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e/클로저스-15화-
버드미사일 2016-07-31 0
눈 앞이 흐려진다. 이제 막 싸움을 시작하려고
하지만 내 눈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느낀다. 아직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있지만 이것이 언제까지 갈지
문제다.
“너와 이렇게 진심으로 싸우게 되어 정말
다행이지만….이제 그대는 이 자리에 필요 없겠지”
버서커는 슬비를 한번 보더니 상냥한 얼굴을
짓고는 위 아래로 한번 손짓을 했다. 손짓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서 있는 이 장소에 크나큰
지진이 일어났다.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의 강도였다. 슬비와
나는 자세를 낮추었다. 다만 버서커는 그 자리에 서서 오직 하체의 힘만으로 버티며 서있었다.
“무슨?!”
지진이 일어나면서 바닥에 커다란 원형이 생겼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기 자세를 낮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를
둘러보자마자 원에서 커다란 빛이 나오더니 이내 유리와도 같은 벽이 생겼다. 벽은 마치 버서커와 나를
격리시키듯이 주위를 둘러쌓았다.
“슬비야!”
슬비에게 손을 뻗었지만 유리 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유리 벽 밖에서는 슬비가 벽을 치면서 뭐라고 말하고 있지만 방음이 되는 것인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벽을 부숴보려고 생각을 해봤지만 벽을 만지고 나서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벽을 부수지 못한다. 힘을 얻은 생태에서도.
“걱정마”
초초해지는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버서커가
나에게 말을 건다.
“이건 내가 만든 결계야. 너와 나 둘 중 하나가 죽으면 결계는 풀리게 되어있어”
“이건 너도 못 부수는 거야?”
“물론. 전력인
상태에서도 부수지 못하도록 만들었으니까”
터무니 없다. 이런 터무니 없는 결계를 만드는 것을 보니 정말 그는 나인 것 같다. 아마
그가 이 결계를 만든 이유는
“뭔가를 지키기 위해서 만든 거야?”
버서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검을 들어
올려서 얼굴 옆으로 가져가면서 자세를 잡는다. 어깨를 살짝 틀어서 얼굴을 가리려고 하고 있지만 그 틈
사이에서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나의 대답에 대한 그의 행동과 미소는 내 대답에 대한 긍정과 서둘러서 싸우자고 하는 무언의 표시. 나는
알겠다는 듯이 그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러면서 뒤쪽에 있는 슬비를 살짝 바라보았다. 슬비는 얼마나 강하게 벽을 친 것인지 손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고 자리에 주저 앉았다. 슬비는 내가 걱정이 되나 보다. 나는 손에 묻은 피로 벽에 다가가
아주 작은 글을 써냈다. 슬비가 고개를 들고 이 글을 본다면 걱정이 조금은 줄어 들겠지. 내가 마음을 슬비 쪽에 두는 순간, 틈이 생긴 것인지 다시 그 끔찍한
목소리들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목소리에서 경계심을 느끼고 살짝 움직였다. 그것이 내 목숨을
구했다.
“방심하지 말자고”
버서커가 방금 내가 있던 자리에 검을 내리꽂았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나는 저 검에 뚫렸을 것이다. 버서커는 방심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검에서 손을 놓고 공격을 이어왔다. 그의 격투기술을 막는 것에 검을 들고 있는 것은
조금 어리석을 것이다. 그의 속도는 매우 초월적이기에 무기를 들고 싸우다가는 그것이 내 움직임에 발목을
잡을 것이다. 나는 서둘러서 검을 버리고 뒤로 후퇴한다.
“컥”
하지만 후퇴하는 것이 한발 늦은 것인지 그의
주먹이 내 옆구리를 강타했고 나는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이 충격에 벽이 부서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렇지 못했다.
“계속간다”
내가 아픔을 느끼고 있을 사이에 버서커는
어느 순간 내가 버렸던 검을 들고 점프해서 다시 내려 꽂는다. 나는 이를 악물며 앞으로 몸을 날려 버커거가
가지고 있던 검으로 향해 그의 검을 잡아서 뽑아 들었다. 내가 검을 뽑아 들자 버커서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짓고는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직 이 결계를 펼친
이유를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슬며시 나를 보며 말을 해도 괜찮겠냐는
듯이 물어보았다. 나는 턱을 살짝 들었다 놓으며 허락을 했다.
