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 슬비] 너에게 바치는 꽃다발 (2)
Contrasto 2017-09-12 8
대학가 어느 카페, 나와 정미는 커피를 마시며 어제 일에 대해 얘기했다. 사실, 내가 정미에게 일방적으로 질문 공세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정미는 잠시 숨을 돌리려 다 식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문제없겠지만 나중엔 어떡할 거야? 임산부 몸으로 학교를 나오려고? 낳은 후엔 아이는 어쩌고?”
“윽...”
할 말이 도저히 없었다. 정곡만 찔러대는 날카로운 질문에 나는 그저 숨만 삼킬 뿐이었다.
“잘 생각해보란 말이야. 어떤 게 너와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인지...”
“그, 그래도... 학교는 역시 너랑 다니고 싶어. 너 없이는 나, 사람 앞에 서는 것도 힘든 거 알잖아...”
“.......”
아직 사람들의 시선이 많은 곳에 있을 땐 불안감이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대학은 고사하고 이런 카페에도 있질 못하겠지만, 정미가 같이 있어주면 그런 불안감을 느끼지 못했다. 정미의 존재가 나를 안정시켜주었다.
내가 머뭇거리며 말하자, 정미는 눈을 감고 고민에 빠졌다. 그런 모습을 보니 정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휴학하지 뭐.”
“...응?”
정미는 별 대수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나는 잘못 들었나 내 귀를 의심하여 다시 물었다.
“뭐, 다음 학기만 들으면 1학년은 졸업이고, 그 후엔 나도 휴학이나 하지 뭐. 캐롤 언니 연구소에서 일해** 않겠냐고 연락도 왔고.
“정미야...!”
나는 가슴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정미는 살며시 웃으며 내 눈의 눈물을 자신의 소매로 닦아주었다.
“그만 좀 울어. 내가 이정도도 못해줄까 봐? 어차피 나도 너 없으면 학교에 친구 없거든?”
그렇게 정미의 진심어린 애정을 받던 나는, 문득 유리 생각이 나서 정미에게 그녀의 소식을 물었다.
“근데... 유리는 소식 좀 있어? 도통 나한테는 연락이 없네...”
“흥, 몰라. 올해는 꼭 붙겠다면서 공부에만 전념하더라. 나도 당분간 연락하지 말라더라.”
정미는 내 물음에 살짝 삐친 듯 한 말투로 말했다. 내가 알기론 유리는 클로저로서가 아닌 좀 더 높은 직위의 유니온 직원이 되기 위해 일부러 외부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정미에게는 ‘나, 유정 언니처럼 국장이 될꺼야!’ 라고 말했다나. 여전히 저돌적인 친구였다.
“아, 나 슬슬 가봐야겠다. 곧 세하 퇴근할 시간이여서.”
시계를 보니 세하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서둘러 일어났다. 세하가 퇴근하기 전에 저녁밥을 만들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미는 짐을 챙기는 나를 장난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신혼은 뜨거워서 좋겠어~ 나는 혼자여서 한가하기만 한데. 정말 부럽다 부러워~”
“뭐, 뭐, 뭐어?! 정미 너!”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라 새빨개졌다. 나는 정미를 붙잡으려했지만, 정미는 내 손을 여유롭게 피하며 같이 짐을 챙겼다.
“아하하! 그럼 나도 이제 가봐야지!”
“정미 너! 담에 보면 꼭 복수할꺼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정미가 밉기는커녕 좋기만 하였다. 정미는 차가웠던 옛날에 비해서 훨씬 다정해지고 웃음이 많아져서 보기 좋았다. 그녀와 좋은 친구가 되어서 참 행복했다.
-
“나왔어어-”
마침 저녁 준비가 다 됐을 때, 현관 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세하가 들어왔다.
“오늘 좀 늦었네? 많이 피곤하지? 밥 다됐어. 옷 갈아입고 밥 먹어.”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는 세하를 따라가며 겉옷과 넥타이를 풀어주며 말했다. 세하는 상당히 힘이 들었는지, 신음소리를 내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나는 세하의 옆에 앉아 세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 수고했어. 많이 힘들었나 봐?”
“으으윽... 망할 유니온... 곧 은퇴할 사람 부려먹지 말라고... 너는 오늘 어땠어?”
“뭐... 하루종일 집안일 하다가 오후에 정미랑 만났어. 대학 일은 정미가 잘해 주겠대. 정미도 내심 아기가 엄청 기대되나봐!”
세하는 일어나서 나를 껴안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이내 나와 같이 침대로 쓰러졌다.
“으구구... 오늘 자기야도 수고했어- 나 너무 힘드니까 자기한테 충전 받을래.”
웬일로 나를 잘 쓰지도 않던 호칭으로 부른다던가, 끌어안고 놓지 않던가, 아이처럼 갑자기 조르는 것 같았다. 혹시 아기한테 질투하는 건가? 내가 아기한테만 신경쓸까봐?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너무 귀여워 사랑을 안줄 수가 없었다. 다 큰 남자가 뭐가 귀엽겠냐만은, 그래도 내 눈엔 너무 귀여워 보이는걸!
“자자 귀염둥이 우리 애기, 밥 먹고 나면 많이많이 이뻐해줄게요~”
장난꾸러기 세하 어린이를 꼬옥 안아 달래자, 세하는 번쩍 일어나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나갔다. 이윽고 열린 문으로 얼굴만 쏙 내밀고 내게 외쳤다.
“빨리 밥 줘! 빨리빨리!”
나를 재촉하는 모습이 밥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았다. 만약 꼬리가 달렸다면 사정없이 붕붕 휘두르고 있겠지... 정말이지 예나 지금이나 단순한 남자였다. 이렇게 보니 다른 여자한테도 넘어갈까 심히 걱정됐다.
