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볼프]제물의 밤
루페르쿠스 2017-09-20 0
※엘리고스x볼프강 비스무리한 분위기. 앨리스 아니므로 주의. 볼프강 스토리 스포일러 주의
드문 일이었다. 상부에서 면담을 목적으로 소환하다니, 이제 막 수습 티를 벗고 어엿한 한 사람의 클로저를 자칭할 수 있게 된 볼프강에게는 처음인 일이었다. 그보다 오래 일해 온 선배도 이런 경우가 익숙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는지, 혹여 네가 잘못한 일이 있는 건 아니냐고 대뜸 물어왔기에, 볼프강은 내심 켕기는 바가 없지는 않았지만 애써 모르는 척 손사래를 치고 말았다.
“선배… 여태껏 그런 눈으로 날 보고 있었던 거였어요?”
“아니, 그렇다고 내가 뭘 잘못한 기억은 없고… 영문을 모르겠네. 역시 직접 듣는 수밖에 없나 봐.”
따가운 눈총을 피해 머쓱하게 웃으며, 몇 걸음 앞장서 걷던 선배는 지부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잠시 기다리자 안에서 허락의 표현이 들렸다. 조심스레 문을 여는 선배의 뒤를 따라 볼프강 또한 방으로 들어섰다.
“반갑네. 자네들과 이렇게 다시 마주하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군.”
지부장은 가벼운 눈인사만을 건네고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창밖을 내다보는 일이 취미이기라도 한 것일까.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차면서도, 볼프강은 이어지는 말에 집중하기로 했다.
“자네들을 굳이 이 자리로 부른 건 극비리에 맡기고 싶은 임무가 있어서야. 자세한 내용을 전하기 전에, 일단은 자네들의 의사를 묻도록 하지.”
돌발행동에 대한 책임이라도 묻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했던 것과는 달리, 생각 이상으로 무거운 이야기가 나온 탓에 볼프강은 물론이고 옆에 나란히 선 선배까지도 덩달아 긴장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내용을 듣고 나면 자네들은 이 임무를 반드시 수행해야만 해. 미리 말해 두지만, 이 임무는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되고, 그렇기에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는 일도 없을 거야.”
“클로저로서,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질문하는 선배의 눈을, 볼프강은 옆에서 곁눈질로 어렵사리 볼 수 있었다. 단호한 표정에서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낼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결연함이 엿보였다.
“당연한 것을 묻는군. 뭐, 수긍의 뜻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지.”
피식, 하는 작은 코웃음이 들렸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그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는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우리 지부는 어떠한 중요한 물건을 입수했어. 그 물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물건이 조금 전에 차원종에 의해 탈취되었어. 아마 그들에게도 그 물건을 어찌 할 방도는 없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빼앗긴 물건을 되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려 한 듯, 지부장은 잠시 숨을 돌리고선 본론에 들어갔다.
“그 물건을, 자네들이 되찾아 와 줬으면 해. 그를 위해 필요한 지원은 아끼지 않을 거야.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수송기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네. 자세한 내용은 자네들의 오퍼레이터에게 듣도록 하게.”
개운한 맛이 없는 미적지근한 회화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결코 눈을 마주치는 일 없이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지부장의 뒤를, 선배와 잠시 시선을 교환한 다음 볼프강도 따라나섰다.
그들의 수송을 위해 준비된 것은, 유니온 내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독일 지부에서도 가히 과학의 정수라고 평가해도 무방할 비행정이었다. 정비를 마친 비행정에 탑승한 그들에게 남은 일은 출동 장소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그들 외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지만, 통신 기능이 탑재된 드론을 통해 오퍼레이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임무는 단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빼앗긴 가방을 회수하라, 입니다.”
임무를 전달하는 오퍼레이터 메리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지나치게 사무적이고 경직되어 있었다. 가방의 자세한 생김새와, 절대 열어 보아서는 안 된다는 주의사항까지 전달하고 나서야, 그녀의 입에서 나지막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요원님, 어쩌자고 이런 위험한 임무를 맡으신 거죠?”
