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에게 사랑은 어려워 #00
루이벨라 2018-10-25 8
※ 볼프파이 기반(후에 컾링 추가 예정)
※ 『오타쿠에게 사랑은 어려워』 패러디
※ 중편 예정
※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 多
#00. 신호탄은 갑작스럽게 울려 퍼진다
-선생님의 첫사랑은 누구예요?
훅- 치고 들어오는 소마의 질문에 파이의 얼굴은 삽시간에 빨개졌다.
-가,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마 양?
-첫사랑, 첫사랑! 첫사랑 이야기 해주어요!
-소마, 무슨 짓이야?! 파이 선생님께서 곤란해 하시잖아!
그러는 루나 양도 은근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는 눈치입니다만...? 파이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주변에서 그렇게 맴도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따라 공부를 하기 싫었는지 소마가 늘어지게 떼를 썼다. 볼프강이었으면 여유 있게 받아 넘겨서 계속 수업을 진행했겠지만, 귀여운 제자들이 모처럼 떼를 쓰는 것에 대해서 내성이 취약한 파이는 소마의 질문에 심각한 얼굴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첫사랑이라...
-누구였어요?! 혹시, 같은 마을에서 살던 소꿉친구라던가!?
-그건 너무 뻔하지! 우연히 지나가던 사람을 보고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느꼈을 수도...!
저마다 가지고 있는 첫사랑의 낭만을 말하는 소녀들 앞에서 파이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소녀들이 원하는 비슷한 답이 나오지 않는 걸 어찌하리.
-유감스럽게도 첫사랑은 없는 거 같군요.
-에에?!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어려웠으니, 사랑은 지나친 사치라고 생각했거든요.
어색하게 웃는 파이를 힐끗 쳐다보던 볼프강은 이렇게 생각했다. 애쓰고 있구만...어느 정도 수위가 걷잡을 수 없이 된다면, 볼프강이 중도에 대화를 끊을 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이번엔 이상형이었다. 수업하기 싫은 티가 팍팍 나서 잔머리를 쓰는 말썽쟁이 2호를 볼프강은 있는 힘껏 째려보았다.
수업을 그렇게 반 이상 퉁 처먹은 아이들이 사라지자마자, 볼프강은 자신의 소매를 끌어당기는 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주인공은 당연히 파이였다.
-선배, 오늘 밤에 시간 괜찮으신가요?
* * *
“그. 래. 서...고작 그 일 때문에 술 먹는데 어울려 달라는 거야?”
“고작 그 일이라뇨! 선배는 무슨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너, 벌써 취했다고...”
볼프강이 한숨을 쉬면서 옆에서 엉엉 울고 있는 파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마음속으로 끙끙 앓다가 겨우 볼프강에게 내던진 진심인데, 볼프강은 그걸 가지고 좋은 말은 못해주기는커녕, 어이없어하고 있었다.
파이의 이런 시점과는 정반대로 본인 마음속의 볼프강은 멋쩍은 상태였다. 이놈의 입이 문제였다, 어떻게든 고쳐나가야 하는데...그렇게 뭐라고 중얼거리는 볼프강에게 파이가 힘없이 말했다. 물기가 어른거리는 목소리다.
“아직, 익숙하지 않지 말입니다.”
“...?”
“지금 제가 있는 이 자리...본래는 슈에, 그 아이가 누리고 있어야 할 자리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지 말입니다.”
“그건 지나친 비약이라고, 이 멍청아.”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화가 났다.
역시 술에 취한 게 분명하다. 술도 잘 못 마시는 아이가, 이렇게 볼프강에게 먼저 술자리를 권유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아까 낮에 있었던 일이 파이에게는 계속 응어리로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파이의 이 의기소침한 태도를 질리도록 보았고, 개인가정사 또한 어쩌다보니 대강이나마 알게 된 볼프강은 지금 파이에게 해줘야할 가장 첫 번째의 일이, 파이가 술을 깨는 것을 돕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파이가 계속 마음에 두고 있는 그 일은 단편적으로 바로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미안, 파트너. 애들한테는 조심하도록 일러둘 테니까, 그만 마시고 들어가서 자는 게...”
“그러는 선배는...첫사랑 없었나요?”
“...”
아, 이 말썽꾸러기들. 나중에 만나면 가만 안 둘 것이야...볼프강은 그리 다짐했다. 볼프강은 당황했다는 걸 숨기기 위해, 일부러 우쭐하게 말했다.
