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내일 봐

루이벨라 2017-01-30 9

※ 지인분의 썰을 바탕으로 써보았습니다.
※ 암광세하x네틱유리
※ 어쩌다보니 정도연 박사님이 나쁘게(?) 나오네요.(그렇다고 제가 박사님 안티는 아닙니다.)
※ 네틱세하x암광유리 버전 : http://closers.nexon.com/board/16777337/11023/





 -또 보자...!

 그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저물어가는 노을 속에서, 번쩍 들으며 나누었던 그 인사. 언제나처럼 또 볼 수 있을거라 믿었기에, 언제나처럼 내일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고 믿었기에 우리는 그런 인사를 나누었는지 모른다.

 -그래, 내일 봐...!



* * *



 "서유리 요원, 지금 어디를 나가는 거죠?"
 "아, 정도연 박사님...? 저 잠깐 나갔다 올려고요."
 "또, '그 곳' 을 가는 건가요."

 한숨이 섞인 정도연 박사님의 물음. 난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는, 이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눈 감아주세요, 박사님."
 "..."
 "그럼, 다녀올게요."

 더는 말을 않는 정도연 박사님의 사인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나는, 오늘도 밖으로 나왔다. 아직 기계화된 몸이 적응되지 않을 테니 익숙해질 때까지는 바깥 출입을 자제하라고 하는 연구진 분들의 말을 오늘도 어김없이 무시하면서.

 연구진 분들은 내 정신 건강을 염려하는 듯, '그 날' 의 사건에 대해 전혀 말을 해주지 않았고, 나도 일부러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난, 모든 것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니, 잊지 않으려고 괴로워도 계속 곱씹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

 '그 날' 의 사건은 너무나도 끔찍해서, 자세한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결과는, 나를 뺀 <검은양> 전원이 모두 사망...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였던 나도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기에, 유니온 측에서는 나한테 사이버네틱 강화 수술을 시행했다고 했다.

 처음 의식을 차렸을 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예전보다 촉각, 시각, 후각 등 모든 감각이 더 잘 느껴지지만 왠지...불순물이 더해져서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의식을 차린 나에게 연구진 분들은 다행이라는 눈빛을 보냈다. 내가 한 달 만에 의식을 차렸다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한 달? 그 기간은 나한테 있어서는 길다고 생각되어지는 시간이었다. 1주일이 4번, 1일이 30번. 그 긴 시간동안 내가...의식을 잃고 있었다, 라니...그제서야 내가 의식을 차리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난 그분들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때요...?

 그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눈길을 피하려고 바쁠 뿐.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의식을 잃기 직전에 본, 그 풍경이 '꿈' 이 아니었다는 사실. 나를 제외한 <검은양> 팀원 전부가 처참한 몰골로, 잔해들과 함께 쓰러져있는 그 풍경이...결코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난 의료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팀원들이 '다시는' 눈을 뜰 수 없을 거라는 상태는 알았다. 너무나도...처참했기에.

 사이버네틱 강화 수술을 한 이후로는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고, 유니온 연구소 한 켠에서 방을 잡고 지내고 있다. 내가 아무래도 최초의 시행자여서 그만큼의 부작용이 있는지에 대해 면밀히 체크를 하기 위해서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매일매일 외출을 한다. 연구진 분들의 입장에서는 계속 체크를 해야 하는데 계속 어디론가 사라지는 내가 참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난 연구소 한 귀퉁이에서 그런 체크를 받으며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 몸의 70% 정도가 기계가 되었다고 했지만, 내 안에 있는 이 감정들은, '그 사건' 이 있기 전부터 18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서유리' 의 감정이니까.

 ...그 많은 걸 갑자기, 져버릴 수는 없잖아.



* * *



 난 매일 '그 사건' 이 일어난 곳으로 찾아간다. 꽃 4송이를 꺾어가지고서. 어떤 꽃인지는 모른다. 다만 길가에 난 꽃들 중에서 제일 싱그럽고 예쁜 꽃 4송이를 골라서 꺾어가지고 찾아간다.

 하나는 슬비 꺼, 하나는 테인이 꺼, 하나는 제이 아저씨 꺼, 나머지 하나는...

 ...세하 꺼.

 우리 모두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여느 때와 똑같은 임무인 줄 알고, 얼른 처리하고 다 같이 오랜만에 회식이라도 가자, 라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나누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걸. 더 많이 안아줄걸. 더 많이...

 ...그 다음 말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겠다. 더 했다가는 저번처럼 부품 하나가 고열을 일으켜 망가질 거 같아서.

 정도연 박사님이 말씀하셨다. 사이버네틱 강화 수술에 썼던 부품들이 '아직까지는' 인간의 극단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버티지 못하는 거 같다고. 그렇게 따지면 인간의 감정이라는 거 엄청 대단한 거잖아?! 라고 생각을 전환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18년 동안 담아온 감정의 그릇을, 나는 아직까지도 잘 담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오늘도 팀원들을 위한 꽃을 올려놓는다. 각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며, 들어주지 않을 그 몇 마디를 덧붙이면서.

