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붉은 벚꽃과 푸른 바다 - 마룡혼 이야기

이제나는돌아서겠소 2015-02-12 4

마룡혼 이야기

생명이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불빛, 사라짐을 슬퍼하는 듯 시리디시린 푸른 불빛 여러 생명이 자신들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불태우고 있다. 은발의 두 오누이의 작은 손짓에….

“하하핫, 애쉬 이것 봐. 참 아름답게 잘 타오르지?”
“누나, 이것들이 우리 이름없는 군단에서 매우 하찮은 존재일지라도 우리 군단이야.”
“에이, 저건 죽어도 불빛을 안내네. 그럼 다음 걸로 가야지? 어때 애쉬. 생명이 붉고, 푸른 빛을 내며 불타오르고 있어. 참 예쁘지 않니?”
“후후, 역시 누나는 잔인해. 그래서 내가 누나를 사랑한다니까. 다시 보니 이거 생각보다 아름다운걸. 나도 해봐야겠어.”

애쉬와 더스트의 손짓으로 우리들은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있다. 우리들은 마룡혼. 용의 군단 중 두 다리로 땅에 딛지 못하고, 용으로의 진화는 꿈도 꾸지 못하는 약해빠진 존재, 제대로 된 형태도 갖추지 못하고 알과 같은 형태로 날아다니는 미약한 존재. 그것이 우리이다. 그러한 우리가 헤카톤케일의 군단의 끝자락이라도 잡고 있는 이유는 우리들의 생명이 다할 때 발하는 빛이 참모장들과 군단장의 마음에 들어서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작고 하찮은 우리지만 용의 군단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명예를 지키고 싶었다. 싸우고 싶었다. 우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인간들과의 전쟁에 참여하고 싶었다.

『“헤카톤케일님, 저희 마룡혼들도 전쟁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너희 같은 녀석들이? 너희의 존재가치는 참모장 녀석들의 심심풀이와 우리 군단의 눈요깃거리, 광대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저희도 의무를….”
“시끄럽다. 너도 사라지고 싶지 않거든 당장 나가라.”』

하지만 군단장은 우리의 전쟁참여를 허락하지 않았다. 전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줄 알았던 우리들은 알고 보니 자신의 생명을 태우는 한낱 광대에 지나지 않았다. 광대로 살아간 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는 내 동료들을 보며 내 다음 차례가 언제가 될지 두려움에 떨 때쯤, 우리를 제외한 용의 군단은 차원전쟁에서 인간들에게 공포심을 그들의 뇌리에 뿌리박히게 했다. 차원전쟁이 헤카톤케일과 용의군단의 선전으로 조금씩, 조금씩 승기가 우리 쪽으로 기울 때마다, 나와 우리 마룡혼들의 명예도 조금씩, 조금씩 깎여나갔다.
  우리에겐 명예라는 것이 존재하였나 생각이 들 무렵, 인간들의 차원에서 새로운 용이 탄생하였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스타로트, 뱀에서 용으로 탈바꿈한 그 용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그의 엄청난 힘과 활약을 바탕으로 헤카톤케일의 오른팔이 되었다. 그의 활약은 언제나 군단 동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의 수많은 전공은 하룻밤을 꼬박 새워도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부럽다. 강하게 태어난 그가. 밉다. 약하게 태어난 못난 자신이.

아스타로트님의 위명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한참 오르내릴 때 나는 그 유명한 아스타로트님과 단둘이 조우하게 되었다.

“자네가 마룡혼들의 우두머리인가?”
“예, 미욱한 실력이나마 잠시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나는 위대한 검은용 아스타로트다. 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짐의 휘하로 들어오지 않겠나?”