“무슨 뜻이야?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내용이 있나?”
책망하는 그 말투에 볼프강이 먼저 의문을 표했다. 메리는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이윽고 깊은 한숨을 한 번 더 내쉬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요원님들이 운반하게 된 정체불명의 그 가방, 보통 물건이 아니에요. 보안등급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요. 평범한 물건 따위가 가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요.”
“그야 뭐… 극비임무니까 당연한 거 아냐?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뿐만이 아니니까 문제인 거라고요. 이번 임무, 가방의 무사 탈환이 요원님들의 안전보다 우선시되어 있어요. 무슨 뜻인지, 모르지는 않으시겠죠?”
“…….”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후 통신이 끝나도 자리에 돌처럼 굳어 버린 볼프강의 어깨를, 선배는 가볍게 두드려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작전 위치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볼프강도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경질적으로 긴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그는 눈앞의 임무에 집중할 것을 스스로에게 타이르며 선배의 뒤를 따랐다.
차원종을 격퇴하고 가방을 되찾아오는 과정은 각오했던 만큼 고되지는 않았다. 빼앗아 간 차원종이 딱히 약한 것은 아니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쪽은 동료 없이 단독행동 중이었다는 것과, 볼프강은 그렇지 않았다는 정도였다. 정확한 이유는 영영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차원종에게도 손쓸 방도가 없을 것이라는 지부장의 예상이 아무래도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그들도 극비리에 이 가방을 손에 넣어, 모종의 목표를 이루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방금 전 쓰러뜨린 차원종이 어째서 홀로 은밀하게 이동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대충 납득이 갔다. 물론 모든 것이 추측일 뿐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기에, 고민할수록 볼프강의 미간에 주름이 더해질 따름이었다.
어떻게 물건의 장소를 알아내고 가져간 건지는 몰라도, 볼프강은 저 가방 속에 봉인된 물건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 하나를 운반하기 위해 그는 클로저 생에 처음으로 이 엄청난 공중전함에 타 보게 되었고, 이것 하나로 인해 그와는 평생 인연이 없을 법한 극비임무까지 맡게 되었다.
이 임무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그들의, 볼프강의 클로저로서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볼프강 자신의 시선은 달랐다.
운 좋게 임무에 발탁되었을 뿐, 중요한 것은 임무를 수행하는 인물이 아닌 운반을 필요로 하는 물건 자체였다. 즉 달리 보면 볼프강과 선배의 가치는 이 임무를 수행하기에 걸맞기는 하지만, 결국 저 가방 하나를 사수하기 위해 쓰일 뿐인 소모품과도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클로저로서, 인류를 지키기 위한 일이라면 당연히 하겠다고 선뜻 받아들인 선배의 의지에 따라, 볼프강 또한 대의를 위한다는 이유로 일단 납득은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회수하라’는 명령에 씁쓸한 뒷맛을 느끼는 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위상력이라는 특별한 힘을 갖게 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 힘을 더 나은 방향으로 쓰기 위해 클로저로서의 의무를 기꺼이 짊어졌건만, 유니온에서의 그의 입지란 결국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목숨마저 위험할 지도 모르는 극비임무를 수행할 만한, 어느 정도 능력은 있지만 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인재. 어중간하게 힘이 있기에 아무 일에나 쉽게 써먹을 수 있는 부류인 것이다.
눈앞에 놓인 상자를 저도 모르는 사이 노려보며, 볼프강은 생각에 깊이 잠기고 말았다. 오퍼레이터 메리에게 귀환을 시작했음을 선배가 전달하는 짧은 사이에도, 만에 하나를 대비해 가방을 감시해야 했기에 그 역할은 볼프강이 맡았다.
