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llel World> - 8화
초코파이가나파이애플파이 2018-12-04 1
"알파퀸이라고 불리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는 전장으로 매번 보내져 그곳에서 여러 강력한 차원종들과 생사를 건 사투를 벌여댔었지. 그러던 어느 날 차원종들의 군단장인 고위급 차원종 하나와 싸우게 되었어. 바로 그게 내 남편인 파우스트를 만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거야."
"무슨 뜻이에요?"
"그 고위급 차원종과 싸우다가 싸움의 여파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주변에 차원문 하나가 생겨났었거든. 그리고 그 고위급 차원종의 공격을 피하려다가 그만 그 차원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던거야."
"!"
"차원문을 통해 나는 어느 한 외부차원에 도착하게 되었고, 바로 거기서 파우스트, 그리고 그이와 같은 동족들과 만나게 되었어."
"......"
**********************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고위급 차원종과의 전투로 우연히 발생한 차원문으로 들어가게 된 서지수는 어느 한 외부차원에 도달하게 되었다.
"여긴... 분명히 차원문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설마 여기가 그 외부차원이라는 곳인가?"
당시의 서지수로써는 외부차원에 직접 와보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많이 당황스러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지수는 계속 놀란 상태로 가만히 있어봤자 해결되는 것은 없다며 곧장 그 외부차원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곳곳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지금 자신이 있는 그 외부차원의 상태가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오염된 독구름이 사방에 깔려 있었고, 땅은 닿는 것들을 모조리 부식 시키는 독으로 오염되어 있는 연못이 이곳저곳에 고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기 중의 공기 또한 숨을 쉴 때마다 답답함을 동반한 미량의 통증까지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이 외에도 정상적인 생명체에게 있어서는 온갖 치명적인 장소들이 여럿 있었다. 한 마디로 서지수가 있는 그 외부차원은 도저히 생명체가 계속 살아갈 수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크읏... 이런 곳에 계속 있을 수는 없겠어. 어서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봐야... 응?"
그 순간, 서지수는 주변에 있는 바위 뒷편에서 낯선 기척을 느끼고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
서지수가 소리를 치자 이에 깜짝 놀라기라도 한 듯 바위 뒷편에서 무언가가 조심스럽게 나와 모습을 보였다. 모습을 보인 것은 5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녀 한 명이었다. 다만 그 소녀는 인간이 가진 제 2 위상력이 아닌, 차원종들이 가진 제 1 위상력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으며 허리 뒤쪽에 가늘고 긴 꼬리가 달려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서지수는 그 소녀가 어떤 존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소녀는 인간이 아닌 차원종, 그것도 어린 인간형 차원종이었던 것이다.
"차원종...!"
비록 외형은 어린 소녀였지만 지금까지 몇 번 대면했던 인간형 차원종들은 외형과는 상관없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인류를 공격했었던 사실 때문에 서지수는 즉각 전투태세를 취하며 손에 쥐고 있는 건블레이드를 치켜들어 당장이라도 공격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 차원종 소녀는 잔뜩 겁을 집어먹었나 싶더니 손짓으로 공격하지 말아달라는 시늉을 하였다. 하지만 서지수는 그것이 자신을 방심시키기 위한 연기라 생각하고 그냥 공격을 가하였다. 이에 차원종 소녀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크게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
서지수의 건블레이드가 차원종 소녀의 몸에 닿기 직전에 서지수는 공격을 멈추고 건블레이드를 도로 거두었다. 몸을 웅크리고 아무런 일도 없자 의아하게 여긴 그 차원종 소녀는 다시 몸을 펴고 눈앞의 서지수를 올려다 보았다. 마찬가지로 서지수는 그 차원종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녀석, 정말로 아무런 힘도 없는 차원종인가...?"
자신의 전력을 실었던 건블레이드가 몸에 닿기 직전까지도 대응하기는커녕 계속 몸을 웅크린 채로 있었던 것과 겁을 잔뜩 집어먹은 탓에 눈물과 콧물을 잔뜩 흘리면서 울음을 터트린 얼굴, 그리고 차원종이기는 해도 도저히 강한 차원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위상력, 이러한 점 때문에 서지수는 그 차원종 소녀를 공격하던 것을 멈추었던 것이다.
차원종 학살자, 차원종들의 재앙 등의 거창한 이명으로 불리는 자신에게 있어서도 비록 차원종이기는 하나 툭 치면 빈사 상태가 될 것만 같고 공격 한 번에 겁을 집어먹으며 울음을 터트리는 그런 허약한 차원종까지도 무자비하게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는 서지수에게 없었다.
"하아... 많이 놀랐지? 미안해."
"우으... 우..."
그 차원종 소녀는 그제서야 진정했는지 울음을 멈추고 서지수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못 알아듣겠네..."
"으으... 음...'
