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of Striker-이세하 Ep-8 노이즈 많은 한 걸음
Sehaia 2017-08-10 3
체육 시간은 남자 고등학생이라면 수험에 신경 쓰는 놈들도, 안 쓰는 놈들도 거의 대부분이 마약이라도 한 듯이 날뛰게 되는 마성의 시간이다. 거기에 지금은 7교시. 이것만 끝나면 하교도 하겠다, 마지막 열정을 불태운다는 느낌으로 남자애들은 운동장을 달린다.
축구와 농구라는 스포츠의 간판 아래 모두가 건강한 땀을 흘리며 청춘을 구가한다. 아름다운 풍경이네, 거짓말이지만. 공을 걷어차면 학교 펜스 밖으로 날아가서 터진 채로 발견되게 하는 나로서는 별로 공감이 가질 않는다. 그저 즐거운 듯이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즐겁겠네.’하는 정도다.
물론 각 반 마다 축 늘어진 시체마냥 가만히 있는 애들이 꼭 있기 마련이고, 여자애들의 경우엔 담소의 시간으로 변하기가 일쑤다.
그리고 내 경우엔.
“세하야......이렇게 몰래 게임하다가 들키면 좀 그렇지 않을까......?”
“뭐 어때. 어차피 난 참가도 못한다고.”
운동장 근처 정자에 앉아 게임을 탐닉중이시다. 체력이 바닥을 기는 석봉이는 어차피 체육 시간에 참가도 하지 않으니, 둘이서 통신으로 대전 게임을 즐긴다. 꽃내음을 품은 향긋한 봄바람이 몸을 푸근하게 감싸는 곳에서 즐기는 게임이 또 각별하단 말이지.
위상 능력자는 기초 신체능력자체가 일반인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에 체육시간에는 공식적으로 참가가 금지되어있다. 괜히 설비나 부숴먹지 않으면 다행이란 점에서는 뭐, 납득이 간다. 어차피 측정해봐야 전부다 측정 기준을 가볍게 뛰어넘게 될 건데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도 ok. 그러니 오히려 느긋하게 게임이나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고마울 지경이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어떻게 하면 위상 능력자 수준의 반사 신경을 가지게 되는 건지, 너도 어떤 의미에서는 말도 안 된다고.”
“음.......게임이란 건 하면 할수록 느는 거니까. 대략 하루 14시간 정도만 게임에 투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할 수 있을 거야......”
이 녀석이 안경을 안 끼는 건 여러모로 미스터리로군. 수면 시간을 7시간을 잡으면 거의 깨어있을 땐 항상 게임을 한다는 소리잖아. 그러니 맨날 학교에선 자는 모습밖에 안 보이지. 이런, 그 분홍머리랑 다녀서 그런가, 하마터면 머릿속에서 잔소리를 떠올릴 뻔했어.
지금 하고 있는 대전게임의 경우엔 상대방이 거는 기술을 파악해서 빠르게 키를 입력하면 반격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 들어갔다고 생각한 공격이 반격에 바로 당해버리는 건 매번 당하면서도 어이가 없다.
말이 반격 시스템이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거나 기술의 초기 모션을 보고 바로 반응하지 못한다면 사용하기 힘들어서 거의 예측으로나 사용하는 수준인데, 얘는 그걸 거의 확정적으로 반격에 성공하고 있다. 이게 말이 되냐. 캐릭터의 기술을 다 알고 있는 건 물론이고 그 타이밍을 다 맞춘다면 이젠 더 할 말이 없다. 이 정도까지 압도적이면 별로 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냥 그쯤 되면 빨리 어디 구단에 입단해서 프로게이머나 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으음.......생각은 해 봤는데, 그러면 한 게임만 파야 되잖아. 그건 조금 곤란해.......”
이쯤 되면 진짜 감탄 밖에 안 나온다. 그러면 BJ는 어떠냐고 예전에 권유해 본적도 있지만, 남이 보는 앞에서 시끌벅적하게 게임하는 게 말이 되냐면서 단칼에 거절당했다.
“그건 그렇고, 이 와중에도 유리는 열심이네.......”