아직 헤카톤케일이 건재하였다. 게다가 깎아져서 닳아 없어진 우리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아스타로트님의 제안은 내겐 너무도 의외의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광대생활을 벗어날 수 있다면……. 군단으로서 명예롭게 죽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았다. 우리 마룡혼들은 곧바로 아스타로트님의 휘하에 들어갔다. 아스타로트님은 우리를 단순 광대이자 희생 말로 취급했던 헤카톤케일을 그의 힘으로 무찌르고 새로운 용의 군단의 군단장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스타로트님께 새로운 힘을 받아 용의 군단의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 우리의 불빛은 이제 단순히 광대놀음이 아니라 숭고한 사명을 위한 선봉의 등불이 되었다.
우리의 활약이 슬슬 전장에서 빛을 발하고, 이제 우리의 이름도 용의 군단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때쯤 아스타로트님께 왜 우리를 받아주셨는지 물어보았다.

“용이시여, 저희는 위대한 검은용께서 받아주시기 전까진 단순한 광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저희에게 손길을 내밀어 주셨습니까?”
“하하하. 짐은 ‘어떠한 존재든 내 휘하에서는 자신들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차원에 선포하고 싶었다. 그리고 너희의 군단에의 충성심 하나만큼은 익히 알고 있었지. 그리고 너희의 충성심에 비해 어떠한 취급을 받는지도……. 나는 너희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만약 너희가 거절했을 경우, 짐은 거듭하여 너희에게 물어봤을 것이다. 너희 자신의 명예를 지키지 않겠느냐고.”

나의 주군의 말은 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몇 번이고 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다짐을 했다. 위대하신 검은용께서는 헤카톤케일을 무찌르고, 용의 군단장이 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대를 물려 차원전쟁을 멈추셨다. 그리고 이에 반발한 이름없는 군단 간의 반목은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애쉬와 더스트라는 이름의 참모장들이 용께 찾아왔다.

“이봐, 아스타로트. 이렇게 우리 이름없는 군단과 반목해봤자 좋을 것 없잖아?”
“그래, 너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인간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어!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면 충분히 이름없는 군단이 인간들의 차원을 정복할 수 있어!”

애쉬는 조곤조곤 용께 말하였다. 하지만 그 옆에 있던 더스트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격양된 목소리로 용께 말을 하였다. 그러자 용께서는 그들을 한참을 보시더니 크게 웃으시고 말을 이어나갔다.

“하하하 짐이 가는 곳에 승리가 있으라. 그깟 인간과의 전쟁 짐과 짐의 군단만으로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군단의 소중한 부하들을 너희가 단순히 재미로 죽이고 괴롭혔다고 하는데, 이 짐이 어디까지 너희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가? 나는 한번 말한 것을 번복하지 않는다. 돌아가라. 참모장. 짐은 짐이 필요할 때 짐의 뜻대로 내가 필요한 것을 행할 것이다.”

참모장들은 매우 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아스타로트님을 바라보더니 이를 갈며 그대로 등을 돌렸다.

『아스타로트, 우리에게 이런 굴욕을 주다니… 가만히 두지 않겠어.』

애쉬가 조용히 읊조리는 말이 귀에 들려왔지만, 아스타로트님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셨다. 우리 용의 군단과 이름없는 군단과의 반목이 계속되었고 갈등의 골은 끊임없이 깊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 측의 큰 주축인 유니온의 한국지부에서 지부장이라는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그 내용은 아스타로트님의 인간계 침공이 쉽도록 자신이 돕겠다는 내용이었다. 조금 미심쩍었지만 아스타로트님은 이것이 기회라고 여기시고 단박에 인간계 침공을 선언하셨다. 그리고 그 방법을 고민하고 계실 때쯤 내가 아스타로트님께 한 가지 방법을 건의하였다. 

