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미래, 그리고 너 (3) -알아버리다
건삼군 2018-11-06 0
아아... 기분이 최악이다. 진실을 알게되면 좀더 마음이 후련해 질것 같았는데 현실은 정 반대였다. 후련하기는 커녕 찜찜하고도 답답한 기분이 내 마음을 감싸고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런 답답하고도 기분나쁜 느낌과 함께 나는 눈을 뜨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금 막 일어난 탓인지 최근에 길게 길렀던 분홍색 머리칼이 부스스하게 떠있었고 입고있던 잠옷도 여기저기가 모두 흐트려진 채였다.
“...빨리 씻고 준비나 해야지...”
최대한 정신을 똑바로 잡으며 그렇게 작게 중얼거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해 간단하게 씻고는 아침을 가볍게 차려먹고는 옷을 갈아입은 뒤, 집을 나왔다.
아침부터 향하는 곳은 강남에 위치한 어느 거리. 꿈속에서 내가 보았던 풍경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있는 거리이다.
거리까지 가는것은 간단했다. 몇번의 버스 정류장을 거치고 어느정도 걷자 어느새 나는 그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딱히 무슨 중요한 일떄문에 이곳에 온건 아니다. 그저 꿈속에서 본 풍경에 뭔가 있을듯한 느낌때문에 한번 와본것 뿐.
하지만 아니면 다를까, 거리속에 놓여진 한 카페에 익숙한 얼굴이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새하얀 머리, 보랏빛 눈동자. 하지만 옷차림은 어제와는 다르게 사복이다. 어디서 사 입은 것일까.
카페에 앉아있는 그를 본 나는 그대로 단숨에 카페안에 들어가 그 남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남자는 잠시 내쪽으로 시선을 움직이더니 이내 무표정으로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평화롭군.”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은 목소리로 울려퍼진 그의 한마디는 어딘가 그리움이 느껴졌었다.
“그래. 평화롭지. 안그래 이세하? 아니, 지금은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지만.”
“...용케도 알았군.”
“이상한 꿈때문에 말이지. 그것 떄문에 요즘 통 잠을 잘수가 없다고.”
“꿈, 이라. 그게 어떤느낌인지는 벌써 잊어버린지 오래다.”
“...너 말투가 너무 딱딱해진거 알아?”
“그러는 너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보다 조금 부드러운 것 같군.”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보아하니 너, 미래에서 왔지?”
“간단하게 말하자면, 말이지.”
“그렇다면 바로 요점만 물어볼께. 왜 어제 세하를 공격한거야?”
“...그냥 자기혐오라고 해두지.”
“자기혐오...? 왜?”
“이슬비. 만약 네가 잘못된 길을 걷고있는 과거의 자신을 본다면 어떻게 할거지?”
“잘못된 길을 걷고있는 자신을 본다고? 그야 그렇게 된다면 따끔하게 다가가서 한소리 해주거나 할건데...?”
“만약 그렇게 해도 과거의 자신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아까부터 대체 뭐야? 왜 그런 질문을 하는건데?”
“그냥 묻는거다. 참고로 나로써는 말이지, 화가 치밀어 올라서, 참을수가 없다.”
“뭐...?”
“그 길을 걷다보면 후회하고 절망할 것이라는걸 알고서도 길을 바꾸지 않는것은 그저 어린애같은 유치한 자존심과도 같은 감정에 불과하다. 나는, 그런걸 보면 무심코 죽여버리고 싶어진단 말이지.”
대체 내 눈앞에 앉아있는 이세하는 무슨 소리를 하고있는걸까? 대체 무슨일이 있었길레 저렇게 분노가 가득한 허무한 눈을 지은채 저런 말을 하는걸까?
“...미안하군. 순간 흥분해서. 일단 나는 가보도록 하지.”
“뭐? 야! 이세하! 잠깐만...!”
그리고 백발을 지닌 이세하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그림자와 함께 모습을 감추며 사라졌다.
“...적어도 커피값은 내고 사라지라고...”
아마 커피값은 내가 내야겠지. 모습이 저렇게 바뀌었어도 여전히 제멋대로구나...
그렇게 조용히 혼자 한숨을 내뱉은 나는 조금만 더 이 카페에 앉아있기로 하고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모습이 많이 바뀐 그가 보던 광경을 본다면 무언가 떠올려지는게 있을까, 생각하며.
하지만 내다본 창밖에서 느껴지는것은 그렇게 특별한게 아니였다. 내다본 거리에는 사람들이 혼자, 혹은 옆의 사람과 대화를 하며 걸어가고 있었고 아**트로 포장된 도로에는 차들이 이따금 지갈 뿐이였다.
“평화롭다... 라.”
아까 그가 혼자서 내뱉었던 말을 되세기며 나는 또 다시 한번 생각의 늪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남자, 미래에서 온듯한 이세하는 어째서 이곳으로 온것일까, 그리고 왜 과거의 자신을 죽이려 했었는가, 그 어느것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과거로 왔다는것은 분명 무언가 고치고 싶은게 있다는 것일거다. 하지만 과거로 와서는 한다는것이 과거의 자신을 죽인다는 거라니, 미래에서 온 그녀석은 그저 자기혐오라고 하긴 했지만 만약 과거의 자신을 죽이는게 그가 바라는 과거를 고치는 방법이라면, 대체 미래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거지?
꿈속에서 본 그의 모습은 쓸쓸하고 비참했다. 보라색으로 변한 눈빛에는 절망과 허무감이 가득했고 항상 어딘가 자신이 넘치던 모습은 모든것을 포기한 듯한 기분이 가득했다.
지금의 내가 알고있는 이세하는 항상 게임만 생각하지만 진지할떄는 진지하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그런 인간이다. 지금까지 그 어떠한 절망적인 일이 **왔어도 이세하는 단 한번도 끝까지 포기한적이 없고 해야할 일을 끝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미래에는 저런 모습으로 변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어라? 이슬비? 네가 왜 여기있어?”
그렇에 생각의 늪에서 혼자 골똘히 고민하고 고민하던 중 매우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생각의 늪에서 다시 현실로 끄집어 내었다.
“이세하? 너야말로 여기는 어쩐일로 온거야?”
천하의 그 이세하가 게임스토어나 PC방이 아닌 이런 어른의 느낌이 몰씬하게 나는 카페에 왔다니, 어지간하게도 이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