 정도연 박사님을 제외한 연구진들은 내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라는 소견을 내보였다. 하지만 난 당장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나 서유리는...평소 성격처럼 그대로인 거 같지만 나도 나 나름대로 많이 힘들었다. 유정이 언니와도 얼마 전에야 겨우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우리 둘은 만나자마자 울음부터 터트렸다. 언니는 내가 마지막으로 보기 전보다 훨씬 더 수척해져 있었다. 간신히 울음을 멈추고 밤늦게까지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언니하고 같이 있으니...<검은양> 팀원들도 전부 살아있는 거 같은 기분이라서, 하지만 죽은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그 꿈같은 사실도 믿지 않는 나를 발견해서.

 꿈은 꿀 당시에는 달콤하면서도 생생하지만, 깨어난 후에는 그 달콤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져버린다.

 그렇기에 이와 반대되는, 그 직전에 있었던 일들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 보자...!

 내일도 볼 수 있을 거라고, 정확히는 내일도 이렇게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지고 있는 저녁놀 아래에서 세하와 인사를 나눈 건 똑똑히 기억한다. 그 때 세하는 왼손에는 게임기를 들고 있었고, 내가 손을 들어 올려 인사를 나누는 걸 보고 자기도 똑같이 오른손을 올리며 했던 대답.

 -그래, 내일 봐...!

 왜 우리는 터무니없던 약속을 했을까. 또 볼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내일 볼 수도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못 볼게 분명했다.

 정신을 차리니 해가 벌써 넘어가고 있었다. 그 때의 저녁놀과 같이 해는, 산 너머에 얼굴을 걸치고 있었다. 난 쭈그려 앉아있던 다리를 피며 일어났다. 몇 시간동안 그렇게 앉아있었지만 특별히 다리가 저려오는 건 없었다. 이것도 사이버네틱 수술 이후로 나타난 증상이었다.

 "...?"
 "야옹~"

 검은 그림자가 하나 조금 보이길래, 설마 싶어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점박이 고양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아, 여기는 이 아이의 집인 모양이었다. 너한테도 나한테도 중요한 곳이구나...먼지를 털며 모두에게 말했다.

 "내일도 올게요."

 아쉬움이 가득담긴 공허한 내 외침만이 그 황량한 공간 안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 * *



 "서유리 요원, 이번만은 절대로 안돼요."

 오늘도 나가려는 내 낌새를 느꼈는지, 아예 정도연 박사님이 문 앞을 지키고 떡 버티고 있었다.

 "왜 안 되는 거 에요, 박사님?"
 "서유리 요원, 서유리 요원은 아직 사이버네틱에 몸이 채 익숙하지 않아요. 그렇게 밖으로 돌아다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서유리 요원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일이 될 거에요."
 "하지만 이렇게 못하면 버틸 수 없을 거 같아요, 박사님."
 "..."

 나의 한숨 섞인 말에 정도연 박사님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문 앞을 버티고 서 있는 걸 그만둔 것도 아니었다. 어색한 침묵. 난 이런 침묵을 제일 싫어했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하는데 정작 떠오르는 말은 지금 정도연 박사님이 제일 듣기 싫어할 게 분명한 '나가게 해주세요' 뿐이었다.

 "서유리 요원의 마음은 이해해요."

 뜻밖에도 먼저 말을 꺼낸 건 정도연 박사님 쪽이었다.

 "저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더 이상은 잃고 싶지 않으니까."
 "...?"
 "제가 주제넘게 할 말은 아닌 거 같지만,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은 있어요. 그때의 저도 그 현실만은 믿고 싶지 않았어요. 달콤한 꿈이라도 있다면, 그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었을 정도였어요."
 "..."

 정도연 박사님은 시선을 먼 곳으로 옮기셨다. 내 눈에는 도저히 안 보일 그런 류의 풍경이, 지금 정도연 박사님의 눈에는 보이는 거 같았다.

 "하지만 이 말 하나만은 할 수 있어요. 얽매어서 가만히 있으면 안돼요. 우리는 나아가지 않으면 안돼요. 그것이 살아남은 우리들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

 정도연 박사님께서는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셨다.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서유리 요원."
 "...!"

 박사님은 문 옆으로 비켜서주셨다. 난 서둘러 밖으로 뛰어나갔다. 예전의 몸과 다르게 아무리 뛰어도 숨이 차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기 위한 듯 기침을 크게 두 번 정도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아직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마지막이라는 말이 내 앞으로 크게 다가왔다.

 어떡하지, 어떻게 하지...?

