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용서해주세요 - 14. 승급심사 진행 중 -
Articulus 2016-10-14 11
※ 국제공항부터의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국제공항 에피소드까지 클리어하지 않으신 분들 중 스포일러를 보기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이 내용은 기본적으로 클로저스의 기존 설정에 기반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많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와 마찬가지로 국제공항 이후의 스토리는 완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하므로, 본작의 에피소드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BGM과 함께 감상을 원하실 경우, 네이버 UNION 카페나 작가의 블로그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 14-1
"스트라이커……"
"이것 참, 정말이지 저희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적으로 돌린게 확실해졌군요."
"이 잔해에서 검출된 인간의 위상력이 정말로 그의 위상력과 일치하는 것이오?"
"유니온의 데이터 베이스는 거짓말을 안 하죠."
이곳의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의 의중을 살핀 후, 트레이너는 또 다른 화제로 물었다.
"이 사실을 대중에 알릴 생각이오?"
"글쎄요. 지금 당장은 알리지 않더라도, 한 번 더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 때는 알려야하지 않을까요?"
"자신이 없는 눈치로군."
"사실, 개인적으로 전 이세하 군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입장이거든요."
"흠, 의외로군. 유니온은 그를 없애려고 하지 않소?"
"유니온도 사람 사는 곳이에요."
"그렇군. 사람 사는, 곳이지."
왠지 여운이 남는 말을 곱씹으며 트레이너는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에 나타난 이세하의 사진, 분명히 아무런 표정도 없는데도, 왜 이렇게 슬프게 보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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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야…"
눈 앞의 실험대와 같은 의자에 눕듯이 앉아있는 분홍머리의 여자의 이름을 불러보는 김유정 요원관리국 부국장은 미처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분명히 그녀가 동료의 이름만 부르려는 것은 아니었음이 당연하건데, 그녀는 이 모습을 보고 울컥하는 심정이 치밀어 올라서 도저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의식세계로 들어간지 약 10분 정도 지났어요. 별 일 없어야 할텐데…"
곁에서 의식을 잃은채 생명활동만 이어가고 있는 여자의 육체를 지키고 있는 승급시험 담당자인 오세린 요원이 부가 설명을 덧붙였다. 검은양 팀의 남은 인원이 모두 이곳에 도착한 것을 보고 그녀는 조금은 놀란 표정이었지만, 같은 팀으로 오랜 시간동안 활약한 그들의 동료애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하였기에 그녀는 놀란 표정을 금세 감췄다.
"내부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나요?"
"지금 준비중이에요. 슬비의 의식의 행방이 확인만 되면, 금방이라도 영상으로 송출될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무 일 없어야 할텐데 말이에요."
정말로, 너무나도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으로 김유정은 그런 말을 꺼냈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영상이 송출될 때까지 얌전히 모니터 스크린을 바라보며 기다리기로 했다.
◆ 14-2
"여기가 어디지?"
답이 돌아오지도 않을 질문을 이슬비는 던진다.
그녀가 자각하고 있는건 이곳이 어느 가상공간이고, 자신의 의식이 현재 그 안으로 들어와 있다는 것 뿐. 이 안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다. IT 강국이라고 자찬하는 그녀의 모국에서 개발하고 유니온에 납품한 이 가상현실 승급심사 프로그램은 여전히 보완할 점이 매우 많다고 한다. 아무리 특수요원의 승급심사라고 하더라도 이 안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보내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에 투덜거릴 여유가 없다.
그녀에게는 단 하나의 목표가 있을 뿐이다. 이 가상현실에서 주어진 임무를 완벽히 완수해내는 것. 그래야만 그녀의 연인을 구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의식을 집중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마치 여기는 아무 것도 없는 공간 같았다.
위 아래를 둘러보면 보이는 것은 그녀의 신체 뿐. 그녀가 서 있는 이 공간도 짙은 어둠에 둘러싸인 곳이라, 도저히 앞이나 옆, 그리고 위와 아래로도 무엇이든지 찾아볼 수 없다. 애초에 그녀만 있는 공간 같았다.
그 때 어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공적인 기계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특수요원 승급심사에 참여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슬, 비, 요원님께서는 세 단계의 임무를 도전하시게 됩니다. 세 임무를 모두 완수하시게 되면 승급심사의 모든 조건을 만족하게 되며, 요원님의 의식은 자동으로 이곳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모든 임무는 요원님의 기억에 기반하여 의해 재구성됩니다.
먼저 첫 번째 임무는 요원님의 '지혜'를 시험하게 됩니다. 임무에 응하시려면 승낙하겠다는 의사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생각하라는 말에 그녀는, 마음 속으로 승낙의 의사를 표했다.
이 가상현실은 승급심사 대상자의 의식이 입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으로만 의사를 표현해도 충분히 시스템이 인식을 하는 모양이다.
『승낙 의사가 확인되었습니다. 10초 후 제1임무지로 이동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녀의 앞으로 마치 패널과 같은 것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고, 10부터 시작되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준비하는 시간동안 크게 심호흡하며 어떤 임무가 주어질지 예상해보았다.
시스템에 의하면 첫 번째 임무는 자신의 지혜를 시험한다고 하였다.
지혜를 시험하는 거라면, 일종의 지식 테스트를 말하는 것일까? 그런 것이라면 자신있다. 유니온 요원 행동강령이나 관련 법조문은 충분히 소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가 생각을 이어가는 동안 카운트되던 숫자들은 금세 1까지 내려왔고, 이내 0으로 바뀌더니 홀로그램화 되어있던 패널이 사라지고 그녀의 일대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여기는, 강남이잖아?"
평상시와 같은 강남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강남 사태가 일어나기 전의 파괴되지 않은 강남의 거리이다.
물론 실제의 강남은 대부분의 거리가 파괴되어 있고 한창 복구하느라 정신이 없기에 이런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으므로, 그녀가 이 거리가 강남 사태 이전의 거리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녀의 주위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정말로 사람으로 붐비는 거리의 모습은 강남 사태 이전의 강남 거리의 모습과 똑같다. 그런데 이곳에서 어떤 테스트를 한다는 것일까?
