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 슬비] 너에게 바치는 꽃다발 (1)

Contrasto 2017-08-30 13

딸그락-

 

 

내 눈앞에 벌어진 믿기 힘든 사실에 너무 놀란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떨어뜨렸지만, 나는 알아채지 못했다.

 

 

“세, 세하야! 크, 큰일 났어!”

“응...? 왜 그래 슬비야...?”

 

 

나의 외침에 침대에서 자고 있던 세하가 부스스 일어나며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나... 나말이야...!”

 

 

나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울먹이듯이 말했다.

 

 

“나... 임신한 것 같아...!”

 

 

내가 떨어뜨린 임신측정기에는, 붉은색의 두 선이 선명하게 나타나있었다.

 

 

 

 

 

 

-

 

 

 

 

 

 

차를 타고 오는 내내, 나는 붕 뜬 기분이었다.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어젯밤, 세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결국 울음을 터뜨린 나를 겨우 진정시키고, 날이 밝자마자 정확한 검사를 위해 근처의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검사 결과가 적힌 종이는 내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뭐, 여차저차해도 우리의 첫 아이이니, 기뻐해야지. 기운 내 슬비야.”

 

 

세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이지 나는 따라갈 수 없는 순응력이었다. 나이는 같지만 왠지 세하는 나보다 어른 같았다. 그렇게 곧 아빠가 될 세하를 보자, 몇주 전의 밤이 떠올라서 갑자기 얼굴이 빨개졌다. 다시 생각해보면 임신해도 안 이상할 만큼 격렬한 밤이었던 것이다...

 

 

“아으, 아으으...”

 

 

나는 고개를 무릎에 묻고 그날 밤의 기억을 잊으려 애썼다. 바보 같았던 그날 밤의 나를 흠씬 때려주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은 왠지 기분이 좋아 이것저것 해보고 싶었고, 세하는 군말 없이 따라와 줬기 때문이다.

 

 

세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듯이, 이러저러 말을 돌리며 나에게 말했다

.

 

“저... 슬비야, 그렇게 자책할 필요 없어. 그... 저기, 그떈 나도 나대로 즐겼고... 예상보다 더 기분이 좋아서... 그러니까, 기운 내 슬비야.”

 

 

세하는 목을 긁으면서 말했다. 목을 자세히 보니, 격렬한 사랑의 산물인 키스마크가 보였다. 시간이 지나 옅어졌지만, 여전히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 봤자, 그런 모습을 보면 더 부끄러워질 뿐이었다.

 

 

“으으...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줘... 부끄러워 죽을 것 같단 말야...”

 

 

부끄러움에 온 몸이 달아올라도, 세하가 기뻐하는 것을 보니 내심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슬비야 도착했어. 어서 가자.”

 

 

그렇게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자, 금세 신 논현역에 있는 한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여기는 내 시어머니, 즉 세하의 어머니가 사는 곳이었다.

 

 

“엄마! 우리 왔어요!”

 

 

내가 현관문 앞에서 머뭇거리자, 세하는 나대신 문을 열고 크게 말했다. 그러자 안에서 세하와 꼭 닮은 분위기의 여성이 나와 맞이해주었다.

 

 

“어머, 어서와 얘들아! 아직 밥 안 먹었지?”

 

 

어머니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꽤나 갑작스런 방문이었을 텐데도, 불쾌해하시는 기색 없이 환하게 웃어주셨다.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였다.

 

 

원래라면 며느리인 내가 상을 차려야 예의겠지만, 어머니는 그것이 자신의 가사실력의 향상에 방해된다며 항상 자신이 상을 차리셨다. 내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세하는 자연스럽게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어, 어머니, 제가 좀 도와드릴게요, 이런 건 어머니가 아니라 제가 해야죠.”

 

“괜찮아! 나도 이제 많이 늘어서 너희한테 자랑하고 싶은 거야. 저기 네 남편이나 잘 챙기렴.”