또 다른 위상 능력자인 서유리는 뭐하고 있는 가하면, 죽도를 들고 휘두르고 있다. 빨리 위상력에 익숙해지고 싶다는 것과, 검은 잠시라도 놓으면 감각이 쉽게 무뎌진다는 이유다. 도검 소지는 허가받았지만 학교에선 비상사태가 아닌 이상 휘두를 수 없게 되어있어서 가장 손에 익숙한 죽도를 사용 중이다.
정해진 훈련 시간도 아닌데 열심히 하는구나. 그렇게 빨리 위상력에 익숙해지고 싶은 건가? 물론 아니지.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여러 번 반격을 먹고 녹다운이 되어 버린 캐릭터를 멍하니 바라보며, 어제 일을 반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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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이걸로 끝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요. 모두들 수고 많았어. 유정 언니? 여기는 역삼 골목길. B급 ‘트룹 대장’을 비롯한 차원종 전부 섬멸 완료했습니다.”
“그래, 수고 많았어. 이제 복귀하렴.”
“형, 손에 들고 있는 거 뭐예요?”
“야, 큰 소리로 말하지......아.”
이제 다 끝났다며. 그럼 게임 정도는 해도 되잖아. 거기에 이 눈치 없는 녀석은 또 왜 그걸 큰 소리로 말해서 쟤 심기를 살살 긁어놓는 거야.......
두통이 몰려오는 지 손 끝으로 이마를 쿡쿡 찌르며 한숨을 쉰다. 음, 방금 트룹 대장이 휘두른 몽둥이의 풍압이라도 직격이라도 맞은 거니? 빈혈기가 있는 거 같으니 잔소리 하지 말고 얌전히 집에 가서 쉬려무나.
“하아아.......됐어. 맘대로 하렴.”
오, 얘가 웬 일이래? 그럼 리더의 분부를 따르도록 하자. 역시 리더의 말을 잘 듣는 팀원이 되어야죠, 아무렴.
“그건 그렇고, 세하야, 잠시 나 좀 보자.”
“에? 또 갑자기 왜요, 아저ㅆ......아니 형?”
이슬비가 날 놓아주니 이번엔 아저씨냐. 왜 날 가만히 냅두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야?
“잠깐 따로 할 말이 있어. 따라 와. 슬비야, 이 녀석은 내가 데리고 간다.”
“아, 예. 그러세요.”
뒷목을 잡혀서 반쯤 끌려가다시피 도착한 곳은 배팅 센터였다. 난 야구에 취미 같은 거 없는데.
“형, 여긴 왜 데리고 왔어요? 딱히 저랑 배팅으로 내기하고 싶으신 건 아닐 거 같은데요?”
평소와는 달리 약간 진지한 투로 아저씨가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뭐, 별거 아냐. 요 며칠의 훈련 프로그램과 오늘의 전투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확인 차 데리고 와 봤다.”
뭔가 이상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딱히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을 텐데, 아저씨는 아무래도 찜찜하다는 표정을 풀지 않고 있다. 아깝다는 듯이 지갑을 부들부들 열고선 옆의 기계에 돈을 투입하곤 나에게 배트 하나를 던져주신다.
“여기 배팅 센터는 위상 능력자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있거든? 그러니깐 마음 놓고 쳐도 돼. 많이 안 쳐도 된다. 한 3개 정도만 치고 관둬도 상관없어.”
저렇게 자기 돈까지 써가면서 말하는데 안 할 수도 없고, 성가시지만 일단 해 보자는 생각에 배트를 집어 든다. 생각 외로 묵직한 감각이 팔을 누른다. 그럼 공은 얼마나 무거우려나? 일단 먼저 위상력을 배트에 두르고 시작하는 게 낫겠다.
“아, 단 조건이 있어. 배트에는 공이 닿은 순간에 위상력을 두르도록.”
순간 몸이 멈칫한다. 엥, 닿은 순간? 그게 무슨 말도 안 돼는 소리야.
아저씨의 말을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서 어리벙벙한 순간, ‘시작’ 소리와 함께 평범한 야구공 크기의 공이 날아왔으나, 겉 표면이 뭔가 이상하다. 금속 특유의 광택을 눈부시게 빛내며 기세 좋게 날아오는 쇳덩이에 멋대로 배트가 몸을 갖다 댄다.
