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땀방울
한태백 2014-12-11 2
차원문. 그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8년 전……, 아마도 내가 학생일 때였을 것이다.
처음 차원문이 등장하고 차원종이라는 놈들이 습격해 왔을 때, 그에 대항하여 '위상력'이라는 초월적인 능력의 각성에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나는 그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아마 내가 차원문에 의한 피해와는 상관 없었고, 있다해도 지하철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 등의 약간의 불편 뿐이었기에 당시의 나에게는 차원종에대한 두려움보다는 초능력이라는 픽션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것에대한 부러움이 더욱 컸던 것 같다.
그러나 평화를 가장한 잠시간의 소강상태는 트럼프로 쌓은 카드탑처럼 순식간에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야. 위상력이라는 거, 갖고싶지 않냐? 무려 초능력이라고!"
"어휴……, 야! 아서라, 아서! 초능력은 무슨…….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래도 있으면 좋겠지! 아……, 나도 초능력 갖고싶다. 초능력으로 괴물들을 싹 다 쓸어버릴 수도 있잖아."
주먹을 쥐고 몇 번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그렇게 말하자, 녀석은 내 치기어린 투정에 무슨 어른이라도 된듯 피식 웃으며 나를 돌아봤다.
"풋. 뭘 쓸어버린다고? 네가?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하하하!"
"ㅁ……, 뭐! 뭐 어때서! 초능력만 있으면 당장에라도 다 쓸어버릴 수 있거든!"
"그러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하하하!"
녀석은 한참을 웃더니 급기야는 눈물까지 나온듯, 눈가를 살짝 훔치며 분위기를 잡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녀석의 행동에 나까지 살짝은 진지해지는 듯 했다.
"잘 들어. 지금까지 능력을 각성한 사람도, 그렇게 차원종들과 싸우기 위해서 달려나간 사람들은 꽤 있어. 그치만―"
"그래!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녀석은 말을 끊으며 또다시 철없는 소리를 내뱉은 내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조용히 시킨 뒤 마저 말했다.
"그렇지만 개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없어. 아니, 있어도 죽은 사람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어."
거기까지 말을 마친 녀석은 어쩐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뒤로 시뻘겋게 타오르는 노을 탓인지, 녀석의 미소는 어쩐지 약간 슬퍼보였다.
한참을 말없이 있던 녀석은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몇갈래, 장난스레 손가락을 빙빙 돌려 살짝 꼬며 말했다.
"난 더이상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그제야 나는 얼마전 녀석이 부친상을 당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멍청한 자식. 나는 자조(自嘲)하며 연신 스스로에게 욕을 퍼부었다. 가뜩이나 얼마전 상을 당해 심란할 녀석에게, 무신경한 나의 말은 아직 채 아물지도 않았을 녀석의 상처를 헤집고 말았던 것이다.
"저기……, 그, 왜 있잖아……."
"괜찮아."
녀석은 가까스로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아직 어린탓에 감정을 숨기는 것이 익숙치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얼마전 부친상을 당한 탓에 아직 그 영향을 떨쳐내지 못한 탓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눈가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당황하며 말했다.
"야, 야. 너 우……, 우냐?"
"응? 아니야. 울기는 무슨……. 그냥 이제 여름이기도 하니까 조금 더워서 땀나는 거야."
거짓말. 땀이 그렇게 눈에서 막 흐르겠냐. 어릴적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거짓말이 서툰 녀석이다.
그때였다. 마침 우리가 지나고 있던 골목길에서 푸른 빛이 터져나왔고, 그 여파에 튕겨나간 나는 맞은편 벽에 부딪혔다. 녀석은 내 위로 떨어졌다.
"씨……, 괜찮아?"
"괜찮으니까, 빨리 내려와. 무거워 죽겠……!"
나는 갑작스레 내 머리를 강타한 충격에 말도 다 못한 채 머리를 감싸안았다.
"그렇게 안무겁거든?!"
주제에 여자라고 그러는 건가. 확실히 네가 표준 체중에서 약간 모자란다고는 해도, 성인이 다 되어가는 여고생은 원래 그리 가볍지 않단 말이다. 나는 투덜대며 고개를 들어 녀석을 보았다.
"흥!"
"다 큰 녀석이 흥흥대지 마라. 보기 안좋아."
나는 퉁명스럽게 그렇게 말했다. 분위기가 전환돼서 다행이긴 한데 말이야…….
"야, 피해!"
"어? 야, 뭐야?!"
나는 갑작스레 날아오는 불덩이를 보고는 뒤돌아있어 아직 상황을 모르는 녀석을 덮치듯 함께 옆으로 굴렀다. 덕분에 불덩이는 피했지만, 갑작스레 구른 녀석은 어째선지 내게 덮쳐지는 듯한 자세가 되었다.