“나는 서로 동등한 조건에서 싸우기를 원해. 서로 동등한 조건에서 죽기를 원해. 그래서 결계를 펼쳤어. 간단하지?”
‘그 말은 내가 지금의 버서커와 같은 힘을
가졌고 슬비도 같은 힘을 가졌으니 한 명만 싸우기를 원했다는 건가’
“그럼 이제 말도 다했으니 계속해 볼까”
그렇게 말하고 버서커는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나는 그의 검을 들어올려서 달려드는 버서커의 검의 막았다. 육중한 충격이 내 몸을 덮쳐왔지만 그럭저럭 버틸 수가 있었다. 검을
막자마자 버서커는 내 목을 향해서 손을 뻗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더 빨랐다. 서는 뻗어오는 버서커의 왼쪽
손목을 잡고 비틀어 그대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이거나 먹어라!”
매번 당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과 조금은 이
녀석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에 나는 버서커가 했던 그대로 검을 내리찍었다.
“?!”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버서커가 검을 입으로 물어서 막고 있었다. 실로 엄청난 힘이 아닐
수 없었다.
“소네 히미 하져서”
손에 힘이 빠졌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까 옆구리를 맞았던 충격이 아직 남아서 팔에 힘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검을 입에 물고 말하는 그 모습이 웃음을 유발해 더 이상 이 상태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여 뒤로 빠졌다.
버서커는 퉷하며 입을 털면서 일어나고 나는
다친 옆구리를 이제서야 보았다. 대충 느껴지는 감각으로는 갈비뼈가 2개
정도 금이 간 것 같다. 부러지지 않은 것 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공격에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고 이것은 내 패배로 이어질 것이다.
“하. 좀
쉬고 싶다”
***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볼 뿐이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싸워주나 나는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님은 나를 위해서 일을 하시다
돌아가셨고 지금은 세하가 나를 위해서 싸운다.
“제발…열리라고”
지금 그들과 나를 갈라 놓은 이 벽을 부수기
위해서 마력으로 부수려 노력도 해보고, 부서진 바닥 파편으로 내려찍어도 보고, 내 손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그토록 절실하게 내리 쳤거늘 벽은 단호하듯 금도 가지 않았다. 버서커에게서 받은 힘으로도 도저히 깰 수 없는 이 벽이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다.
“끼에에에”
초초한 마음이 부른 것일까, 아니면 주인이 위험한 것을 알고 온 것일까? 등 뒤에서 소름이 끼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 주인을 갈망하는
소리. 주인을 향한 절망의 소리가 흘러 들어온다. 나는 벽을
바라만 본 채 가만히 있을 뿐, 뒤를 볼 수가 없었다.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는 압도적인 숫자. 굳이 뒤를 볼 필요도 없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나를 가만히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소리들은 내가 움직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허나.
‘어떡하지’
오히려 이런 절박한 상황은 나를 움직이게
만들어주었다. 절박하니까, 위기니까 내 마음은 살기 위해서
각오케 하고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나는 천천히, 주변에서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고개를 들어올리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전부 기본적으로 뱀의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두 발을 가지고 똑바로 서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간과 뱀의 중간 형태. 모두 그가 만든 것일 것이다.
“움직…이지마. 전부”
내 움직임을 포착한 것인지 제일 가까이 있는
그것이 나를 향하여 말한다. 말을 건 것은 그들 중 가장 강력한 존재인 것 같다. 그가 말을 걸기 전까지 모든 것이 나에게 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입을 열자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쪽을…봐”
그것은 자신을 보라고 말한다. 나는 그것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향했다. 내 고개가
움직이자 내 앞쪽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전부 옆으로 움직여 시선의 길을 만들었다. 내 시선이 향한
곳에는 인간으로 보이는, 그러면서도 결코 인간 같지가 않은 것이었다.
큰 키에 붉은 코트와 긴 머리.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달려있고 눈에는 동공이 없는 듯하며 생기가 없고, 뒤에는
두 마리의 뱀을 거느리고 있으며 손에는 기분 나쁘게 생긴 검을 들고 있다. 또 거추장스럽게 생긴 장신구를
머리, 손목, 허리부분에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의
지휘는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날 왜 부른 거지?”
