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의 생애시작 Ep-2 정보

Sehaia 2017-12-05 2

계속 눈을 감고 있기가 두려워 눈을 떴다.

 

의식은 돌아왔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눈꺼풀 안으로 도망가려 했다. 다만 그 안 쪽이 더 이상 편안한 세계가 아니었기에 현실로 돌아왔다. 현실은 절대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 지금 내 처지가 어떠한지에 대한 파악은 중요했다. 물론 파악한다고 해서 지금 이 상황이 바뀌진 않았다.

 

이런 걸 감옥이라고 부르는 건가 보다. 주변 중에 세 면은 금속 빛이 감도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머지 한 쪽 면은 격자로 세워진 쇠막대가 인간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답답한 심정에 퍽 친 벽은 당연히 멍청한 나를 비웃으며 내 손을 때렸다. 통증이 고양되는 감정을 조금 진정시켰다. 그제야 주변을 좀 더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내가 있는 곳의 반대편에는 눈에 좀 익은 면면이 있었다. 그 녀석이다. 수술실에서 메스를 들고 날뛰던 녀석이었다.

눈에 선 핏발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채였고, 덤으로 머리도 고슴도치같이 뻗쳐있었다. 이국적인 느낌을 풍기는 새빨간 머리는 불그스름한 눈동자와 함께 녀석을 더욱 이질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몸 곳곳에서 올라온 실핏줄이 조금씩 터져있었는지, 멍이 든 것인지, 놈의 피부에는 울긋불긋한 자국이 잔뜩 남아있었다.

다만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벽에 이어져있는 사슬에 전신이 묶여있음에도 녀석의 태도에는 여유가 넘쳤다.

 

참고로 다시 돌아본 내가 있던 방 벽에는 사슬은 없었지만, 대신 사슬을 걸 수 있는 고리들은 있는 걸로 봐서,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뭐야, 깨어난 거야, 신입?”

 

지난번에 봤을 때의 발광하던 모습과는 아무래도 매치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점은 크게 다를 게 없다. 아니, 머리가 산발인 만큼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인다. 그러나 얼굴의 근육을 좀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라리 더 나아 보인다.

 

실실거리는 웃음을 입가에 띠며 나에게 가볍게 말을 던져 왔다. 입가를 살짝 올리고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오는 그 모습과 절규하던 모습이 겹쳐 나도 모르게 발을 뒤로 살짝 뺐다. 그런 내가 우습다는 듯이 녀석은 더더욱 웃어재꼈다.

 

워워, 그리 불안해하지 마. 내가 뭘 할 수도 없잖아? 보이는 대로 묶여있다고?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건 혀 깨무는 것 밖에 못하는 얼간이라고? 내가 이 발가락으로 너한테 메스를 던질 수라도 있을 거 같아? , 그럼 재밌겠네! 거짓말이지만. 딱히 재밌을 것 같진 않아. 오히려 시시할 거 같다.”

 

그다지 어울려주고 싶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이 녀석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녀석 외에는 눈에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고, 누군가 온다고 해서 이 녀석보다 상태가 멀쩡할 거라는 보장도, 대답을 제대로 해 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아주 조금만 얘기를 해보기로 했다.

 

넌 누구야?”

 

? 아아, 거기부터 시작하는 건가? 너도 참 의미 없는 대화를 좋아하는구나?”

 

약간 실망했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그리곤 손을 들어 올려 머리를 긁적이려고 했던 것 같지만, 묶여있었기에 당연히 실패했다. 칫 하고 혀를 한 번 차곤 질렸다는 듯이 눈을 감는다.

 

역시 묶여있는 건 귀찮네.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어. 도대체가, 조각조차도 할 수가 없잖아. , 이건 됐고. 내가 누구냐고? 내 이름을 묻는 거라면 신성우로 충분하겠지. 여기에서의 등록 번호를 묻는 거라면 14. 만족하냐? 출신지라도 불러주랴?”

 

아냐. 여긴 뭐하는 곳이야?”

 

나 자신도 대화하면서 느꼈다. 이곳에서 이름은 별로 쓸데가 없다. 어차피 모두들 번호로 불리고, 번호로 부른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이 녀석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무슨 일을 겪을지 이다.

