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속에서(完)
건삼군 2018-10-23 4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찾아오자 이세강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고기와 야채를 냄비에 넣어 끓이고 있었다. 밤새동안 그나마 몸 상태가 나아졌는지 오늘은 무리없이 일어날수 있었지만 내 발목은 여전히 부어 오른 상태라 뛰는건 아직 무리였다. 하지만 위상능력자 아니랄까봐 걷는것은 그다지 무리가 없었다.
“밥 다 됐으니까 와서 먹어.”
깡통 냄비에 담겨진 고기와 야채가 포함된 스튜를 그릇에 담으며 말하는 이세강을 본 나는 떠오르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순식간에 그릇을 비우며 음식을 먹어 치웠다. 세삼스럽지만 음식의 맛은 아주 일품 이였다.
“요리 잘하네. 식당을 차려도 되겠는데?”
무심코 맛에 감탄한 나는 웃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이세강은 어제와 같이 고개를 돌리며 내 시선을 피했다.
“...왜 자꾸 고개를 돌리는건데?”
“...신경꺼.”
어제부터 갑자기 왜저런데? 보는 사람이 왠지 모르게 민망해지네... 뭐 찔리는 거라도 있나?
영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곰곰히 생각해보는 나였지만 도통 답이 나오지 않아 쉽게 포기하고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앞으로 무슨 계획이라도 있어?”
“있어. 일단 부산쪽으로 갈 예정이야. 들은 바로는 현재 다른 도시들은 대부분 다 난장판이라고 하거든.”
“...뭐? 부산?”
“그래. 부산.”
순간 잘못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물어보자 이세강은 별것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다시 대답했다.
부산. 우리나라 남쪽 끝부분에 위치한 도시. 대전에서는 차타고 약 빠르게 3시간 정도, 느리게는 4시간 걸리는 도시. 그런데 지금부터 거기를 간덴다. 그것도 무려 아무런 탑승수단도 없이. 저 남자는 아무래도 머리속 어딘가가 고장났나 보다.
“어디보자... 차로 약 3시간. 거리는 대충 200km정도니까 한시간에 5km를 걷는다고 하면 200 나누기 5... 40시간정도 걸리겠네? 거기에서 쉬는시간과 자는시간, 그리고 일직선으로 갈수는 없으니까 우회하는것 까지 계산하면 얼마나 걸리지? 하루가 24시간, 대충 오전 7시부터 일어나 걷는다고 가정하고 어두워질떄 까지 걷는다고 하면 하루에 약 11시간 걷는 셈이네. 쉬는시간과 식사시간을 뺴면 대충 8시간이고. 40 나누기 8은 5지? 즉 5일정도 걸린다는거네? 그것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탄하게 갈수 있다는 가정 하에 말이야.”
순식산에 랩을하듯 대전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계산을 늘어놓자 이세강은 소소하게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묘하게 ‘잘 알고있네’ 라고 비아냥 거리는것 같아서 더욱 짜증이 났다.
“네 말대로야. 그렇게 까지 자세하게 계산하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장난하냐!”
진짜로 장난치는거지? 5일동안 계속 걷기만 한다니, 그런건 절대 사양이라고. 심지어 이쪽은 발목을 삐어서 걷는게 힘들단 말이야.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니까 그렇게 알아. 어차피 여기에 언제까지고 있을수도 없잖아.”
읏... 그건 맞는 말이지만...
“그, 그래도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수도 있잖아! 그래! 연락을 취한다 던가!”
“어떻게 연락할 건데? 참고로 이 주변은 이미 네가 자고있는 동안 전부 **봤어. 무전기는 커녕 안테나 하나 없더구만.”
“그, 그럼 차를 찾아보는건?”
“방금 말했잖냐. 이미 이 주변은 전부 **봤다고.”
애써 머리를 굴려 다른 방안들을 내놓아 보았지만 전부 기각당했다. 하는 수 없이 결국 부산까지 걸어가기로 결정이 난것이다. 그리고 이왕 결정이 난거, 지금부터 이동하기 시작하자고 말한 이세강의 말에 나는 순순히 따를수 밖에 없었고 결국 그렇게 그다지 반갑지 않은 남자와의 작은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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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우리는 한참동안 걸으며 대전을 향해 나아갔다. 가는 도중에 소수의 차원종과 마주치기도 했지만 어차피 D급이나 E급의 잔챙이 수준의 차원종이였기에 무리없이 건 블레이드의 화염을 발포하는것 만으로도 쉽게 처지할수 있었다.