서지수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자 그 차원종 소녀는 갑자기 이런저런 언어를 하며 서지수가 말하는 언어에 맞춰보려 하였다. 처음에는 마찬가지로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여러 언어들이 나오다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여러가지 인류의 언어를 구사하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서지수와 똑같은 한국어로 말하게 되었다.
"아... 안넝하세오...?"
"... 푸훗!"
한국어로 말하게 될 수 있던 것까지는 좋았지만 많이 서툴렀던 모양인지 억양이나 말투가 영 시원찮았다. 이런 모습에 서지수는 자기도 모르게 그만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하! 참 귀여운 꼬마구나?"
"우으... 제성함니다..."
그 차원종 소녀의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에 서지수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경계를 완전히 풀고는 상냥한 태도로 그 차원종 소녀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였다.
"저기 얘, 혹시 이 차원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니?"
차원종 소녀는 고개를 좌우로 가로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여전히 한국어가 서투른 말투로 말하였다.
"족장니임 알고 이써오!"
"족장?"
차원종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짓으로 자신을 따라와달라고 하였다. 서지수는 어떻게 할까 잠깐 생각을 하다가 어차피 이대로 여기 계속 있어봤자 뾰족한 수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차라리 그 차원종 소녀를 따라가 족장이라는 자와 만나서 방법을 알아내보려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해 차원종 소녀의 안내를 받아 그 족장이라는 자와 만나기로 하였다.
5분 정도를 걸었을까, 도착한 곳은 커다란 입구가 있는 한 동굴이었다. 그리고 그 동굴에 들어가자 소녀와 마찬가지로 허리 뒤쪽에는 가늘고 긴 꼬리가 달려 있었고 허약하기 짝이 없는 위상력 또한 마찬가지였던 여러 인간형 차원종들이 있었다.
"?!"
서지수가 동굴 안으로 들어오자 그 차원종들은 인간이 왔다는 것에 깜짝 놀라며 잔뜩 경계를 하였다. 그때 그 차원종 소녀가 달려나와 그들에게 뭐라고 말을 하더니 그들은 조금씩 경계를 느슨히 하고는 몇 명이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어떤 한 남성 차원종이 동굴 안쪽에서 나와 서지수의 앞에 섰다.
그 남성 차원종이 바로 차원종 소녀가 말했던 족장이었고, 또한 그가 바로 당시의 파우스트였다.
"인간이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건가?"
파우스트는 그 차원종 소녀와는 다르게 한국어를 능숙히 구사하며 점잖은 태도로 서지수에게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서지수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 그 경위를 간단히 설명해주고 이 외부차원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차원종 소녀가 말한 족장 파우스트를 만나러 왔다고 하였다.
"우리들을 죽이려고 온 건 아니군... 다행이야."
"응? 뭐라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튼 이 외부차원에서 나갈 방법을 알고 싶다고 했지. 방법은 알고 있다."
"그게 정말이야? 그럼 어서 알려줘!"
서지수는 기뻐하며 파우스트에게 그 방법을 어서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파우스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방법을 알려줄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에 서지수는 어리둥절하며 왜 방법을 알려줄 수 없는 것이냐고 따졌다. 파우스트는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방법을 알아봤자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지."
"뭐? 그게 무슨 뜻이야?"
"이 차원은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일지 모르나 나갈 때는 그렇지 않지. 그 이유는 이 차원의 출구를 지키는 문지기 때문이다."
파우스트는 지금 있는 외부차원에서 나가려고 하면 그 출구를 철통같이 지키는 문지기가 문답무용으로 그 대상을 배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서지수는 '그럼 그 문지기라는 녀석만 처리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반박했지만 파우스트는 또 다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문지기는 무척이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쓰러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거야 해**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그 문지기의 힘을 모르니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거다."
"그야 그렇지만, 이래뵈도 나 제법 강하다고?"
"...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나중에 그 출구가 있는 장소는 알려줄테니 마음대로 해."
"나중에? 그냥 지금 알려주면 안 돼?"
"지금은 따로 해야할 일이 있다."
나중에 이 외부차원의 출구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겠다고 한 뒤 파우스트는 홀로 동굴 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향하였다. 서지수는 가만히 이 동굴 안에서 파우스트가 올 때까지 기다릴까 생각했지만 왠지 호기심이 생겨 서지수는 어딘가로 향하는 파우트스의 뒤를 밟았다.
파우스트가 도착한 곳은 동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였다. 파우스트는 그곳에서 자신의 꼬리를 끝부분에서부터 우산처럼 넓게 펼치더니 그 꼬리로 주변에 있는 오염된 독연못을 삼키듯이 차례대로 흡수해갔다. 흡수할 때마다 파우스트는 점차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체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서지수는 깜짝 놀라 몰래 뒤를 밟던 것을 잊고는 파우스트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당신? 미쳤어?! 이런 것들을 빨아들였다간...!"
"몰래 뒤를 밟았던 건가... 고약한 취미군."
"그딴 건 됐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이러다가 죽으면 어떡하려ㄱ..."