그가 나를 부른 이류가 궁금했다. 무슨 이유로 모두의 행동을 멈추게 했으며 나에게 말을 건 것인지.
“너….그분의
힘을 가지고 있군”
그는 아마 내가 가지고 있는 힘. 즉, 버서커가 나에게 준 힘에 대해서 궁금한 것일 것이다.
“왜? 이
힘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어?”
“아니. 그분이…너에게 힘을 주었다면....분명 이유가 있으신 것이겠지”
그는 손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이
조금 어색한 것인지 조금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는 이해했다는 듯한 표정이 지어져있었다.
“그럼 다시 물어보겠는데 왜 날 부른 거지? 그리고 넌 누구야”
내가 조금 위협하듯이 물어보았다. 내 위협이 다른 것들에게는 먹힌 것인지 아까보다는 겁을 먹은 듯한 공기를 풍기고 있다. 다만 그 만이 조용히 나를 응시할 뿐이었다.
“아 그렇군… 인사가 늦었군. 내 이름은…그분에게
받은 이름으로는 ‘아스타로트’. 그분이 자신의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하기 위해서 나에게 지어주신 영광스러운 이름이지. 그럼 내가 너를 부른 이유를 설명해야겠군. 단순한….아주 단순한 이유다. 너의
그 힘을 거두어가겠다”
아스타로트는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을 우아하게
들어올리며 나에게 검 끝을 살짝 겨누었다. 나는 아스타로트가 공격을 할 것을 대비해 내 주변에 있는
바위에 마력을 집어놓고 공중에 띄었다.
“왜지? 너의
주인께서 친히 나에게 준 힘을 네가 멋대로 가져가겠다는 거야?”
나는 그를 도발하듯이 작은 돌을 아스타로트에게
날렸다. 돌은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갔으며 위력 또한 무시 못할 것이다. 아스타로트는 검을 치켜세워 방패를 세우듯이 행했고 날아오는 돌을 막았다. 충격이
강했는지 그는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았던 발을 움직여 한발 뒤로 물러섰다.
“그래…내가
너에게서 힘을 뺏는 것은….어리석은, 주인의 뜻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이지도”
아스타로트는 계속해서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로 다가온다. 나는 아스타로트가 있는 장소에 중력을 조작하여 공각을 조작하는 수준으로
이끌었다. 풋내기 마술사인 내가 공간을 조작한다는 것은 매우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버서커에게 받은
힘이 있기에 폭발적인 마력을 갖춘 지금이라면 공간을 조작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내가 공간을 조작하고 있는 사이에 아스타로트의
움직임도 거의 멈추었다. 아스타로트는 내가 공간을 조작하고 있는 구역에서 나오기 위해서 온 힘을 쏟고
있는 것인지 얼굴에 핏줄 같은 것이 돋아났다.
“아니, 어리석은
것 정도가 아닌 매우 당연한 것이겠지….나는 주인의 뜻을 무시했다. 무척이나
힘든 일이지. 하지만”
아스타로트는 양손을 가슴 언저리에 가져가고
무언가를 뜯는 듯한 모습을 취한다. 곧이어 아스타로트의 힘겨운 비명소리와 팔을 벌림과 동시에 거대한
충격파가 아스타로트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충격파에 버티지 못한 나머지 것들은 모두 멀리 떨어져 나가거나
벽에 부딪쳐 괴로운 신음소리만을 내뱉고 있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네가 그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참기 힘들군. 너무나도. 너무나도. 그래서 너의 그 힘을 가져간 후, 그분에게 돌려드리겠다. 우리의 용에게”
아스타로트의 더 이상 말을 더듬지도 않았다. 목소리에는 버서커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광기, 경의가 담겨있었다. 그의 태도를 보니 정말이지 소름이 끼친다. 나는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계속해서 돌들을 발사했다. 크기는 던질수록 큰 것들을 차례대로 던졌다.
“이까짓 공격”
아스타로트는 날아오는 돌들을 차례대로 베며
내 쪽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힘겨워 보였으나 이내 속도에 적응을 한 것인지 익숙해진 것 같다. 이건 조금 위험한 것 같다.
