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는 위상력과 함꼐 35화

검은코트의사내 2017-10-30 0

이상한 꿈이었다. 여기 세계로 와서 처음으로 꾸는 악몽인 거 같았다. 땀이 옷에 흠뻑 젖을 정도였다. 그 검은 가면을 쓴 사람, 대체 뭐지? 나를 아는 듯한 말투인데... 에이, 그냥 꿈이겠지. 수면에 취하다가 좋은 꿈만 꾼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땀을 흘려버렸으니 좀 씻어야될 거 같았다. 지금은 새벽이니 아무도 없겠지하고 욕탕으로 들어간다.

 

"꺄아아악!!"

"허억!"

 

비명소리에 재빨리 문을 닫고 나갔다. 아니, 지금 새벽 3시쯤 되어가는데 아직도 목욕을 하는 사람이 있어? 검은색 긴 머리를 늘어놓았던 여자애였는데, 분명히 야에였지? 평소에 리본으로 묶고 다녀서 못알아볼 뻔 했다.

 

"미... 미안해! 안에 있는 줄 몰랐어."

"으으..."

 

사무라이라도 알몸을 보이는 건 부끄러운 모양이다. 당연한 거지. 그런데 저렇게 반응하는 걸 보면 역시 사무라이가 되기 전에 여자애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트러블은 흔하지 않다. 만화나 게임에서나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거야 원, 아니, 그나저나 왜 새벽 3시인데 이제서야 목욕을 하는 거지? 지금은 다 잘 시간인데 말이다. 혹시 나처럼 악몽이라도 꿔서 땀을 흘린건가?

 

여기 목욕탕이 남녀가 구분되지 않아서 매우 불편했다. 시간대를 정해놓고 운영한다고 미카 누나에게 들은 게 기억난다. 새벽에는 자유라는 건가? 여기는 보일러 시스템이 없고, 뜨거운 물은 정해진 시간대에 운영한다고 했다. 지금은 추운 날씨도 아니니 차가운 물로 씻어도 상관없지만 말이다.

 

평소에 나는 차가운 물로 씻는다. 제이 아저씨에게 하도 지겹게 들었고 강요받아서 이제는 익숙해진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검은양 팀 내에서 합동 훈련할 때 제이 아저씨는 나더러 항상 차가운 물로 목욕으로 하는 게 더 건강하다면서 말했다. 일단 속는 셈 치고 해봤지만 처음에는 죽을 거 같이 차가웠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적응이 되었기에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전에 아스타로트를 쓰러뜨린 이후에 검은양 팀은 온천여행을 한번 간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관리요원 유정누나와 데이비드도 같이였다. 남탕과 여탕을 따로 구분했는데 제이 아저씨와 데이비드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여탕을 엿보려고 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과거에 울프팩 팀 시절 때처럼 추억을 되살려보자고 말씀하셨던 거 같았다. 그럼 우리 엄마가 있을 때도 그런 짓 했단 말이야? 그러다가 걸리면 목숨이 10개라도 남아돌지 않을 거 같다고 확신했었다. 나한테도 끼라고 했지만 거절했었다. 그런 짓을 왜 하냐? 재미없게스리 말이다. 하지만 제이 아저씨가 위로 무리하게 올라가는 바람에 벽이 무너져내리는 사태가 벌어졌고, 의도치 않는 그들의 몸을 보게 된 거 같았다. 그런데 슬비와 유리는 나를 무섭게 노려보면서 세숫대야를 나에게 동시에 던졌었다. 그 당시에는 억울했는데 지금은 그냥 추억으로 남은 거 같았다.

 

뭐, 그들도 여자애들이니까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야에도 에르제도, 린제도 마찬가지일 거다. 전투시에는 듬직해보이지만 평소에는 부끄러움을 좀 많이 타니까 말이다.

 

"새야 공, 다 되었소."

"미안해. 야에. 안에 있는지 몰랐어."

 

필사적으로 사과했다. 이럴 때는 그냥 사과가 답이겠지. 의도치 않게 본 건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여자입장에서는 너무나 부끄러운 입장일 테니까 말이다. 야에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그냥 지나쳤다. 에르제와 야에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 이세계에서 **로 취급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

 

다음 날, 목욕을 하고 수면을 취해서인지 평소보다 더 개운하게 일어났다. 아, 좋다. 펄펄 날아오를 거 같이 가벼운 느낌이다. 찬물사워라는 게 바로 이런걸까? 좀 춥긴 해도 막상 하고 나면 더 개운해진다. 왕도에서 정보를 모았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오르트린네 공작에 대해서는 그 술집사람들이 말할 거 같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뭐, 어쩔 수 없지. 만날 계기라도 만들어보고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식사를 하러 아래로 내려와서 식탁에 착석하자 에르제가 하품을 하면서 내려온다.

 

"새야야. 오늘도 어디 볼일있어?"

"응? 아니. 오늘은 예정이 없어."

"그럼 우리 같이 의뢰를 수행하지 않을래?"

"어? 응. 그래."

 

오늘 하루는 에르제 일행의 의뢰를 도와주는 걸로 하루를 보내도 상관 없을 거 같았다. 곧 이어서 린제와 야에도 내려온다. 야에는 아직도 새벽일이 생각나는지 내 눈을 피하면서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이런, 나도 그만 모르게 고개를 홱 돌렸다.

 

"뭐야? 둘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게..."

"아... 아무 일도 없었소이다."

"야에? 얼굴이 왜 빨개? 새야야. 너 야에에게 무슨 짓 한 거야?"

