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팩, 잊혀진 어금니 (14)

벨리에나 2018-02-08 0

 이세하와 미스틸은 거점에 도착하자마자 이슬비의 다급한 요청에 쉬지도 못하고 함께 해변으로 향하게 됐다. 이세하는 이슬비의 눈물 반, 떨림 반인 목소리로 서유리가 위험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걔가 위험하다고? 무슨 말이야?"
"정말이라고! 그곳에 나타난 차원종은 뭔가 달라. 마치..... 변종 같아. 아무튼 빨리 가자!"


 앞장서서 달리는 이슬비의 뒤로 그녀를 따라가던 이세하와 미스틸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변으로 가던 중, 미스틸은 이세하에게 방금 만난 더스트에 대해 말했다.


 "저기, 세하 형."
 "응?"
 "더스트의 말...... 사실일까요?"
 "모르겠어. 더스트는 항상 우리에게 자신이 유리한 무언가를 위해 다가왔어. 아스타로트 때도, 데이비드 때도..... .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더스트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어. 자기가 정말로 위험하다면 말이야."
 "생각해본다는 말이죠?"
 "...... 지금은 눈 앞의 일을 해결하자."

 해변에 도착한 이슬비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유리야!"

 변형된 골렘 학살자에게 패배한 서유리는 학살자의 옆구리에 들린 채 축 늘어져있었다. 이세하는 펄쩍 뛰어오르며 골렘 학살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생각했고, 미스틸은 그 자리에서 창을 당기고 있었다. 먼저 이세하의 기술이 발동되었다.


 결전기: 유성검

 

 대각선으로 내리꽂히던 이세하는 변형된 골렘 학살자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놀랍게도 골렘 학살자는 다른 팔을 뒤로 당기며 이세하를 쳐내려고 하였다. 그때, 미스틸의 기술 'EX 랜스 크루징'이 발동되면서 골렘 학살자가 당기던 팔을 몸과 분리시켰다. 이세하와 미스틸의 협동 공격은 그대로 성공하는 듯 싶었다.


 쩌엉!


 거대한 기둥이 내리꽂히던 이세하를 날려버렸다. 옆구리를 직격 당한 이세하는 피를 토하며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거대한 기둥이 오른팔이 되버린 완전체 골렘이 골렘 학살자와 마찬가지로 기괴하게 뒤틀린 모습을 한 채 옆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또한 다리가 생긴 것이다. 미스틸은 깜짝 놀라며 달려가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미 완전체 골렘의 발 밑에는 과녘과도 같은 장판이 깔렸다.


 결전기: 위성 낙하


 이슬비의 몸이 떠오르면서 하늘에서 운석처럼 불덩이가 된 위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경직된 완전체 골렘은 온 몸이 굳어버려 그 자리에 멈췄고, 분노한 이슬비의 기술이 완전체 골렘에게 직격했다.


 쿠과과과광......!


 해변의 모래가 튀어오르면서 완전체 골렘의 몸은 완전히 찢어져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정신을 차린 이슬비가 본 정면의 광경은 이러했다. 미스틸은 완전체 골렘에게 당한 이세하에게 달려가고 있었고, 서유리를 옆구리에 끼고 있던 골렘 힉살자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이슬비는 자신이 팀원들을 휘말리게 했다는 절망감에 휩싸여 무릎을 꿇고 말았다.


"흐, 으흐흑!"


 이슬비는 양손으로 두 눈을 감싸며 눈물을 흘렸다. 이세하는 당장 일어날 수 없고, 서유리는 적들에게 잡혀갔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해야하지? 이런 상황에선 어떤 방식으로...... .


 턱.


 누군가가 이슬비의 어깨를 잡았다. 크지 않았지만 자신의 어깨를 포근하게 감싸는 손이었다. 이슬비는 목을 돌렸고,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말을 더듬었다.



"서, 서지수 선배님......?"
"어, 친척이라고 해둘게. 일단 흑지수라고 해둘게. 너희를 도우러 온 사람들이지."
"사람들......?"


 이슬비는 흑지수의 뒤쪽에서 다가오는 자들을 발견했다. 구급상자를 들고 이세하 쪽으로 달려가던 김도윤, 그리고 트레이너보다 커다란 체구를 가지고 있던 검은 복장의 사내. 이슬비는 사내의 얼굴 중 유일하게 드러난 눈을 보고 적잖게 당황했다. 흑지수는 사내를 소개해주었다.


"우린 사냥터지기 팀이야. 굳이 따지자면 특별요원이라고 해야될까. 원래는 차원 균열을 닫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너희가 위험한 것 같아서 말이야. 이쪽에서 분위기 잡고 있는 사람은 맥스라고 해. 아주 강력한 클로저지."


 이슬비는 저도 모르게 맥스에게 다가갔다. 맥스는 고개를 내리며 이슬비를 보았다. 이슬비는 그에게 빠른 속도로 보고했다.


 "전 검은양 팀의 리더 이슬비라고 합니다. 현재 검은양 팀의 이세하 요원은 당장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부상을 당했으며, 서유리 요원은 차원종들에게 잡혀갔습니다. 제이 요원과 이곳을 이끌고 있는 김유정 임시지부장께서는 차원 균열을 닫기 위해 태백산맥에 직접 올라간 상태입니다. 현재 사냥터지기 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요원은 저와 미스틸 요원 뿐입니다. 우리를 도와주시겠습니까?"


 맥스는 어린 클로저의 다짐과도 같은 보고를 들은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슬비 요원. 움직일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지금부터 이슬비 요원이 검은양 팀을 지휘한다. 우린 남은 인원을 모아서 태백산맥으로 올라간다."