“위대한 검은 용이시여, 저에게 생각해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좋다. 말해보아라.”
“옛 용이었던 헤카톤케일의 잔해를 인간계로 가져가 조립하여, 헤카톤케일의 시체로 하여금 인간계를 공격하는 첨병이 되도록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흠…. 그래도 잠깐이나마 짐의 상관이었었던 자이니라. 그다지 명예스럽지 못한 일이군.”
“용이시여, 이것은 위대한 검은용의 군단이 조금이나마 손상되지 않을 방법이며, 저 죄인 헤카톤케일에게도 인간계 침공의 선봉은 크나큰 영광일 것입니다. 이러한 불명예스러운 계책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으니, 용께서 윤허해주시길 바랍니다.
“하하하! 그래, 명예도 중요하지만 짐의 군사들의 안위도 매우 중요하지. 하지만 마룡혼, 한가지 짐에 대해 잘못 안 것이 있다. 짐은 부하에게 그러한 짐을 맡기지 않느니라. 부하가 그 계책을 올렸어도 그 결정과 책임을 지는 것은 순전히 짐이 해야 할 일.”
“용이시여, 무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좋다. 짐은 그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자에겐 관대하느니라. 오늘부터 마룡혼의 계책을 이용하여, 지상의 영토를 내 영지로 만든다! 내가 새롭게 태어난 인간의 땅에 다시 한 번 너희와 같이 뿌리박으리라!”

용께서 선언하시자 안드라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용의 휘하들이 인간계 새로운 침공에 대한 격정과 기대감을 이기지 못하고, 큰 소리로 환호와 함께 위대한 용을 찬미하였다.

『위대한 검은 용이시여, 용께서 가시는 곳에 영광 있으라!
  위대한 검은 용이시여, 용께서 가시는 곳엔 승리만이 있으라!
  위대한 검은 용이시여, 용께서 가시는 곳엔 패배란 없노라!』

용의 휘하에서 일하기로 한 한국의 지부장은 그 간사한 술책으로 헤카톤케일의 파츠를 하나, 둘 인간계로 옮겨주었다. 우리의 작전은 성공적으로 맞아떨어졌고, 헤카톤케일은 뼈다귀만 남은 몸으로 과거 그의 영광을 조금이나마 재현하려는 듯 강남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헤카톤케일은 우리의 예상대로 강남의 클로저들을 잘 상대하면서, 우리가 인간계에 갈 수 있는 커다란 차원문을 열어주었다. 이제 용의 영지의 발밑에 보이는 강남 일대를 돌아보면서 아스타로트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마룡혼, 드디어 짐이 진정으로 새로 태어난 곳으로 돌아왔다. 짐은 이곳에 나의 영지를 세우고 짐의 영광을 만세까지 널리 전할 것이다.
“모든 게 위대한 검은용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강남 일대에 용의 군세가 침공한 지 얼마 후 이름없는 군단의 참모장들이 아직 인간을 공격할 때가 아니라고 다시 와서 용께 고하였지만, 용은 그들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강남 상공에 용의 영지가 보이자 인간들은 매우 혼란해 하며 강남을 빠져나가기에 바빴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유니온의 병사들이 강남에 파견되어 우리와 전투를 시작하였다. 우리가 심어놓은 내통자로 인하여 유니온 내부에서는 자기들끼리 반목하였지만, 기어코 우리의 내통자 지부장을 알아내고 이내 어지러워진 강남 일대를 수습하였다. 용께서는 그런 내통자 같은 경우 어차피 처리하려고 하신 것 같아 관심이 없으셔 보였지만,
검은양이라고 불리는 인간 5명의 활약을 위에서 지켜보시더니 이내, 그들에게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마룡혼이여, 이것을 보아라. 저 미약한 인간들이 그들이 가진 조그마한 힘으로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을…. 그들에게 스러져간 우리 군단의 병사들 때문에 가슴이 아프지만 저들을 내 휘하에 넣을 수 있다면, 나의 염원 중 하나인 인간계 정복에 더욱 빨리 다다를 수 있을 것이야.”

‘용이시여, 저런 녀석들이 없어도 용의 군단은 충분히 인간계를 점령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용께서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관심을 보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므로 나는 생각을 속으로 삼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것은 용의 뜻대로.”