의문을 품을 즈음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임무 목표, 유니온의 변절자를 찾아내십시오. 제한시간은 3시간입니다.
변절자로 지목한 특정 인물을 제거하면 임무는 자동으로 완수됩니다.
제한시간 내에 임무가 미완수되거나 변절자가 아닌 일반인을 제거할 경우, 자동 실격되어 의식이 시스템을 벗어나게 됩니다.』
"변절자…"
무척이나 신경쓰이는 말이다.
현재 유니온에서 말하는 변절자는 두 명이다. 하나는 전 신서울지부장이었던 데이비드 리와, 또 다른 하나는 전 신서울지부의 클로저 요원인 이세하. 물론 그녀는 둘 모두가 변절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변절자는 오직 데이비드 리 뿐이며, 세하는 데이비드의 잘못 때문에 튕겨져나간 예시일 뿐이다. 유니온은 자신의 통제 하에 두지 않는 모든 것을 반역죄로 묻기 때문에, 세하 역시 그런 부당위한 취급을 받는 것일 뿐이다.
"뭐야, 왜 그렇게 멍하니 서있어?"
"어?"
너무나도 당연하게 들려온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은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이다. 지금은 들을 수 없을 이 목소리가 왜 들리는거지?
그녀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거기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그녀의 남자가 있었다. 단 한 명,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그 남자가 있다. 이세하이다.
"이세하, 네가 어떻게?"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거야, 이슬비? 걷다가 갑자기 멈춰서 멍하니 있더만."
고개를 잠깐 갸우뚱해보는 이슬비.
아, 설마 이것은 그녀의 기억에 남아있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강남 사태가 일어나기 전, 그와 함께 강남 일대를 순찰하던 당시의 기억인가보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그런 일이 있었다고만 생각이 들 정도의 기억이다. 모든 것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할 수는 없기에 그 때의 그 일처럼 재현해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의 의구심에 해답을 주려고 했다.
"아, 그게…"
"아~ 설마 저거 때문이야?"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어느 만물가게 앞의 가판대에 놓여진 커다란 펭귄 인형이었다.
이제서야 기억이 날 것 같다.
언젠가 그녀는 그와 함께 거리에 나올 일이 있었다.
강남 거리를 돌아다니던 우리의 앞에 바로 이 가게가 나타났고, 그녀는 저 펭귄 인형에 너무나도 눈이 쏠렸다. 잠시나마 멈칫 거리고 저것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그가 걸어왔던 말이 바로 방금 전의 그 말이었다. 그리고 이어질 말은,
"뭐야, 이런 취미를 가지고 있었어?"
물끄러미 이세하는 이슬비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잠시 펭귄인형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만족해하는 얼굴로 그는 말했다.
"가지고 싶다면, 하나 사갈래? 돈은 내가 낼게."
'그래, 기억이 나.
나, 분명히 이 때 차갑게 내쳤지.'
그녀의 기억에 의하면, 이 말을 듣고 그녀는 자신의 유아틱한 취향을 감추기 위해서 이세하에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어이없어하던 그의 표정이 그대로 떠올랐다.
그들은 이 때 크게 한 번 싸웠고, 그 뒤로 하룻동안은 서먹했었다. 다음 날 그녀가 사과하는 것으로 일은 정리되었지만, 이 때의 일은 아직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의 호의.
사실 이세하가 저렇게 누군가한테 사주겠다고 먼저 말하는 일은 볼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이미 시인했듯이 그는 새로운 게임을 사기 위해서 항상 돈을 저축하는 스타일인지라,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자신의 돈을 쉽게 내어주지는 않는다. 그 상대가 어머니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덧붙였지.
그런 그가 이렇게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어쩌면, 세하는 이때부터 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녀는 무척이나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후회했다.
어째서 그의 손길을 잡지 못했고, 그에게 화를 냈던 것일까? 리더답게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팀원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정말 쓸데없는 자존심이었다고 그녀는 다시 생각했다.
이미 그녀는 그와 연인 관계에 들어섰고, 그의 모습을 많이 이해했다. 그의 행동, 그의 사고방식, 완벽하게 알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은 서로를 많이 이해해가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 접어든 그녀에게 예전과 같은 차가운 반응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기억 속의 그라고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만큼은 눈 앞의 이 남자는 이세하이기 때문이다.
얼굴을 살짝 붉히며,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내가 언제 허투로 이야기 꺼내는거 봤냐? 이리 와봐, 좀 더 보고 가자."
"응."
그리고 그들은 가게 밖의 가판대에 있는 펭귄 인형만을 보는게 아니라, 어느새 가게 안으로까지 발걸음을 들여놓고 있었다.
과거의 경험을 완전히 뛰어넘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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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겹군. 이런 걸 보고만 있어야 하나?"
"좀 더 지켜봐요, 관리관 님."
"응? 나현 씨, 뭔가 손이라도 써둔거야?"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은 정말로 다루기 쉽죠."
"그게 무슨 말이야?"
"지켜보시면 알게 될 거예요. 지금은 달달하니까 조금만 더 지켜보도록 해요."
"쓸데없이 낭만파여서는……"
짙은 색의 정장을 입은 이들이 모니터 화면에 송출되는 영상을 보면서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특히 여자의 표정이 제일 흥미로웠는데, 무언가를 기대하는 모습으로 계속해서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기대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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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찾아주세요!"
가게를 잠시 둘러본 후, 이슬비와 이세하는 가게에서 무언가를 사서 나왔다.
이슬비는 커다란 펭귄 인형을 품에 안고서 이리저리 돌려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무척이나 흐뭇한 미소로 연신 웃는 그 역시 기쁜 것처럼 보인다.
"꽤나 마음에 드나보네?"
"응!"
"그런데 그거 정말 집결지까지 들고 갈거야?"
"왜? 별로야?"