하지만 마주친 차원종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아무생각 없이 걷는것 만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8시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멍하게 걸어가는건 무리였기에 걸어가며 주변 경치를 둘러보고는 했다.
대부분의 경치는 다 무너져가는 건물이나 군데군데 균열이 가있는 빌딩들로 가득한 유령도시 뿐이였지만 의외로 꽤나 장관이였기에 나는 작게 감탄하며 경치를 감상했다.
“와아... 꼭 영화속에 들어온것 같네...”
폐허야 전쟁이 시작한 뒤로 수도없이 겪어봤지만 이렇게나 가까이서 자세하게 둘러보는건 처음이다. 왜냐하면 평소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은 탓도 있고 폐허를 보고있으면 왠지 모르게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섭기는 커녕 오히려 무언가 몽환적인 느낌이 들어 재미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무언가 불안함이 느껴졌다. 아마 이렇게 변한 도시를 보고있자니 원래 생활로 돌아갈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겠지. 아, 그러고 보니까 갑자기 왠지 이 남자가 무슨 생활을 했었는지 궁금해졌어.
“저기, 그냥 물어보는 건데... 너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어떤 생활을 했었어?”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는 나보다 조금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그에게 다가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고는 대답했다.
“그냥 평범하게 해외에 유학을 갔다오고 취직활동 중이였어.”
“음... 꽤나 평범하네? 난 또 무슨 반평생을 산속에서 지낸줄 알았는데.”
모 해외 TV프로그램의 유명인인 특수부대 출신 영국인 처럼 말이야.
“반평생은 아니지만 유학중에 친구들이랑 산에서 일주일간 캠핑을 한적은 있어.”
“...혹시 산 말고도 숲속이나 사막에서도 캠핑을 해본건 아니지?”
“맞는데?”
그래서 2년동안 잘도 폐허속에서 살아남을수 있던거구나... 괜히 이것저것을 알고있던게 아니였나보다.
“그러면 그쪽은? 그쪽도 위상... 뭐시기를 쓸수 있게되기 전에는 평벙했을거 아니야.”
에,,, 나? 어디보자... 나는....
갑자기 내게로 돌아온 질문에 나는 당황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어디보자... 전쟁 전이라...
“음... 난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였는데?”
“...그게 다?”
“어.”
딱히 특별한건 하나도 없는데 말이지... 그냥 친구들이랑 노닥거리고 시험기간이 되면 공부하고 가끔 아르바이트도 다니고... 우와...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나 진짜 평범했었네...
“그러면 전쟁 후로는 어떻게 지냈는데?”
내 대답이 너무나도 평범했는지 질문을 바꾼 이세강.
“...그냥 차원종이랑 싸우고... 그리고...”
그리고 또 어떻게 지냈더라...? 왜 아무것도 생각이 떠오르지 않지? 왜 기억나는건 끔찍한 전장밖에 없는거지...?
“아.. 그리고... 또...”
불안함을 뒤로하고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 내며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떠오르는게 없었다.
“됐어. 무리하면서 까지 대답 안해도 돼.”
“으, 응...”
무리하지 마라. 그 한마디가 들리자 아까 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불안감이 썰물이 빠지듯 사라졌다.
“하아... 꺄악!”
갑작스럽게 불안감이 사라진 탓인지 안도의 한숨을 쉰것과 동시에 다리가 걸렸다. 그 탓에 단마디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던 나는 눈을 반사적으로 감으며 바닥이랑 부딫힐 충격에 대비했지만 예상과도 다르게 내가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칠칠치 못하구만.”
왜냐하면 이세강이 넘어질 뻔한 나를 안듯이 끌어 당겼기 때문이다. 그탓에 나는 우리는 마치 무도회장에서 남자가 여자를 받쳐주고있는 듯한 포즈를 하고 있었고 동시에 아주 근거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초간의 정적후에야 엄첨나게 부끄러운 상황에 놓였다는걸 꺠달은 나는 붉어질 데로 붉어진 얼굴을 감추며 허둥지둥 일어났다.
