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자원자
웨스커 2017-03-21 2
그를 만난 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우연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안정된 삶을 바래 마지 않았고
그걸 목표삼아 살아왔다. 나는 그저 그의 상관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는 주요 관리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전쟁영웅? 그런 타이틀은 우습기 짝이 없다. 이 세상에서 망가진 전쟁영웅을 반길 사람은 없으니….
세상은 빛나는 영웅을 갈구하도록 만든다. 너희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원한다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고.
허나 수많은 노력 속에서 빛을 쫒다 망가진 영웅들은 삶과 인생을 빼앗기고 철저히 정부에게 관리된다.
빛나는 영웅들에게 손을 뻗은 자들의 말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분명 그도 몸과 마음이 망가졌으리라 믿었다. 그는 위험이 있는 변수 전력이라고.
새로운 팀에 맞지 않는다고도 상관에게 말해보았다. 어림없는 소리였지만…
하지만 그는 달랐다. 위상력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불씨를 움켜쥐어 전장에 나서는 자였다.
전쟁을 겪어 피폐해진 자가 맞을까? 아니면 그저 덜 성숙한 어른에 지나지 않을까?
그는 즐거운 농담을 좋아했다. 비정상적으로 약을 좋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아이들에게 미소를 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팀에서 리더를 담당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이들 모두를 조율할 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려했다. 실질적 리더는 이슬비였으나 분명 아이들의 정신적 리더는 그였음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아이들뿐만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여태껏 내 마음조차도 읽었던 게 아닐까? 알면 알수록 그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아이들이 위험에 처하면 가장 먼저 나서는 것도 그였다. 위상력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망가진 몸으로
그는 사지를 뛰어다니기에 바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출발한다고 해서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닐지언정
자신이 모든 일을 맡을 필요도 없었으나 그는 달랐다. 언젠가 그런 그에 대해 조심스레 타이른 적이 있었다.
" J씨. 조금은 몸 생각을 하면서 뛰어다니세요. 남 몸 걱정할 처지가 아니라구요. "
그러자 그는 어리숙한 웃음을 내보이며 말했다. 아니면 난처한 웃음이었을까?
" 하하하, 아직은 그래도 움직일 수 있어. 이번에도 잘 해결했다구. 그렇지? 건강이 최고지. 암. 새겨두지. "
그의 웃음은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난처한 웃음때문에 그를 혼내지 못했다.
아마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몸이 더욱 망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직접 선택한 길이 험난한 길임에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상황이 힘들어져 정신이 지쳐 쓰러져갈 때에 그는 팀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남에게 한없이 따스했으나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매정해 끝없이 채찍질하는 자였다.
그리고 그런 그가 어째서인지 더욱 신경쓰이게 되어버렸다. 이런 사심같은 건 생겨선 안되었는데.
그를 대면할 때에도, 그를 간호할 때에도, 그의 뒤를 서포트할때도. 그는 언제나 내게 웃음을 주었다.
가면 속에 가려진 슬픔을 알고 있기에 그의 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의 고통을 다가가 감싸주지 않았던 것을 나중에서야 후회했다. 나는 위선자였다.
조금이라도 더 그를 알고 싶었는데, 내 속내를 표현하는 것이 부끄럽고 무서웠기에 방치했던 것이었다.
그저 이 상황이 쭉 유지되기만을 바랬던 나의 한없는 사치.
그리고 우리가 했던 모든 임무보다 더 위험한 임무가 생긴 지금, 그는 또 다시 나서려고 했다.
" 유정씨, 내게 문제가 생기면 다음 작전을 지체없이 수행해. "
그 앞에는 '용'이라 불리는 존재. 군단장 아스타로트가 막아서고 있었다. 검은양 팀 모두가 덤벼들어도 이기지 못할 존재.
더 이상은 클로저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자가 그 앞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수많은 특경대원이 죽었다.
안면식이 있는 수많은 클로저가 죽어나갔다. 그를 지원해 나설 특경대원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클로저가 엄호와 서포트없이 단신의 몸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어딜 봐도 자살에 가까웠다.
위상반전탄밖에 선택지가 남지 않은 시점에서 그가 나선다고 해서 큰차이는 없을 것이다.
단신의 몸으로 무얼 해낼 것이란 말인가? 강남을 구하는 길, 몇번이고 시뮬레이션해도 나오지 않는 답안 속에서
그는 언제나 그랬 듯이 자신이 나선다는 무모한 선택을 했다.
" 가지마요! 더 이상…더 이상 죽으면 안돼요. 다른 방법이 있잖아요. "
" 그 방법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유정씨도 알잖아. 아직 해볼 수 있어. "
알아, 나도 알아. 하지만 당신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작은 확률에 당신을 잃고 싶지 않은 걸.
그리고 당신을 알아. 당신 역시 앞으로 걸어나가기 싫다는 걸. 싫은데도 불구하고 걸어가고 있다는 걸.
"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당신이 사라지면… 아니, 당신이 죽으면 전…. "
그때였다. 그는 날 가볍게 감싸주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어 내게 보여주었다. 언제나처럼 나를 안심시키던 그 미소.
무심코 참고 있던 울음이 기여코 터져버렸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만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몸이 차갑게 식어버린 그들의 시체를 얼마나 더 뒤로 해야만 할까.
아이들 앞에서 성숙한 어른이어야만 했지만 그의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여리디 여린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의 가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울었다. 따스한 그의 체온을 느끼며 우는 나를 그는 말없이 나를 지켜보았다.