"아니, 그냥 뭐…"
살짝 얼굴을 붉히는 이세하.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슬비가 아니다. 예전 같으면야 무심코 넘겼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자기만 들을 정도로 작게 무어라고 그가 말했지만, 그녀의 귀를 넘어갈 수는 없었다.
"잘 어울린다고?"
"아, 아… 그, 그게!"
"고마워, 세하야."
"어? 으응, 고맙긴."
무척이나 부끄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다.
여러모로 그나 그녀나 만족한 듯이 계속해서 강남의 거리를 걸어갔다. 그들의 발걸음이 강남 GGV에 닿을 때까지.
◆ 14-3
"그러니까 그 차원종의 잔해에서 이세하 씨의 위상력이 발견되었다 이말인거죠?"
"그래. 정말로 끔찍한 일이다. 다행히도 담당자가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더군. 덕분에 이 일은 아직 유니온 상부에 보고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다면, 그 땐 정말로 이세하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렇게 되는 걸 물론 원하지 않을테고요, 트레이너 씨?"
"당연한 말이다. 애초에 우리가 이빨을 드러내야할 상대는 데이비드 뿐이다. 그 외의 사람에게는 들이댈 필요가 없어."
"그렇다면 우리는 이세하 씨를 적대하지 않아야 하나요?"
하피의 질문에 트레이너는 잠시 말을 거두었다.
바로 대답하기에 어려운 질문이다.
확실히 늑대개 팀의 행동노선은 엇갈려 있다. 이세하를 제거하라는 유니온의 비밀 지령을 받은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이세하의 목숨을 거두어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그의 말은 적대대상을 데이비드만으로 한정시키고 있다.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인 건 확실하다.
트레이너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곧 말을 꺼냈다.
"우리가 상대해야할 대상은 확실히 데이비드와 그의 수하들 뿐이다. 하지만 이세하가 스스로 인류의 적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 역시 상대해야만 한다. 차원종에게서 그의 위상력이 발견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인류를 향한 적대행위를 할 경우에 그를 처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아직 그가 인류에 대해 적대활동을 했다고 볼만한 일은 없었으니, 아직 우리는 그를 적대해서는 안 된다. 유니온의 명령에만 복종하는척 하면서, 그의 진의를 파악하는게 더 우선되어야 하겠지."
그의 대답을 듣고 하피는 그의 의도를 이해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티나가 끼어들었다.
"그는 인류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거지, 티나?"
"처음 변종된 그를 조우했을 때, 그에게서 쓸쓸함과 슬픔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쓸쓸함과 슬픔이라고? 그것이 무슨 상관이지?"
"그가 차원종이 되기 전, 그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굳이 그 길을 선택하고, 다른 모습을 보였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가 차원종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를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고, 그렇다면 그는 데이비드에 대한 복수심만이 있을 뿐이지, 인류에 대한 적대감은 없다고 판단된다. 그가 인류를 배신했다는 건 그저 유니온의 판단일 뿐이다. 내 생각은 이상이다."
티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트레이너이기에, 역시나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 태도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나타에게 있어서는 당장 뭐라고 해주고 싶지만, 트레이너의 얼굴 표정을 봐서는 쉽게 말이 나오지 않기에 참고 있다.
"어쩌면,"
어렵게 연 입에서 나온 말에 모두가 주의를 기울인다.
"유니온과 싸우게 될 지도 모르겠군."
그 말이 가지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한 모두이기에 더 이상의 말은 붙이지 않았다.
조용히 그들은 시기를 기다릴 뿐이다, 강북의 어느 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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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맘에 드나보네."
집결지까지 펭귄인형을 끌어안고 온 슬비를 보면서 세하가 말했다.
정말로 그녀의 몸집의 반 만한 커다란 인형을 끌어안고 왔으니, 집결지에 모인 그녀의 동료들은 무척이나 신기해할 수밖에 없다.
"슬비야, 슬비야, 그거 누가 사준거야? 진짜 귀엽다~"
탐나는 눈빛으로 유리는 눈을 반짝이며 인형의 출처를 물었다.
그녀는 부끄러운 눈치로 말했다.
"세하가 사줬어."
그녀의 답을 들은 유리가 꽤나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세하와 유리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더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슬비에게 반문했다.
"저 세하가? 게임 외에는 돈을 안 쓰는 저 구두쇠가?"
"야, 서유리, 구두쇠라니… 말이 좀 심하잖아…"
"왜? 맞잖아. 너 정말 게임 밖에는 돈 안 쓰잖아? 그런데 무슨 일이야, 슬비한테 인형을 사주고? 저거 꽤 비싸지 않았어?"
"인형치고는 비쌌지만…"
"흐음~"
유리는 슬비와 세하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번갈아가며 보더니, 이내 뭔가를 알아챈 듯 씨익 웃음을 지었다. 유리는 꽤나 감이 좋다, 아마도 그것이 이곳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것일까?
그녀는 세하에게 잠깐 이리와보라는듯 손짓을 하더니, 가까이 다가온 그의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소곤소곤 이야기하였다. 이내 세하가 얼굴을 심하게 붉히고 손사래를 치며 무언가를 부정했다. 그것을 본 유리는 더욱 확신에 찬 얼굴로 짖궂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슬비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
"세하가 너 좋아하나봐."
"응?"
"얼레? 안 놀라네? 알아차리고 있었던거야?"
"아, 아니, 그런건 아니고…"
무척이나 싱거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는 아쉽다는듯 말했다.
아주 커다란 목소리로,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목소리로, 둘 사이의 프라이버시를 그대로 까발렸다.
"뭐야 두 사람, 이미 사귀고 있었던거야?"
"그, 그게…"
"야, 서유리! 사귀긴 누가 사귀어! 내가 이런 잔소리꾼이랑 사귄다고?!"
세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씩씩거릴 뿐이었다.
이미 현실에서는 이세하와 연인 사이인 이슬비에게 있어서 이것은 그다지 당혹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이 시기에는 그와 아직 연인이 아니던 시기였기에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 지가 가장 큰 관건이었다.
씩씩거리던 세하가 슬비를 바라보더니, 서유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야, 이슬비! 너도 저 녀석한테 좀 뭐라고 말해봐!"