 맥스는 뒤돌아 태백산맥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납치 당한 서유리 요원은 그곳에 있다. 그리고...... 내 제자도."


 

 태백산맥, 어느 깊은 곳의 동굴.



 북적거리는 소리가 거슬려온다. 온 몸에 피로가 느껴지지만 바깥이 시끄러워 잠들 수 없었다. 제이는 욕 한 바가지를 내뱉으려다가 차분하게 가라앉힌 뒤 자신의 안경을 찾아 귀에 걸었다.


 눈에 보이는 건 거친 돌덩이들. 그리고 정면을 막고 있던 촘촘한 가시. 차원종 녀석들, 내가 그렇게 쓸모 없어 보였나. 위상력을 잃은 게 이럴 때 유용하군. 제이는 등을 벽에 기대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유정 씨는 무사히 도망쳤을까...... .'


 김유정과 함께 태백산맥에 올라와 차원 균열에 대해 조사하던 제이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차원종이 쏟아져나와 어쩔 수 없이 김유정을 내려보내고 자신은 사로잡히고 말았다. 차라리 죽을 수도 있었지만 죽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김유정의 메아리가 들려와 제이는 그들에게 항복했다.


 "애들은 괜찮았으면 좋겠군."


 한참 홀로 이곳의 위치와 차원종의 수에 대해서 생각해보던 제이. 갑자기 빛이 들어오면서 가시가 열렸다. 제이는 안경을 끼기 잘했다고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왜? 식사라도 넣어주는 건가?"

 "제이...... 아저씨?"


 제이는 눈을 크게 뜨며 차원종에게 떠밀려 자신이 갇혀있던 이곳에 들어오는 서유리를 보았다. 서유리는 온 몸에 힘이 없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제이는 그녀를 감싸 안아주며 말했다.


 "유, 유리야? 괘, 아니, 네가 왜 이곳에...... ."

 "...... 헤헤, 제가...... 졌어요. 차원종들이 이상해졌더라고요...... ."


 제이는 서유리가 하는 말을 알고 있다. 그가 본 차원종들도 모두 변형된 모습이었다. 심지어 방금 서유리를 들고 온 차원종마저. 제이는 서유리를 눕혀주며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다리가 검에 크게 베인 상태였고, 왼쪽 갈비뼈 부분이 주먹에 맞았는지 흉터가 컸다. 무엇보다 뒤틀린 어깨가 심각했다. 제이는 서유리가 고통 받았을 것을 떠올리며 이를 악 물었다.


 "미안해, 유리야."


 제이는 급한 응급처치를 끝내고 서유리에게 자신의 겉옷을 덮혀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안경을 벗은 뒤 입구 부분을 노려보았다.



 태백산맥 깊은 곳까지 도착한 사냥터지기-검은양 연합. 맥스는 이곳에서부터 홀로 활동하겠다는 말을 꺼낸 뒤, 다른 사람들이 말리기도 전에 앞서나갔다. 맥스를 말리지 못한 흑지수는 이슬비와 미스틸에게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우선 이 주변을 살펴보자. 차원종의 냄새가 짙게 나는 걸 보아 근처가 분명해."

 "네. 그쪽에게 궁금한 게 많지만...... 나중에 말씀해주실 걸로 알겠습니다."

 "물론. 아, 미스틸이라고 했니?"


 이슬비의 옆에 서있던 미스틸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 네!"

 "잘 부탁해. 독일의 아이들은 이미 만나봤었어."

 "정말인가요?"

 "그럼. 일이 끝나면 말해줄 테니 열심히 해주겠니?"

 "네!"


 이슬비, 흑지수, 미스틸, 그리고 송은이, 채민우 경정을 포함한 수십 명의 특경대는 태백산맥을 뚫고 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한눈에 봐도 인위적으로 개조 된 평야가 드러났다. 어느 학교의 운동장 크기 정도로 넓은 평야. 부서지듯이 박살난 수많은 나무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그들은 앞쪽에서 들려오는 진동소리에 발을 멈췄다. 미스틸은 창을 움켜쥐며 외쳤다.


 "오고 있어요! 어, 엄청 많아요!"


 흑지수는 건블레이드를 뽑았고, 이슬비는 수많은 단검들을 공중에 띄웠다. 수많은 특경대 또한 총을 꺼내들며 다가올 전투에 대비했다. 진동소리는 점차 커지더니 마침내 나무들을 부수며 변형된 차원종이 나타났다. 허나 그들의 모습이 이상했다. 연합을 발견해 달려오는 것이 아닌, 무언가에 도망치듯이 달려오고 있던 것이다. 흑지수 또한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지? 저놈들 도망치고 있는 것 같은데?"


 흑지수의 말이 끝나자 들려온 목소리는 어떤 사내의 괴상한 웃음소리였다. 연보라색으로 폭발하는 위상력, 그리고 떠오르는 차원종 형태의 위상력, 수많은 소용돌이와 총소리, 마지막으로 하늘로 솟구치는 강력한 위상력. 이슬비와 미스틸은 익숙한 기술들을 보고 그들이 누구인지 파악했다.


 "늑대개 팀이지?"

 "네, 누나!"


 염마에 의해 강화된 무간옥을 사용하면서 하늘로 떠올랐다가 평야 중간 쯤에 떨어진 나타는 쿠크리를 꼬나쥐며 외쳤다.


 "들어와, 들어오라고 이 자식들아!"

2024-10-24 23:18:3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