“미, 미안!”
“...다음부턴 조심해라.”
으아아... 진정해라 내 심장... 아무리 저 남자가 잘생겼다고는 하지만... 이 아니라! 일단 진정하자. 진정. 그래 방금 그건 사고야. 뭐, 순간 로맨틱한 분위기였긴 했지만... 아니아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나는!
폭주하는 기관차 처럼 뛰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가까스로 진정한 나는 약간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다시 대화를 이어나갈려고 입을 열었다. 아니, 정확히는 입을 열으려고 했다.
“콜록! 콜록! 흐아...”
하지만 사레가 들렸는지 갑작스레 기침이 나왔고 나는 그렇게 한동안 콜록 거리며 숨을 버겁게 내쉬었다.
“괜찮아? 물이라도 줘?”
“콜록! ...이제 괜찮아. 그것보다 오늘 저녁으로는 뭐 먹을거야?”
내 등을 쓰다듬으며 물통을 건네주는 그였지만 나는 가볍게 거절하며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피가묻은 손바닥을 숨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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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내 몸은 그 누구보다도 튼튼하다. 저번처럼 포르네우스 같은 초거대 차원종의 자폭을 뒤집어 쓰고도 살아있을 정도로 튼튼하다. 하지만 나도 결국 인간이였나 보다. 어째 그때 입은 상처가 어쩐지 생각보다 얕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내상을 꽤나 심각하게 입은 모양이다. 몇일 전 기침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뒤부터 속이 뒤틀린듯 아파온다.
일단 괜시리 이세강에게 걱정을 끼치고싶지 않기 떄문에 지금껏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으며 걷고 있었지만 슬슬 숨기는게 힘들어지는것 같다.
근처에 버려진 약국이라도 **서 진통제를 찾아야 하나 라고 생각하며 고민하던 와중 이세강이 어깨에 매고있던 짐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묵자.”
“에? 아직 해가 안졌는데?”
“그쪽 몸 상태가 많이 안좋아 보여서 말이야.”
“아니, 그냥 조금 피곤한것 뿐이야~”
“...그럼 됐고.”
결국 예정보다 일찍 휴식처를 마련하기로 한 우리는 큰처에 있던 버려진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가장 상태가 양호해 보이던 방을 골라 들어갔다.
일단 저녁을 먼저 차려먹기로 한 우리는 집안에 남겨져있던 라면 몇개를 냄비에 담아 물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물론 가스레인지가 작동할리는 없었기 때문에 내가 직접 냄비를 가열시켰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구만. 인간이 손에서 불을 뿜고 물건을 태워버릴수 있다니...”
아직 적응되지 않았다는 말투로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이세강의 말에 묘하게 딴죽을 걸고 싶어지는 나였지만 말할때 마다 밀려오는 고통떄문에 그냥 잠자코 가만히 있기로 했다.
“...잠깐 부탁 하나좀 하자.”
부탁? 갑자기 왠 부탁...?
“잠깐 옷좀 벗어라.”
뭐...?
“자자자자자잠 콜록! 콜록...! 갑자기 무슨...”
“실례한다.”
갑작스럽게 내게 다가와 옷깃을 붙잡는 이세강의 손을 최대한 뿌리치려 하는 나였지만 내상때문인지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뿌리칠수 없었다. 이대로 남자에게 무슨 꼴을 당하는건 아닌지 고민하며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쳐봤지만 돌아오는것은 상처에서 올라오는 고통뿐이였다.
결국 하는수 없이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건가 하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각오를 다지고 있던 중, 이세강이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을 걸었다.
“...몸상태가 이렇게 될떄까지 숨긴거야? 참 대단한 여자야.”
“응?”
의외의 말에 눈을 뜬 나는 이세강이 내 상의를 살짝 들추며 시퍼렇게 멍이 든것을 확인하는걸 보았다. 그리고 이내 이세강이 멍든곳을 손가락으로 살짝 찌르자 말할수 없는 고통이 엄습해 왔다.
최대한 비명을 내지 않기위해 입술을 깨물며 버티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이 어디가는건 아니였다.