"그게 있지, 얘들아."
중대한 발언이다.
이제 슬비의 말에 따라 두 사람의 관계가 결정된다. 과연 그녀는 어떤 말을 꺼낼 것인가, 모두가 숨 죽여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사실, 나 세하를, 좋아해."
"엑?"
"헐."
"우와아아! 형이랑 누나랑 사귀고 계셨던거 맞네요!"
천진난만한 미스틸테인이 기쁘게 웃으면서 나란히 서있던 두 사람에게 와락 안겼다.
엄청나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세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있었고, 슬비의 입에서 공개된 충격스러운 진실에 유리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놀랐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저 뒤의 전봇대에 기대서 오늘의 신문을 읽고 있는 제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청춘은 좋은거야'라고 말하며 두 사람을 칭찬했다. 그러더니 잠시 읽던 신문을 접고 세하의 옆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툭치며 말했다.
"어이 동생, 여자한테 고백을 받았으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 거 아닌가?"
"아… 그, 그게요."
머리를 한참이나 긁적이던 세하가 슬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안타깝게 첫타는 뺏겼지만… 사실, 나도… 너, 좋아해."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무척이나 연애소설의 한 장면과 같은 이 장면에 서유리는 기쁨에 찬 비명을 지르며 두 사람의 등에 연신 손바닥을 날렸다. 엄청 따끔한 감촉에 두 사람은 비명을 질렀다.
매우 흐뭇해하는 미소를 지으며 제이는 세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여주고선, 다시 방금 전까지 그가 있었던 전봇대로 가서 기댄 후 읽던 신문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검은양 팀의 이런 소란에 강남 GGV 뒷골목을 지나가던 사람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곧 자리를 옮겨서 그 근처의 어느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서 음료를 시키려던 그들에게 익숙한 사람이 다가왔다.
"아, 모두 여기 있었구나. 한 자리에 모여 있어서 다행이야, 잠시 밖으로 나와보렴."
검은양 팀의 관리요원 김유정이다.
이 당시의 그녀의 얼굴에는 전혀 수심이 없어 보인다. 적어도 현실의 그녀는 연이은 배신에 이런 모습을 최근들어 줄곳 보여주지 않았다. 가능만 하다면 시간을 이 때로 되돌리고 싶다고 슬비는 생각했다.
그녀의 말대로 그들은 주문을 하려던 것을 멈추고 카페 밖으로 나왔다.
카페 밖으로 나온 그들에게 김유정이 말을 이어나갔다.
"우선 다들 밖으로 나오라고 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우리 팀에 정말 중요한 분이 오셨단다. 모두 인사를 드려야할 것 같아서, 밖으로 나오라고 했어."
"중요한 분이요?"
슬비는 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이 시기에 자신들을 찾아온 '중요한 분'으로 여겨질만한 사람이 있었던가? 이런 기억은 정말로 그녀에게 없기 때문에 그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너희 모두 처음 뵙는 분일거야. 우리 검은양 팀을 창설하시고 우리를 계속해서 도와주신 감사한 분이셔."
그녀의 말이 끝나자, 그녀의 뒤로 주차되어 있던 검은 자동차의 문이 열리더니 어느 남성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갈색 머리에 안경을 쓴 젊은 신사였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못해 지겨울 정도이며, 검은양 팀과 유니온의 배신자인 그 남자이다.
"소개할게, 데이비드 리 국장님이셔."
"반갑네, 검은양 팀. 유니온 신서울지부의 데이비드 국장이네. 자네들의 얼굴이 보고싶어 이 근처에 온 김에 유정 씨에게 부탁해 자네들을 만나자고 하였네. 아, 초면이 아닌 사람이 여기 한 명 있긴 하군."
이슬비는 이 때 데이비드를 만난 적이 없다.
그녀가 데이비드를 처음 만났던 것은 강남 사태가 한창 진행될 무렵이었다. 지금은 그 때보다 적어도 몇 주는 앞서 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도대체 왜 이 남자가 이곳에 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한 가지가 떠올랐다.
유니온의 변절자를 찾아서 제거하라는 첫 번째 임무, 그녀는 지금 그 임무를 진행 중이었다. 그렇다면 그 임무를 위하여 그녀의 기억에도 없는 일이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것일까?
유니온의 변절자는 너무나도 그녀가 잘 알고 있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이 남자가 아닌가? 이 남자야말로 유니온의 진정한 변절자이자, 세하와 자신을 이 지경에까지 빠뜨린 만악의 근원이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악으로 가득차 있는 이 남자의 얼굴을 보며 슬비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를 죽이기로 마음 먹었다. 유니온의 변절자는 바로 이 남자이다.
그녀는 자켓 주머니 안에 손을 넣고, 그 안으로 단검 하나를 소환하여 꽉 쥐었다. 놈이 가까이 다가오면 놈을 그대로 찌를 것이다.
데이비드는 서유리와 미스틸테이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하더니, 제이와도 악수를 나누고 이제는 이세하 앞으로 섰다.
그에게 악수를 청하나 싶었는데, 돌아온 것은 다름 아닌.
"서유리 양, 미스틸테인 군, 제이, 그리고 이슬비 양.
당장 이 녀석을 포박하게."
"네?"
"이세하 군을 포박하라고 하였네."
"갑자기 왜 그러시는거죠?"
"그가 유니온을 배신하고 차원종과 손을 잡았다는 첩보가 있었네. 이에 그를 취조할 생각이네."
이 무슨 청천벽력과 같은 말인가?
그녀가 되물을 새도 없이 이세하가 반응을 보인다.
"무, 무슨!"
이세하가 자신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건블레이드에 손을 가져간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재빠르게 그의 뒤에 있던 김유정이 이세하를 향해 권총을 겨누며 말했다.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쏠거야."
"망할…!"
"유정 언니, 세하한테 왜 이러세요!"
"슬비야, 왜 이래? 데이비드 국장님의 말씀을 못 들었니? 어서 세하를 포박해."
