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팩, 잊혀진 어금니 (5)
벨리에나 2018-01-12 0
맥스가 정식으로 사냥터지기 팀 소속 요원으로 임명되면서 이 소식이 유니온 총본부까지 흐르게 되었다. 독일 지부 상부에서는 총본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대기하고 있었는데, 총본부는 환영한다는 형식적인 말만 꺼낼 뿐 부가적으로 다른 말은 없었다.
사냥터지기팀 관리요원 김재리는 요원증을 받으러 오지 않은 맥스를 위해 손수 건네주러 가고 있다. 맥스가 머무는 숙소는 볼프강과 함께 쓰는 2인실. 물론 볼프강의 거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앨리스에게는 논리와 사실만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고, 김재리에게는 저런 사람과 어떻게 같은 방에서 지내냐며 감정으로 호소했다. 두 사람은 동일한 답변을 했다.
'상부에서 내린 결정입니다.' '상부에서 그랬는걸요, 볼프.'
그 뒤로 볼프강은 사흘 째 맥스와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다. 김재리가 볼프강을 사흘 동안 관찰한 결과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한 것 같았다. 김재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두 사람이 머무는 숙소 앞에 섰다.
"...... 하하하! 아, 정말입니까?"
볼프강의 호쾌한 웃음소리. 김재리는 내심 흐뭇한지 미소를 지으며 볼프강을 응원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간 김재리는 안타까운 신음소리를 내었다.
"아...... ."
볼프강은 VR장치를 착용한 채 패드를 두드리면서 웃고 있었다. 김재리는 저번에 자신이 만든 '연상의 여인과의 알콩달콩한 해외여행'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결국 적응하지 못했구나...... . 김재리는 안타까워하며 반대편 침대에 앉아있던 맥스를 발견했다. 그는 볼프강의 검은책을 살펴보고 있었다.
"맥스 요원. 뭐하세요?"
맥스는 시선을 건네지 않았다.
"...... 내가 아는 검은책인지 살펴보고 있었다."
"네? 그 책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요?"
"어느 정도."
맥스는 볼프강이 하는 것처럼 책을 허공에 띄운 다음 책장을 넘겼다. 김재리는 놀라워하며 볼프강을 부르려고 했다.
"이미 보여주었다. 이걸로 이틀은 버텼지만 더 이상 안 먹히는군."
"아, 아하하...... . 아, 참! 이거 받으세요."
김재리는 맥스에게 요원증을 건넸다. 맥스는 오른손을 뻗어 요원증을 받았고, 두 눈으로 요원증을 확인했다. 사냥터지기 팀 훈련생 맥스. 사냥터지기 팀의 상징인 올빼미 마크도 함께 새겨져있었다. 훈련생. 맥스의 눈에 가장 먼저 보였던 단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가. 맥스의 표정을 알 수 없었던 김재리는 볼프강을 깨우면서 두 사람에게 알려주었다.
"사냥터지기 팀의 공식 훈련이 있어요. 30분 뒤에 모두 고성 앞으로 모여주세요."
VR장치에서 벗어난 볼프강은 긴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공식? 그럼 상부에서 누가 온다는 거야?"
"네. 슈타인 국장님이 직접 오신다고 하네요."
"이런, 빨리 준비해야겠군."
볼프강은 맥스가 던진 검은책을 능숙하게 받은 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김재리는 맥스가 앉아있는 침대 쪽으로 눈을 돌렸다가 그가 이미 문 쪽으로 다가가고 있어 몸을 틀었다.
"벌써 나가세요?"
"조금 늦을 수 있다."
고성 정원.
김재리는 손목시계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이미 약속시간을 20분이나 넘겼다. 미리 모여있던 볼프강과 루나는 몸을 다 풀고 언제든지 훈련이 가능한 상태였다. 슈타인은 김재리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 네! 국장님! 죄, 죄송합니다! 그때 붙잡았어야했는데...... ."
"아니다. 이대로 진행해도 괜찮을 거다."
관리국장 슈타인은 마치 경기의 심판처럼 볼프강과 루나 앞에 서서 그들에게 질문했다.
"그대들은 훌륭한 요원들이지. 그건 바뀌지 않는 말일 것이다. 루나 요원. 요원이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이지?"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은 루나는 최대한 당황하지 않고 목소리 높여 말했다.
"서지수 님과 같은 완전무결한 클로저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목표다. 그만큼 어렵겠지만. 볼프강 요원? 자네는?"
"저도...... 얼마 전까지 루나와 같았지만 최근에 바뀌었습니다. 맥스 선배님입니다."
"호오, 이유는?"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선배님과 지내보면서 외부 차원에 대한 지식을 꽤나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노련하다는 말을 들어온 제게 있어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노련한 건 그분입니다."
슈타인은 만족하는 듯 미소를 지었다.
"좋은 대답들이다."
슈타인은 양손을 목이 있는 높이까지 들어 손가락을 동시에 튕겼다. 그들이 서있던 고성 정원은 순식간에 흰색으로만 이루어진 훈련장으로 바뀌었다. 훈련장은 바다처럼 끝도 없이 펼쳐져 공간의 제약이 없었다. 볼프강과 루나는 이 전환이 익숙한 듯 했다. 김재리는 여전히 훈련장 밖에서 맥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쏟아져 나오는 것은 실제 차원종일 수도 있고, 홀로그램일 수도 있다. 각자의 기술과, 체력, 위상력에 대한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10분. 오늘의 훈련을 훌륭히 해낸다면 포상을 주도록 하지."