“...너 울먹이는 표정도 짓지 마라....
...괜시리 더 괴롭히고 싶어 지니까.”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방금 뭔게 굉장히 위험한 발언을 들은것 같은데... 그것도 굉장히 사디즘이 느껴지는 발언이 말이야...
“일단 여기 진통제가 있으니까 먹어. 그리고 내일은 조금 빠르게 이동할거야.”
“...갑자기 왜?”
진통제를 건네받으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이세강은 어이가 없다는듯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네 상처를 빨리 치료받아야 할거 아니냐...! 내상은 빠르게 치료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아...”
“ -아...- 는 무슨... 네 몸상태잖아! 소중히 여기라고!”
“아, 알았어...”
저 남자, 화나니까 무서워지는 타입이네... 뭐, 나도 화나면 뵈이는게 없다고 주변에서 자주 들었지만...
결국 찍소리 한마디도 못하고 따르게 된 나는 순순히 침대에 누웠다. 얼마전 베로니카에게 감시받으며 누워만 있던 상황이 반복되는걸 보니 왠지모를 심란한 기분을 느끼며 침대에 누운 나는 이세강이 똑같이 내 옆에 눞는걸 보고 당황했다.
“자, 잠깐! 너 이 침대에서 잘거야?!”
“그럼 어디서 자야하는데? 바닥에서 잘까?”
“그렇게 까지는 안해도 되지만... 이래뵈도 나 여자라고!”
“여자인거 알고있는데 세삼스럽게 뭘.”
둔감한걸까 아니면 엉큼한걸까. 지금 당당히 나와 같은 침대에서 자겠다는 이 남자를 보고있자니 이런거에 거부감을 느끼는 내가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느껴질 지경이였다.
“걱정마. 너에게 뭘 할생각은 털끝정도밖에 없으니까.”
아 그러셔요... 잠깐, 방금 문장이 뭔가 잘못된것 같은데? 털끝정도도 없다는게 아니라 털끝정도 밖에 없다고? 그거 일단 나한테 뭐 이것저것(?)을 하고싶다는 소리 아니야...?
그 뒤로 한참동안 속으로 별갖 망상들을 떠올리며 몹시 혼란해 하고 있던 나는 어느새 잠들은 이세강의 얼굴을 보고는 순식간에 마음을 가라 앉혔다. 왜냐하면 자고 있는 이세강의 얼굴이 평소와 다른 순진한 모습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고있는 이세강의 얼굴을 보니 마음속 한구석에서 설명하지 못할 감정이 올라왔다.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느낌, 그래.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해.”
결국 그날은 평소와는 다른 이유로 잠들지 못했다는건 나만이 아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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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부터 우리는 조금씩 더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몸상태가 몸상태 인지라 힘들었지만 이세강이 옆에서 계속 나를 부축해 주었고 우리는 어렵지 않게 조금씩 부산에 가까워질수 있었다. 물론 가면서 차원종들은 최대한 피해다녀야 했지만 차원종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기 떄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괜찮아?”
“...버틸...만...해...”
...하지만 갈수록 내 몸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갔었다. 처음에는 평소보다 조금 힘든 정도였지만 지금은 손가락을 하나 움직이는것 조차 안간힘을 써야 했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걷는것은 말할필요도 없이 불가능 이였다. 그래서 이세강이 계속 나를 업고 다녀야 했고 나는 힘들게 나를 위해 고생하는 그를 그저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나를 항상 업고다니던 그도 이제는 한계인지 점점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하는수 없이 조금 쉴수밖에 없게되자 우리는 잠시 빈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조용히 죽은듯이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나는 힘겹게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저기... 그냥 날 버리고 가는게 어떄...?”
“...개소리 하지마. 그런짓을 했다가는 꿈자리가 사나워져.”
“...하지만 이대로 가면 우리 둘다죽어... 그럴바에는 너라도...
“시끄러워. 그냥 조용히 있어. 잠깐 먹을것좀 구해올테니까 기다려.”
나를 버리고 가라는 말에 신경질 적으로 반응하며 말을 끊은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멍하게 앉아있던 나는 이내 쌀쌀함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추워...”