통신 종료 직전의 푸념으로 보아, 지금쯤 그녀는 보고를 위해 높으신 분을 만나러 가고 있을 것이다. 어떠한 물적 증거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직접 보고할 것을 지시할 만큼, 유니온은 저 가방 속의 물건을 어지간히도 아끼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엔 자신들이 목숨 걸고 지킨 이 가방도 그들의 손에 넘겨져 있겠지.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기록 하나 남지 않는 극비 임무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나름대로의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물론 목숨값에 비하면 티끌만한 것이겠지만.
원래 이 일은 그에 합당한 보수를 바라고서는 오래 잡고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생각이 어렸을 때는 나름 정의를 위해 행동하고 그에 따른 대우를 받을 수 있으리라 착각도 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부족한 쪽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대가를 바라고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최근 들어 조금씩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익숙한 상황임에도 이렇게 마음이 복잡한 것은, 자신들의 목숨이 갖는 가치를 이토록 살갗에 와 닿도록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불만이란 말인가?
클로저로서 누군가를 지킨다는 사실에는 항상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경력을 쌓고서도 늘 어중이떠중이 차원종들을 격퇴하는 임무를 맡고, 이에 만족하는 자신을 돌이켜 볼 때는 한심함마저 들 정도였다.
자신에게도 동경하는 그 사람만큼의 힘이 있었다면, 하고 몇 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강해져봐야 하는 일은 지금과 다를 바 없이 차원종과 싸우는 일밖에 없는데도, 지금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냐고 물으면 결단코 아니라고 대답할 테니까.
무엇을 위해?
심연에 파문을 그리는 듯한 질문을 들었다. 볼프강은 그 이유를 떠올리려 자신의 속내를 집요하게 파헤쳤다. 그렇게 도달한 답은 공허한 메아리와도 닮아 있었다.
자신은 그저 강하게 있고 싶은 것이다.
힘이 있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이룰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건 대수도 아니다. 평범하게 목표로 삼을 법한 이유들도, 그에겐 사족에 지나지 않았다. 볼프강 자신이 원하는 것은 힘이 가져다 줄 다른 무언가가 아닌, 강대한 힘 그 자체였다.
힘을 바라는 것에 이유가 필요한가?
누군가가 이유를 묻는다면 볼프강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물론 진짜로 묻는다면 굳이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그 대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마치 그 결론에 만족한 것처럼, 볼프강의 마음에 이유를 모를 몽롱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열어라. 네가 원하는 대로.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머릿속이 하얗다. 멀리서 누군가가 외치는 것 같은, 희미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것이 선배의 목소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쪽 팔이 저릿하게 아파 와서, 저도 모르게 볼프강은 팔을 붙잡은 무언가를 뿌리치고 말았다.
“볼프, 그만둬! 당장 거기서 손 떼!”
“선, 배…?”
눈앞의 선배가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선배가 저토록 다급하게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지 모르겠다.
대체 자신이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의문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는 볼프강의 시선이 선배를 향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 아직 모든 것이 그대로이지 않은가.
툭, 하고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난 것은 이 직후였다. 뜨거운 무언가가 눈가를 뒤덮을 기세로 철퍽, 하고 튀는 바람에 볼프강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불쾌감을 억누르고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떴지만, 아래를 향한 그 시선에 멀쩡히 서 있는 선배의 신발코가 들어왔기에 볼프강은 괜한 호들갑이라며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옷자락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붉은 빗줄기를 따라, 볼프강의 시선이 위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내 어느 지점에서 멈춰선 그 두 눈동자에, 이해할 수 없다는 거부의 빛이 강렬하게 깃들었다.
이게, 뭐지?
꿀럭꿀럭 피를 쏟아내는 목 위로,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던 나머지, 볼프강은 자기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선배. 머리 어디 갔어요? 지금 장난치는 거죠?”
대답은 없었다. 새하얗게 타들어가는 사고회로에, 당황을 이어 짓궂은 장난에 대한 격렬한 분노가 흘러넘쳤다. 멱살을 휘어잡으려 뻗은 손이 닿지 않아 반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을 때, 볼프강은 툭 하고 발끝에 무언가가 채였음을 느끼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늘 온기를 담고 있던, 그러나 지금은 초점을 잃은 두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허공에 뻗은 손이 갈 곳을 잃고 멈췄다.