 

 

돌아보니, 세하는 벌써 TV에 게임 콘솔을 연결하여 게임에 접속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시도 때도 없이 게임하는 습관은 아직도 버리질 못했다. 나는 더 이상 어머니가 허락해주시질 않아 포기하고 세하 옆에 가서 앉아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렇게 세하가 게임하는 것을 보니, 처음 세하와 함께 프로게임을 보러 간 생각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우리들의 첫 데이트였을 것이다.

 

 

그렇게 세하가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있자, 어느새 주방에선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음식이 다 됐는지, 어머니는 우리들을 식탁으로 부르셨다. 어머니의 음식은 정말로 맛있었다. 그동안 많이 노력하신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둘이 무슨 말을 하려고 나를 찾아왔니?”

 

 

어머니는 수저를 내려놓으시고 나직하게 말씀하셨다. 순간, 목에 가시가 돋친 듯 목이 아파왔다. 과연 어머니는 이 사실을 반갑게 여겨주실까? 만약 아니라면, 어머니가 실망하신다면, 나는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말해보기로 했다.

 

 

“저... 저기...”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마음을 먹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역시 너무 무서웠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간신히 알아듣게 말했다.

 

 

“저랑 세하의, 저기, 아이가... 생겼어요...”

 

 

내 말을 들으신 어머니는 순간 눈을 크게 뜨셨다. 나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꼭 감았다. 어머니가 화를 내실까? 아니면 나에게 실망하실까? 하지만 어머니는...

 

 

“세, 세상에나! 아이가 생겼니?! 이게 웬일이니! 축하해 슬비야!”

 

 

어머니는 상기된 얼굴로 내 손을 꼭 잡고 굉장히 기쁜 듯이 말씀하셨다.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에 놀라기보단, 이제야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쁘신 듯 했다. 나는 긴장해서 참았던 감정이 한순간에 풀려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안아주시면서 진심으로 축하해주셨다.

 

 

“축하해 슬비야. 너도 이제 어엿한 엄마가 되는구나.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고, 힘든 게 있으면 말해! 내가 있는 힘껏 도와줄게. 나도 이제 손자 얼굴 보겠네!”

 

 

그렇게 아이에 대한 계획을 이것저것 신나게 얘기하다 보니, 이미 저녁때가 다 되었다. 어머니는 오늘은 늦었으니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셨다. 저녁은 세 가족이 화목하게 식사를 준비했다. 여전히 세하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저녁을 먹은 후, 거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을 때, 어머니는 찻잔을 내려놓으시고 말씀하셨다.

 

“그래... 그런데 슬비 너, 학교는 어쩌려고 그러니?”

 

 

어머니의 말씀은 예리했다. 나는 클로저 일 때문에 미뤄뒀던 공부를 하고 싶어 은퇴 후, 대학에 매진하고 있었다. 여전히 시선에 대한 불안감은 남아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동기인 정미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

 

 

“일단은... 계속 다녀보려고요. 정미하고 같이 졸업하고 싶기도 하고... 정말 안 되면 꼭 휴학을 할게요.”

 

 

애까지 배었는데, 대학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휴학을 신청해도 되지만, 그래도 지금이 좋고, 정미하고 같이 학교를 다니고 싶었다. 정미가 없으면 나는 정상적인 대학생활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 그게 네 뜻이면, 그렇게 하도록 해. 하지만 정말로 힘들면 버티지 말고 꼭 쉬어**다. 약속할 수 있지?”

“네, 그럼요.”

 

 

여전히 걱정하시는 어머니에게 약속을 받고 나는 학교를 계속 다니기로 했다. 하지만 나 때문에 더 힘들어질 정미를 생각하니 미안해서 나는 정미에게는 알려주도록 문자를 보냈다.

 

 

띠리리링-

 

 

내가 문자를 보낸 지 30초도 지나지 않아서 정미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번개같이 강렬한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굉장히 다급한 목소리였다.

 

 

“너너너너너너너어어-!! 그 문자 뭐야! 알아듣게 설명하란 말이야!!”

 

“어...응, 그게... 나 아이를 가지게 됐어. 오늘 아침에 알게됐지만...”

 

“아니, 아이라니, 진짜 아이? 그보다, 아이라면, 그, 세하랑? 생긴 거야? 아이가? 임신한 거라고?”