점점 겨울이 다가와서 추워지는건지 아니면 죽을때가 다가와서 추워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쪽이든 나에게는 그렇게 큰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어느쪽이든 좋지 않은 것 뿐이였으니까.
-끼이익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던 와중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들은 나는 이세강이 돌아온줄 알고 입구를 바라봤다. 그러나 입구로 들어오는 사람은 이세강이 아니였다.
“오~ 잠깐 뭐 쓸만한게 있나 싶어 들어왔는데 얼굴이 괜찮은 여자가 있다니~ 횡재구만!”
“...누구...?”
이세강이 아닌 난생 처음보는 남자가 들어와 당황한 나는 힘겹게 입을 열며 물었다, 그러자 정체불명의 남자는 기분나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누구인지는 알거없어~ 어차피 몰라도 되니까 말이야~”
그렇게 대답한 남자는 이내 내게 다가와 내 턱을 강제로 살짝 올려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썩은 웃음과 함께 히죽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그나저나 참 예쁜 여자구만~? 다 죽어가는게 조금 흠이긴 하지만 뭐, 즐겨볼까?”
기분나쁜 목소리로 추악한 말을 한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내 옷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한 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그저 보고만 있을수밖에 없었다.
“...그만 둬...”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내 보았지만 남자는 오히려 재미있다는듯 무시하고 멈추지 않았다.
제발... 누가 도와줘...
참 웃기는 일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주제에 정**를 괴한에게 범해진다니까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이런 생물인 것이다. 아무리 각오를 다져도 정작 그 순간이 찾아오면 후회하는게 바로 인간이다.
하지만 아무리 도움을 요청해도 나를 구해주러 올 사람이 없다는건 알고있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왔던 나지만 구한 사람들의 수보다는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 많은 수의 구하지 못한 사람의 가족이나 가까웠던 사람들은 어째서 구하지 않았냐고 외치며 나를 원망했고 나는 그런 원망의 목소리를 그저 듣고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어쩌면 이건 벌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혹은 혼자서만 전쟁에서 살아남아온 대가일 것이다, 이런 외딴곳에서 괴한에게 덮쳐지는게 바로 내 인생의 말로 인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허무함과 후회가 내 마음을 깊히 채워왔다. 이렇게 아무것도 할수없이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허무함과 결국 그에게 내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나는 에워쌌다.
-탕!
“?!”
모든것을 포기하고 그만 두려던 직전, 하나의 날카로운 총성이 건물안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총성이 울려퍼진 직후 괴한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나는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총소리가 들려온 곳은 바라보았다.
“그 더러운 손을 함부로 놀리지 마.”
그러자 그곳에는 그가 권총을 들고 분노한체 서있었다.
“크, 크윽! 넌 뭐야!”
“내가 뭐냐고? 그건 네가 알거 없어. 어차피 곧 죽을거니까.”
“자, 잠깐...!”
-탕!
“끄아아아악!”
“물론 편하게 죽이지는 않을거야. 나는 지금 꽤나 열받은 상태거든.”
“그, 그만...”
-탕!
“크아아아악!!! 잘못했어! 그러니까...”
-탕! 탕! 탕!
비명과 함꼐 애원하며 잘못했다고 비는 괴한이였지만 여러번 울려퍼지는 총소리와 함께 비명을 그침과 동시에 침묵을 불러왔다. 오로지 권총에서 격발된 탄피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소리만이 주변에 울리고 있었다. 이윽고 모든것이 끝나자 그는 내게 재빠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걸 가져오느라 좀 늦었어. 미안.”
사과를 하며 내게 코트를 덮어줌과 동시에 유니온 특제 회복엠플을 건내주는 그를 본 나는 회복엠플을 들이 마시고는 힘을 쥐어짜내 입을 열었다.
“...왜...이렇게 까지... 나를...구해주는 거야...?”
“좋아하니까.”
좋아한다. 그 한마디를 들은 순간, 무언가 뜨거운 액체가 내 눈에서 흘려내렸다. 처음에는 뭔가싶어 어리둥절 했지만 이내 나는 그것이 눈물이라는 것을 꺠닫고는 그의 어깨에 기대 오열했다. 그러자 그는 그런 나를 조용히 토닥여 주며 안았고 나는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지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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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신음과 함께 눈을 떠보니 어느새 밤이였고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일어나 보니 상처는 회복엠플 덕분에 많이 나아져 있었고 체력 또한 어느정도 회복되어 있었다.
