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모험담 중 일부인 이야기 2 -2
한스덱 2018-09-18 0
이 이야기는 실제 게임 스토리와는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차원 전쟁 동안 신체의 일부가 사라지는 부상을 당해본 적은 없었을 그녀는, 전쟁이 일어난지 약 20년 후에야 당해버린 그 큰 부상 때문에 통채로 사라져버린 오른손을 바라보면서 아주 잠깐의 신기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신기함이 경악과 공포로 바뀌려던 그 순간,
쿵…
메아리까지 웅웅 울리는 큰 소리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잠시 잊고 있던 생물과 자신 사이에 떨어진, 돌멩이라 부르긴 좀 힘들 정도로 커다란 암석 덩어리를 먼저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암석 덩어리를 던진 게 분명한 차원종을 다음으로 바라보았다. 그 차원종은 그녀와는 다르게 멀쩡한 오른손 검지를 뻗어서 혼란이 가려버렸을 시야의 사각지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인간의 일상 속에서 꽤 자주 쓰이면서 그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수신호를 따라 그녀는 멍하니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시선과 차원종의 손가락이 그려낸 두 선의 교차점에는 돌로 만들어진 그릇들과 수저가 있었다. 그 그릇 속에는 꽃 향기가 나는 스프와 잘게 썰린 풀 볶음, 그리고 기타 등등의 식물로 만들어진 요리들이 담겨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그 식사는, 그릇과 수저와 똑같은 돌로 만들어진 반상 위에 차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와 차원종이 그려낸 두 선은 사실 교차하지 않았다. 그녀는 식사가 차려진 반상 위에 먼저 주의가 끌려 있었고, 차원종이 가리키던 반상 아래에 주의가 끌린 것은 그 다음이었다.
바닥에는 꽤 많은 수의 진짜 돌멩이들이 진형을 맞춰서 줄을 서 있었다. 그 3줄로 정렬된 진형의 형태는 인간이 만들어낸 수 많은 문자들 중에서 한글에 속하는 문자로 배치된 메시지였다.
‘안녕하세요
이걸 먹으면
다 나을 겁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인사와 가장 듣고 싶었던 소식이 함축된 그 짧은 글을 읽은 뒤, 따스함이 넘처흐르는 내용을 담기 위해 차가운 돌멩이 수 십개를 긁어모아 세심하게 배치했을 생물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차원종은 그녀가 처음 존재를 깨달은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그녀가 누워있던 돌로 만들어진 침상의 반대편 벽에 붙어서 두 다리를 웅크린채 앉아있었을 뿐이었다.
절단된 오른손에 감겨진 풀 붕대, 꽤 오랫동안 굶주린 배를 채워줄 식사, 파란만장한 인생 중에서도 최악의 상태였던 마음을 위로해줄 돌멩이 편지, 그리고 공격할 기회가 여유로울 정도로 넘쳐났는데도, 상처를 정성껏 치료하고, 식사를 정성껏 요리하고, 심지어 머릿말에 인사까지 덧붙인 돌멩이 편지까지 정성껏 준비하느라 바쁘게 썼을 시간들…
이렇게까지 해줬으면 적어도 그 차원종이 자신을 해칠 생각이 없다고 믿어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녀의 소원 중에는 외부차원만이 간직한 풍경을 감상하는 것보다 더 간절히 이루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외부차원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그 망상의 정체는 바로 ‘선의를 가진 차원종과 만나는 것’이었다.
지금 그녀는, 결국엔 그것이 이루기 힘든 수준이 아니라 상상 속 친구와 같은 허구의 존재였을 뿐이라고 포기해버린 그 소원을, 자신이 어떤 불행에 빠졌었는지도 잊어버리고, 지금 자신의 상황도 정확하게 깨닫지 못한 채 이루어내고 말았다. 그녀는 우선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마침내 현실에서 만나게 된 상상 속 친구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다 나을 거란 건…?”
차원종은 약초들의 효능과 메시지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가득 담긴 그 질문의 적절한 대답을 수신호로 보여주었다. 왼손의 검지 손가락으로, 그녀를 향해 펼친 멀쩡한 오른손을 가리켜 준 것이다.
그 의미를 분명 알아챘을 그녀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 그녀는 살짝 훌쩍였다. 차원종, 그러니까 나의 예민한 청각은 그 작은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물론 그녀는 내가 못 들었기를 바랬을 거지만 말이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싸우고 이겨냈을 그녀가 자신이 생각치도 못했던 엄청난 행운과 마주한 덕분에 느끼고 있을 감정들을 비웃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그 훌쩍인 소리를 무시했다. 그 대신, 내가 제법 공들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활약해 준 오른손을, 열을 가한 돌 그릇에 담긴 덕분에 그때까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식사가 담긴 반상을 향해 어서 드시라고 권하듯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