 

그제야 좀 성에 차기 시작했는지 녀석은 시큰둥한 태도를 풀고 처음의 능글맞은 태도로 돌아갔다. 목을 우드득하며 돌리더니 흥에 취한 듯 경쾌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 그래! 역시 그 질문을 했었어야지! 통성명은 정말 쓸데없는 거라니까. 빨리빨리 본제로 돌아가는 게 현명한 일이야. 암암. 여긴 유니온의 실험실이야. 내가 당한 것과 들은 걸로 종합해보면 인공 위상능력자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인 모양인데. 변변찮은 결과물이 없다는 점에선 유니온도 참 한심한 집단이더라.”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공 위상능력자? 실험실? 녀석은 위상 능력자가 아니었던 건가? 인공? 무슨 말이지?

 

하지만 넌 지난번에 그 강철문을 쥐어뜯을 정도의 힘을 가졌잖아. 그런데 변변찮은 게 없다니, 그건 무슨, 아니, 그 이전에 인공 위상능력자라는 게 가능해?”

 

이거, 나만큼 정신 산만한 수다쟁이가 들어왔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벌써 가공 처리를 받은 건가? 그건 아닐 건데. 거기에 내가 발작을 일으키는 걸 봤다니, 부끄럽잖아. 이런 애를 내 앞 방에다 데려다 놓다니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마지막에 무슨 말을 한 건진 몰라도, 지금 녀석이 나보고 말이 많다고 하는 건 알겠다. 지금 저거 나보고 말을 많이 한다고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좀 말이 많아졌다곤 해도 저 놈한테 듣고 싶진 않다.

하품을 늘어지게 한 뒤에 녀석은 좀 더 자세한 얘기를 시작했다.

 

가능하니까 내가 힘이 이렇게 강해진 거겠지. 나도 원래는 빌빌거리는 약골이었다고? 믿기냐? 근데 이건 실패작이야. 내가 발작을 일으키는 광경을 봤다니, 말은 빠르겠다.

, 일단 난 위상력을 쓸 수 있어. 그런데 출력이 너무 낮아. 맥없이 주사 한 대 맞고 쓰러지는 거 봤지? 그건 약이 좀 센 편이기도 하지만, 내가 위상 능력자로서는 반푼이라고 하기도 아까운 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

위상력 총량이 너무 낮다보니 기본적인 신체 강화와 약물 내성조차 제대로 효과를 못 낸다고. 세상의 모든 위상 능력자들이 약물 한 방에 나가떨어졌으면 이 지구는 진즉에 차원종들이 득시글거렸을 거야. 안 그래?”

 

순간 눈앞에서 차원종들이 침략해왔던 도시의 광경이 눈앞을 스쳤다. 차원종은 도시 하나 망가뜨리는 것 정도는 우스운 놈들이다. 이 녀석 정도로 무력한 녀석이 그런 놈들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지.

강철문을 쥐어뜯는 것만으론 안 된다. 메스를 들고 위협하는 것만으론 안 된다.

그 메스를 든 채로 잡으러 온 사람을 썰어버렸다면, 다시 생각해보겠지만.

 

확실히, 그렇네.”

 

야야, 그렇다고 그렇게 인정해 버릴 건 없잖아? 상처받는다고. 이 시술 받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나온 결과물이 이 모양이야. 내가 부탁도 안 했는데 멋대로 이렇게 만들고선, 할 거면 제대로 된 위상력이라도 내놓던가. 장난치나.”

 

연신 투덜거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긴장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녀석의 그 모습에 하마터면 피식 웃음을 지을 뻔 했으나, 한 가지 의문이 아직 때가 이르다며 나를 말렸다.

그래. 내가 여기에 온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해결되지 않았다.

 

처음에 가공 처리라고 했지? 그게 그 시술이야? 그거하고 성격이 뭔 관계야? 넌 무슨 시술을 받은 거지?”

 

한 순간, 녀석의 표정에서 웃음이 가신 것처럼 보였다. 눈의 착각이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한순간이었다. 녀석의 몸을 묶고 있는 그 쇠사슬이 부들거리지 않았다면 아마 잘못 봤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엔 녀석의 몸이 온몸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는데, 몸뚱이는 얼굴이 겉으로 내보인 표현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 비대칭성이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보여서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하아, 그걸 어떻게 설명한다? 그건 직접 겪어** 않으면 모르는데. 어차피 너도 곧 알게 될 건데,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근데 그럼 여태까지 한 말이 정말 의미가 없는데. 아무렴 어때. 전부 헛소리였겠지. 별로 상관없어.”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한 거냐. 당장 말해.