***
지속적인 싸움이 이어진 후 서로 떨어져서
상황을 살펴본다. 서로 비슷한 정도의 상처를 입은 것 같다. 버서커나
나나 서로 숨을 헐떡이고만 있다. 다만 버서커는 이와 중에도 웃는 얼굴을 지었다. 나는 그 얼굴이 어딘가 짜증이 났는지 한 순간에 버서커에게로 달려갔다.
“으아아아!”
나는 양손으로 잡은 검을 버서커를 향해서
크게 휘둘렀다. 나와의 싸움으로 어느 정도 데미지를 입은 것인지 미쳐 피하지 못한 채 검을 들어올려서
막아낸다. 하지만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한 것인지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쳐
먼지를
안 그래도 지쳐있는 상태에서 힘을 너무 쓴
것인지 머리가 띵하고 울려 퍼지는 것 같다. 입에서는 피가 흐르고, 몸
곳곳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흐른다. 왼팔은 아직 힘이 덜 들어온 것인지 제대로 검을 잡을 수 없다. 다리는 힘이 풀리려고 할 정도로 지쳐있는 상태다. 아주 잠시 동안만
싸운 것인데도 이 정도라는 것은 저 녀석과의 싸움은 더 힘들 것이다. 그럼 곤란하다. 우선 상처에서 피가 나오는 상황을 처리해야 한다. 손에 위상력을
집중한다. 집중을 하면 할수록 위상력은 점점 모여들었다. 어느
정도 적당량의 위상력이 모였을 때 나는 위상력을 불꽃이 나올 정도의 열로 바꿨다. 그러곤 내 상처를
바라본다. 이 행동은 되도록이면 하고 싶지 않았지만 상처가 많은 관계로 어쩔 수 없다. 열로 달궈진 내 손을 상처가난 부위에 가져갔다. 나는 왼손을 입에
가져가 꽉 깨물었다.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으으으음!”
위상력 조절을 잘못한 것인지 예상했던 열기보다
더 뜨거운 열이 왼팔을 엄습했다. 팔 전체를 불 속에서 굽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기절할 것 같다. 정신이 날아가 기절할 것 같다.
‘아아! 나의
가장 증오스러운 자여’
기절해버릴 것 같던 순간, 나의 정신을 바로 잡아준 것은 이곳에 있는 원망이 담긴 목소리였다.
“허어…허어…허어…..”
나는 거침 숨을 들이키며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고 나는 버서커가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아직 버서커는
움직임을 보일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버서커가 움직이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상처를 계속해서 지열해
나갔다. 그때마다 정신을 잃을 뻔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마다
내 정신을 일으켜 세운 것은 내가 듣기 싫어서 그와 싸우기를 결정했던 이 끔직한 ‘목소리’들이었다.
“커억…하하…아주 잠시 뿐이지만 드디어 기절을 했네”
어느 정도 상처를 지열하고 나자 버서커가
먼지가 그윽한 자리에서 먼지를 날려보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날려버리기 전보다 더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하며.
“뭐가 그리 좋냐”
나는 그를 비꼬듯이 물어봤다. 나는 이렇게 죽을 맛인데 나와 싸우고 있는 상대가 웃고 있자니 누군가가 생각나서 기분이 좋지 않다. 그에 대답하듯 버서커는 살짝 웃어 보이며 대답한다.
“몇 년을 재미없게 보낸다면 너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관심없어.
그런 거”
몇 년을 재미없게 보낸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해할 수 없다. 설마 이상한 취향이라도 있는 건가.
“혹시나 해서 말해두겠지만 그런 취향은 없다고”
역시나 나의 생각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어쩐지 정겨우면서 재미있게 느껴진다. 마치
무언가에서부터 도망을 치기 위해 그러는 것처럼.
“그럼 이제 계속 싸워야겠…지만, 주변 상황도 말이 아니군”
버서커는 검을 들다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을
꺼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의문이 들어 같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주변에 널브러져있는 (아주 오래 전 보았던) 크리자드타입의
차원종들이 있었고, 곧 내 눈에는 상당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한 명은 지쳐 보이는 슬비였고, 또 하나는 아주 오래 전, 내 힘이 부족하다고 절실히 느꼈던, 그 당시 두려울 것이 없었던
나에게 압도적인 공포를 주었던 존재였다. ‘아스타로트’. 내가
살던 세계의 차원종. 사라져버린 예전의 용이라 불렸던 존재.