"세하는 변절자가 아니에요!"
슬비의 변호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은 그녀의 기억 속에 전혀 없는 일이었다. 분명히 이 가상세계는 그녀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도저히 이슬비는 알 수 없었다.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없었고, 지금 당장 그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동료들의 반응을 살폈다.
그들이라면 분명히 이세하의 무죄를 증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주리라 믿으며 그들을 바라보았을 때, 그들은 이미 이세하를 양 옆에서 붙들고 있었다. 이세하의 오른팔을 붙잡고 있는 제이가 슬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장, 어서 이 녀석을 붙잡으라고. 아침에 브리핑 나눴잖아. 오래 전부터 이 녀석을 붙잡을 날을 기다리던 건, 대장이 아니었나?"
"무슨 말이야, 그게…"
"흠, 유정 씨. 똑바로 브리핑 한 건 맞겠지?"
"네, 국장님. 분명히 오늘 아침에 이세하를 제외한 모든 팀원에게 브리핑을 했어요. 슬비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는, 저도 도저히 알 수가 없네요."
"뭐, 좋아. 이 녀석은 완벽히 포박당했으니까. 제이, 서유리 양, 녀석을 눕히게."
데이비드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이세하를 바닥으로 내려치듯 눕혔다.
그 충격에 세하는 고통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그의 처지를 생각해주지 않았다.
모욕적으로, 그리고 강제적으로 눕혀진 그의 앞으로 데이비드가 다가간다. 그리고 그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데이비드는 한쪽 무릎을 꿇고 한 손을 이세하의 턱가에 대고서 들어올렸다. 시선이 맞자 그는 말을 이어갔다.
"자, 이제 슬슬 말해보시지. 자네가 차원종과 내통하고 있다는 건 이미 자명해진 사실이야."
"무슨 개소리야!"
"개소리라니, 이것 참 가정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어린**군."
"**! 유니온을 배신한 건 너잖아! 그리고 나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하고 있는 거잖아!"
"들어줄 가치가 없는 말을 하고 있군. 훗, 그러고보니 배신자는 보통 현장 처리가 원칙이었지. 굳이 취조를 할 필요도 없군."
그는 다시 일어서더니 이슬비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
"이슬비 양, 녀석의 목숨을 거두게."
"뭐라고요?!"
"잘 못 들었나? 변절자 이세하의 목숨을 거두라고 명령했네."
"뭔가 잘못 된거야, 이게 아니야!"
"자, 어서. 자네가 지금 자켓 주머니 안에 숨기고 있는 그 단검으로, 놈의 숨통을 끊어놓으란 말이야!"
단검의 정체를 데이비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다 읽히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온 몸에 힘이 저절로 빠졌다. 그 덕에 단검을 쥐고 있던 손이 자켓 밖으로 빠져나왔고, 단검 역시 자켓 밖으로 빠져나와 땅에 힘없이 떨어졌다.
그녀가 이세하를 죽일 의사가 전혀 없는 것을 확인한 데이비드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권총을 하나 꺼내어 그녀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피를 손에 묻히지 않게 해주지. 이걸로 놈을 죽이게. 단 한 발로 놈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란 말이세."
"못 해요! 세하는 변절자가 아니라고요!"
"흠. 정말이지 실망이군, 이슬비 양."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그녀의 손에 쥐어준 권총을 다시 거둬간 데이비드는,
그대로 이세하의 머리를 향해 권총을 조준한 뒤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안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
하지만 이미 늦었다.
위상관통탄은 그대로 권총의 약실을 떠나 발사되어, 이세하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선명하게 붉은 선혈이 곳곳으로 튀었고, 무방비상태로 총탄에 직격당한 세하는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눈 앞에서 세하의 죽음을 목도한 그녀는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증오가 끌어올랐고, 당장이라도 그녀의 애인을 죽인 이 남자를 죽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그녀의 온 뇌리를 휩싼다.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패배해서…,"
"지금 뭐라고 했나, 이슬비 양?"
"죽어어어어어엇!"
"응?"
자신을 향해서 쏘아진 증오의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자신에게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알아차린 데이비드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잠시 자신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 위로는 그가 타고 왔던 검은색의 자동차가 부유하고 있었고, 그것은 중력가속도와 이슬비의 염동력이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더해진 속도로 그대로 지상을 향해 자유낙하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자동차는 그대로 지상에 서 있던 남자를 무게로 짓뭉개버리고, 지면에 닿기가 무섭게 매서운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로 인해 주위의 모든 것이 일순간만큼은 희게 변했고, 모두가 폭발의 기세에 휘말려 정신을 잃는다.
슬비 역시 정신을 금방이라도 놓칠 것만 같을 지경에 이르렀다. 도저히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원망스럽고, 모두를 죽여버리고만 싶다. 아끼던 동료라고 생각되던 이들의 배신을 당한 그녀, 눈 앞에서 이유 없이 죽어간 그녀의 애인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모두를 향해 저주를 퍼붓듯이 이슬비는 시끄럽게 비명을 질렀다. 데이비드 뿐만 아니라, 이세하의 죽음을 방조한 모두를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녀는 곧바로 증오의 시선을 다른 이들을 향하여 옮겼다.
그 때, 시스템의 인공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 임무 결과. 클리어.
임무 완수에 소요된 시간. 1시간.
축하드립니다, 요원님. 두 번째 임무가 곧 진행됩니다. 승낙하시겠습니까?』
"두 번째 임무? 필요 없어. 먼저 저 녀석들부터 죽일거야."
악에 받친 목소리로 낮게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시스템은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이어갔다.
『외부의 명령입력으로 두 번째 임무로 이어가겠습니다.
두 번째 임무는 요원님의 '강인함'을 시험합니다. 두 번째 임무지로 이동합니다.』
시스템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모든 것이 검은 색으로 바뀐다.
일대가 완전히 검은 빛으로 물들자, 그녀는 화를 내었다.
"왜! 난 두 번째 임무 따윈 원하지 않아! 왜 마음대로 진행하는거야앗!"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더라도 돌아오는 답은 없다.
