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세상을 살다.
비랄 2017-02-21 1
***
상처입은 검은 용. 인류의 적인 차원종.
상처입은 붉은 소녀. 차원종의 적인 힘을 가진 인간.
두 존재는 서로 적대할 운명이다.
"인간..."
"차원종..."
소녀는 주저 앉으며 채념했다. 저 검은 용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차원을 달리한다. 설령 치명상을 입었어도 저게 자신을 죽이는 것은 손쉬우리라. 그렇다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않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하늘 위의 가족과 다시 만나기를 기도하며 눈을 감는 것이다.
"크으으으으.... 쿨럭!!"
고통의 신음과 자신을 짓누르는 살기가 다가온다.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다. 저 존재에게는 먹이가 절실하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를 놓치지 않으리라. 그리고 나는 저자의 피와 살이 되어버리라. 그렇게 죽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은 어이없이 빗나갔다.
"…눈을 떠라."
"……?"
잡아먹을 듯한 살기가 사라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저 괴물이 나를 가지고 놀려는 것인가? 싫다. 빨리 죽고싶다. 이 이상은 절망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 빨리 죽고 가족과 다시 만나고 싶다. 그러지도 못하고 저런 괴물에게 놀아나는 것은 싫단 말이다.
"…이름이 뭐냐."
"제... 제릴...."
"제릴... 나를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를 해치지 않을테니."
"…뭐?"
무슨 소리인가. 차원종이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고?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나? 싫다. 더 이상은 싫단 말이다. 이런 지옥에서 살기는 싫단 말이다. 저 괴물이 나를 죽여주지 않으면 이 지옥을 벗어나지 못한단 말이다.
"…여긴 지옥이 아니다. 너는 죽지 않았으니까."
"무.. 무슨...?"
"지옥이란 죽은 자가 가는 곳. 지금 너는 살아있다. 비록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겠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널 해치지 않을 것이다."
이 괴물이 도데체 뭐라 말하는 건가? 이곳이 지옥이 아니면 뭐라는 건가. 살아도 지옥은 지옥이다. 이렇게 살면 지옥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아니라고? 이 아프고, 무섭기만 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세상이 지옥이 아니라고?
"…아니다. 어린 인간이여. 네가 살아있는 세상은 지옥이 아니다. 네가 살아가는 한은 세상은 너를 받아줄 것이다. 그러니 죽음을 원하지 마라."
"뭐..?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냐고? 이렇게 죽어가는 나조차 아직 살아있다. 너희가 그리 증오하는 나조차 살 수 있는 세상인데 너는 어떻지? 네가 더 살아야할 가치가 있지 않느겠느냐. 이런 자비로운 세상이 지옥이라 생각한다면 그렇다고 말해봐라 영리한 인간이어. 너는 머리로 답을 알고있지 않느냐."
뭘 안다는 말인가? 가족은 죽고, 몸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불에 그을려 미치도록 아프다. 사람들이 죽고 불타는 이런 세상이 자비롭다고? 너희 차원종이 온게 세상의 자비라고 말하고 싶기라도 한건가? 아니면 이 괴물은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즐기고 싶은건가?
"크으.... 아직도 부정하는 구나... 하지만 너의 영리함은 나의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되리라. 그를 위해서 나는 너를 살릴테니 말이다."
"…뭐라고?"
"크흑... 너를 살린다고 했다. 나는 죽어가는 몸이다. 너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너는 죽으면 안된다. 그러니 나는 너를 살릴거다."
"무.. 무슨 소리를..."
"믿었던 친구에게, 혈육에게 배신당한 나는 살 수 없다. 하지만 너는 너의 어버이가, 너의 형제가 살리고, 세상이 살렸다. 그게 네가 살아야할 이유다."
나를 살린다니. 서로 죽어가는 주제에 이 지옥에서 나를 살린다고? 이런 지옥에서 나를 죽이지 않고 살린다고? 웃기지 마라. 나는 죽을거다. 네가 뭐라고 지껄이든 간에 나는 죽고싶단 말이다. 네가 말한 것처럼 세상이 나를 살렸어도 나는 죽을거란 말이다. 그러니 죽여달란 말이다.
"…그러면서 너는 왜 스스로 죽지 않지?"
"…!"
"그게 해답이다.... 쿠흑..!"
"그.. 그건.."
"말했을 터다. 너는 답을 알고있다. 생명은 가볍지 않고, 그 생명들이 너를 연명시키고, 세상은 너를 살렸다. 그러니 너는 죽지 않은 것이다. 그게 네가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살아남은 이유다."
"그.. 그럴리.."
"크흑..! 제릴.. 너는 어리다. 하지만 영리하다. 지금은 부정하지만 네가 계속 살아간다면 언젠간 긍정하겠지.."
나와 말하는 와중에도 이 차원종의 피는 계속 흘러내리며 튀어올라서 나를 적시고 있다. 뜨겁지 않은 피다. 사람과는 다른 피다. 그런데 왜 이렇게 따스한가?
분명 녀석이 하는 말은 영문 모를 것인데 이 피는 한없이 편안하고, 침대에 누운 것만큼 따스하다. 마치 죽으면서 나를 감싼 엄마의 피와 같을 정도로 따뜻하고, 자애롭다. 그리고 그때와 같이 슬프다.
"…받거라. 그리고 살거라."
"그.... 모.. 몸이..?"
물어보려고 했다. 머리에 있는 많은 것들을. 하지만 그런 여유는 없었다. 그의 몸은 무너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의 피와 함깨 나를 덮어주기 시작했으니까.
"나에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려는 거다. 살거라 제릴..."
"자.. 잠깐! 이.. 이름! 이름을 알려줘!"
"내 이름은......"
이미 형체를 잃고는 내 몸을 덮어가는 그의 피와 살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이런 와중에 물었지만 반드시 알고 싶다. 묻고 싶은게 많았지만 그의 이름만은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
누구도 듣지 못할 말이었지만 그의 생명에 잠겨가는 그녀는 들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
-…….
"너의 선택이 그건가?"
-……….
"알았다. 이제 안식하거라."
***
이거 전편은 있음 내용은 뭐... 쓰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