그 뒤로도 검은양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영지에 진입하려고 노력하더니, 용의 부관이신 안드라스님마저 물러나게 하는 기염을 보였다. 이것은 용의 흥미를 더욱 증폭시켰고, 용의 궁전에 도달한 검은양들에게 흥미가 생기신 용께선 안드라스님을 물리시고, 그들의 알현을 허락하셨다.

“잘 왔다, 인간 전사여. 짐이 바로 이 영지의 주인이자, 모든 차원의 어느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존재인… 용이니라.”

용께선 그들과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시다가 그들의 능력을 시험해보셨고, 이내 처단할 가치도 못 느끼신 듯 그들을 돌려보내셨다. 그 후 그들은 계속해서 용의 궁전을 침범하였다. 사절단을 보낸 경우엔 사자를 베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므로 용께서 다시 돌려보내셨고, 그 후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용께선 다시 흥미를 느끼시고 그들에게 군단에 들어올 것을 제의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감히 용의 관용을 거부하였고, 그때마다 용께서는 그들을 놓아주셨다.

“용이시여, 어째서 저들을 그냥 놓아주시는 겁니까?”
“하하하 언젠가 네게 말한 적이 있지 않느냐? 너희를 나의 휘하에 영입하기 위하여 네가 거절해도 몇 번이고 권유했을 거라고. 인재를 얻기 위해서 이 정도의 수고로움은 감수해야 하는 것, 그것이 왕의 자세니라.”
“제가 용의 뜻을 미처 몰라뵈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하하하, 짐은 언제나 반성하는 자에겐 관대하느니라.”

용의 군단의 정복전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을 때 쯤, 군단의 병사들로부터 어떤 소식이 나에게 전해졌다. 이름없는 군단의 참모장인 애쉬와 더스트가 검은양과 만나 모종의 밀담을 했다는 것을…. 걱정스러워 용께 고하였으나 용의 위광 앞에선 어떠한 계책도 무의미하다는 용의 말씀에 순간 걱정하던 내가 바보스러워졌으며, 위대하신 용의 지혜에 머리를 조아렸다. 

인간들과의 전쟁에서 가만히 인간을 관찰하기 시작한 나는 인간들은 자신의 안위에 너무나도 신경을 쓴다는 것을 이내 알아차렸다. 유니온에서 검은양과 서로 반목하던 김기태라는 녀석이 용의 휘하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나는 왜 그러한 쓰레기를 받아주셨는지 용께 물었지만 용께서는 나를 보며 가만히 웃으실 뿐이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용의 뜻을 알게 되었다. 단순 회유만으로는 검은양 녀석들이 말을 듣지 않자, 김기태라는 녀석을 처형하심으로써 그들에게 용께서 관대하지만은 않은 것을 알리려는 것으로…. 그들은 앞으로 커다란 공포심을 가지고 용을 알현하겠지. 역시 위대한 검은 용이시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보낸 옛 용인 헤카톤케일이 검은양에 의하여 소멸하더니 소멸 직전 정신을 차렸는지 우리의 영지에 그가 가진 남은 모든 힘을 쏟아 부어 믿을 수 없는 커다란 광선을 쏘아 영지를 파괴하였다. 위대한 검은용께선 그것을 막느라 상당히 많은 힘을 소모하셨고, 검은양은 또 한 번 용의 궁전에 당도하였다.