"상관없어!"
파우스트는 이러한 행위로 목숨을 잃든 말든 상관없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럴 수밖에 없단 말이다...!"
"이럴 수밖에 없다니...? 당신들은 원래부터 여기에서 살던 거 아니었어?"
"농담도 심하군... 이런 지옥 같은 곳에는 1초도 더 있고 싶지 않아."
"원래부터 여기에서 살고 있던 게 아니면... 당신들은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건데?"
"... 우리들은 원래 살고 있었던 정상적인 차원에서 하루하루를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일이 터지고 말았지."
파우스트가 말하길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종족의 차원종들이 쳐들어와 자신의 동족들을 학살하고 살아남은 나머지 자들을 이 지옥이나 다름없는 외부차원으로 추방하였다고 하였다. 그 다음은 파우스트가 말한 대로 이 외부차원에서 나가려고 해도 그 문지기라는 존재 때문에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게 되어 사실상 이 외부차원에 갇혀버리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대체 무슨 이유로 당신들을..."
"우리 파우터들에게는 한 가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능력이 있다. 이 꼬리를 통해 상대방을 흡수하여 그 힘의 일부를 영구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변환할 수 있지. 다만 이 능력을 타고난 대가인지 우리 파우터들의 힘은 무척이나 나약하다. 그래서 이 능력은 있으나마나였지. 그런데 군단 녀석들은 훗날 이 능력으로 우리 종족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저 평화롭게 살아가던 우리 종족을 무참히 학살한거야. 우리들은 그럴 생각따위는 추호도 없었는데 그저 이 능력 하나 때문에..."
"그런 심한 짓을...!"
"그래서 지금은 내가 이 능력을 이용해 우리의 거주지 주변에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오염위상을 조금씩 흡수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의 꼬리는 약간의 상대방을 흡수할 때 육체에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종의 정화 작용이 있거든. 뭐, 그렇다고는 해도 한계가 있지만..."
파우스트가 이 외부차원에 오고 나서부터 혼자서 계속 그러한 행위를 반복했다는 사실에 서지수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서지수는 왜 그런 걸 혼자 감당하느냐고 말해봤지만 파우스트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방금 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행위를 반복하다보면 점차 한계가 찾아오고 결국 수명이 단축된다. 그런 무거운 짐을 동족에게 떠넘길 수는 없어... 이런 무거운 짐을 감당하는 건 나 하나만으로도 족해!"
"당신..."
지금까지 그저 차원종들을 인류의 철천지원수이자 무조건 배제해야할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며 싸워왔던 서지수에게 파우스트의 그 모습은 도저히 자신이 아는 차원종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고, 그 어떤 인간들보다도 더 진한 인간미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여태껏 전쟁으로 인해 인간이든 차원종이든 온갖 더러운 상황과 마주하며 살아가던 서지수에게 그 파우스트의 모습은 눈이 부실 정도였고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런 차원종도 있었구나...'
(화아아악-!)
"? 뭘 하는..."
서지수는 손에 쥐고 있는 건블레이드에서 뜨거운 열을 방출해 방금까지 파우스트가 꼬리로 흡수하던 오염된 연못들을 하나씩 오염위상까지 포함해 흔적도 없이 증발시켜갔다. 이에 파우스트가 의아하게 여기며 서지수에게 묻자,
"가끔은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좋다는 뜻이야."
그렇게 대답하며 파우스트에게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지수의 미소를 보고 파우스트는 약간 얼굴을 붉히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이상한 인간이군..."
'하지만... 왠지 싫지는 않은 기분이다.'
"자, 나도 도와줄 테니까 조금만 하다가 돌아가자."
"흥, 마음대로... 음?!"
그때 하늘 위로 거대한 물체 하나가 서지수와 파우스트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그 물체는 바로 칠흑의 날개를 가진 거대한 새였다. 외형이나 발산하는 기운을 느껴보면 그 새는 결코 평범한 새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우스트는 그 새를 보자마자 경악하고는 곧장 그 새를 뒤쫓아갔다.
"갑자기 왜 그래? 저 새가 뭐길래?"
"저 놈은 이곳에서 살면서 가끔씩 우리들을 포식하러 오는 천적이다!"
"포식이라니... 잡아먹는다는 말이야?"
그 새는 이 차원의 오염된 환경에서 태어난 일종의 돌연변이형 생물이었고 성장기 때는 이 차원의 오염위상을 섭취하다가 성체가 된 후에는 때때로 이 차원에 흘러들어오는 생명체들을 잡아먹는 새였다. 그러다가 파우스트와 그 동족들이 이 차원으로 오게 된 것을 발견하였었고 가끔씩 그들을 잡아먹으러 오는 것이었다.
"그래, 그리고 지금 저놈이 날아가는 방향은 동족들이 있는 동굴 쪽이다! 서둘러야 해!"
