너도 이상하게 왜곡해서 말하지 마!”
“···네가 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상관없지만···. 앨리스 씨가 나한테 게임 중독자라고 말할 줄은 몰랐는데.”
“그, 그러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니까요! 단지 조금 더 저한테 신경을···.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완전히 평정심을 잃은 루나가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을 도중에 멈추고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심장이 뛰어대는 소리가 행여나 다른 사람에게 들릴까 뒷걸음을 쳐보았지만,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나머지 자신의 발이 꼬인 상태라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꺄악!”
날카로운 비명이 거실에서 울려 퍼졌다. 꽤 큰소리가 나는 걸 보아 넘어진 충격이 커 보였다.
“괘, 괜찮은 거야?”
“괜찮아요! 그러니까 오지 마세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루나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세하에게 외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루나에게 있어서는 부끄러운 상황이었다. 루나는 행여 세하가 자신을 돕기 위해 다가올까 봐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땅딸아, 괜찮은 거냐? 어째서 그렇게 당황하는 거냐?”
순진무구한 세트가 보기에도 루나의 행동이 어색해 보였는지, 세트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루나에게 말했다.
“너 때문이잖아! 네가 이상한 말을 하지만 않았어도···.”
“세트는 아무 잘못도 없다!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당당하게 작은 가슴을 내밀며 말하는 세트의 모습에 루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루나 또한 알고 있었다. 세트에게 잘못이 없다는 걸 말이다. 굳이 있다면 나이가 어린 탓에 눈치 없이 행동했다는 것 정도지만, 이를 가지고 세트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이러한 사정이 있다고 해도 세트가 가져온 상황이 루나에게 있어서 당혹스러운 상황이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앞으로 이상한 말은 꺼내지 마. 안 그러면 밤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도 끝일 테니까.”
“치사하다! 땅딸보 주제에 협박을 하다니! 세트는 그런 협박에 굴복하지 않는다!”
“굴복이라···. 이제는 어려운 단어도 쓸 수 있나 보네. 뭐, 그렇다면 좋아. 앞으로 나는 그림책을 읽어주지 않을 테니까!”
“나쁘다! 땅딸보는 정말 나쁘다! 정말로 그림책을 읽어주지 않는다면···. 밤마다 세트가 땅딸보의 침대에 누워서 안 비켜 줄 거다!”
“그런 유치한 행동이 나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해?”
“···저기 말이야. 아무래도 좋으니까 유치한 말싸움은 이제 그만하지그래?”
말싸움이 끝날 기미가 안보이자 세하는 루나와 세트에게 말했다. 이에 둘의 시선이 세하에게 몰렸다.
“유치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지금 저를 저 꼬맹이랑 같은 수준으로 보시는 건가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잖아. 자, 잠깐! 우리 집에서 방패는 꺼내지 말라고!”
“게임 중독자 녀석! 세트는 꼬맹이가 아니다!”
“꼬맹이라고 한 적 없다고! ···와앗! 어째서 나를 물려고 하는 거야!”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둘의 공격 대상이 세하로 바뀐 모양이었다. 세하는 테이블에 있는 게임기를 바라보았다. 30분 전까지만 해도 소파에 누워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상황은 대체 뭐란 말인가. 아무래도 지금은 적절한 중재와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정말이지···. 둘 다 이제 그만하라고. 루나, 우리 집에는 차원종이 없으니까 방패를 꺼내는 건 그만둬. 그리고 세트···. 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너를 꼬맹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 그러니까 나를 물려고 하는 건 그만둬 줄래. 아니면 둘 다 집에서 쫓아낼 거야.”
세하의 단호한 목소리에 루나와 세트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둘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고는 이내 경계를 풀기 시작한다. 들고 있던 방패를 내려놓고, 들이대고 있던 이빨을 감추었다.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먼저 사과를 하지 않았지만, 이는 늘 있는 일이었다. 예컨대 흔하게 있는 자매들의 싸움과도 같았다.
“···방패는. 제가 조금 경솔했던 거 같네요. 죄송해요.”