“어째서 저 녀석이”
나도 모르게 경악에 찬 목소리가 나왔다. 버서커는 내 반응을 보고도 무덤덤하게 내 물음에 답했다.
“내가 만들었지”
나는 다시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저런 녀석을 만들다니.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지만 내 머리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저 녀석 처음에는 머리 속에 오만으로만
가득 차 있었지. 처음에는 나름 용이 된 개체이기도 하니 그냥 둘까 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능하더군. 그래서 귀찮지만 가장 충성스러운 녀석으로 새로 만들었다. 그럼 새삼스럽지만
소개하지. 이름은 ‘맘바’.
‘맘바 아스타로트’라고 불러”
버서커는 자신의 작품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그 이야기는 그다지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저 슬비가 걱정이 될 뿐.
아무리 그녀가 힘을 받았다고 해도 그녀는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 그녀가
원래부터 강한 저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 무척이나 걱정스러웠다.
“야. 나를
그렇게 무시하지 말아줄래? 안 그러면”
내가 슬비에게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 또
다시 버서커가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진짜 죽는다”
버서커의 공격을 정말 아슬아슬하게 점프로
피한 나는 카운터로 얼굴에 강한 발차기를 날렸다. 버서커는 얼굴에 날아오는 손으로 내 발을 잡을 후
뒤로 빠졌다. 아마 이 상황에서 더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째 우리는 같은 행동만 하는 것 같군”
버서커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공감했다. 우리가 싸우기 전에는 항상 내가 먼저 방심을 하고 버서커가 그 틈을 노린 후 내가 카운터를 날리는 형식. 솔직히 이정도 반복을 했으면 다른 패턴도 나올 법도 하지만 전혀 그럴 기색이 안 보인다. 내 나쁜 점에서는 이런 점도 있겠지만 그건 버서커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 그렇게
걱정인가”
당연히 걱정이 된다. 그것도 엄청. 아무리 생각해도 슬비가 저 녀석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차원종과 전쟁을 계속해온 내 감이 말해준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군”
내 행동을 보고는 버서커가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매우 작은 소리였기에 나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버서커는
손으로 슬비와 아스타로트를 가리키고 말을 했다.
“그렇게 걱정이면 나를 쓰러뜨리고 저쪽으로
넘어가든지. 그리고 네가 그렇게 걱정할 만큼 내가 힘을 적게 준 것도 아니다. 내 이름을 걸고…아니지. 내
게임기를 걸고 약속하지”
버서커는 약간의 장난이 섞인 말을 하고는
방향을 가리킨 손으로 머리를 잡는다. 마치 고통에 시달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어서 나랑 싸우자고. 다시 목소리가 들리기 전에”
버서커는 점점 말이 빨라졌다. 나도 그렇지만 버서커도 더는 버틸 수 없는 것 같다.
확실히 내가 슬비를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걱정일지도 모른다. 버서커가 직접 장담했다. 충분한 양의
힘을 주었다고. 그것은 어쩌면 저 맘바 아스타로트라는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 슬비라면
적어도 내가 이 녀석을 쓰러뜨리고 벽을 허물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희망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확신했다.
나의 결의가 가득찬 모습을 본 버서커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띄우며 다시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이제는 멈추지 말자고”
***
아스타로트의 힘은 어마어마한 힘이다. 아스타로트가 위상력이라 불리는 힘을 담은 참격에 공간이 통째로 갈려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마 내가 버서커에게서 힘을 받지 못했더라면 처음에 견제를 해보기는커녕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대단하군. 내 공격을 이 정도까지 피할 줄은”
아스타로트는 전보다 더 신중해진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피하는 것만 했는데 힘들었던 나는 잠시 멈춘 공격에 숨을 헐떡이며 대꾸했다.
“내가….그
정도도…못할 거 같아?”
내 말에 아스타로트는 조금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몸을 풀며 대답했다.
“확실히.