저녁을 먹고 난 후, 평소대로라면 세하는 거실에서 게임을 했지만, 오늘은 자꾸 내 옆에 붙어있었다. 결국 우리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침대에 누웠고, 잘 시간이 올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세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세하의 응석을 들어주었다. 염색을 하지 않은 그의 머리는 비단처럼 매끄럽고 하늘하늘해서 기분이 좋았다. 웬만한 여자들보다 머릿결이 좋은 것 같았다.
“그래서 말이지? 밑에 놈이 오늘 펑크를 내서 말이야, 내가 걔 지역도 덩달아서 순찰을 했다고! 점심 먹다가 갑자기 불려서 순찰을 돌게 시키고 말이야! 짜증나!”
“응응, 그랬구나. 우리 자기 착하지 착해. 그래서 오늘 힘들어했구나?”
세하는 내 품에 안겨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투덜거렸다. 예전에도 멤버들 몰래 무릎 배게 해주며 세하를 위로해줬던 적이 있어서, 옛날 추억을 생각하며 그때와 같은 감각으로 세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자기가 이렇게 충전해주면 힘이 막 솟아서 내일도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거 같아!”
“저런, 이렇게 받아주다가 습관 되겠네.”
나는 쿡쿡 웃으며 어리광 부리는 세하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말썽쟁이 아들이 하나 생긴 기분이었다. 품안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따스하게 내 몸을 감쌌다.
세하는 몸을 돌려 반대로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세하의 가슴팍에 머리를 묻었다. 기분 좋은 어둠이 내 눈을 가렸다. 이윽고, 세하의 크고 남자다운 손이 내 머리를 지나 등을 훑었다. 기분 좋은 향기가 내 코를 간질였다.
아아, 이렇게만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몰려오는 졸음이 이렇게 미울 줄은 몰랐다. 계속 이 따스함 속에 안기고 싶었다. 나는 세하의 규칙적인 심장소리를 들으며 입을 열었다.
“...나 있지, 어릴 적에 가족을 모두 잃었어.”
“......”
세하는 개의치 않고 내 등을 쓰다듬었다. 그도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래서 혼자일 때가 많았어... 양성소에 있었을 때, 다들 휴가를 나가 가족들하고 만났지만... 난 항상 혼자 기숙사에 있었지. 혼자인건 익숙했지만, 외로운 건 익숙해지지 않았어.”
세하의 팔이 더욱 강하게 나를 끌어안았다. 새삼 검은양 팀의 첫 만남 때가 생각났다.
“그러고 나서... 난 너를 만났어. 그 때도 넌 손에서 게임기를 놓지 않았던 아이였어. 게으르고, 책임감도 없었지. 그 뒤로도 리더 말을 무시하는 건 기본이고, 작전 중에도 틈만 나면 게임기를 꺼내고...”
“윽... 그, 그땐 내가 철이 없었지. 그래도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세하는 어딘가 찔리는지 작은 목소리로 투덜댔다. 그런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너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는 아이였어. 너만 있으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고, 네가 기뻐하면 나도 어쩐지 기뻤고, 네가 슬퍼하면 나도 슬펐어. 너의 무언가가... 나를 계속해서 끌어당겼어.”
나는 몸을 돌려 세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보랏빛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아름답게 반짝이는 황금색 눈동자. 그의 눈동자 안에는 그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 눈동자에 매료된 것일지도 모른다.
“너는 내가 원하는 모든 걸 다 줬어. 혼자였던 나에게 남자친구가 되어주었고, 남편이 되어주었고, 이젠... 함께 부모가 되어주었어. 그런 네가 너무 고맙고, 사랑해.”
세하는 살며시 웃으며 내 뺨을 어루만졌다. 내 뺨에 그의 상냥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 상냥함에 안도감이 들어, 서서히 눈이 감겼다. 내가 눈을 감기 직전, 세하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래 슬비야.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자. 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어주자...”
몽롱해지는 의식 저편으로, 세하가 이마에 입을 맞추는 것이 느껴졌다.
-사랑해, 슬비야.
----------------------------------------------------------------------------------------------
안녕하세요! [너에게 바치는 꽃다발] 제 2편을 들고 온 필자입니다! 이러저러 일이 많아서 늦게 올린 점 사과드립니다ㅠㅠ 이번 편은 잠시 쉬어가는 편으로 세하와 슬비의 꿀이 뚝뚝 떨어지는 달달한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원래는 2편으로 마무리 지으려던 소설이였지만 독자 여러분의 심장을 폭행(?) 하는 달달한 세슬 이야기가 없어서야 외전을 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추가했습니다. 도중에 추가하게 된 화라 많이 부족할 수 있으니 양해부탁드립니다ㅠㅠ.
추가로 저번에 올린 1편의 개연성 문제에 대해 논란을 빚은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저의 사전조사가 정확하지 않아서 많은 분들이 미심쩍게 생각하셨겠지요ㅠㅠ 오로지 재밌게 쓸려는 생각뿐이여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설정에 대해 간과하였으니 이거 작가 실격이겠는데요ㅠㅠ. 그 논란이 된 부분에 관해서는, 다시 자세히 조사해본 결과 슬비가 사용한 임신측정기(소변검사)로 임신 여부를 파악하는것은 수정 후 최소 12~14일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하루만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된건 여러모로 크게 잘못된것이겠지요. 그래서 하루만에 알게 된 부분을 2주 전 일로 수정하였습니다. 다음부턴 이러한 실수 없이 여러분께 보다 재밌고 정확한 소설을 보여드리길 약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