“···그걸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야.”
평소처럼 이성을 되찾은 듯한 루나의 말에 세하는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미안하다, 게임 중독자 녀석. 임금님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되는 건데···.”
“임금님? 아, 그러고 보니 세트 임금님···, 였던가.”
사냥터지기의 작전지역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린 세하가 납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세트는 훌륭한 임금님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게임 중독자 녀석에게 피해를 주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나중에 안나를 볼 면목이 없다···. 분명 세트에게 실망할 거다···.”
안나, 사냥터지기팀의 사정을 얼추 들은 세하는 안나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세하를 분노케 하기 충분했다. 욕심 때문에 고아들로 하여금 끔찍한 실험을 자행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실험의 피해자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앞에 있는 두 명은 세하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피해자들이었다.
“···딱히 피해를 준 건 아니야. 단지 너희 둘이 사이좋게 지냈으면 해서 한 말이라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세하는 어린아이를 위로하는 것 자체에 대해 이렇다 할 요령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자신이 세트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했다. 마치 어릴 적의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듣고 싶었던 말들을 해주는 것 마냥 말이다.
“게임 중독자 녀석···. 땅딸보의 말대로 좋은 녀석이구나.”
“···응?”
아까와 마찬가지로 세트의 의도치 않은 발언에 세하는 또다시 루나를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세하 또한 많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루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는 입을 벌린 채로 세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욕만 한 건··· 아닌 모양이네.”
어색한 분위기를 애써 떨쳐내기 위한 세하의 말에 루나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왜곡됐다고요.”
“그래···.”
세하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고는 거실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조금 있으면 레비아와 약속한 시간이 될 터였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네.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어. 너희 둘 다 거실에서 기다려. 온 김에 밥이라도 먹고 가. 아니면 너희도 요리를 배워보던지.”
“오! 너도 맛있는 녀석처럼 요리할 줄 아는 거냐!”
“맛있는 녀석? 그건 또 누구야?”
“···샤오린 씨에요.”
“샤, 사오린 씨만큼은 못한다고. 그냥 먹어줄 만한 정도니까, 그렇게 기대하지는 마.”
뜻하지 않은 기대에 조금 부담감을 느끼며 세하는 주방으로 향했다. 사실 아직 메뉴도 고르지 못한 상태였다. 혼자였다면 대충 컵라면으로 때웠을 터지만, 지금처럼 손님의 입장으로 온 그녀들에게 컵라면을 대접할 수는 없었다.
“재료라도 충분히 있었으면 좋겠는데···.”
냉장고를 뒤적거리며 재료를 찾아보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식재료는 없었다. 이는 어제 게임을 하느라 장을 못 본 세하의 잘못이었다. 더군다나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에 레비아와의 약속을 잡아버렸다. 최소한 재료가 있는지는 확인했어야 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조용히 눈을 감으면 고민을 하던 찰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세하는 깜짝 놀라고 만다.
“뭐, 뭐야!”
“···뭐긴요. 어째서 저를 귀신 보듯이 보는 거죠.”
“루나잖아···. 소리 없이 다가오면 누구나 놀란다고···.”
“딱히 그럴 의도로 다가온 건 아닌데요···.”
“그보다 무슨 일이야? 거실에서 세트랑 같이 쉬고 있지그래.”
“그래서 온 거에요. 혹시 세트에게 읽어줄 만한 책이 있는지 물어보려고요.”
“책? 아, 그림책을 말하는 거야?”
세하는 조금 전에 있었던 말싸움을 떠올리며 답했다. 세트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걸 좋아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림책이 세하의 집에 있을 리는 없었다. 라노벨 형식의 미연시 게임이라면 모를까.
“미안하지만 우리 집에는 그림책이 없어.”
“꼭 그림책일 필요는 없어요. 세트에게는 조금 어렵겠지만, 소설책이라도 괜찮을 거예요.”
“그렇다면 바이올렛 씨에게 받은 책이 있긴 하다만···.”