파우스트는 서둘러 뒤쫓았지만 그 새는 이미 거대한 몸이 작게 보일 정도로 멀리 날아간 상태였다. 파우스트는 지금 달려가도 제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억지로 그런 생각을 마음 한 구석으로 밀어넣고 오직 동족을 조금이라도 구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전력을 다해 동족이 있는 동굴을 향해 달렸다.
잠시 후 동족이 있는 동굴에 도착하였으나 상황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그 새는 파우스트의 동족이 있는 동굴을 무너트렸고 무너지는 동굴 밖으로 뛰쳐나오는 그들을 마치 식당에 온 사람마냥 자신의 부리를 이용해 쪼아먹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참지 못한 파우스트는 그 새에게 덤벼들었다.
"그만 둬어어어!!!"
파우스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을 그 새에게 퍼부었으나 그 새에게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괜히 그 새의 신경만 자극하여 더 날뛰게 만드는 꼴이 되었다. 그 새는 자신에게 덤벼든 파우스트를 날개를 휘젓는 것으로 강한 돌풍을 일으켜 파우스트를 날려버렸다.
"크헉!"
방해물을 처리하고 그 새는 다시 식사를 시작하려 하였다. 때마침 그 앞에 있는 먹잇감을 보고는 쪼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그 먹잇감은 다름 아닌 이 외부차원에 온 서지수가 처음 만났던 그 차원종 소녀였다. 차원종 소녀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도망치지 못하고 몸을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우으...으아아!"
(촤아악-!)
"끼에에에에에엑!!!"
그 새가 차원종 소녀를 쪼아먹으려고 하는 순간에 서지수가 건블레이드를 휘둘러 그 새의 부리를 깔끔하게 절단해버렸고, 그 새는 부리가 절단되자 고통에 몸부림치며 괴성을 질러댔다.
"시끄러워! 이 정신나간 닭둘기야!"
그리고 서지수는 강렬한 화염을 두른 건블레이드를 그 새의 몸통에 꽂아넣고 내부에서 점화시켜 폭발시켰다. 그 새는 한순간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순식간에 몸이 불태워짐과 동시에 폭발하며 그 새의 타버린 살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후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파우스트나 다른 차원종들은 멍한 표정으로 서지수를 보다가 하나둘씩 그 새를 단숨에 없애버린 서지수에게 환호하며 찬사를 보내기 시작하였다. 그 새에게 동족이 잡아먹히는 끔찍한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며 매일매일을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서지수가 한 행동은 그들에게 있어서 구세주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가... 감사함미다...!"
"그래, 많이 무서웠지? 이젠 괜찮아."
그리고 파우스트가 천천히 다가와 머리를 숙이고는 서지수에게 고맙다며 모두를 대표해 감사를 표하였다.
"고마워, 이를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지 모르겠군..."
"아니, 뭐... 보답을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니까 괜찮아. 그보다는..."
서지수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그 새가 쪼아먹다가 뱉은 자들의 시체들을 보았다. 신체의 일부가 없는 것은 당연하고 군데군데 살점은 너덜너덜하게 뜯껴져 있었다. 더 이상 그 새의 위협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다행이었으나 그렇다고 그저 기뻐만 하기에는 너무나도 잔혹한 광경이었다.
죽은 동족들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파우스트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고 자신의 나약함을 원망하였다.
"내게... 내게 힘이 있었다면... 일족 전체가 이런 참상을 맛** 않았을텐데... 크흑...! 미안하다... 미안해..."
그리고 파우스트는 살아남은 동족들과 함께 짧게 묵념을 하고 각자 자신들의 꼬리를 펼쳐 죽은 동족들의 시체를 흡수하였다.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장례를 지내주는 행위였던 것이다.
죽은 동족들의 장례를 끝내고 파우스트는 서지수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고는 자신이 직접 이 외부차원에서 나가는 출구가 있는 장소까지 서지수와 동행하겠다고 하였다. 서지수는 굳이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이 차원은 여러 가지 위험한 장소들이 많이 있지. 물론 이 차원에서 나가는 출구까지 가는 길에도 존재해. 하지만 당신은 아직 이 차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런 장소들을 잘 모르겠지. 그러니 그 위험한 장소들을 피해갈 수 있도록 도울테니 사양하지 말아줬으면 해."
"확실히 나야 고맙긴 하지만... 하아, 알았어."
그렇게 서지수는 파우스트와 함께 이 외부차원에서 나가는 출구가 있는 장소까지 동행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당신의 이름을 듣지 못 했네. 나는 서지수라고 해. 당신은?"
"나는 파우스트. 잘 부탁하지."
서로 통성명을 끝내고 서지수와 파우스트는 1시간쯤 뒤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서지수는 그들과 어울렸고 어느샌가 자신과 누구보다 친근하게 지내는 울프팩 팀의 멤버들만큼이나 두터운 친분을 다지게 되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 1시간이 지나고 서지수는 파우스트와 함께 이 외부차원에서 나가는 출구가 있는 장소로 향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행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사이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지수에게 있어서 파우스트는 비록 차원종이기는 하나 자신보다 다른 자들을 생각하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멋있고 다정한 남자였고, 파우스트에게 있어서 서지수는 인간에게 있어서 원수나 다름없는 차원종인 자신은 물론이며 동족들에게 망설임 없이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고 구해준 강인하고 상냥한 여자였다.