그리고 10초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의 주위가 일제히 변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아마도 외부 차원. 일전에 여러 번 와 보았기에 눈에 익은 곳이다. 아무리 소리질러도 들려오지 않던 시스템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임무 목표, 임무지에 나타나는 모든 차원종을 제거하고 생존하십시오.
끝까지 생존하게 되면 임무는 자동으로 완수됩니다.
요원님이 사망하게 될 경우, 자동 실격되어 의식이 시스템을 벗어나게 됩니다.
10초 후 차원종이 소환되오니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 없이 진행되는 이 승급 심사에 그녀는 악의를 가지게 되엇다.
이곳에 들어온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고, 이곳으로 그녀를 내 몰았던 유니온이 증오스러웠다. 당장이라도 이 증오와 분노, 그리고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해야 할 것만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10초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녀의 주위로 수많은 차원종들이 소환되기 시작하였다.
임무를 보아 계속해서 차원종이 소환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첫 번째로 소환된 것은 차원종 중에서도 가장 약한 급에 속하는 스캐빈저이다. 수많은 스캐빈저들이 그녀의 일대를 감싸고 그르렁대며 그녀를 노려본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 대치가 이어졌지만, 곧 그것은 그녀의 말과 함께 깨졌다.
어느새인가 그녀의 두 손에는 단검이 한 자루씩 소환되어 들려있었고, 날선 위상력이 그녀의 몸 주위로 발했다. 위상력을 느낄 수 있는 차원종들은 이 날선 위상력에 주눅들었고, 곧 그녀는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낮고 살기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복수의 시간이야, 짐승들."
◆ 14-4
"하하하하하! 뭐야, 나현 씨, 이런 드라마도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마음에 드셨나요?"
"암, 들고 말고. **의 얼굴이 저렇게 망가진 걸 보면서 속이 타들어갈 검은양 팀의 모습을 생각하니 속이 다 후련한걸? 그나저나 이렇게도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군?"
"무의식(기억) 속에 저장된 재료는 무궁무진하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어가는게 바로 꿈이죠.
우리는 저 아이에게 악몽을 보여주는 거고요."
"좋아좋아, 아~주 좋아. 계속 악몽을 보여주라고, 나현 씨."
"후후, 기대해주세요."
.
.
.
"언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에요!"
"나도 도저히, 모르겠어. 신이여, 맙소사."
승급 심사 내부의 상황을 영상으로 지켜보고 있는 검은양 팀원들은 말을 잊었다.
지금 영상으로 보고 있는 이 여자 - 이슬비 - 가 과연 그들의 동료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슬픔과 분노로 가득찬 그녀의 모습 속에서는 평소의 차분하고 인정 많은 그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정도로 그녀에게 첫 번째 임무가 준 정신적 충격은 크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아무리 가상세계라고 하지만 눈 앞에서 그녀의 연인이 특히나 그녀의 원수와 같은 사람에게 죽어나가는 그 모습은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악몽 중의 악몽이었다.
보다 못한 제이가 김유정에게 캐물었다.
"유정 씨, 유니온은 이딴걸 승급심사 프로그램이라고 만든건가? 저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미안해요, 미안해요, 제이 씨. 저는 이 정도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 안되겠어. 당장 억지로라도 대장을 밖으로 끌어내야해. 안 그러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아, 알겠어요. 오세린 요원, 슬비의 승급심사를 강제적으로 종료시켜주세요."
"아… 저도 계속 승급심사 프로그램을 종료시키려고 하고 있는데요, 시스템이 말을 듣지 않아요!"
"뭐라고요?"
"관리자 권한의 액세스가 계속해서 거부당하고 있어요."
"그게 무슨…"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휘성이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제 생각인데, 시스템이 해킹 당한 것 같아요."
"이 시스템은 아직 모든 요원들에게조차 공개되지 않은 신형 프로그램이야. 그럴리는 없어."
김유정은 그의 말을 부정했다.
정말로 그녀의 말대로 기존의 특수요원 승급은 큐브와 같은 시스템에서 이루어졌기에 모두에게 이미 공개가 된 바가 있더라도, 지금 이슬비가 진행하고 있는 이 신형 시스템은 그 존재 여부조차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실제로 이 시스템을 처음으로 시험하고 있는 이도 이슬비이니까.
아주 만약의 가능성이라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굳이 이 시스템을 해킹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 시스템의 존재 여부를 알고 있을 유니온의 상층부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 시스템을 해킹했을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유니온은 이 시스템을 테스트한 결과를 원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시스템을 놔두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김유정은 단호하게 시스템은 해킹당하지 않았다고 부정했지만, 그에 대해 돌아온 한휘성의 답은 의외였다.
"꼭 요원들, 그러니까 유니온 사람들로 한정지어야만 하나요?"
"그렇다면? 짚이는 데라도 있니?"
"이 시스템의 매커니즘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을 만한 곳, 그러니까 이 시스템의 개발에 참여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
김유정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 시스템의 개발자, 적어도 그녀가 알기론 이 시스템은 IT 강국이라 자부하는 이 나라의 정부에 의해 개발되었고 또한 유니온에 납품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시스템을 해킹하는 것일까? 그들에게는 시스템을 해킹해서 돌아올 이익따위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시스템은 지극히 안정적이고 무결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차후 유니온과의 거래에 있어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유정은 한휘성이 지적한 이들이라도 이 사건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은 지부와 연락을 해보겠어요."
김유정은 통화를 위해 잠시 대책실의 밖으로 자리를 옮겼고, 자리에 남은 것은 남은 검은양 팀 요원들과 오세린, 그리고 벌처스 관계자 두 명 뿐이다.
외부로 영상화되어 송출되고 있는 내부의 상황은 참으로 잔혹했다. 아직도 분노가 사그러들지 않은 슬비는 잔인할 정도로 차원종들을 학살하고 있었고, 분명히 인류의 적인 차원종이라고 할지라도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공격 하나하나에 평소보다 더 많은 위상력을 쏟아붓고 있는 이슬비의 모습 역시 가련했다. 이런 학살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속에 쌓인 울분을 쏟아놓겠다는 것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굳은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제이가 다시 한 번 오세린에게 물었다.