“일어났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가 내 옆에 있었다. 순간 서로 시선이 마주친 우리는 오늘 있었던 일이 기억나 살짝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몸 상태는 어떄?”
“음... 괜찮아 진것 같아.”
“그래. 그럼 다행이고.”
“저기... 오늘 낮에 했던 말 있잖아...”
“크, 크흠! 갑자기 그건 왜?”
“그... 좋아해.”
“뭐?”
“나, 나도 좋아해!”
쇠뿔도 단숨에 뺴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나는 낮에 후회했던 내 마음을 고백했다. 그러자 그는 처음으로 내게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며 말했다.
“나도. 좋아해.”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고백한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곂쳤다. 단 몇초정도의 시간이였지만 내게는 마치 영원과도 같은 시간처럼 느껴졌었고 그 짧은 입맞춤이 끝나자 우리는 서로를 껴안았다.
“저기... 오늘은... 같이 자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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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근한 몸을 일으키며 눈을 떠보니 어느새 아침이였다.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훨씬 쌀쌀함을 느낀 나는 왜그런지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이내 내가 전라인 상태로 이불을 엎고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붉게 물든 얼굴을 이불속에 파묻었다.
“...좋은아침.”
“조, 좋은 아침...”
어젯밤에 있었던 일 때문일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멋쩍에 바라보며 웃었고 이내 다시한번 서로를 껴안으며 침대에 누웠다.
“...생겼겠지?”
얼떨결에 무심코 내뱉은 나의 한마디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겠지.”
“왠지 남자 아이일것 같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냥... 왠지 그럴것 같거든~”
어쩌면 몇일 전에 꿨던 꿈속에서 보았던 그 소년이 내 아들일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한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거야?”
“키울거야. 아주 올바른 아이로 최선을 다해서 키울거야. 그리고 최대한 평범한 일상을 만들어 줄거야.”
“구체적으로 어떤?”
“음... 일단 항상 아이의 옆에 있어줄거야. 그리고 학교 졸업식에 우리 둘이같이 참관해서 추억같은걸 만들어 가는거야. 휴일에는 어디 좋은곳으로 여행도 가고. 그냥 평범한 가족처럼 행복하게 지내는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저랑 결혼해 주실래요?”
“...프러포즈는 내가 할려고 했는데 말이지...”
선수를 빼앗겼다는 듯한 말투로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웃으며 뱃속에 곧 생길 아이를 쓰다듬었다.
그 후로 우리는 부산에 도착해 군대와 다시 합류했고 나와 그는 소소한 결혼식을 올렸다. 나중에 울프팩팀의 모두가 나를 보자 죽은 사람을 본것처럼 얼어 붙더니 이내 내게 달려들며 운것을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후, 전쟁은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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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와 나의 아이가 평범한 생활을 지내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 또한 가족끼리 여행을 가거나 아이의 졸업식에 참관할수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안가 그는 세상을 떠났고 나는 홀로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
나 혼자서라도 최대한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유니온의 감시와 위상능력자/알파퀸의 자식 이라는 아이의 신분이 앞을 가로막았고 결국 아이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지 못했다.
세상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현실은 해피엔딩이라는 꿈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고 나는 그를 떠나 보낸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저 지켜보는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엄마! 제가 소파에서 주무시지 말라고 했죠!”
“야 이세하! 어머님이 주무시는데 왜 깨우는거야?!”
“야, 만약 소파에서 자고 있는게 나였으면 너도 똑같이 잔소리를 했었을거 아니야!”
“그, 그건 그렇지만...”
나... 열심히 한것 맞지? 우리 세하를 제대로 키운거 맞지?
...당신도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래. 현실에는 해피엔딩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드엔딩이 존해하지도 않는다. 어떠한 형태로든 행복과 슬픔이 공존하는것이 현실이다. 결국 그가 함께할수 없었던것 처럼, 그리고 그 아이가 항상 행복할수는 없었던 것 처럼. 그러나 그 아이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생긴것 처럼, 너의 존재가 내게 구원이나 다름 없었던것 처럼.
그렇지?
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