 

 

정미의 목소리에 담긴 다급함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한 말이 전부 맞았기에 나는 조용히 수긍했다.

 

 

“..........................”

 

 

몇 초간의 침묵, 아마 정미는 머릿속으로 믿기 힘든 정보의 연속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들린 목소리는 예상외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학교는 계속 다닐 거고? 이건 다른 사람한테는 말 안했지?”

“어? 어, 응... 어머니하고, 너밖에 몰라. 아직 아무한테도 얘기 안했어.”

 

“일단은 내일 시간 되지? 내일 만나서 얘기 좀 하자. 내가 어떻게 도와줘야할 지 알아야 할 거 아니야.”

 

“그, 그래, 알았어. 고마워 정미야.”

 

“흥, 정말이지... 놀래키기나 하고 말이야. 넌 항상 그런 식이야.”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그 안엔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다정함이 담겨있었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정미야 진짜진짜 고마워~ 사랑해!”

 

“뭐, 뭐야 또! 너도 유리처럼 말하지 말라고! 나 끊을 거야!”

 

 

정미는 당황해하며 전화를 끊었다. 정미에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도움만 받았다. 그녀에겐 이미 다 갚을 수도 없는 은혜를 받았다. 정말이지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가 있어서 행복했다.

 

 

잘 시간이 되어 침대에 눕자, 먼저 누워있던 세하가 등 뒤에서 나를 껴안았다. 나를 단단하게 안은 두 팔이, 너무나도 든든하여 안심이 되었다.

 

 

“왜 그래? 갑자기 껴안고...”

 

“우리 아이의 이름,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아까부터 조용하더니, 하루 종일 아이의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그런 순진한 면이 어딘가 귀여워,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뭐야. 아이 태명도 안정했는데?”

 

 

그러자 세하는 행복한 듯이 말했다. 마치, 옛날에 나와 단둘이 풀밭 위에 누워 아름다운 밤하늘을 바라보았던 때와 같은, 설렘과 기쁨이 넘쳐나는 목소리였다.

 

 

“이 아이는 우리 둘과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온 아이니까, 태명은 축복이로 하자!”

 

 

기대한 것보다 훨씬 멋진 이름이 나왔다. 나도 명색이 엄마인데, 이 아이가 멋진 이름을 가지기를 원해서 여러모로 많이 생각해 봤지만, 이만큼 좋은 이름은 없을 것 같았다.

 

 

“슬하. 슬하가 좋겠어.”

“슬하?”

“그래. 너와 나의 이름을 따서, ‘슬하’야. 분명히 너같이 멋지고, 자상하고, 게임은 또 무지하게 좋아하지만, 남들을 잘 챙겨주는, 착한 아이가 될 거야.”

 

내 말을 들은 세하는 살며시 웃으며 내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럼 너를 닮아서 똑부러지고, 모두를 잘 이끌어주고, 퉁명스러울 수도 있지만, 누구보다 사려 깊고 또 어딘가 귀여운 면이 있는, 그런 멋진 아이가 되겠지.”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잠시 동안 바라보다, 그 무엇보다 달콤한 키스를 나누었다. 진하고 뜨거운 키스가 아닌, 살짝 수줍은 듯이, 하지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옛날에 우리가 나누었던 다정하고 따뜻한 입맞춤을...

 

 

언젠간 이 아이와 함께,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분명히 힘든 나날이 되겠지만 세하와 이 아이가 함께라면 그 무엇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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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0년 후] 시리즈를 쓰고있는 필자입니다! 이 외전은 제가 스토리를 정리하기 위해 그동안의 작품들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다 문득 [슬하가 지금 7살인데 그러면 슬하를 가졌을 때는 아직 대학생이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고, 꼭 써보고 싶은 주제가 되어서 이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아직 앳된 모습을 다 버리지 못한 세하와 슬비의 풋풋한 사랑이 귀엽게 느껴지네요ㅎㅎ 또 게임에선 슬비에게 차가웠던 정미가 유리에게 대하는것처럼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구요! 부디 세하와 슬비의 가족이 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독자 여러분 모두가 봐주었으면 합니다!

2024-10-24 23:17:0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