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삶 (03)
비랄 2017-03-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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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인식.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세상이자 존재 그 자체. 그 안에서는 설령 전지전능이라도 존재의 틀에서 생겨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지전능의 본질은 지극히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존재가 아니리라.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런 '그것'을 세상은 전지전능의 모습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존재(전지전능)임에도 이른바 존재(모순)가 아닌 것. 그것이 '우리'이리라.
[모순(Unknown)이 세상에게 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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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진지하게 생각하자. 지금 나는 무슨 상황에 처한건가?
나는 평범한 아이. 그것도 아직 10대를 막 시작한 꼬마였다. 그런 꼬마가 차원 전쟁에 휘말려 가족을 잃었다. 그때 그건 정말이지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의 보고였다. 그런데 이놈의 머리통은 부조리할 정도로 빠르고 냉정하게, 그리고 한없이 영리하게 돌아가선 그걸 적응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 전쟁터 중심에 던져진 절망. 온갖 죽음이 난무할 지옥에서 느껴지는 공포. 정말이지 정신이 날아가거나 죽는게 나을 정도의 일을 한순간에 전부 경험했다. 그러나 나는 이상할 정도로 쓰러지지 않았고, 자신의 머리는 끈임없이 돌아갔다.
슬프게도 가족을 잃었다? 자신은 살았다. 어차피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데 전쟁터 한복판이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어차피 살아있으면 계속 살아**다. 그런데 왜 두려워하고 있나? 뭐든 해서 살아남아라.
아무 가망도 없는 지옥이다? 그래도 움직여라.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이 가망이 없다면 악마라도 되어서 살아남아라.
…같은 지금의 내가 보기에도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생각들이 나를 일으켰다. 지금와서 보니 그건 도저히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물론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런 발상자체가 없었다. 단지 살려고 발버둥칠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지옥에서 사는 악마가 되어갔다.
차원종을 만났다? 그들은 두렵다. 그들은 나를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아라. 숨고, 도망치고, 맞서라. 뭐가 되었든 살아남은 자가 되는거다. 그들에게 들키지 않게 기척을 다뤄라. 그들이 잡지 못하게 발을 놀려 도망쳐라. 어떤 경우에서든 그들에게 최선으로 대응해서 맞서라.
숨어도 들킬 것 같으면 당황하지 말고 뚫어버려라. 의심과 경계를 한순간의 방심으로 만들어 그를 놓치지 말고 돌파하라. 그들은 인간, 그것도 나와 같은 자들에겐 더할나위 없이 오만할테니 말이다.
도망치다 잡힐 것 같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말자. 여긴 인간의 세상이고, 그들은 이곳을 모르는 침략자이다. 지식을 포함한 인류 문명의 이기를 펼쳐서 벗어나라. 지금 서있는 땅은 문명이 일군 곳이다.
그래도 이도저도 하지 못해서 맞서 싸운다면 항상 최선과 최악을 같이 품어라. 그렇게 생존을 위한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움직여라. 그래야만 인과가 제시한 확률을 조금이라도 기만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가능성조차 없는 기적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체념해라. 그건 세상이 원하는 재앙이다.
반대로 아주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기적이라면 발버둥쳐라. 그것이야말로 희망이란 이름의 기적이다.
이렇게 나는 머리를 채워서 움직였다. 인간임에도 악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어떤 차원종에 의해서 그런 내가 얼마나 바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우습다는 듯이 자신을 한명의 인간으로 대하였고, 나는 그제서야 악마를 연기하던 나를 볼 수 있었다.
"정말이지.."
그러나 이렇게나 어리석은 나는 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고, 악마처럼 죽어가는 나를 살렸다. 그런 마구잡이의 선의와 같이 남긴 유언은 정말이지 눈물나게 제멋대로였다.
'…살고 싶다면 사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너와 같이 악마가 되어선 안되지. 인간인 너는 인간이어야만 하니까 말이다. 내가 나인 것 처럼 누구도 변해서는 안되는 거다. 다행히 너는 나를 만났고, 나는 너를 만났지. 너는 나를 보고 마지막에 순수한 인간의 마음을… 인간의 공포를 되찾아 진정한 인간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런 너를 보고 나의 할일을 정했지. 눈을 뜨면 기억해라. 나는 인간인 너를 살렸고, 두번 다시는 악마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부디 너의 영혼이 영원하길..'
내 머리에 기억된 그의 유언. 나는 이렇게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제 어쩐다?"
그런데 앞으로의 미래가 참으로 걱정된다;
***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몇 없는 친구들의 폭소 메시지. 이걸 들은 나는 매우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굳이 셋이서 이러는 이유는 모른다. 그들이 지(知)의 영역에서 논하지 않고 이렇게 왔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기에 기분이 나빠도 대꾸하며 물어야 한다.
"…아오 ㅆ. 실버. 갑자기 왜 그래? 아깐 삐지더니 이젠 무슨.. 코드도 있네?"
[ㅋㅋ. 정말로 저런 이상한 애를 지켜볼거야?]
"뭐야 그런거 물어보는거야? 네 심심한 제국에 비하면 훨씬 재미있을 일인데?"
기계 제국이라는 이름의 세상은 지금 대화하는 코드라는 존재의 이명인 기계(Rule)과 같이 매우 규칙적인 물질계다. 다르게 말해서 매우 심심한 곳이나 다를게 없는 곳이란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곳의 지배자인 녀석이 남의 유흥에 이렇게 딴지를 걸다니. 정말이지 무슨 이유인지 짐작도 안간다.
[말은 잘해. 너 취향이 달라진거 아니냐?]
"취향? 내가 무슨 취향?"
취향? 내 취향하고 이것들이 이러는게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인가? 하지만 취향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러는 거지?
[ㅋㅋㅋ 노운. 이제 네 취향은 존중할게]
"아앙? 데피.무슨 소리.."
[저렇게 귀여운 꼬맹이에게 네가 그렇게 집중하잖아? 그럼 그렇고 그런 곳에 의심이 간다고?]
"…아오. 데피! 네 평소 모습이나 보고 말해라! 삶이 파란만장하다고 아예 그런 모습으로 다니는 너는 뭔데! 갑자기 셋이서 이러는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지(知)의 초월에서 그런 이야기나 한거야!?"
갑자기 이렇게 들으니 정말 어이가 없다.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니 말이다. 도데체 왜 그렇게 결론이 나는지 정말이지 물어보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부정은 못하기에 이렇게 있을 뿐이다. 지금 부정했다간 더욱 큰일이 일어날 느낌이 드니까.
[그러고 보니.. No.277113. 로드]
"아. 실버!? 잠깐!!!"
정정. 이미 큰일은 났다. 제일 친한 친구의 기분을 더럽힌 것. 그것의 대가가 나한테 오고 있다.
[호오....]
[역시...?]
아무래도 유흥을 제대로 즐기기엔 좀 더 기다려야겠다.
***
저 메신저 시스템은 '코드'라는 존재의 밑에 있는 그들의 전용 메신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