그러나 녀석은 방금 날아온 불덩어리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는지, 내가 콘크리트 파편에 맞아 욱씬거리는 몸을 털며 일어나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골목길을 응시했다.
"키잇!"
골목길에는 뼈로된 괴상한 물체를 머리에 쓰고, 마찬가지로 괴상한 지팡이를 든 왠 쬐그만 초록색 녀석 하나, 그리고 비슷하게 생겼지만 칼인지 거대한 면도칼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물체를 쥐고는 괴상한 소리로 짖어대는 보라색 녀석들이 우글거렸다.
"뭐, 뭐야, 저게……."
"아무래도, 저게 그 차원종 같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이야기로만 들었을 때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나라도 쉽게 해치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고, 자만이었다.
"키잇!"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보라돌이 하나가 우리를 향해 쇄도해왔다.
나는 급하게 몸을 빼며 겨우 피할 수 있었다.
캉. 보라돌이가 휘두른 칼은 아**트를 부수며 박혀들어갔고, 그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보라돌이는 연신 키잇대며 칼을 어떻게든 빼보려 하였지만 생각보다 깊게 박혔는지 제대로 빼지를 못하였다.
그 사이 나는 아직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당황하고 있는 녀석을 뒤로 물린 뒤 앞으로 달려나갔다.
지금이라면 한 방 먹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달려나간 나는 칼을 밟아 뽑지 못하게 누르며 가방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키잇!"
손에 확실히 전해져오는 타격감. 그러나 그것은 무언가를 시원히 날린것이라기 보다는, 벽따위의 단단한 것을 친 무모한 행동과도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아려오는 손을 애써 부여잡으며 바닥에 박힌 칼을 쥐고는 덜덜 떠는 채로 뽑으려 했지만, 역시나 뽑히지 않았다. 무슨 엑스칼리버냐. 좀 뽑히라고.
아무리 힘을 주어도 요지부동인 칼과 내가 씨름하고 있는 동안, 또 다른 보라돌이가 내게 칼을 휘둘렀다. 아마 칼을 뽑는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
"키잇!"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지만 사람은 위기의 상황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갑작스레 온몸에 활기가 도는 것을 느낀 나는 그대로 칼을 뽑으며 다가온 놈을 후려쳤고, 조금 전 가방에 맞은 녀석과는 달리 이번에는 멀리 날아가 벽에 박히는 것이, 꽤나 타격을 준 듯 싶었다. 그에 반해 나는 오히려 더 쌩쌩해졌고. 힘에 취한 나는 호기롭게 외쳤다.
"푸홧! 자, 다 덤벼!"
그러자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그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녀석들은 '한꺼번에' 내게로 돌진해왔다. 그래, '한꺼번에' 말이다. 비겁한 녀석들.
"우……, 우왓!"
강해진 힘을 가지고 나름 싸운다고 싸워봤지만, 애초에 싸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게 힘이 주어진다고 갑자기 실력이 올라가는 것은 아닌지라 계속해서 밀려오는 녀석들의 인해전술에 평범했던 나는 결국 밀릴 수밖에 없었다.
"꺄악!"
설상가상으로, 이제까지 잠자코 있던 초록이는 갑자기 녀석이 도망간 곳으로 불덩이를 날리기 시작했다. 직접 **는 못했지만, 아마 내 뒤로 날아가는 불덩이와 거기서 들려오는 녀석의 비명소리를 들으면 안봐도 비디오다.
**, 힘이 생겨도 어쩔 수 없는 건가? 이제는 칼마저 놓치고 겨우겨우 공격을 피하고 있던 나 또한 인간인지라 결국에는 힘이 다해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꼴사나웠다. 힘이 생기자 꼴에 남자라고, 생각없이 힘을 휘두르며 싸웠지만, 그것은 최악의 수였다. 나는 힘이 생긴 즉시 녀석을 데리고 도망갔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힘에 취해 싸운다는 악수를 두었고, 그 결과 이제는 우리 둘다 죽게 생겼다.
"꼬맹아, 숙여!"
그때였다. 왠 여자가 카랑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이내 내 머리 위로 바람이 부는듯한 느낌과 함께 폭발음이 들렸으며, 잠시후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자 상황은 이미 종료된 뒤였다. 나는 감사인사를 하는 것도 잊은 채 한차례 비명과 함께 잠잠해진 녀석이 걱정되어 뒤로 향했다.
녀석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리저리 불에 그을린 것은 둘째치고, 등이 크게 까져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아무래도 폭발의 여파로 땅에 쓸리거나, 아니면 파편에 맞은듯 했다.
