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야기
에토포시드 2017-02-16 2
위기의 순간에 위상력에 각성한 이후로도 그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아카데미에 가야만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지만, 외박 허가를 받아 집에 돌아가면 그녀가 자랑스럽다며 따스하게 안아주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끝장날 뻔했던 그때의 무력감을 생각하면, 한 사람의 당당한 클로저로서 선량한 이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자신들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하고 엉뚱한 행동을 하는 팀원들이 답답하고 불만족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불만은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자신을 맞아주는 가족들의 미소를 보는 순간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딸랑, 하고 펭귄을 본딴 도어벨이 울렸다. 귀여운 동물을 좋아하는 그녀가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려 산 물건이다. 여간해선 떼를 쓰는 일이 없는 그녀의 평소와 다른 모습에 재미를 느낀 그녀의 아버지가 한동안 이를 가지고 그녀를 놀리곤 했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고소한 냄새가 풍겨오는 것을 보니 그녀의 어머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듯 했다. 예상대로 부엌 쪽에서 잘 다녀왔니,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세면세족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식탁에 앉아 그녀의 어머니와 담소를 나누었다. 한 팀원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오락기를 손에서 떼질 않는다느니, 또 다른 팀원은 자신을 시도때도없이 인형마냥 껴안으려 해서 곤란하다느니 하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참다참다 한 마디 했더니만 글쎄 그 애가요...”
그녀의 생각에 노이즈가 끼었다. 그 아이의 이름이 뭐였더라. 요즘들어 이런저런 일로 바빴던 탓인지 이야기하던 중 무언가를 잊는 일이 잦아진 느낌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녀의 어머니가 ○○를 말하는 거니, 라고 그녀에게 그의 이름을 상기시켜주었다.
“아, 네. 맞아요. 그래서 걔가...”
*
클로저 요원으로서의 그녀의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훈련된 클로저에게 위협이 될만한 수준의 차원종이 억제장치의 방해를 뚫고 출현할 확률은 매우 낮고, 만에 하나 그러한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대개는 대기중이던 상급 클로저가 금새 출동해 처리하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와 그녀의 팀원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잔챙이 처리였다. 물론, 잔챙이라고 해도 일반인에게는 치명적인 존재인 만큼 그녀의 일이 시덥잖은 잡일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료화면을 보면서 언젠가 자신도 성장하여 저런 믿음직한 수호자가 되리라고 몇 번이나 다짐하곤 했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칼을 치켜드는 차원종을 무력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을 다른 누구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팀원들이 잠시 방심한 틈을 타 방진을 빠져나가 도망치려 하는 소형 차원종을 마무리하는 그녀의 손놀림에 망설임은 없었다. 뒤통수에 단검이 꽂혀 간혈적으로 붉은 피를 뿜어내며 쓰러지는 차원종의 모습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녀는 손을 휘두르며 염동력을 행사해 단검을 손으로 불러들였다. 고개를 돌리자 나머지 차원종의 처리를 마친 팀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작전 종료. 복귀하겠습니다.”
소형 통신장비로 보고를 마친 그녀는 그 틈을 못 참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팀원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투덜거리며 주머니에서 손을 빼는 그의 모습에 한숨을 쉬던 그녀의 시선이 문득 그녀가 마무리한 차원종의 시체에 닿았다. 자세히 보니 차원종은 무언가를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의문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한번 염동력을 사용해 차원종의 시체를 들어올렸다. 갑작스레 치밀어오르는 헛구역질에 그녀는 손을 입에 올렸다. 차원종이 안고 있던 것은 꿈틀거리는 핏덩어리였다. 그녀의 허벅지에 겨우 닿을락말락하는 작고 둥그스름한 무언가. 거기에서 비어져나온 사지로 추정되는 무엇인가가 움찔움찔 존재를 주장하고 있었다. 차원종의 유체 비슷한 것일까. 어렴풋이 느껴지는 약한 존재감이 평소에 보던 모습과는 달라도 그것이 차원종임을 알리고 있었다. 역겨운 느낌을 참지 못한 그녀는 무심결에 강한 염동력을 행사하여 그것을 짓눌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차원종의 유체가 터져나가자 그녀는 겨우 입을 가린 손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찜찜한 기분은 남았다. 아무래도 오늘 그녀가 어머니와 나눌 화재는 이와 관련된 것이 될 것 같았다.
“어머니, 이걸로 오늘도 된거겠죠?”
괜스레 어지러워진 마음을 다잡고자, 그녀는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어머니를 불러보았다.
*
“갔군.”
그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무력한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오른 탓이었다. 아이를 안은 한 생존자가 포위망을 빠져나올 때는 어떻게든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교전을 시작했다가는 정찰 임무도 마치지 못한 채 개죽음을 당할 것이 뻔했다. 결국 그는 그녀의 뒷통수에 칼이 박히는 것도,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지키려고 애썼던 아이가 쓰레기처럼 터져죽는 것도 막아내지 못했다. 등에 짊어진 통신기기를 통해 구역 내의 생존자 전멸을 전한 그는 은신처에서 나와 피로 물들어 언 듯 봐서는 붉게 보이는 분홍빛 머리의 여성을 미행했다.
신서울은, 아무래도 쇠퇴하는 중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옳을 듯 했다. 강남 사태 이후 강남 지하에서 발견된 플레인게이트 탐사중에 발생한 이변이 그 시초였다. 전조도 없이 갑작스레 풀려난 강력한 차원종은 그 강대한 정신지배 능력으로 탐사대원과 그들의 호위 클로저들을 자신의 손에 넣고는 어떤 수를 썼는지 어마어마한 숫자의 차원종을 신서울에 풀어놓았다. 그들을 지휘하는 것은 최초에 그의 손아귀에 떨어진 클로저들이었다. 데이터 상으로는 분명 갓 정식요원이 된 풋내기들이었을 터였건만, 차원종이 그들에게 모종의 힘을 부여한 것인지 그들의 전투적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라 할 만했다. 신서울의 대부분이 시체가 널부러진 폐허로 변하는 데에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고, 퇴각을 결정한 상부는 은밀행동에 유리한 그의 팀에게 생존자 수색과 정찰을 명했지만 결과는 시원찮았다. 그가 알아낸 유일한 사실은, 차원종에게 넘어간 클로저 팀의 전 리더가 저녁 이후로는 강남 구석에 위치한 특정 건물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 뿐이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이전까지와 마찬가지로 예의 그 건물에 들어갔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들은 이제 차원종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들이었고, 그들의 행동원리는 그의 이해범위 밖에 있을 것이다. 그는 다음을 기약하며 다른 팀원들이 기다리는 야영지로 향했다.
*
“다녀왔습니다.”
딸랑, 하고 펭귄을 본딴 도어벨이 울렸다. 귀여운 동물을 좋아하는 그녀가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려 산 물건이다. 여간해선 떼를 쓰는 일이 없는 그녀의 평소와 다른 모습에 재미를 느낀 그녀의 아버지가 한동안 이를 가지고 그녀를 놀리곤 했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고소한 냄새가 풍겨오는 것을 보니 그녀의 어머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듯 했다. 예상대로 부엌 쪽에서 잘 다녀왔니,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세면세족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식탁에 앉아 그녀의 어머니와 담소를 나누었다. 오늘은 차원종이 포위망을 뚫고 도망칠 뻔했다느니, 팀원들이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아서 고민이라느니 하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