" 가지 마요…. 강남이 어떻게 되든…상부의 말이 어떻든 상관없어요. 내 곁에 있어줘요…. "
꾹 참아왔던 그를 향한 마음을 토해내었다. 참았던 눈물만큼이나 깊고도 깊은 곳에 묻어뒀던 내 마음.
그저 그가 사지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 누구보다 전장에 가길 원치 않았지만 누구보다 먼저 전장에 나서던 그의 난처한 웃음.
그는 나의 머리칼을 조금 쓸어넘기더니 조심스레 손을 풀었다. 그리고 나의 눈물을 다정히 닦아주고는 말했다.
" 그럴 수 없어. "
단호히 떨어지는 그의 말. 그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가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명백했다.
그는 매정하게도 멀어져갔으나 붙잡을 수 없었다. 담담히 자신이 택한 길을 받아들이는 그의 뒷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무치는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러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는 말을 이었다.
" 당신이 있는 이 곳을 조금이라도 더 지키고 싶거든. "
여태까지 속으로만 애틋하게 외쳐왔을 그 말이 서로에게 오갔다.
어리석게도 당신에게 마음을 숨겨왔는데 하늘이 매정하게도 마지막에서야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겨우 이어진 그들의 마음이었지만 얼마 안가 끊어질 실타래.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결코 잡을 수 없던 그의 마음은
나의 가슴을 더욱 얽매었다. 그는 더이상 말을 잇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자신이 죽기를 각오한 전장으로.
나는 두 손을 모아 어릴 적 했던 것처럼 내가 버렸던 신에게 기도했다.
단 한번도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던 신이 이번 한번만큼은 나의 소원을 들어주기를 빌며….
" J씨! 정신이 들어요? J씨. "
빛 속에서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였지? 기억이 안나.
그런가? 아, 내게 소중했던 사람. 잠시 그들의 얼굴이 떠오르자 눈물이 흐르는 감촉을 느꼈다.
손을 움직여보았다. 팔이 천근이 된 것 마냥 움직이지 않았다. 몇번이나 허우적대려 노력하다가
전신이 움직이지 않음을 깨닫고 나서야 어둠이 개어지고 희미한 빛이 다가오더니 이내 통증에 눈을 뜨고 말았다.
" J씨! "
" 어어…. 반가운 얼굴이네. 혹시 여기가 천국은 아니겠지? 유정씨. "
지치고 상처입어 드러누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그였으나 그의 얼토당토않은 첫 농담에
다시 눈물을 터져버렸다. 얼굴이 붉어지는 걸 숨기려 했으나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숨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당신의 얼굴을 다시 볼 수가 있어서, 당신의 농담을 다시 한번 들을 수 있어서, 당신의 그 미소가 다시 한번 나를 녹여줘서.
" 내,내가 얼마나…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요?! "
참지 못하고 침대에 드러누운 그에게 달려들어 울었다. 그런 나를 그는 잠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기뻐서 흐르는 눈물은 이상하게도 굉장히 따뜻한 느낌이었다. 다시 당신이 내 곁에 있음을 하늘에 감사해.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그도 크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아, 유정씨. 내가 돌아오면 당신에게 고백하리라 맹세했던 말이 있어. "
" 에…? "
그 말을 듣자 검은양 팀원들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유심히 그 둘을 요리조리 바라보았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듯 그의 얼굴을 바라** 못하고 눈을 돌렸다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말했다.
" 유정씨, 사… 콜록. "
" 사? "
그의 한마디를 듣자 모두들 무슨 내용인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도 얼굴이 붉어져 양손으로 눈을 가린 채 대답을 듣기를 기다렸다.
오랜 시간 꿈꾸어왔던 그 말, 운명처럼 우리를 이어줄 그 말을.
그는 기침이 끝나자 분위기없게도 휴지로 코까지 시원하게 흥 풀고 나서야 말했다.
" 살찐 것 같아. 그렇게 달려드니 엄청 무겁더라. "
" 뭐,뭐에요? "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거니와 좋은 대답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찔리는 구석이 있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자 새벽에 TV를 보면서 과자를 먹고 잘 하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며
노처녀의 삶에 대한 철학을 마음 속 친구와 논하던 내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상사에게 너희 팀은 너무 제멋대로라며 한 소리 듣고는 스트레스를 라면으로 풀던 내 모습 역시 떠올랐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넘어 새파래지고 눈매가 달라지자 그는 뭔가 위험함을 감지했는지 나를 떠보았다.
" 정말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말한거라구. 유정씨 건강이 걱정되서 말…. "
" 그렇게 걱정했으면 내 걱정이나 덜어주지 그랬어요! 일하다가 정말 어쩔 수 없이…. "
성난 황소와도 같은 얼굴이 되자 그는 잘못 건드렸다는 듯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는다고 하여 멈출 수 없는 공세가 바뀌지는 않았다.
" 그런 말 하려고 다시 돌아왔어요? 그럴거면 다시 돌아가서 그냥 콱 죽어버려요! "
화가 나 팔을 어떻게든 그에게 휘두르자 그는 정말 위험하다는 듯 애처롭게 병실에 울려퍼졌다.
" 잠시,잠시만! 이러다가 진짜 죽을 것 같아! 내가 미안해! 크허어억! 살려줘어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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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맺는 말
제이 야캐요
제이 특요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