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Paradox(18)
건삼군 2019-01-01 0
부모란 무엇인가.
부모는 아이를 돌봐주고, 키워주고, 가르치고,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긴다.
자식은 그렇게 항상 잔소리를 하는 부모를 귀찮아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바랬던 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하나뿐인 딸의 행복이였다.
사실은 무슨일이 있어도 세리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학예회가 있는 날은 직접 학교를 찾아가 응원해 주고 싶었고, 그 아이의 생일에는 축하해 주며 선물을 주고 싶었고, 그 아이의 졸업식에는 수고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그저 그 아이가, 그런식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저 행복하게, 바른 어른으로 자라주었으면 했을 뿐이었는데... 세상은 그것을 허락할 만큼 친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 부모인 나와 슬비가 세리의 곁을 떠나는 것으로, 그 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평화로워 진다면...
내 딸, 세리는... 아마 평생동안 나와 슬비를 원망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선택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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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 마당처럼 넓은 집의 거실에서 한 소년이 전화기를 붙잡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이세하, 내 아빠이자 현재는 설명하기 복잡한 이유 떄문에 나와 같은 나이인 채로 같은 집에 살고있다.
“네. 네... 그래서, 내일까지 준비를 끝마칠 수 있다고요?”
대체 누구랑 통화를 하고있는 걸까, 생각하며 아빠를 유심히 바라보고있기 시작한지 몇분이 지났을까, 마침내 통화를 끝낸 아빠가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소파에 앉아있던 내 옆에 피곤한 듯 앉았다. 뭐, 오늘 하루는 엄청 험난했으니까 당연하겠지만.
대충 오늘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다면 심히 설명하기 곤란하다. 그저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내가 잠깐 악마에게 홀려서 날뛰고, 그 와중에 아빠가 휘말려서 한바탕 구른 다음에 일이 어찌어찌 마무리 돼서 그대로 병원으로 간뒤, 아빠의 몸상태를 진단받고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빠의 엄마, 즉 내 할머니가 아빠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빠를 껴안고 빈사상태로 만들어놓고는 미리 차려놓은 음식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을 억지로 먹였다, 인데... 그나저나 요약했는데도 전혀 간단하지 않네...
잠시 그렇게 속으로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머리속으로 정리하던 내게, 아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널 미래로 돌려보낼 방법을 찾았대. 내일 아침에 플레인게이트로 오라는데.”
“...에? 뭐야, 타임머신이라도 있는거야?”
“아니. 플레인게이트의 외부차원에 시공간 파열이 간간히 생겨나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차원압 간섭장치로 파열을 조절해서 널 미래로 돌려보낼거야.”
“...잠깐, 다시 한번만 말해줘....”
“싫어. 나도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한건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그러녀니 해.”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가 한가득 들렸지만, 아무래도 일단 나와 나타샤는 내일 미래로 돌아가게 된 모양이다.
다시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 라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마음속에 밀려왔다. 분명 난 이곳에서 지내기 시작한지 딱 3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난 이곳이 좋은 모양이다. 그야 미래로 돌아가면 다시는 볼 수 없는 부모님도 있고... 재미있는 일들도 많고...
“...그냥 여기서 살면 안되나...”
“뭐?”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제대로 듣지 못한듯한 아빠의 태도에 나는 내가 했던 말을 얼버무리며 소파에서 일어나고는 잠시 숨을 들이마쉰 뒤, 진지한 분위기로 아빠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 클로저, 그만 두면 안될까?”
사뭇 진지한 내 표정을 본 아빠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잠시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내 시선을 피하고는 나지막히 대답하였다.
“미안.”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결국, 클로저를 그만두지 않을거라서 미안하다는 걸까? 아니면 그저 말을 돌리기 위해 애매한 대답을 한 것일까?
더 이상 달콤한 악마의 유혹이 들려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아빠의 대답에 나는 조금 화가 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화가 난다 해도 이번에는 무언가가 다르다. 전에 느꼈던 감정이 그저 답답하고 이유없이 화가 나는 듯한 기분이였다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여전히 이유없이 화가 나지만, 어딘가 아련하고 슬픈듯한 느낌이다.