쩌어어엉.
우으아우으왕아아
팔에 위상력이 둘러져 있는 탓인가, 별로 아프진 않지만 전신이 웅웅거리며 흔들린다. 팔을 시작으로 휘감겨오는 진동이 다리 끝까지 전해진다. 아무래도 위상 능력자도 즐길 수 있게 되어있다는 건 빈말이 아닌지, 순간 위상력을 담지 못한 배트가 살짝 찌그러져있다.
“다음.”
아저씨의 말을 따르듯이 다시금 날아오는 공에 이번엔 집중해서 공을 본다. 공이 날아오는 속도 자체는 빨라도 차원종들을 계속 상대한 나로서는 별로 상관이 없다. 솔직히, 저거보다 서유리의 검이 몇 배는 더 빠르다고. 공이 배트에 닿는다고 생각한 순간, 배트에 위상력을 주입.......
우으아우으왕아아
실패했다.
“마지막.”
왠지 모를 패배감에 이번에야말로 성공하겠다고 온 몸의 신경을 팔과 눈 끝에만 집중한다. 천천히 허공을 굴러오는 것같이 보이는 공이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공이 날아오는 궤적에 맞춰 배트를 정확하게 휘두른다. 스윗 스폿도 맞췄겠다, 이번엔......!
우으아우으.....럇!
한 발 늦긴 했지만 위상력을 몸에 걸친 배트는 공을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스트라이크 존에 정확하게 맞은 공은 전광판에 신기록을 띄웠다. 봤냐고 나름 당당하게 뒤를 돌아선 나를 아저씨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건 좀 안 좋은데......”
어라.......? 예상했던 반응과 조금 다른데?
“이봐, 동생. 설마해서 하는 말인데, 너 위상력 컨트롤이 서투른 거 아니냐?”
“그건 또 뭔 소리예요? 평소엔 잘만 싸우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니에요?”
그러자 아저씨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더니 그 특유의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아니, 농담은 아닌 것 같으니 나도 진지하게 말해야겠군. 동생, 너 위상력 컨트롤이 별로 안 좋아. 위상 구현력은 기껏해야 B정도나 나오려나?”
클로저로서 재등록할 때 나온 수치가 아저씨의 입에서 그대로 나오자 몸에 살짝 긴장감이 더해진다. 뭐지, 내 기록을 훔쳐보기라도 한 건가? 그러나 말투로 봐선 그런 건 아니겠지.
주머니에 손을 쓱 집어넣은 채 벤치에서 일어난 아저씨에게서 난 왠지 모를 위압감을 느꼈다.
“첫 번째 공이 날아왔을 때 몸이 반응해서 위상력을 끌어내지 못했어. 이건 반사 신경의 영역이 좀 관여를 하지만, 우리 위상 능력자는 기본적으로 반사 신경이 좋은 편이지. 뭐, 혹시 라는 생각에 두 번째를 잘 관찰해 봤더니, 역시 무기에 위상력을 두르는 게 늦는 게 보이던걸.”
“변명 같긴 해도, 세 번째는 어쨌든 쳐 냈잖아요? 그것도 꽤 하이스코어로.”
“그것도 좀 문제라고, 동생. 저거 전광판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크다는 생각 안 들어? 평소의 너가 무기에 위상력을 둘렀다고 생각하자. 그럼 얼마 정도 점수가 나왔을까? 내가 보기엔, 한 10분의 7정도나 나왔겠군.”
그러고 보니, 평소보다 억지로 출력을 끌어냈다는 느낌이 안 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잘만 쓰면 상관없는 거 아닌가. 어찌됐든 출력이 강하면 그만큼 적에게 큰 데미지를 줄 수 있을 텐데, 별로 나쁘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 내 감정을 읽기라도 한 듯 아저씨는 내 생각을 날카롭게 찔러오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은 별 문제가 없어. 그러나 전장에서 위상력을 그렇게 남발하는 건 위험해. 억지로 끌어낸 힘은 평소보다 효율이 좋지 않아. 전투 시의 위상력 고갈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알겠지? 일방적인 학살의 시작이다.”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이쯤 되면 무얼 말하고 싶어 하는지 눈치 채겠지.
