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모험담 중 일부인 이야기 3-4
한스덱 2018-10-05 0
이 이야기는 실제 게임 스토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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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보물 2 호들…
아프지 말았으면…
내가 비틀린 소원을 어긋난 방향으로 이루어내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그 순간,
“릴리스.”
난 그녀가 어떤 말을 내뱉던 신경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가 이 상황에서 ‘안돼!’, ‘멈춰!’, ‘기다려!’ 등의 뻔한 말을 내뱉을 게 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난 정말로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의 난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지만 그녀는 내 상상을 뛰어넘은 존재였다. 난 전혀 예상치 못한 그 한 마디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절뚝거리면서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휴, 다행이다. 무시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긴장은 늦추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 건 블레이드의 총구를 나를 향해 겨누고 있었다. 그녀는 그 묵직하고 길쭉한 무기를 한 손만으로 들고 있었지만 힘들어 보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 총구는 미세한 떨림조차 없이 정확하게 나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살풍경을 군단의 병사들이 지켜보았다면, 공포를 넘어선 무언가를 느끼며 자신의 삶과 영원히 작별할 준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녀의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가진 에너지를 바라보면서 그 실제의 모습을 유추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난 그녀가 나를 향해 무기를 겨눈 게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 대신,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게 만든 그녀의 한 마디에 까무러치게 놀라버렸다.
“어떻게… 저를…!”
“이야, 찍었는데 맞췄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걸?”
내 입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도 장난은 이제 그만두려는 생각인가 보다.
“찍었다는 건 사실이야. 거의 확신은 했지만.”
이번에는 내 입이 열렸다. 이것만은 확인을 해봐야 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확신한 거죠?”
“네 약초를 먹을 때 조금, 네 능력을 봤을 때 거의, 둘 다 엄청나더라고.”
“…당신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말이군요.”
“오해는 말아줘. 난 어쩌다보니 여기에 온 거고, 설마 이런데서 너를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 그리고 너와 관련된 정보는 거의 없는데다가, 남아있는 정보마저 불확실했지. 그래서 네 존재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 나도 실제로 만나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고. 어때, 이 정도면 만족해?”
난 그녀의 말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그녀의 차례였다.
“나도 물어볼게. 넌 내 정체를 어떻게 안 거야?”
난 이 질문은 예상했고, 적절한 대답 역시 준비해두었다.
“찍었습니다.”
그녀는 살짝 웃었다. 그걸로 난 그녀가 지금 여유롭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수 천개의 문자 중에서 내가 아는 문자인 한글을 정확하게 골라내서 메시지를 썼다는 거야? 나보다 더 운이 좋은 걸?”
그녀는 내가 직접 배치한 돌멩이를 말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 말을 최대한 비꼬았다.
“그것보단 인간이 세운 수 백개의 국가들 중에서 당신의 국적인 한국을 골라내는 게 더 쉬울 겁니다. 만약 제가 정답을 찍는다면 당연히 확률이 더 높은 방법을 고를테고요.”
그녀는 잠시 말을 잃었다. 나는 살짝 의기양양해졌다.
“…확실히 알겠어.”
나는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그래서 그녀를 비웃어버렸다.
“군단에서 당신을 모르는 멍청이를 찾는 게 더 힘들 거라는 당연한 사실을 말입니까?”
“아니, 네 정체 말이야.”
나는 얼이 빠져버린 채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네?”
“넌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어. 이건 별로 놀라운 게 아니지. 하지만, 너는 내 국적의 이름은 물론이며, 그 국가에서 쓰는 언어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 게다가 인간이 수 천개의 문자를 만들었고 수 백개의 나라를 세웠다는 것마저 알고 있었어. 아, 네가 보여준 그 근사한 욕설도 빼먹을 수 없겠네. 군단의 일원들 중에서 내부차원의 역사나 사회, 그리고 문화와 관련된 정보들을 이만큼 많이, 그리고 잘 알고 있는 자는 내가 알기론 고위 간부들밖에 없어. 게다가 네가 가진 이 약초들과 그 능력…”
나는 진짜 벙어리가 된 것처럼 아무 말도 못했다.
그녀는 내 상상 속의 그녀와는 평행선을 그린 데다가 내 선보다 더 윗쪽에 그려져 있었다. 애초에 이 상황은 그녀에게 더욱 유리했다. 난 그걸 깜박 잊어먹었고, 심지어 잠깐이나마 내가 더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는 멍청한 착각에 빠져있었다.
물론 그녀는 제대로 된 심문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이 정도의 간단한 유도 심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 발로 구석까지 밀려난 나는 그녀만큼 여유로울 수 없었다. 그녀는 내 머리를 쥐어박을 필요도 없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내 입을 통해서 술술 알아내버렸다.
이 탐색전은 나의 완패였다. 그녀는 나에게 항복 문서의 양식이 담긴 종이를 당당하게 내밀었다
“그러고보니 자기 소개가 늦었네. 뭐, 서로 다 알고 있기는 하지만 형식으로나마 해볼까? 내 이름은 서지수야. 잘 부탁해.”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번쩍 들어버린 나는 패배를 서명하는 한숨을 내쉰 뒤, 그녀의 정중한 소개에 어쩔 수 없이 어울려주었다.
“제 이름은 릴리스입니다. 당신들이 멋대로 붙인 이름이긴 하지만요.”
작명 센스가 뛰어난 인간들은 차원종에 소속되는 종족들에게도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름을 붙였다. 쥐처럼 사방을 들쑤시며 약탈을 하는 자들에게는 ‘스케빈져’, 추운 지방에서 사는 털복숭이들에게는 ‘예티’ 등등…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에 부합하는 명칭을 차원종의 종족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런 종족명은 주로 군단의 병사들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들에게 더 큰 위협이 되는 괴물이나 악마들에게, 덜 위협적인 개체들과 구분하기 위한 독립적인 인식명을 각각 붙였다. 그 인식명에는 인간의 전설이나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나 악마의 이름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인간들은 나에게도 인식명을 붙여놓았다. 나는 내부차원을 직접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나와 관련된 정보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데다가, 대부분의 인간들이 내 존재를 믿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릴리스’.
태초의 인간 남성을 유혹했다는 여성 악마. 인간들은 내 인식명을 그렇게 붙여놓았다. 난 그들을 유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데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악마의 이름을 붙였다. 그들 입장에서는 내가 그렇게 위험한 존재였을까. 난 그들에게 내 정체를 알리지 않으려고 꽤나 노력했는데 말이다. 아니,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고 생각한 걸까?
어쨌든 그녀는 지금 내 정체를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더 이상은 내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다.
여러분을 위해 소설까지 써줄 만큼 인간들의 문화나 언어 등을 상당히 잘 알고있는,
어이와 터무니와 어처구니를 모두 없애버릴 만큼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석판에 담긴 정보가 군단의 기밀 사항에 들어갈 작전이라는 걸 알고있는,
박사나 참모장처럼 괴물보다는 악마에 더 가까운 외형을 가지고 있는,
참모장은 커녕 군단장마저 존칭없이 마음껏 불러대는 차원종.
나는 바로, ‘이름 없는 군단’의 ‘전 군단장’, 인식명 릴리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