슈타인은 박수를 칠 준비를 하며 말을 끌었다.
"준비...... ."
짝. "살아남아라."
슈타인의 모습이 사라짐과 동시에 어디선가 차원종이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볼프강과 루나는 서로의 등을 맞대며 차원종에 대해 말했다.
"꽤 많은데, 어때? 루나?"
"저, 저는 괜찮아요! 이정도는 가뿐하죠."
"훗. 무리하지 말라고. 힘들면 날 불러."
"선생님이나....... ! 조심하세요...... ."
볼프강은 검은책을 꺼내들며 동시에 엘리고스를 소환했다. 루나 또한 아이기스를 팔에 장착시키며 기술을 준비했다. 트룹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오자, 전투가 시작되었다.
"구와아악! 쿠욱!"
트룹의 고함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루나가 아이기스를 던져 트룹의 머리를 맞췄다. 아이기스는 다시 돌아와 루나의 팔에 꽂혔다. 루나의 선제공격에 밀릴 수 없던 볼프강은 벨리알을 소환해 정면을 쓸어버렸다. 벨리알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홀로그램이 꺼지기도 했고, 실제 차원종이 피를 뿜으며 날아가기도 했다.
두 사람은 이 훈련을 순수하게 즐겼다.
바깥에서 기다리던 김재리는 건너편에서 검은 형체가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 형체가 맥스 요원인 줄 알았던 김재리는 무턱대고 달려갔다.
"맥스 요원! 왜 이렇게 늦게......?"
김재리는 순간적으로 몸을 옆으로 날렸다. 본능이었다. 피하지 않았다면 죽었다. 방금까지 자신이 서있던 곳에는 수많은 검은 가시가 허공을 찌르고 있었다. 김재리는 가시가 뻗어나오는 검은 형체를 보면서 경악했다.
"차원종......?"
종류로 보아 데스워커. 독가시 데스워커였다. 그러나 상태가 이상했다. 온몸의 관절이 뒤틀리면서 온몸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데스워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기괴했다.
"카, 카가, 가아아악!"
데스워커의 몸에서 나오던 검은 액체는 곧 기체가 되면서 순식간에 주변을 덮었다. 김재리는 숨을 틀어막으며 뒤로 빠졌으나 기체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안...... 돼!"
"김재리 요원!"
슈타인은 자신의 능력으로 바람을 일으키면서 데스워커가 내뿜는 검은 기체를 날려버렸다. 그와 동시에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변형시켜 날이 두 개인 창으로 만들었다. 창을 양손으로 쥐고 떨어지면서 데스워커가 벌리고 있던 입부터 찔러넣으니 데스워커의 몸은 꼬치가 되어 쓰러졌다.
김재리는 기어서 슈타인에게 다가갔다.
"구, 국장님! 갑자기 왜......?"
"지금 과학자들을 불러서 훈련장의 오류를 파악하라고 했네."
"네? 그러면 안에 있던...... ."
김재리는 하늘에 떠있던 훈련장이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슈타인은 자신이 소환한 창을 꼬나쥐며 이를 갈았다.
"맥스......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
고성 내부, 홀.
몇몇 초가 홀을 밝히고 있지만 밝히지 못하는 부분이 훨씬 많았다. 낡은 레드카펫, 낡은 샹들리에, 낡은 그림. 모든 것이 맥스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맥스는 중앙 홀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발을 디뎠다. 그러자 2층 계단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
앙칼진 소녀의 목소리. 하지만 맥스는 목소리의 주인이 소녀의 모습을 한 악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맥스는 고개를 들었다.
"참모장."
더스트는 맥스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맥스는 충분히 볼 수 있었다.
"인간 중에서 날 그렇게 부르는 건 너뿐이지. 오랜만인데, 맥스? 잘린 다리가 새로 생겼네?"
"너야말로...... 더 이상 본래 크기로 돌아갈 수 없나보군. 이 고성 정도의 크기는 가지고 있었을 텐데."
"입 **. 네놈이 한 짓을 생각하면 다리가 아니라 팔도......? 뭐야, 너 팔은 왜 그 모양이지?"
맥스는 더스트의 경고를 무시하고 2층 계단을 더 올라갔다. 더스트는 경고를 해야했지만 맥스의 능력을 잘 알고 있기에 그녀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물러가라, 참모장. 이곳엔 내가 있다."
"...... 뭐, 좋아. 그 전에...... ."
더스트는 잠시 몸을 뒤로 뺐다가 순식간에 맥스의 오른팔로 다가왔다.
"이 팔, 내놔."
쿵.
더스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 절망 가득한 더스트의 표정. 맥스는 무릎을 굽히면서 주저 앉아 더스트의 턱을 엄지와 검지로 들었다.
"돌아가라."
맥스는 영역을 유지하면서 뒤돌았다. 더스트는 자신의 힘이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아직도 맥스를 이길 수 없다고 온 몸으로 느끼며 결국 어둠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