“나 말이야? 내가 사랑을 해줄 사람처럼 보이냐?”
“...”
“아, 그래 거짓말 좀 했다. 그 이상한 눈초리로 ** 말아줄래?”
볼프강은 자신의 실언을 인정했다. 그러자 파이는 거의 비어버린 캔의 내용물을 홀짝 마시며,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래도 인기는 있었을 거라 생각이 되는데 말이죠. 제 타입은 아니지만, 선배 얼굴은 객관적으로 봐도 매우 잘생겼습니다.”
“...!!”
아, 나대지 말라, 심장아. 자기 이상형은 아니라잖아...! 오늘의 파이는 평소와는 달리 무언가가 다르다. 좀 더 솔직하게, 내뱉는 말에는 체로 걸러지는 것이 없어서 거칠기까지 하다. 근데 거칠면 어떠하리. 이렇게 좋은데! 볼프강은 자신의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가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볼프강은 일부러 퉁명스레 말했다.
“뭐야, 그 입만 번지르르한 칭찬은?”
“아, 결국 들켜버리고 말았습니다?”
“...”
또, 이놈의 입이 문제였다. 아예 꿰매놓을까, 싶다. 그래도 지금의 파이는 어느 정도 진정된 상태였다. 알코올이라는 액체가 들어가면 이렇게 감정 변화선이 극단적이게 되니까. 이리 시답지 않은 농(?)으로 긴장을 푸는 건 괜찮겠지. 물론 맨정신 상태의 자신이 입은 데미지는 묻어두기로 하자.
“그런데 너무 그런 걸로 자책하지 말았으면 해. 인간은 모두 똑같을 수 없어. 그까짓 첫사랑 하나 없다고 뭘 그리 기죽을 필요는 없다, 이 말이지.”
“그렇군요. 여기 첫사랑 없는 것이 오히려 자랑인 듯한 사람이 옆에 있었군요.”
“이게 정말...”
남은 진심으로 위로해주려고 그러는데, 어째 하는 말마다 꼬투리 잡기 바쁘다. 얘는 이런 말투는 또 어디서 배우고 온 거야, 설마 나한테?! 그런 불길한 예감은 잠시 고이 접어 하늘로 던져버리도록 하자. 어쨌든 이제 슬슬 자리를 마무리 짓는 시점에서 볼프강은 또 하나, 충고를 할 겸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사실 클로저라는 직업을 가진 이상 연애는 힘들지.”
“흐응...”
“저쪽에서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어차피 인간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니까. 결국 완벽한 공감 같은 건 없어. 너무 강박 관념을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어째 경험담 같습니다...?”
이번에도 볼프강 특유의 입씨름이 오갈 것으로 예상하고 꺼낸 말이었는데, 볼프강의 반응은 의외였다.
“경험담 맞다.”
담담하게 말하는 볼프강 때문에 오히려 파이가 놀랐다. 그리고 이 급속도로 냉각되어지는 분위기는 무엇인데. 파이는 잠시 술이 깬 기분이었다. 난 이 사람의 상처를 함부로 건드린 것이 아닌가, 싶은 죄책감에 말이다.
파이가 더듬더듬 물었다.
“정말...입니까?”
“확인사살은 그쯤으로 해둬. 어차피 시작할 때부터 대강은 알고 있었어. 난 평범한 사람은 아니니까.”
“선배...”
“그래도 힘든 건 마찬가지더라고.”
그쯤부터 바빠진 임무 덕에, 실연의 상처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라면, 그걸 한동안은 잊으면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숨을 트일 수 있었던 시간대에 와서야 볼프강은 자신이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그쪽에서도 그리 생각할 게 뻔하니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파이는 거의 석고대죄를 할 기세였다. 볼프강의 손을 맞잡고, 눈물까지 글썽이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확정.
“선배...죄송해요. 제가 괜히 말을 심하게...”
“아, 아냐, 괜찮아. 그보다 너 이제 정신 차렸냐? 이제야 좀 평소의 너답다.”
“이 경솔함을...어찌 갚아야할까요.”
‘뭐야, 아직도 취해있는 거였어?’
빨리 파이가 술에 깨기를 기다리는 볼프강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먼 듯 했다. 확실하게 정신이 깨어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마땅히 생각나지 않는다. 괜히 또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으니 할 수 있는 말의 범위는 더더욱 줄어든다.
연애, 사랑, 좋아한다, 매우 좋아한다...왜 그런 단어가 그 당시의 볼프강의 뇌리 속에 맴돌았는지에 대해서는, 세계 8대 불가사의에 기재하고도 남았다.