용께서는 그동안 드러내지 않았던 그 위대한 힘을 그들에게 편린이나마 발휘하셨고, 그들은 또다시 패퇴하여 물러갔다. 검은양이 용을 알현하고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참모장들과 전투를 벌였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어째서일까? 참모장들과 붙으면 그들의 변덕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죽었어야 하는 그 녀석들은 보란 듯이 살아서 강남으로 돌아갔고, 나는 왠지 모를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내 이상한 느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놀랍게도 그들은 용의 존체에 감히 상흔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용은  전투에서 그들의 몸을 태우는 또 다른 위상력을 감지하셨고, 그들이 자신과 싸우다가 죽는 것을 걱정하시어 다시 한 번 그들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나는 더는 그들을 묵인할 수 없었다. 그들이 더 이상 용의 권유를 거절하고, 용의 존체에 상처를 입히도록 용납할 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용께 고하지 않고, 그들을 처치하기 위해 부하들을 이끌고, 강남대로변으로 갔다.

이제 위대하신 검은용께 상처까지 입힐 수 있는 적들은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되었고, 나의 부하들은 하나둘씩 그들의 검, 총, 건틀릿 등에 스러져만 갔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내가 이기면 다시는 용께서 수많은 거절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는 마음과 용을 지켜야 한다 생각 그리고 명예로운 전투에 대한 의무 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의 뇌리 속에서 나를 괴롭혔다. 이윽고 수많은 검기와 총알이 난무했고. 잔해가 되어버린 강남의 파편들은 여기저기 사방으로 비산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나와 같이 있던 수많은 동료들을 학살하며 빠른 속도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나의 꼬리 부분을 사용하여 그들에게 위상력을 이용한 충격파를 날렸지만, 수많은 전투로 다져온 그들의 경험에, 나의 공격은 그들의 몸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리고 나의 몸에 날아든 수많은 총탄과 검기들…. 내 몸은 이윽고 커다란 상흔만이 아로새겨졌다. 

서서히 내 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이게 내 죽음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나의 주군, 위대한 검은용, 모든 차원을 지배하실 아스타로트님과의 대화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마룡혼, 네가 나중에 죽을 때 발하는 색깔은 어떤 색일까?”
“위대한 용이시여, 원하신다면 지금 기꺼이 보여드리겠나이다.”
“하하하, 아니다. 겨우 그 까짓 일로 내 충성스러운 부하를 잃을 순 없지. 내가 모든 차원을 정복한 뒤, 내가 스러지기 전에 기회가 되면 한 번 보자꾸나.”
“용이시여, 용의 치세는 영원할 것입니다.”
“하하하, 이 세상에 영원이라는 것은 없다. 하지만 내게 영원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네가 발한 불꽃은 영원히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겠지.”
“용이시여, 뜻을 이루시는 날이 오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찬란한 빛을 발하겠나이다.”
“하하하, 그 날이 오길 기대하지.”』

깊고 컴컴한 어둠이 몰려온다. 그리고 단말마를 지르며 사라져 가는 나의 동료들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원통하다. 나의 힘이 이렇게나 모자라다니, 용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에 내가 있지 못하다니…. 하지만 용에게 해가 되는 무리의 발목을 조금이나마 잡을 수 있도록, 또한 나의 주군, 아스타로트님이 볼 수 있도록 모든 힘을 다해 찬란한 불빛을 밝혀보자. 용을 만나 광대에서 전사가 될 수 있었던 작고 미약했던 내가 용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도록….
  그가 모든 생명을 불태워 피워낸 불꽃은 격정과 환호를 담은 뜨겁디뜨거운 루비처럼 붉었다. 또한, 원통함과 한스러움을 담은 시리디시린 사파이어처럼 푸른빛을 띠었다. 마치 붉은 벚꽃 잎이 푸른 바닷속에서 흐드러지는 듯한 불꽃은 세상을 집어삼킬 듯 크게 타오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한줌의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
  
  필자의 말 : G타워를 돌다가 마룡혼이 불꽃을 내며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서 쓰게 된 단편입니다.
  가끔 가다가 안터지는 녀석도 있긴 하지만요 ㅎㅎ
  마나나폰 관련 팬픽을 보고 저도 몬스터에 관련해서 한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럼 즐감해주세요. 
2024-10-24 22:23:1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