“그럼 그거라도 빌려주세요. 혹시 무슨 장르인지 알 수 있나요?”
“···로맨스.”
“로맨스?”
“전형적인 사랑 이야기야. 근데 세트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할 거 같지는 않은데.”
어린 아이에게 사랑 이야기란 중학생에게 다큐멘터리를 보여주는 것과 같을 터였다. 이해하지도 못할 감정들을 이해하려는 순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차라리 같이 게임을 하는 건 어때? ···잠깐, 게임이라고? 게임기? 설마!”
세하는 다급하게 거실로 달려나갔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루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길을 비켜줬다.
“가,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게임기! 설마 망가트리지는 않았겠지!”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찾는 건 게임기였다. 분명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을 게임기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오직 등을 돌리고 바닥에 앉아있는 세트였다. 세하의 등장을 눈치챈 세트가 몸을 돌리자 세트의 손에 들려있는 게임기 또한 세하의 눈에 들어왔다.
“세, 세트! 게임기의 파일을 건든 건 아니지?!”
“파일? 그게 뭐냐? 그리고 이건 어떻게 쓰는 거냐?”
허공에서 게임기를 흔들어대는 세트의 행동에 세하는 가까이 다가가 세트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안 돼! 그렇게 함부로 다루면 망가진다고. 4개월이나 돈 모아서 산 내 게임기가!”
“4개월?! 고작 게임기 주제에 그렇게 비싸단 말인가요?”
어느새 거실에 따라 들어온 루나가 말했다. 루나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고작 게임기가 아니야! 나에겐 자식 같은 거라고!”
되도 않는 소리와 함께 게임기를 가로챈 세하는 서둘러 게임기를 살폈다. 다행히 이빨로 문 흔적이라던가, 세이브 파일을 건든 흔적은 없어 보였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주저앉은 세하는 밀려오는 피로감에 그대로 바닥에 누워버리고 말았다.
“분명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너무 피곤해···.”
“괜찮은 거냐? 혹시 세트가 또 잘 못을 한 거냐?”
“아니···. 잘 못 하지 않았어···. 이건 내 부주의일 뿐이야.”
“다, 다행이네요. 만에 하나 고장이라도 났으면 4개월분의 월급을 모두 손해배상으로···.”
천천히 세하에게 다가오던 루나는 다른 의미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에 세하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무리 게임을 좋아한다지만 그런 이유로···.”
그런 요구를 할 리가 없잖아, 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다만, 무의식적으로 올려다본 세하의 시선에는 의도치 않게 봐서는 안 될 것이 보이고 있었다. 그건 결코 의도적으로 노린 게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상대가 어떻게 생각 하냐에 달려있었다. 긴장을 풀고 마음을 진정할 시간도 없이 세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그런 세하를 보며 루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다행히 세하의 실수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다른 게임기를 줄 테니까···.”
쾅! 쾅!
세하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묵직한 소리가 현관문 쪽에서 들려왔다.
“···이번에는 또 무슨 소리야.”
질렸다는 얼굴로 머리를 감싸는 세하였지만, 또다시 들려오는 요란스러운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주먹으로 문이라도 때리는 걸까요.”
의외로 침착해 보이는 루나였다. 마치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 마냥.
“벨이 있는데 무식하게 문을 두드릴 이유가 없잖아.”
“···제가 예상하는 인물이라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걸요.”
“혹시 다른 사람을 여기로 부른 거야?”
“부를 리가 없잖아요. 그저 예측한 거뿐이에요.”
“그런데 아무도 안 나가는 거냐? 저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다.”
요점을 찌르는 세트에 말에 세하는 그제야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루나와 세트 또한 세하의 뒤를 나란히 따라나서고 있었다.
“게임은 이미 포기했으니까, 제발 사고만 일어나지 말아줘···.”
세하는 소박하게 자신의 바람을 내보이며 중얼거렸다. 동시에 세하는 생각했다. 오늘을 조용히 넘길 수 있을지를 말이다.
세하의 집에 2분대의 아이들이 온다면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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