"아... 그게... 뭐라고 말해야 되지?"

 

무섭게 노려보는 에르제, 이러다가 진짜 **로 찍히게 생겼다. 마땅히 변명할 걸 생각해내야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죄다 말할 수 없는 말로 변명하는 게 생각나는 전부였다. 린제는 무슨 일이냐면서 에르제의 추궁에 동참했다. 또 땀이 나기 시작한다. 새벽에도 샤워를 했는데 오늘도 샤워를 해야되나?

 

"자, 아침 나왔어."

"아, 그래. 배가 고팠는데 미카 누나. 잘 먹을 게요."

 

마침 누나가 식사를 가져오는 바람에 나는 말을 돌리면서 식사를 시작했고, 에르제와 린제는 수상하다는 듯이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야에는 말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누가 말하겠나? 그런 부끄러운 일을 자기입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겠지. 상대방이 난처해질 수도 있지만 자신도 난처해지는 입장에 처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당분간 추궁은 계속되겠지만 그들도 억지로 캐낼 생각이 없었는지 중간에 포기했다.

 

=================================================================================================================

 

이번 의뢰는 야에와 같이하는 의뢰였다. 또 몬스터 토벌이냐? 나는 게임 상에서는 고레벨이나 다름없으니까 몬스터 토벌은 당분간은 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게임처럼 차원종을 수많이 상대해온 나인데 이런 건 고등학생이 초등학생 수업을 듣는 심정이나 다름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처음부터 배운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이번에 토벌할 몬스터는 레드 베어, 곰은 곰인데 피부색이 검정이 아닌 붉은 색으로 되어있다는 특이한 곰이었다. 불의 속성을 가진 몬스터로 입김으로 불을 뿜기도 한다는 것이다. 잠깐, 이거 난이도가 좀 높은 거 아닌가? 린제가 물의 마법으로 서포트 할 거라서 그러는 건가? 하긴 물이 불을 이기는 법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나도 물의 마법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고른건가? 물의 마법으로 레드 베어를 약화시킨 다음에 두 사람이 처리하겠다는 의도 같았다.


확실히 그런 공략도 좋은 일이긴 하다. 그런데 굳이 나까지 가야될 일이었을까? 린제의 물의 마법이면 가능한 일이었는데... 뭐, 나는 미카 누나에게 약속한 것도 있으니 그냥 따라가는 거지만 말이다. 나한테는 시시하게 느껴져도 이들에게는 아니다. 일단은 에르제 일행을 도와주는 게 우선이다. 물의 마법 중에 고급마법이 있었는데 그걸 사용하면 다 젖으려나? 동료에게 피해를 안 주게 할 정도의 위력이 필요할 거 같았다.


레드 베어는 황무지에서 서식중이었다. 주변에 풀도 자라지 않는다. 확실히 그러겠지. 불을 뿜는 녀석들인데 식물들이 다 타버리고 없을 만도 하지. 일단 8마리 정도 서식 중이라고 했으니 에르제가 말한대로 이번에는 내가 후방으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으음, 상대가 화염속성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불이여 와라, 모든 불길을 막아주는 거울, 파이어 미러]


화염공격을 반사하는 마법의 장벽이다. 상대방도 화염이니 별로 효과가 없을 지도 모르지만 일행이 다치지 않게 하는 것 정도는 충분했다. 에르제와 야에, 그리고 에르제까지 걸어주었다. 왕도에 있는 마법서를 읽어서 습득한 속성 마법 중 하나다. 린제는 그런 마법을 어디서 익혔냐면서 자신도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이런이런, 한 때는 린제가 스승이었는데 이번에 반대로 되어버린 거 같다. 뭐, 상관없겠지. 혹시나 모르니 나도 마법의 장벽을 형성시키고 레드 베어가 서식한 데로 달려간다.


"크와아아아앙!"


그들이 우리를 발견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들도 짐승의 후각이라는 게 있으니까 영역내에 들어온 침입자들은 본능적으로 공격하는 편이다. 발톱으로 공격하기도 하지만 불을 뿜는 공격이 위험수준이었었다. 하지만 화염에 내성이 걸린 장벽을 받았으니 에르제와 야에는 마음놓고 레드베어를 상대하기 시작한다.


[물이여 와라. 푸른 바다의 창, 워터 스피어]


린제가 외운 주문으로 물로 이루어진 긴 창이 레드 베어에 적중하자 불과 물이 만나서 발생하는 거대 수증기와 함께 레드베어가 그대로 쓰러지고 있었다. 에르제와 야에는 건틀렛과 검으로 그들을 하나씩 쓰러뜨려나간다. 발톱공격은 피하고, 불뿜는 공격은 그냥 무시할 정도였으니 당연했다. 내가 할 일은 린제에게 덤벼드는 레드베어를 없애는 거 뿐이다. 물론 나에게 덤벼드는 레드베어는 단칼에 베어나갔지만 말이다.


=================================================================================================================


의뢰는 쉽게 끝냈다. 에르제 일행은 조금 지친 듯 했다. 발톱공격을 조심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탓이겠지. 린제와 나는 아직 멀쩡했지만 말이다. 이후의 의뢰도 계속 수행해나가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말이지. 백금화가 한꺼번에 들어오니 길드에서 의뢰비로 주는 돈이 적은 기분이다. 모몬트도 혹시 우리랑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서 그렇게 타락한 걸까? 다시한번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그 일로 인해 우리는 절대 타락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깨닫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다. 돈에 너무 욕심을 내면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니까.


To Be Continued......

2024-10-24 23:17:3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