"총 세 번의 임무가 있었다고 하였지."
"네, 맞아요."
"만약 대장이 임무를 모두 마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곳으로 곧바로 의식이 돌아오는 건가?"
"제가 알기론, 말씀하신 대로 슬비의 의식이 다시 이곳에 돌아오게 되어요."
"그러면 그 때까지는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건가. 대장이 잘 해나가야 할텐데 말이야…"
말꼬리를 흐리며, 제이는 다시 오세린에게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간절히 바라기로는 그의 팀의 리더가 무사귀환하기를,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그저 마음 속으로 빌 수밖에 없었다.
.
.
.
"헉… 헉… 하아…"
엉망진창이 된 주위는 얼마나 전투가 심각하고도 어렵게 진행되었는지를 직접 ** 않고서도 알게해 줄 정도이다. 차원종들의 사체는 본래의 차원으로 돌아가버린지 오래이고, 이 고독한 전장에 남겨진 것은 오직 이슬비 혼자다.
그녀의 요원복의 곳곳은 찢겨져 있었고, 그녀의 팔과 다리 그리고 얼굴 등 온갖 부분에는 생채기가 나 있었다. 그 중에는 꽤나 깊게 입은 상처로 보이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수많은 차원종들과 혼자 맞선 위태로운 전투에서 이렇게 승리하였다.
마지막 차원종의 사체가 완전히 빛의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양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를 힘없이 놓았고, 스르르 그녀의 손에서 미끄러지듯 나이프들은 땅으로 떨어져 딱딱한 지면에 박힌다.
그녀는 계속해서 거친 숨을 토해내며 겨우겨우 서 있었고, 이내 서 있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것인지 근처의 기둥으로 보이는 곳에 등을 기대어 섰다. 그리고 숨을 고르면서 그녀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정말로 쉴새 없이 싸웠고, 싸우면서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정말 이를 악물고 싸웠어야할 정도로 힘에 부쳤는데, 비트들로 차원종들을 꿰뚫고 온갖 물체들로 짓눌러 적들을 쓰러뜨릴 때마다 그녀를 힘들게 만들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녀를 감싸고 있던 그런 감정들은 모두 사라졌다. 어쩌면 이 학살을 통해서 그녀는 동료들이라고 할지라도 연인의 죽음을 방조한 그들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감정을 없앴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임무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슬비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자평했다.
『두 번째 임무 결과. 클리어.
임무 완수에 소요된 시간. 1시간 13분.
축하드립니다, 요원님. 세 번째 임무가 곧 진행됩니다. 승낙하시겠습니까?』
그녀는 어느 새 두 번째 임무까지 완료한 자신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너무나도 힘이 들었지만 '강인함'이라는 시험을 통과한 그녀에게 또 다시 차원종과의 전투라는 임무는 주어지지 않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이제 남은 하나의 시험만 통과하면 그녀는 특수요원이 될 수 있다. 특수요원으로서의 힘을 가지게 되면, 그녀는 적어도 이세하와 동등히 싸울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넘어서 그를 구할 만한 힘을 얻게될 것이다.
"세하야."
그녀는 지친 자기에게 암시라도 걸 듯, 그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그와의 추억, 그런데 그 사이에 끼어들어오는 이 승급심사 세계에서의 그와의 추억, 그리고 그의 죽음과 그의 죽음을 방관한 모든 이들에 대한 증오가 다시 한 번 솟아오를 것 같았다.
이 세계는 외부와는 달리 너무나도 감정, 그리고 기억에 의존을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는 현실과는 또 달리 어려운 축에 속한다.
그녀가 두 번째 임무를 진행할 동안 내내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처럼, 한 번 이런 감정에 휘말리게 되면 꼼짝없이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을 하고 만다. 그렇기에 이런 감정은 추스려야만 하고, 의도적으로라도 이런 감정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고 그녀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정말로 강제로 연인에 대한 회상을 그만두었다.
지금은 임무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그와의 달콤한 추억은 그를 구하고 난 후에 계속 쌓아가도 늦지 않다.
"다음 임무로 진행할게."
그녀의 응답과 함께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지막 임무는 요원님의 '의지'를 시험합니다.
다음 임무지로 이동합니다.』
곧바로 주위가 사라졌다.
모든 것이 검은 색으로 물들어있는 이 공간, 이곳은 일종의 대기하는 공간인가보다. 곧 주위의 모습이 변한다. 그녀가 이동된 곳으로 보이는 이곳은,
"심연의, 왕좌?"
주위가 너무나도 익숙했기에 그녀는 그렇게 이곳의 이름을 붙였다.
이 이름은 최초로 이 심연에 봉인된 '메피스토'라는 이름의 차원종이 봉인된 곳을 탐사한 이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지금까지 유니온이 상대해왔던 차원종들과는 급을 달리하는 강인함과 지혜, 그리고 능력이 이 차원종에게 있다. 그리고 붉은 차원 - 그들이 이름 붙이기로는 - 을 탐사하던 이들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어떤 존재'를 섬기던 차원종들의 흔적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경배 받는 존재는 바로 이 차원종을 지목하고 있었다. 과연 이 차원종의 공간인 이곳을 왕좌라 부를만 한 것이다.
이곳은 오로지 한 차원종의 공간.
그렇기에 이곳에 나올 것이 누구인가는 너무나도 눈에 선하다.
절대 차원종과의 전투가 있지 않을 것이라는 그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그녀는 지친 몸과 정신을 이끌고서 새로운 싸움을 준비해야 했다. 그녀는 다시 나이프 두 자루를 소환하여 자신의 양손에 쥐고서 적이 등장하기를 기다렸다.
.
.
.
은발의 여성이 너무나도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화면에 보이는 프롬프트에 급하게 명령어를 입력하고 있다.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명령어들을 급하게 그러면서도 정교하게 입력하고 있지만, 번번히 엔터키를 칠 때마다 출력되는 한 문장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당혹감을 심어주고 있었다.