"꼬마야, 구해줬으면 인사부터 하는게 예의 아닐까?"
"아, 그……,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제 친구가……!"
그녀는 귀찮다는듯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아, 그 얘기는 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까 말이지. 아마 곧 구급차가 올거야."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저멀리 구급차의 사이렌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도착한 구급차는 재빨리 녀석을 태운채 병원으로 향했다.
상황이 너무 순식간에 흘러갔다. 자괴감이 들었다. 힘이 생겨도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뭘 쓸어버린다는 거야.
"이봐, 꼬마. 강해지고 싶어?"
"그거야 당연한거 아닙니까?"
"강해져서 뭘 할건데?"
그거야 당연히……, 두 번 다신 이런 일이 없게 녀석을 지켜줄 겁니다. 그런 내 말에 그녀는 썩어들어가는 표정을 하며 소름돋는다는듯 팔짱낀채로 자신의 양 팔을 쓰다듬었다.
"으……, 소름. 너 교복으로 봐서는 고등학생인데, 설마 그거니? 그거? 중2병?"
"누가 중2병이라는 거야!"
홧김에 그렇게 소리쳤지만, 방금 내가 한 말을 곱씹어보니 오히려 그런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오글거리기 시작했다. **, 이게 고2병이라는 건가?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몸서리 치고 있자, 그녀는 갑작스레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아마도 반쯤은."
"그 반은 뭐냐고요!"
글쎄, 뭘까? 후후후. 그녀는 음침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고, 이내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은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자. 놀이는 여기까지. 뭐, 그래도……, 그런 소년만화틱한거, 난 별로 싫어하지 않아."
재밌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명함을 건넸다. 유니온이라…….
"꼬맹아, 강해지고 싶다면 내일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거기로 튀어와라. 이런 일이 터졌으니까 아마도 내일은 오전중으로 끝날거야."
"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
나는 당황하며 명함에서 눈을 떼고 그녀를 봤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정말로 알 수 없는 여자였다.
그 다음날, 학교에서는 녀석이 입원한 것이 아니라 개인사정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말했고, 나는 의아해 하면서도 내심 어제 겪은 일을 생각하며 어느정도 수긍하였다.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여러모로 심란하겠지.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녀석을 ** 못했다.
'이번 정거장은, 유니온, 유니온입니다.'
목적지인 유니온 정거장에 도착했다는 방송에 나는 회상에서 벗어났다. 어느덧 문이 열리고, 나는 쏟아지는 인파와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정말로 맑은 하늘이었다.
검은양이라……, 전쟁터에서는 언제나 애송이 취급을 하던 내가, 이제는 보모 역할을 한다는 건가? 18년의 세월이 가져다준 정 반대의 위치는, 내게 묘한 웃음을 짓게 했다. 어째선지 웃음이 막 나오는군.
딴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집합장소인 신서울지부의 앞이었다. 분홍 머리의 조용해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와 활달해보이는 긴 머리의 여자아이 하나. 거기에 게임삼매경인 녀석도 있다. 저 녀석이 아마 그녀의 아들이리라.
그 옆에는 아직 어린 탓인지 성별이 잘 구분가지 않는, 연갈색과 백금발의 중간쯤 되는 머리와 초록색 눈을 가진 꼬맹이 하나와 놀고있는, 어째선지 익숙한 갈색 장발의 여자가 하나 있었다.
여자는 나를 보더니 꼬맹이를 내려놓은 뒤 내게로 몸을 돌리며 웃었다. 어딘가 낯익은 웃음. 설마, 저 여자가…….
"안녕하세요, 유니온 신서울지부 소속, 앞으로 검은양 팀의 관리요원을 맡게된 김유정이라고 합니다."
나는 눈시울이 아려오는걸 느꼈다.
"뭐야, 너 지금 우는거야? ㅈ……, 아니, 이제는 제이라고 불러야 하나?"
"울기는 무슨. 그저 검은 코트에, 이제 여름이기도 하니까 더워서 땀이 날 뿐이다."
아아, 그래. 오늘의 신서울은 빌어먹게도 더웠다. 내 얼굴 가득 땀방울이 흐를 정도로.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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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 클로저스 베타 열리는걸 기다리다가 쓰기 시작한게, 벌써 오픈 시간을 넘겨버렸어요! 못썼지만 욕은 하지 말아주시길!
그나저나 써놓고 보니 제이의 첫인상이 말이 아니었겠군요. 그야 당사자끼리는 18년만의 재회라지만 말이죠, 왠 아저씨가 처음부터 울어요!
그러고 보니…… 김유정의 나이를 30대 중·후반으로 만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