그리고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던 두 사람은 비록 만난 시간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 외부차원에서 나가는 출구까지 거의 도달했을 즈음에 두 사람은 어엿한 연인 관계가 되어 있었다.
"어느새 도착했군."
"응, 그러게."
"이제 헤어져야 하는 건가..."
파우스트는 서지수와 헤어지게 될 거라는 생각에 유감스러움을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대로 너를 보내고 싶지 않아. 서지수, 당신과 계속 함께 있고 싶어. 하지만 당신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했었지. 그걸 내 욕심 하나 때문에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저기, 이러면 어때? 너희들도 나랑 함께 가는 거야. 사정은 내가 모두에게 잘 설명해볼께. 분명 내가 설명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 그러니까..."
"아니, 그럴 수는 없어. 아무리 당신이 인간들 사이에서 영웅 같은 존재라고 해도 양쪽간의 전쟁이 한창인 와중이라 서로를 원수로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분명 우리들을 배제하려고 하는 인간들이 있겠지. 원래 우리들이 살던 차원으로 되돌아가도 마찬가지야. 군단 녀석들은 우리들을 불안요소로 생각하여 이 차원으로 내쫓은 것이니, 만약 되돌아간다면 자신들이 우려하던 대로 우리 종족이 힘을 얻어 돌아왔다는 생각으로 완전히 없애버리려 들겠지. 결국 이러나 저러나 우리들은 이 차원에 있을 수밖에 없어."
"그럴 수가..."
냉혹한 현실이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서지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파우스트와 너무나도 가까워져 있었고, 그의 동족들 또한 자신들의 소중한 친구들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이런 지옥같은 차원에 두고 가야 한다니, 서지수로써는 당연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 약속할께."
"?"
"전쟁이 끝나면 그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들을 데리러 오겠어. 그때는 다른 녀석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 안 해. 그러니까 그때까지 꼭 살아있어줘야 해, 알았지?"
"그래, 계속 당신을 기다리겠어."
그리고 서지수와 파우스트는 천천히 서로의 입술을 맞대고 진한 키스를 하였다. 두 사람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치 1초가 1분이 된 것처럼 길게 느끼며 서로의 온기를 진하게 교환하였다.
"고마워... 아 참, 그럼 우리 아이가 생기면 아이의 이름은 뭘로 할까?"
"ㅁ, 뭐? 아, 아이?"
"오다가 그렇게 격렬... 으흠, 실례...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아이가 생긴다면 이름을 뭘로 할지 정해놓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서."
"그, 글쎄..."
파우스트는 갑작스럽게 두 사람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면 이름을 뭘로 하는 게 좋겠냐는 물음에 말을 더듬으며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 하였다.
"흠, 보통은 아버지인 사람의 성씨가 붙는 이름으로 짓는데 당신은 성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서지수는 잠깐 동안 생각하다가 좋은 게 생각났다는 듯이 말하였다.
"... 그렇지! 우리 아이의 이름은 <이세하>로 하자. 어때?"
"이세하?"
"응, 실은 나 어릴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어. 아, 고아원은 부모님이 안 계시는 아이들을 모아 양육하는 곳이야. 어쨌든 그곳에서 유독 나를 잘 따르던 귀여운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이 이세하였어. 지금은 비록 몹쓸 병 때문에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지만... 그 아이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나를 친누나처럼 잘 따르던 소중한 동생이었거든."
"그렇구나... 그래, 당신이 좋다면 그 이름으로 하도록 하자. 생긴다면..."
"후훗, 좋아! 그럼 이제 정말로 가볼께. 반드시 돌아올테니까 기다려줘!"
그렇게 서지수는 파우스트와 헤어지고 이 외부차원에서 나가는 출구의 문턱에 도달했다. 그곳에 도달하자 파우스트가 말한 대로 그 출구를 지키는 문지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혈관을 연상케 하는 몸과 눈동자만 달린 얼굴, 가슴 정중앙에 붙어있는 커다란 눈알, 몸 곳곳에서 솟아나와 있는 여러 개의 촉수들, 그 모습은 도저히 생명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아니, 애초에 생명체가 아니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그 괴물은 이 차원에서 나가는 출구 주변의 오염위상이 어느 때부턴가 조금씩 스스로 의지를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형태화 된 것이 그 괴물이었다.
"과연... 이게 문지기라는 녀석인가? 확실히 그 닭둘기보다는 강한 편이네. 하지만 놀랄 정도는 아니야!"