그 말은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의 신호탄과 같았다.
“그럼...너 나랑 연애해볼래?”
“네...?”
너무 놀라서 평소보다 두 배쯤 눈이 커진 파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볼프강은 정말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아까 낮의 파이처럼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어쩌면 파이보다 훨씬 저질렀는지도.
‘뜨아아아아아악----!!!’
볼프강은 자신마저도 취해있었던 것인지 의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할 말 있고, 안 할 말 있지만, 이 말은 후자에 해당되는 거잖아, 후자! 아니, 애초에 이렇게 갑작스러운 고백을 받는 거 파이 입장에서는 안 껄끄러울 거냐고!? 파이의 썩은 표정이 당장에라도 떠올라서 볼프강은 파이의 얼굴을 있는 힘껏 외면했다. 이제 앞으로 파이의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을는지 막막해졌다.
이번 생에서는 연애는 무리라고 판명하도록 하자. 그렇게 체념을 하는데 파이가 볼프강의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놀란 볼프강이 파이를 내려다보자, 파이는 다른 쪽 손으로 엄지까지 척! 들고 있었다. 눈빛은 아주 반짝반짝거린다.
“좋아요, 까짓것 한 번 해보죠.”
‘엥...?’
“선배의 그 뭐든지 다 알겠다는 얼굴 참 보기 싫지 말입니다? 제가 언제까지 선배보다 아래인 후배일거라고 생각하죠? 이 기회에, 서로 동등해집시다!”
‘계기가 왜 이렇게 요상한데?!’
이걸 좋아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얘는 이걸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건가? 정작 볼프강 본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했는데! 말이랑 마음이랑 따로 논다고, 파이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설마, 설마, 그 평소의 예리함은 다 어디로 갔냐고?! 아, 평소의 상태로 보기에는 지금의 파이는 술에 취한 상태였지...볼프강은 파이가 일단 오해를 하는 거 같으니 그 문제에서 해명을 해야 했다.
“이, 이봐, 파트너! 일단 해명부터 해야 할 거 같은데, 난 널 평소부터 좋아...”
“...”
“잠들었잖아...”
이 무책임한 사람아...일을 저질렀으면 사람이 하는 말은 끝까지 들으라고. 아, 먼저 불씨를 내뱉는 건 볼프강 자신이었으니 무책임한 건 오히려 나일려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근데 이상하게 용기 있게(?) 파이에게 고백한 자신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역시 볼프강은 볼프강 자신에게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일단 잠이 든 파이를 본인의 방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볼프강은 늦은 시간에 미안하다며, 인이어로 앨리스를 불러 파이를 방으로 데려달라고 부탁했다.
* * *
‘꿈이...아니었잖아...!’
다음날 아침, 본인의 방에서 깨어난 파이가 처음으로 떠올린 말이었다. 어젯밤의 일은 분명 꿈이 아니었고, 그리고...
‘망했다...’
자신은 앞으로 망했다. 도대체 어떻게 볼프강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냐 말이냐! 파이는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의 옷깃을 잡으며 해명하고 싶었다.
어떻게 거기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엄지 척! 까지 하면서 그걸 승인하는 건데! 기억해 보아라, 선배의 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파이는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일단 곧 들이닥칠 아침 식사 자리에서 볼 볼프강에게 대할 태도 등을 정해보는데...
‘일단...’
모르는 척 하자! 그게 최선의 방법이다! 모르는 척만이 살길이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일단 공홈에 처음으로 연재하는 영광의 중(장)편물이네요.
클로저스 관련 장편은 여러번 써보았지만 공홈에 같이 연재하는 건 처음입니다.
전에 썼던 장편들에 비해 짧긴 하지만, 분위기는 가볍고 훈훈하게 갈 생각입니다.
앞선 설명에서 보듯이 볼프강이랑 파이 커플 기반입니다. 물론 조연 커플도 둘 정도 나올 생각이지만 일단 저 두 사람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될겁니다.
제목에서부터 패러디 된 모 애니를 우연찮게 보게 되면서, '아 이거 내가 꼭 패러디해야겠다' 라고 촉이 와서 이리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쓰던 단편과는 분위기부터 다를거라고 예상됩니다. 목적이 독자분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즐기실 수 있는 작품을 써보고 싶어서이기 때문에 어차피 각오했던 부분입니다. 적어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만이라도 미소 짓고 있는 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