딱히 저번처럼 클로저를 그만 두라고 아빠에게 억지로 밀어붙일 생각은 없다. 클로저를 그만 두는 것은 아빠가 결정할 것이지, 제아무리 딸이라고 해도 미래에서 온 내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간절히 부탁해볼 뿐.
뭐,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는 딱히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졌다. 오늘 있었던 일로 부모님이 없었더라도 내 곁에는 날 소중하게 여겨주고 가족처럼 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곁에 부모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평범한 가족처럼 지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은 아직도 내 마음속 한 구석에서 사라지지 않고있다. 미련같은건 없는게 좋지만, 그렇게 쉽게 없애거나 잊어버릴 수 있는것이 아니기에...
“그럼 난 피곤하니까 먼저 들어가서 잔다. 넌 엄마랑 같이 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있던 내게, 아빠가 소파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그렇게 말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피곤한 기색을 띄며 들어가는 아빠의 모습을 본 나는 쓰러지듯 옆으로 누웠다. 푹신푹신한 소파의 쿠션이 충격을 흡수하는걸 느끼며 누운채로 한숨을 내쉰 나는 이내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보았지만...
왠 새하얀 천장은 온데간데 없이 싱글벙글 웃고있는 여성의 얼굴이 날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세리야, 뭐하니~?”
“꺄악?!”
너무 놀란 나머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지만 그 탓에 여성과 서로 머리를 부딪친 나는 무슨 강철에 머리를 박은듯한 고통에 몸을 이리저리 바둥거리며 아픔을 호소했다. 너무 아픈 나머지 눈물이 찔끔 나올듯 하달까...
고등학생이나 되서 머리한번 박았다고 눈물을 흘리는 것고 가관이지만 이번만큼은 쪽팔리지 않는다. 그야 내가 머리를 박은 상대가 그 유명하디 유명한 알파퀸, 내 할머니라면 두개골에 금이 가지 않은것으로도 다행인 것이다.
“아하하~ 귀엽네~”
“수, 숨막...!”
그리고 또 그렇게 아파서 바둥거리고 있는 나를 귀엽다면서 전력으로 껴안으시는 할머니. 괴력도 이런 괴력이 따로 없다.
그렇게 한참을 바둥거리고서야 할머니의 괴력에서 벗어난 나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간신히 진정하고 다시한번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자 할머니가 거실 바닥에 들어누우신 채로 TV를 켜셨고, 이내 짧막한 광고방송이 지나간 뒤, ‘사랑과 차원전쟁’ 이라고 불리는 드라마가 방송하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드라마일까, 라는 호기심에 내용에 집중하며 약 1시간동안 시청한 나지만...
“...”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1시간이라는 시간 내에 숨겨진 혈연의 비밀이 밝혀지고, 여주인공이 주인공의 여동생이였고, 갑자기 뜬끔없이 기습을 받아 공중전함을 전부 잃질 않나... 그리고 주인공은 갑자기 적이였던 등장인물을 아무런 이유없이 용서하고는 ‘사실 이녀석도 착한 녀석이였어’ 라는 막장 클리셰를 보이질 않나...
즉, 막장 드라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재밌었니?”
“어... 아, 네... 뭐 그럭저럭...”
재밌었냐는 할머니의 질문에 말을 흐리며 일단은 ‘네’ 라고 애매한 대답을 하자 할머니는 쓴웃음을 지으시고는 TV를 끄고 내 옆에 앉으셨다.
“내일 돌아가게 되었다면서?”
“...네.”
“아쉽네~ 당분간 딸이 있는거 같은 나날을 보낼줄 알았는데~”
“손녀인데요...”
“아무튼! 손녀라고 하면 뭔가 내가 늙어진거 같단 말이야~”
“하하...”
어른답지 않게 투정거리시는 할머니를 본 나는 가볍게 웃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렇게 웃는 날 바라보시고는 따스한 미소를 지으시며 질문하셨다.
“세하가 클로저를 그만 두었으면 좋겠니?”
“...네. 하지만 아빠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전 그런 아빠를, 이해할수 없어요...”
“딱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지 않을까?”
“네?”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니, 대체 무슨 뜻일까.
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