서지수는 건블레이드의 화염을 넓게 펼쳐 하나의 거대한 화염 장벽으로 만들었고 그 괴물이 화염 장벽에 막혀 함부로 공격을 하지 못 하는 틈을 타서 출구로 달려갔다. 서지수로써는 그저 출구를 통해 이 외부차원에서 나가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 그 괴물을 굳이 쓰러트릴 필요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괴물은 이를 순순히 허용하지 않았다.
(콰직-!)
"읏?!"
서지수가 출구에 가까워졌을 때 그 괴물은 자신의 촉수를 땅 밑으로 파고들어 치고 올라와 출구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았다. 서지수는 혀를 차며 건블레이드를 휘둘러 그 괴물의 촉수를 베어갈랐다. 그러는 와중에 출구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이곳에 오기 전에 파우스트가 말하길 출구는 가끔씩 닫혔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열리고 그를 반복한다고 하여 파우스트는 만약에 출구가 닫히려고 한다면 서둘러야 한다고 충고를 했었다. 그래서 서지수는 서둘러서 방해되는 그 괴물의 촉수를 뿌리치고 출구로 향하려 하였지만 아무리 촉수를 없애도 계속해서 재생하며 쉴 틈도 없이 방해를 하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서지수는 전력을 발휘해 빠르게 그 괴물을 처리하고 확실하게 출구로 들어가겠다고 생각하였다.
(휘릭-)
"!"
'아차!'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서지수는 잠깐 방심을 하였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그 괴물이 서지수의 양쪽 다리를 촉수로 붙잡았다. 서지수는 건블레이드를 휘둘러 자신의 양쪽 다리를 붙잡고 있는 촉수를 베려고 했으나 그 순간에 다른 촉수가 서지수의 양쪽 팔을 구속하여 서지수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하였다.
"크읏, 이까짓..."
(퍼억-!)
"커윽!"
서지수가 위상력을 개방해 구속을 풀려고 했으나 그러기 전에 그 괴물의 여러 촉수가 겹겹이 뭉쳐서 마치 주먹처럼 서지수의 몸통을 후려쳤다. 서지수는 약간의 피를 토하고 개방했던 위상력이 분산되어 그 괴물의 구속을 뿌리치는 게 더뎌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출구는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고 어느샌가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크기까지 작아져 있었다.
"이 녀석...!"
'이대로라면 늦어버려!'
(펑-!)
"?!"
서지수가 서둘러 다시 위상력을 모아 구속을 풀려고 할 때 그 괴물의 뒤에서 작은 에너지탄 하나가 날아와 그 괴물의 몸통에 명중하며 폭발했다. 그 에너지탄은 다름 아닌 파우스트가 날린 에너지탄이었다.
"파우스트?!"
"크으으..."
충격은 전혀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그 괴물의 신경은 서지수에서 파우스트에게로 쏠리게 되었고 서지수를 구속하고 있던 촉수들이 느슨해졌다.
"지금이야!"
"하아아아앗!!"
서지수는 단숨에 힘을 개방해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그 괴물의 촉수들을 떨쳐내었다. 이에 그 괴물의 신경이 다시 서지수에게 쏠리지 않도록 파우스트는 계속해서 에너지탄을 여러 번 날려대며 서지수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놈의 시선을 끌고 있는 동안에 서둘러!"
"하지만...!"
서지수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파우스트의 힘은 보잘것 없었기 때문에 만약 자신이 이대로 파우스트에게 맡긴 채 출구로 들어간 후에는 파우스트가 그 괴물에게 확실하게 죽임을 당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파우스트를 지키기 위해 그 괴물과 싸우게 된다면 쓰러트릴 수는 있을 지언정 그 사이에 출구는 닫히게 될 거고, 출구가 다시 열릴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소모될 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다음 출구가 열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그동안 인류의 주력인 자신이 없는 동안 전쟁은 차원종들에게 다시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컸으며 서지수의 입장에서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대체 어떡하면...'
"나는 상관하지 말고 어서 ㄱ..."
"!!!"
서지수가 망설이는 동안 계속 그 괴물의 시선을 끌던 파우스트는 그 괴물의 날카로운 촉수에 몸이 꿰뚫리고 말았다.
"아, 안 돼애애애!!!"
"커억..."
파우스트의 몸이 꿰뚫리는 것을 본 서지수는 출구고 뭐고 당장 눈앞에 있는 괴물을 향해 덤벼들려 하였다. 그러나 그때 파우스트는 손을 움직여 서지수에게 한 가지 신호를 보냈다.
파우스트는 손가락으로 출구를 가리켰다. 그것은 서지수에게 자신은 상관하지 말고 어서 출구로 가라는 신호였다.
"어서... 가..."
"으으...!"