“네 전투가 근접 전투에만 머무르는 것, 공격 패턴이 단조로운 것, 순간적으로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억지로 위상력을 끌어내는 것, 이 모든 문제는 네가 위상력 컨트롤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야. 위상력 조절에 능숙해지면 근접 전투를 기본으로 하는 나도 이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쭉 뻗은 아저씨의 팔이 허공을 붙잡는다. 그와 함께 보이지 않는 손에 멱살이라도 잡힌 듯이 몸이 아저씨의 주먹 바로 앞까지 날아간다. 눈앞에 놓인 주먹을 보고선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경험의 차이다, 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한 방이었기에.
그러나 몸에 조금 무리가 갔는지 쿨럭거리면서 입가를 한 번 슥 닦아낸다. 그러나 평소의 허당끼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위엄이 있었다.
“네 위상 잠재력은 확실히 대단해. 어지간한 클로저들은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의 양을 지니고 있어. 위상 능력도 발화, 상대방의 방어를 무시한 충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전투에 적합하지. 거기에 네 기본적인 신체능력이 가미되어 여태까지의 적들은 큰 무리 없이 이겨올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그 뿐이다. 네가 결정적으로 위상력을 조절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엔 언젠가 한계가 와. 자, 전위를 담당하는 네가 무너지면 이 팀은 어떻게 되지?”
그야, 알아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전멸이다.
“네 영역과 내 영역은 겹치는 부분이 많아. 기본적으론 전투에선 나도 네 보조를 한다. 우리는 최전방에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며 틈틈이 공격을 하거나, 공격할 찬스를 만들지. 그런 우리가 가장 먼저 유념해야 할 것은, 아니,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다. 그러려면 힘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은 중요하다고.”
“그런 얘기를, 왜 갑자기 하시는 거죠?”
“뭐야, 이것도 모르고 있었던 건가? 이제, 슬슬 요구 훈련시간이 거의 다 찼다고?”
그건 또 무슨 생뚱맞은 소리야?
“이제, 곧 승급 심사에 대한 공문이 올 거다. 이렇게 예외적인 사건이 많이 발생하면, 위쪽으로서도 좀 더 쓸 만한 클로저가 더 필요해지지. 거기에 이 얼마간 너와 슬비, 유리는 훈련 프로그램에 계속 참가했잖아? 그것도 전투 경험으로 일단 쳐주니까, 얼마 안 있어서 수습 요원승급에 대한 공문이 내려올 거야.”
“전 들은 기억이 없는데요.”
“걱정 마. 곧 내려올 테니까.......네 휴대폰, 울리고 있는데 확인 안 해 봐도 되겠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한테는 연락을 하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렇게 타이밍 좋게 갑자기 친구가 생긴다거나, 그럴 일은 없겠지. 그럼에도, 반신반의하면서 열어본 휴대폰에는 이런 메일이 와 있었다.
From. UNION 신서울 지부
팀-검은양에게 알립니다.
예정되어 있던 훈련 시간을 전부 채웠기에, 수습 요원으로의 승급심사를 받을 권리가 주어집니다. 전시 특별 기준을 적용하여, 승급 심사는 작전 구역에서 곧바로 적용됩니다. 성심성의껏 참여하여 강남 수호에 조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거 보란 듯이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었다. 그럼 아저씨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던가?
“그러니까, 승급 심사나 팀을 위해서라도 위상력 컨트롤을 익히라는 거예요?”
“바로 그거지.”
“그건 좀 귀찮은데........”
“뭐, 잘 생각해 봐. 이건 내 번호니까, 나중에 필요하면 문자하고.”
이 말을 끝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멀어져 나가는 아저씨를 난 그저 바보 같이 바라보며 서 있었다.
음, 혹시 모르니까 다시 한 번 휘둘러볼까.......아니, 역시 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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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세하야? 다음 판 안 할 거야?”
“어? 아, 응. 시간도 거의 다 됐겠다, 막판이네. 이번에야 말로 이기고 만다.”
뭐, 적당히 하는 게 제일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적당히 하자. 어차피 승급 따위, 별로 관심도 없다. 봉급이 좀 오른다는 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 볼 때, 서유리로서는 열심히 참가할 이유가 확실히 있다. 이슬비야 더 할 말은 필요 없을 거고. 미스틸이나 아저씨는 적당히 실력도 좋겠다, 가볍게 통과하겠지.