 이런 일이 언젠가는 다가오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불과 한 달도 안 지난 시점에서 한다는 게...너무도 갑작스러웠을 뿐이었다. 남들에게는 이미 두 달이나 지난 시간이 나한테는 불과 한 달도 안 지난 시간이었다.

 목적지에는 금방 도착했다. 여느 때와 같이 꽃을 올리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눈다. 정말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도 다 꺼낸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데, 이번이 마지막...

 ...마지막이라는 말에 왜 울컥해지는 건 뭘까.

 -(지지직...)서유리...요원?

 유니온 쪽에서 온 송신이다. 난 벌써부터 다시 돌아오라는 이야기인가 싶어서 내심 딱딱하게 되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지금 긴급한 상황이에요. 서유리 요원이 있는 곳 근처에서, S+급 차원종의 위상력이 관측되었어요.

 S+급이면...저번 G타워에서 싸웠던 '용' 이란 존재의 차원종이 떠올랐다. 그 차원종도 그 비슷한 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주위를 휙 둘러보았다. 정도연 박사님의 말대로 주위에 S+급 차원종이 나타났다면 이리 평화로울 리가 없었다. 바람의 내음에서도 위험한 냄새 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곧장 그곳으로 정예 클로저 요원들을 투입하겠어요. 서유리 요원, 만약 그 차원종을 조우하게 되면 무조건 맞서 싸우지 말고, 일단 퇴각하세요. 서유리 요원이 지금 예전보다 몇 배 더 강해졌다고 해도 S+급 차원종은 맞서 싸우기 힘들어요.
 "...알겠습니다."

 통신을 끊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일단 주변 경계를 하는데 어디서 야옹, 소리가 들렸다. 어제의 그 점박이 고양이다. 사람 손을 많이 탔는지 나한테 서스럼 없이 다가왔다. 그 모습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 야옹이는 훌쩍,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온기라고는 별로 느껴지지 못할 텐데도 뭐가 좋은지 갸르릉거린다.

 "야옹이 너한테도 이곳은 중요하겠지...?"

 나한테도, 소중하다. 이 폐허 더미가 뭐가 중요하냐고, 특히 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왜 중요하냐고 묻는다면...여기서 우리들은 마지막까지 함께였으니까. 비석만 덩그렁 있는 그 곳보다, 여기서 말을 거는 게 더...잘 들을 수 있게 만들 거 같아서.

 부스럭- 내 바로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정예 클로저들이 이렇게 빨리 올 일은 없을텐데...가능성이 제일 많은 건 그 S+급의 차원종...정도연 박사님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조우하게 되면...일단 퇴각하라.

 상대방은 내 등 뒤에 있었다. 난 천천히 한 발짝씩,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때 내 품안에 있던 고양이가 폴짝 뛰어내리더니 뒤쪽으로 가버렸다. 고양이를 따라 내 시선도 자연히 뒤로 향했고, 그리고...

 "..."
 "..."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고양이는 내 등 뒤에 있던 상대방의 다리 부근으로 가 온갖 애교를 피울 수 있는 애교란 다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고양이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 같았다. 상대의 눈동자에 오롯이 담겨져 있는 건...

 나...

 그러고 보니 폐허 더미를 전부 치우지도 못해서 세하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매일 마다 찾아온 이유도 그 믿음 하나 때문이었다. 혹여나 세하가, 살아있을 수 있다고...하지만 내가 의식을 차린 건 그로부터 한 달이 훌쩍 지나있던 때였다. 세하는,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 잠정적으로 죽은 거나...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오늘까지, 믿고 있었다.

 "...세하?"
 "..."

 세하...맞지? 내 기억 속에 있는 세하의 모습과 100% 똑같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목구비의 일치율이 99%가 되었다.

 세하가, 굳게 다물어 있던 입술을 열어 내게 말을 건넸다.

 "...서유리."
 "...!"

 아, 세하 맞구나. 머리는 하얗게 되었고, 눈을 섬뜩한 자안(紫眼)에, 아마도 S+급의 차원종의 위상력이라고 추측되어지는 기운을 내뿜고 있기는 했지만...

 세하가...맞구나...살아있었구나...

 주저앉았다. 너무나 기뻐서, 살아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이 순간이, 마냥 깨어나면 사라질 수 있는 꿈이 아닌가 싶어서...

 나지막이, 나는 세하에게 말했다.

 "...안녕? 오랜만이네."
 "..."

 내가 알던 세하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어서, 게다가 차원종의 위상력까지 내뿜고 있어서 혹여 내가 알던 '그 세하' 가 아닐까 싶어서...먼저 말을 건넸지만 두려웠다.

 하지만 그 걱정은 단순한 기우. 세하는 매력적인 호선을 입술에 그리며 나에게 대답했다.

 "응...안녕...?"
 "..."

 웃고 있다. 내가 진심으로 웃고 있는 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느껴졌다.
2024-10-24 23:13:3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