죽어가는 파우스트를 바라보던 서지수는 몸을 돌려 곧장 출구로 내달렸다. 그리고 서지수는 눈물을 흘리며 큰 목소리로 파우스트에게 절규하듯이 소리쳤다.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러면 됐어... 부디 행복하게 살기를..."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서지수는 금방 닫힐 것 같은 출구에 몸을 던졌고, 서지수가 들어가자마자 출구는 흔적도 없이 닫혀버렸다. 파우스트는 서지수가 출구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 천천히 눈을 감고 편한 얼굴로 숨을 거두었다.
***************
이것이 서지수와 파우스트의 짧은 첫만남이자 마지막이었다. 얘기를 끝마친 서지수는 그때의 일이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던 모양인지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비록 파우스트는 그때 죽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자들이라도 다시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여태까지 그 외부차원으로 넘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리고 1년 전에 드디어 그 기회가 생겼었지. 너희들도 알고 있을거야. [대정화작전]을."
[대정화작전]이란 1년 전에 플레인 게이트를 통하여 오염된 한 외부차원에 일시적으로 넘어가서 인류의 차원으로 넘어오게 된 오염위상을 정화하는 임무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바로 그 오염된 외부차원이 바로 파우스트와 파우터들이 있는 외부차원이었던 것이고 파우터들을 가끔씩 잡아먹던 새는 하르파스의 부모뻘이 되는 또 다른 개체의 하르파스이며 서지수가 출구로 들어가는 길을 막은 문지기인 그 괴물은 오염위상 요드였던 것이다.
아무튼 서지수는 이 대정화작전을 통해 그 외부차원으로 다시 한 번 넘어가서 남아있는 파우터들을 찾아보려고 남들 몰래 혼자서 수색을 펼쳤었다. 허나 파우터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서지수는 그 시간 동안 파우터들이 전부 안좋은 최후를 맞이한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고 지금 이 몽환 세계에 와서 D백작이 파우터들은 멸종했다는 말을 듣고는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그 충격적인 사실에 좌절하고 있었다.
"어쨌든 여기까지가 우리가 있던 세계에서의 나와 파우스트에게 있었던 일이야.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 세계의 그이에게서 들은 얘긴데..."
"그건 내가 직접 말해주도록 하지."
"!?"
서지수가 이 세계의 파우스트에게에서 들었던 얘기를 이어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모두의 앞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건 바로 이 세계의 파우스트였다. 그 파우스트가 몽환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자 D백작이 약간 놀란듯이 말하였다.
"이거이거, 초대 받지 못 한 손님이 왔군."
몽환 세계에 있어서 초대 받지 못 한 손님이란 D백작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몽환 세계에 무단 침입을 한 자라는 뜻이었다.
"말도 안 돼, 백작님의 의사와 관계없이 침입이 가능한 자가 있다니."
"으아아, 이를 어쩌면 좋아?"
"자자, 두 사람 다 진정하려무나. 지금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지. 나도 꽤 궁금해서 말이야."
"흥,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뭐 좋지. 서지수, 당신이 얘기하려던 것은 내가 당신이 있던 세계의 나와는 달리 어떻게 해서 살아남았고 또, 어떤 이유에서 인간들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건지 말하려던 거였지? 친절하게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알려주지."
그리고 그 파우스트의 얘기가 시작되었다. 우선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살았는지부터였다.
서지수가 앞서 얘기한 것처럼 파우스트는 그 괴물의 촉수에 붙잡힌 서지수를 돕기 위해 요드에게 덤벼 시선을 끌었다. 허나 이 과정에서 서지수가 얘기한 것과는 달리 이 세계의 파우스트는 운 좋게 몸을 꿰뚫리지 않게 되었고, 그 사이에 망설이던 이 세계의 서지수가 그 외부차원에서 나가는 것보다 파우스트를 구하는 쪽을 골라서 서지수는 요드를 처치하고 파우스트는 죽음을 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동안 그 외부차원에 머물게 된 서지수는 다음 출구가 열릴 때까지 파우스트와 그 외의 파우터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고, 예상보다 빠르게 1개월 정도가 지난 후에 출구가 열렸고 서지수는 그때 출구를 통해서 원래 차원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다만 그 뒤가 문제였어."
파우스트가 훗날 알아낸 사실에 의하면 서지수가 자리를 비운 그 1개월 동안 인류는 전황을 뒤집기에는 늦었을 정도로 불리한 상황에 직면한 상태였다. 서지수는 1개월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사력을 다하여 분발했으나 결국 서지수는 한계에 부딪혀 고위급 차원종들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이를 기폭제로 삼아 인류는 순식간에 패배의 쓴맛을 맛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군단놈들은 단지 우리 일족이 가진 능력만을 보고 학살을 벌인 뒤에 그 끔찍한 외부차원으로 추방시킨 것도 모자라 나에게 있어서, 그리고 우리 일족 전체에게 있어서 소중한 존재인 서지수를 죽였다. 그 사실은 우리 일족이 있던 외부차원으로 나와 서지수의 아들인 이세하가 날려져 왔다는 것에서 알 수 있었지."