Access denied. You don't have permission to access.
"망할! 어떤 녀석이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거야, 나현 씨?"
"누군가 우리의 접근을 막아버렸어요. 우리가 간섭하고 있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에요."
"뚫을 방법은?"
"우회 루트를 새로 찾아야해요. 시간이 꽤 걸릴텐데, 이거."
"……"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안경을 쓴 남성이 모니터에 송출되고 있던 내부의 상황이 갑자기 끊어지고 컴퓨터에서 실행되고 있는 프롬프트 창으로 바뀌자, 곧바로 시스템의 해킹을 담당하고 있던 서나현 요원에게 상황을 물었지만 무언가 또 다른 예상 밖의 상황이 일어난 모양이다.
이 여성은 아카데미에 있을 적부터 뛰어난 실력으로 이 남자의 주의를 끌었던 요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이나 IT 분야의 기술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어서, 겨우 유니온에서 빼내온 위상능력자이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는 것은 꽤 큰일이라는 것일테고.
그녀의 상관인 이 남성이 어떻게 차후의 일을 처리할까 고민하고 있을 무렵, 주머니 속에 넣어둔 그의 휴대폰이 약하게 울었다. 진동모드로 해두었기에 가느다란 진동이 그의 다리를 통해서 느껴졌다. 길게 이어지는 진동인 것을 보아 분명히 이것은 전화가 어디에서인가 걸려왔다는 것일테고, 그는 곧바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발신처를 확인할 새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
"예, 한재민입니다."
"한재민 관리관님, 김현우입니다."
"그래요, 현우 씨. 무슨 정보라도 알아낸 건가요?"
"지금 검은양 팀 녀석들과 유니온 측 사람들이 모두 티아매트 대책실에서 승급심사 내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면이 **버렸습니다. 녀석들이 지금 우리가 해킹을 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채고 있는 모양입니다. 혹시 우리 쪽에서 무슨 일을 한 건가요?"
"그쪽도 마찬가지라고요? 지금 이곳도 송출화면이 강제로 **버린 상태에요. 우리가 한 일이 아닙니다."
"이상하군요. 우선 알겠습니다. 계속 이쪽 상황을 주시하면서 정보를 전달하겠습니다."
"수고해주세요, 현우 씨."
전화가 끊어지자 그는 다시 주머니 속으로 휴대폰을 밀어넣는다.
전화의 내용을 엿듣고 있던 여성이 그에게 묻는다.
"현우 쪽에서도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모양인가보죠?"
"네, 검은양 팀 녀석들도 우리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유니온에서도 이 상황이 마찬가지라는 것일텐데, 도대체 일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거죠?"
"알 수가 없네요. 혹시 나현 씨, 원래 이번 임무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흘러가죠?"
"메피스토 타입의 차원종이 등장하고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무의식 속의 트라우마를 이슬비 요원에게 불러일으킬 예정이었습니다. 그 상태로 메피스토를 물리치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요. 물론 절대 물리칠 수 없을 정도로 데이터를 삽입시켜두었기 때문에, 절대 그럴 일은 없을 테고요. 그리고 시스템의 출구를 닫아서 임무에 실패한 이슬비 요원의 의식이 현실로 돌아가는 것을 막아, 그녀의 의식을 영원히 시스템 안에 가둬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흘러가기로 되어있었다는 거죠."
"뭔가 생각이라도 있으신건가요?"
"시스템의 출구는 어떻게 막을 속셈이었죠?"
"하드웨어가 오작동하게끔 만들면 됩니다."
"결국 하드웨어만 박살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말이군요?"
안경을 쓴 남자는 웃음을 지었다. 꽤 웃음이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이 웃음은 결코 선한 웃음이 아니다. 무척이나 악의를 담고 있다.
"나현 씨?"
"네, 관리관 님."
"티어매트 대책실 근방에 있는 다른 팀원들에게 전파하세요, 티어매트 대책실을 급습해서 강제로 하드웨어를 제거하라고."
"관리관 님, 그렇게 되면 지금 이 일이 계획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글쎄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네?"
남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대신 한 쪽 구석의 벽에 붙어 있는 다섯 명의 검은양 팀 요원들의 사진들을 떼어내어 가져와 한 손 안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여자의 앞에 가져와 보여주며 말했다.
"마침 유니온의 고위 클로저들도 그곳에서 떠나 있겠다,"
그리고 사진들을 올려둔 손에 주먹을 쥐자, 일제히 사진들은 구겨지며 다시 손을 폈을 땐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 다음 잇는 말은,
"목격자만 죽이면 임무는 쉬워집니다."
그의 의도를 깨달은 그녀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어느 앱을 실행시키고 화면을 터치한 후에 곧바로 말을 시작하였다.
"여기는 둥지, 강북에 파견된 팀원 8명 전원에게 알린다. 유니온 티아매트 대책실 앞으로 전체 집합 후, 이후의 명령을 기다린다. 집결지에서는 들키지 않도록 주의할 것. 본 임무의 보안 코드는 알파-알파-에코-삼-브라보-찰리-폭스트롯-둘. 수신한 요원들, 모두 응답 바란다. 이상."
곧 차례차례 요원들의 음성이 단일한 메시지로 들려왔고, 8명 모두에게서 답이 들어온다.
빠른 시간내에 큰 일이 벌어질 것이다, 정말로 커다란 일이.
한달 만에 올리는 것 같네요.
이렇게 하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하게 됩니다...
조금 정신 없이 10월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연재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도 부족했고. 진짜입니다.ㅠㅠ
다음 화에서 승급심사 완료가 써지겠는데,
여러분들은 대충 다음화의 내용을 충분히 예측하실 수 있겠죠? 마음 같아선 이번 화에 다 써버리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올리는 날짜가 늦어질 것 같아 이쯤에서 끊고 갑니다.
다음 화 기대해주셨으면 합니다!!
항상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p.s. 그림 한 장만 그려주실 분 안계신가여..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