그럼, 나는?
아아, 성가셔. 솔직히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아직 유소년 팀에 뭐 생사의 위기가 오가는 임무를 시키진 않을 테고, 전쟁이라니 별로 실감도 안 난다. 차원 전쟁이야 벌써 몇 년 전에 끝난 얘기 아닌가. 그럴 텐데.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이슬비가 예전에 아저씨와 만났을 때 했던 말이 귓가에서 윙윙거린다. 별로 신경 쓸 만한 일도 아닌데, 굳이 이걸 떠올려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나도 참 문제 많은 뇌를 갖고 있군.
분명 요즘 이상 사태는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설마 A급이 출현한다거나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진 않다. B급이라면 좀 다치기야 하겠지만 내 선에서도 처리할 수 있고, C급 정도는 클로저라면 당연히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강남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결국 수업이 끝날 때까지 게임을 즐기고, 하교 종이 치고 나서 가방을 둘러매고 집으로 간다. 딱히 훈련 프로그램을 받으러 갈 이유는 없다. 요즘 너무 성실하게 참여한 거 같으니, 오늘 하루쯤은 도망가도 상관없겠지. 그럼 자, 어디로 가볼까.
그러나 주머니 속에서 울어대는 휴대폰을, 난 나도 모를 변덕으로, 나도 모를 직감으로 꺼내고 있었다.
분명 이대로 끝나진 않을 건데. 그저 공문을 보내는 정도론 끝나진 않을 텐데.
휴대폰을 열자,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메일이 와 있었다.
From. 유정 누나
미안해, 얘들아. 이번에 너희들이 받을 심사가 조금 어려워질 것 같아. 자세히는 말 못하지만, 아무래도 이번 승급 심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좀 많았나 봐. 반대파들이 너희 실력을 입증하라면서 과제의 난이도를 터무니없이 올리려고 드네. 내가 어떻게든 난이도는 조절하도록 노력할 테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말아줘. 그래도, 어른들의 싸움에 너희들을 말려들게 해서 미안하구나.
하, 하하, 하하하.
그래. 이게 어른들이지. 그래야 그 유니온의 어르신들이지. 뭐, 가뜩이나 하기 싫은걸 잘도 난이도를 높여?
웃기지도 않네. 강남에 B급이 출현한다는 이상이 생겼는데, 서로 싸우고나 있다고? 그럴 시간이 있으면 지원 병력이나 보낼 것이지.
정말, 그 때 이후로 하나도 바뀐 게 없어.
언제까지고, 역겹고, 짜증나고, 타인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는, 그런 인간들이야.
“그럼 한 번 엿이나 먹어보라지.”
보기 좋게 한 번, 그 반대했던 놈들이 어느 정도인지 그 눈에 똑똑히 새겨버리겠어.
머리를 뜨겁게 달구는 문자를 지워버리고, 어제 새로 생긴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치기 시작한다. 신뢰는 안 가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아, 아저씨. 전데요.”
“형이라고 불러. 안 그럼 대답 안 해준다.”
심호흡 깊게 하자. 내 입에서 나올 거라곤 나도 생각 못한 말을 해야 하니까.
“아저씨, 위상력 컨트롤 하는 법 좀 알려줘요.”
“응? 싫어.”
.......뭐요?
“그게 뭔 소리예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언성이 저절로 높아진다. 설마 날 돌고래의 친구로 만들 생각인건가, 이 아저씨?
“에엥. 너한테 익히라곤 했지만 내가 가르쳐 준다고 말한 기억은 없는 거얼?”
.......이 망할 아저씨가. 확 때려 칠까 보다.
“어차피 너니까 또 때려 친다 뭐다 생각하고 있겠지만, 잘 들어. 너와 내 전투 방식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달라. 난 기본적으로 맨손 전투를 하지. 너클을 쓰긴 하지만 그건 조그매서 위상력을 씌우는데 큰 무리가 없는 무기라고. 그 반면에 너가 쓰는 무기는 건블레이드잖아. 덩치도 큰 데다 위상력을 방출하는 것까지 의외로 신경 쓸 게 많은 무기. 아예 운용 방식이 달라.”