이 세계의 이세하는 아기였을 때 서지수가 비상탈출장치를 이용해 멀리 떨어진 곳으로 대피시키려 하였으나 의도치 않게 때마침 또 다시 우연히 생겨난 차원문을 통해 파우스트와 다른 파우터들이 있는 그 외부차원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이세하를 출산하면서 서지수가 붙여준 이름표에 적힌 이세하의 이름을 보고 파우스트는 서지수가 죽었다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군단 놈들에게 복수를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서지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우리 두 사람의 아들인 이세하, 그리고 살아남은 동족들과 함께 말이다."
그때부터 파우스트는 자신의 아들인 그 이세하와 함께 군단의 차원종들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하였고, 인류가 차원종에게 패배하고 10년이 지난 후에야 그 복수라는 목표를 달성하였다.
"그렇다면 왜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거야! 얘기를 들으니 우리들에게 잘못은 없잖아!"
얘기를 듣던 그 이슬비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러자 파우스트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그 이슬비를 노려보며 말하였다.
"정말로 인간들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나?"
"뭐?"
"내가 깜빡하고 얘기를 안 했으니 말해주지. 이 사실은 군단 놈들에게 복수를 이루고 네놈들이 잠깐 동안의 평화를 만끽하고 있을 때 내가 직접 알아낸 사실이다. 그때의 나는 그 이후로 서지수에 관한 것을 알아보려고 차원종이라는 것을 숨긴 채 인간들이 사는 지구에 왔다. 그리고 알게 되었지. 군단 놈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놈들 또한 추악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파우스트가 말한 것은 이러하였다.
외부차원에서 서지수가 다시 돌아오자 상층부의 인간들은 1개월 동안 자리를 비운 서지수를 비난하면서 그 대가랍시고 계속해서 사지로 내몰았다. 서지수는 계속되는 생사를 건 사투를 거듭하며 극심한 피로에 시달렸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파우스트의 아이를 임신하였어도 그 사실을 당분간 숨긴 채 계속 싸우다가 시간이 지나서 아들인 이세하를 출산했다. 그러나 상층부의 인간들은 서지수가 출산을 하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그 1개월의 공백을 그때까지도 우려먹으며 이세하를 출산한 탓에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상태로 계속해서 고위급 차원종의 군세를 상대로 하는 전투에 내보냈다.
이러한 일이 원인이 되어 서지수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던 것이고 이것이 곧 서지수의 죽음 및 인류 패배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 놈들은 서지수, 그녀의 힘에 당연한 듯이 기대기만 하며 그녀의 사정은 생각하지도 않고 무책임하게 계속해서 사지로 내몰았다! 결국 그게 서지수를 죽게 만든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지. 너희 인류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웃기는 소리! 자기들이 좋을 대로 이용할 만큼 이용해먹다가 그녀를 죽게 만든 네놈들에게 정말로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파우스트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인 서지수를 사정도 헤아리지 않고 계속 사지로 내몬 탓에 그녀의 죽음에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인류 또한 군단의 차원종들과 마찬가지로 용서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서지수를 제외한 너희 인간 놈들은 쓰레기다!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며 비겁한 쓰레기 중의 쓰레기! 그런 쓰레기들은 제거해야 돼!"
"그만해, 파우스트! 나는 당신이 그러는 걸 바라지 않아! 분명 이 세계의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그러니까..."
"이미 말했을텐데? 내 뜻에 변함은 없다고. 서지수, 당신은 내 곁에서 나와 우리의 아들이 인간들을 멸망시키는 걸 지켜보면 되는 거야. 자, 이제 그만 돌아가자."
파우스트가 돌아가자는 말을 하자마자 서지수의 몸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몽환 세계에서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D백작은 파우스트가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서지수를 강제로 현실 세계로 돌려보내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거 놀랍군! 내가 만든 몽환 세계에서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타인을 강제로 현실 세계에 돌려보낼 수 있을 줄은! 허나 내 초대를 받지 않았음에도 몽환 세계에 올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자네는 그만한 힘이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한걸?"
"네놈이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지만 내 아들의 힘을 얕** 않는 편이 좋을 거다."
"과연... 이쪽 세계의 이세하 군의 힘을 이용한 건가."
"엄마!"
"세하야! 내 걱정은 하지 말고 파우스트를 꼭 막아줘! 부탁할ㄲ..."
서지수는 말을 끝마치지 못 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파우스트 또한 서지수를 뒤따라 현실 세계로 돌아갔다.
"엄마! 크윽...!"
"아무래도 이 세계의 이세하 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상을 초월한 힘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로군. 그가 어떻게 해서 그만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대로 그들과 다시 싸워봤자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는 거랄까?"
"그럼 뭐 어쩌라고! 이대로 가만히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잖아!"
"진정하게. 내가 말했잖나? 도움을 주려고 자네들을 불렀다고."
"엄마를 구할 수 있다면 뭐든 해주겠어... 빨리 말해!"
"알겠네, 알았어. 그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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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는 제거해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