 

질문으로 만들려고 했던 말의 덩어리는 그대로 목에 꽉 끼었다. 그 질문도 별로 의미가 없다고 갑자기 느꼈다. 저 말 많은 녀석이 입을 다물 정도라면 아닌 게 아니라 말로 표현을 하기는 힘든 것일 거다. 차라리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만큼 많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돌이켜보니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 것 같다. 그 중에 가장 쓸데없는 건 역시 내가 처음 물었던 누구냐는 질문이다. 그걸 안다고 해서 뭐가 바뀌는 것도, 상황 파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그렇게 파고들면 질문이든 뭐든 그 어떤 말도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난 단지 안심하기 위해 침착한 척을 하며 정보를 얻으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 갇혀있는 내가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안다고 해서 내가 그 연구원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배를 가격한 주먹이 반항했을 때 돌아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난 저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난 벌써 여기에 목을 매인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그러나 상황을 비관만 하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여태까지 나름대로 성실하게 질문에 대답한 녀석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조금씩 인상이 나아진 것도 인사를 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처음에 봤을 때의 위험 신호는 어느 샌가 잠잠해지고, 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듣듯이 그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긴장감을 살짝 놓았다.

그래도, 그 말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이 정도면 됐어. 고마워. 상황이 영 좋지 않았는데, 그나마 좋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야.”

 

이것이 방아쇠가 되었다.

 

녀석은 무엇을 생각한 걸까.

모르겠다.

녀석의 눈에는 무엇이 비친 걸까.

관심 없다.

녀석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것만이 오늘의 모든 대화중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었을 터다.

 

내 말을 들은 녀석은 갑자기 방금 전까지 내리 숙이고 있던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구더기를 보는 눈으로 나를 봤다.

 

웃기 시작했다. 계속 웃어왔다. 이상할 건 없었다. 잠깐 동안 안 웃었을 뿐이지, 나한테 말을 하는 동안에는 계속 웃고 있었다. 이제 와서 다시 웃는다고 특별히 이상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던 그가, 두려웠다.

 

이히힛하하하!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그래! 계속 질문을 받았으니 이번엔 내가 질문하겠어. 넌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냐? 그렇게 보이는구나! 그럼 그 눈알은 저 엿같은 연구원들에게 기증이나 해 버리고 빨리 바꿔 끼우기나 하라고! 평생 장님으로 살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녀석의 몸에서 푸른빛이 일렁거리며 어지러운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눈을 현혹하며 녀석의 형상을 흐린 아지랑이는 이윽고 자줏빛 불꽃으로 바뀌어 녀석의 전신과 사슬을 타고 흘렀다. 그러나 절대 바깥으로 흘러나가지 않고, 녀석의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사슬만이 녀석의 몸을 묶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녀석의 몸에서 피어나온 불길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녀석의 주위를 완벽하게 둘러쌌다. 마치 그 불길이 쇠사슬보다도 강한 사슬이라도 된 것처럼, 녀석은 자줏빛 불꽃을 떨쳐낼 생각은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어차피 놈의 몸에서 나온 이상 상해를 입힐 수도 없었을 건데도, 그것은 꼭 숙주를 어떻게든 태워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웃음소리가 멎지 않았다.

 

계속해서 목이 찢어지도록 웃는 놈에게 연구원들이 와서 주사를 놓기 전까지, 난 녀석이 손수 내보인 정신의 일그러짐에 입을 다물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놈을 저렇게 만든 건가. 처음부터 녀석의 성격이 저랬다고 하면 차라리 편하다. 오히려 그 편이길 바란다.

하지만, 아무래도 녀석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 모양이다. 위상력을 인공적으로 각성시키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녀석이 그 과정에서 저렇게 된 것만은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13. 나와라.”

 

나는 이제부터 저렇게 되는 걸까.

좀 사양인데.

들어줄 사람 따위, 없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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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losenea입니다. 나타의 생애시작, 그 3번째(프롤로그 포함)를 보내드립니다. 어떠셨는지요.

이번에 등장시킨 신성우 이라는 캐릭터는 이 이야기를 구상할 땐 원래 백중현과 하나였습니다만, 조금씩 이야기를 풀다보니, 어느 새 다시 보니 독립된 두 명으로 구성하는 게 훨씬 낫더군요. 다만 원래는 하나였기 때문에 성격적인 면에서 아직 완전히 분리가 안 됐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재미있으셨다면 댓글과 추천 하나씩 부탁드리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피드백 환영합니다.


Ep-1 포획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2804


Ep-3 실험체들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2827

2024-10-24 23:17:5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