“……”
목이 메여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언어가 되지 못한 부스러기들이 단말마처럼 아, 아, 하는 짧은 탄식을 빌려 흩뿌려졌다.
눈가에 맺힌 무언가가 뺨을 타고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이 피와 같은 눈물인지, 아니면 눈물과 같은 피인지, 볼프강은 알지 못했다.
새벽을 기다리는 자여. 제물의 밤은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
머리 위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뒤에서부터 둘러진 검은 무언가가, 그의 두 눈을 가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귓가에 키득거리는 낮은 웃음이 울린다.
피와 살로써 우리의 계약은 영원히 약속될지니.
다리에 힘이 풀려, 볼프강은 그대로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엇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뇌를 내버려두고 제멋대로 움직인 눈이 왼손에 쥔 책을 향했다. 검붉은 웅덩이 위에서도 결코 범해지는 일 없이 온전한 그 모습에,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오한이 일었다. 이유도 모른 채, 볼프강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떨리는 손끝이 눈가에 닿았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른손은 도로 맥없이 땅에 추락했다. 다시 내려다본 그 손끝은, 차갑게 식어버린 피로 얼룩진 채였다.
적막에 휩싸인 공중전함은 묵묵히 창공을 가로지른다. 백야와 함께, 제물의 밤은 내려왔다.
지부에 도착한 비행정으로부터 감시카메라 기록을 가져온 극소수의 요원들은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시작부터 끝까지의 모든 내용을 재생시켰다. 돌연 가방에 손을 뻗는 사내를 저지하려던 맞은편 요원의 손길을 뿌리치고, 정신을 차린 듯 목소리를 높이는 사내의 손아귀에, 검은 책은 빨려 들어가듯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갔다. 직후 그의 등 뒤로 검은 기운이 서서히 형체를 갖추더니, 이내 가슴 앞에 교차하여 들고 있던 두 자루의 검으로 상대의 목을 뎅겅 날렸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장면에 몇몇이 고개를 돌려 헛구역질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노려본 화면 속에서는, 그 이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검은 갑주의 정체 모를 무언가가, 두 팔을 뻗어 마치 이 잔혹한 광경을 가려주려는 것처럼 망연자실해 서 있는 사내의 눈을 가렸다. 상냥함마저 느껴지는 그 모습을 본 순간, 도저히 참지 못한 몇 명의 요원들이 방을 뛰쳐나갔다.
이 날의 영상을 포함한 모든 기록은 유니온의 공식 데이터베이스에 오르는 일 없이 말소되었다.
-엘리고스와 볼프강이 처음 만난 날 망상. 메리는 이 시절부터 이미 동료였을 거라는 독자적인 설정입니다.
이후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볼프강을 보고 의문을 품은 메리가 이 사건의 뒤를 캐다가 상부에 들키지만, 볼프강을 냅두고 아직 퇴직할 수는 없다고 각오한 메리에게 상부는 모든 진실을 밝혔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몇 개월 정도를 팀에 소속되는 일 없이 홀로 활동하는 볼프강을 보조하면서 그녀 역시 많이 힘들었겠지요.
사냥터지기의 신설에 맞춰 퇴직신청을 낸 메리는 아마 기억소거를 자진해서 요청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날의 일들을 못 들었던 것으로 되돌린 그녀는 이후 자신이 왜 퇴직신청을 냈는지 궁금해하겠죠.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는 건 볼프강의 돌발행동과 이로 인해 시말서를 몇 번이나 쓴 안좋은 기억들뿐이기에, 끝내 메리는 볼프강을 미움의 대상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이 부분은 글로 쓰는 일이 없을 것 같아 이렇게나마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공식에서 드러난 게 전무하니 상상으로 끼워맞추기도 어렵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