갑자기 진지해진 목소리에 머리에 치밀어 오르는 열기가 조금이지만 사그라든다.
“거기에 너도 내가 위상력이 별로 안 남은 건 알겠지? 그래서 난 위상 호흡법이라는 기술을 써서 위상력을 응축하는데, 이건 별로 추천 못해. 익히는 데도 오래 걸리고. 내가 줄 수 있는 건 조언 세 가지 정도야.”
“그게 뭔데요.”
“넌 건블레이드를 들 때 그게 네 몸 같다고 느낀 적 없니? 이게 첫 번째.
서유기라고 하는 훌륭한 고전 문학이 있지. 거기 나오는 손오공은 자신의 무기 여의봉을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두 번째.
마지막이 핵심이겠군. 나는 너와 위상력 운용 방식이 아예 달라서 조언해주기 곤란하다고 했다. 그럼.
네 주변에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위상력을 마음대로 운용할 줄 아는, 거기에 무기에 위상력을 가볍게 씌우는, 그런 귀여운 여자아이가 한 명쯤은 없을까, 동생?”
“.......”
말없이 전화를 끊는다. 이 이상은 별로 들어도 의미가 없겠군. 특히 마지막으로 가면 갈수록 말투가 능글맞아지는 것이 꼭 너구리를 상대하는 것 같다. 마지막 말은 완전히 소거한다고 했을 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건 딱 한 명 있다. 물론 포함하면 아무도 없지만.
걸어가던 방향을 선회해서 유니온의 센터로 뛰어간다. 나도 모르게 몸에서 흘러나온 위상력이 다리로 주입되어 주변의 풍경을 흘려보낸다. 숨을 헐떡일 정도로 전력 질주 한 끝에, 눈앞에 이젠 익숙한 분홍색 머리가 유니온 센터의 문을 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최대한의 속력을 내어 녀석의 어깨를 탁 붙잡는다.
“야, 이슬비!”
“까.......깜짝이야! 뭐야, 갑자기?”
“위상력 컨트롤 하는 법 좀 알려줘.”
“........”
갑자기 입을 헤 벌리고는 아무 말도 못한다. 얘도 이렇게 바보 같은 표정을 지을 줄도 알던가. 아니, 이게 아니라.
“뭐야, 왜 침묵하고 그래?”
“아니, 의외라서. 너도 그런 걸 하는구나, 싶기도 하구?”
말꼬리를 살짝 올리며 함께 눈을 크게 뜨는 게 영 부담스럽다.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찾아온 게 아닐까. 아니, 귀염성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지만, 아저씨의 나머지 말에 부합하는 애를 난 얘 외엔 알지 못한다.
“시비 거는 거냐......뭐, 됐어. 승급 심사를 뚫기 위한 건데. 좀 도와줄 수 있냐.”
내 말에 감동했다는 듯이 살짝 얼굴 근육을 풀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도와줄게. 팀의 전력 증강을 위한 거기도 하니까. 근데, 너 눈이 왜 그래?”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슬비를 따라 내 고개도 덩달아 갸우뚱해진다. 거친 숨을 고르고 말의 의미를 곱씹는다. 이건 무슨 의미지?
그러자 이슬비는 마치 처음 본다는 듯이 내 눈을 뚫어지게 보고는 입을 열었다.
“오른 눈이 노랗잖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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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losenea입니다. 좀 나중에 쓸 예정이던 승급퀘를 좀 앞당겨서 쓰게 됐습니다.
'엥, 세하가 위상력 컨트롤이 미숙하다니, 그게 뭔 소리죠'라고 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얘 훈련생 스킬 보면 참 대단해요. 터뜨리고, 달리고, 화염 흩날리고, 연속으로 베서 터뜨리는 게 답니다. 그 점에 착안, 사실 위상력을 끌어내는 건 할 수 있지만, 컨트롤에는 미숙하다는 설정으로 나와봤습니다.
좀 급하게 써서 모자란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수정할 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재미있으셨으면 좋겠네요. 만일 재미있으셨다면 댓글과 추천 부탁 드립니다
Ep-7 이상 없음, 이상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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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 힘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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