지금부터는 힘 조절을 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위험하겠군…..”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다시 얼굴에는
살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빨리 자네를 죽여드리도록
하지. 그대는 훌륭한 적이니 말이야”
그의 정중하고 살기가 넘치는 태도에 나는
방금 전 까지 그렇게 흥분한 모습과의 괴리감에 매우 섬뜩했다. 어떻게 이렇게 금방 성격이 바뀌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느긋하다가도 충동적이며, 침착하고 정중하다. 무엇이 그의 성격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나는 그가 말을 하고 있는 사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그의 공격에 여파로 부서진 조형물의 파편이나 바닥의 파편들이 보였다.
이거라면…
“그러니 이제 그만 포기해주게”
아스타로트는 아주 천천히 공중에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검이 흘러내려온 자리에서, 공중에서
여러 개의 부메랑처럼 생긴 것들이 내가 도망을 칠 수 없을 만큼 날아왔다. 나는 도망을 칠 곳을 확인해봤지만
그 어디에도 도망칠 곳이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마지막 방법에 내 목숨을 걸었다.
“필드 생선”
눈을 감고 조용히 읊었다. 그리고 상상했다. 내 주변에 놓여있는 모든 것들을. 부서진 조형물들의 파편이나 바닥의 파편들의 위치를. 그리고 내가
눈으로 보았던 모든 탄환들.
“이동”
나는 손을 살짝 움직여 모든 파편에 내 마력을
부여했다. 내 마력을 부여 받은 파편들은 공중에 띄어졌다. 그리고.
“필드 전개”
모든 파편들을 탄환들 앞에 빠르게 옮겨 나를
막아주는 방패로 삼는다. 가장 큰 파편들을 내 주위에 놓고 그 주위에 작은 파편들을 놓는다. 탄환들은 내가 배치한 파편에 부딪쳐 사라져갔다.
“호오, 정말로
대단한 자로다. 어쩐지 그분께서 너에게 힘을 준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군. 내 짐작이지만”
아스타로트는 의외라고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곤 자신의 주인이 생각한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아스타로트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어째서 저렇게 충성을 다할 수 있는 것 일까라는 의문을
마음의 한 구석에 내려놓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공격을 한다.
“이번에는 내 차례야!”
가장 거대한 바위에 마력을 부여하여 아스타로트에게
날렸다. 아스타로트는 그것을 피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제자리에서 검을 휘둘러 바위를 부쉈다. 바위는 작게 부서져 주변에 흩어졌다.
“고작 이런걸..”
아스타로트는 살짝 실망한 듯한 얼굴을 지었다. 아마 뭔가 대단한 공격을 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지.
“산탄”
부서진 바위의 파편들이 아스타로트의 주변에
흩어졌고 나는 그것을 노렸다. 흩어진 파편들이 아스타로트의 사방에서 무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아스타로트는 막으려 노력을 했으나 전부 막지 못하고 사각에서 날아온 파편에 부상을 입었다. 본래 보통의 파편으로는 아스타로트에게 데미지를 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조형물이나 바닥의 재질은 매우 단단한 물체. 평범한 충격에는 전혀 부서지지 못하며 아스타로트나
버서커 정도의 수준이 되지 못하면 부술 수 없는 물질이기에 그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아스타로트는
조용히 신음소리를 내뱉더니 입에서 피처럼 보이는 것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타격이 있는 것 같다.
“아직 멀었어!”
아스타로트가 또 다시 부숴버린 더 작은 파편들에
아스타로트에게 데미지를 주기 위해 마력을 부여하고 아스타로트 주변의 공간을 일그러뜨려 파편들이 계속해서 움직이게 만들었다. 내가 힘을 주고 있는 동안에는 끝도 없이 아스타로트에게 떨어지지 않은 채 공전하며 데미지를 줄 것이다.
아스타로트는 위기에 빠진 것을 알아차리고는
더 작게 부서진 파편을 부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줄여올 뿐이었다.
“이 어리석은…..흠?”
아스타로느는 화가 난 표정을 짓고 나를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지금 상황에서 나에게 이런 신경을 쓰는 것은 이상하겠지만 나는 어렴풋이 그가
나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너는…..정말
어처구니 없구나”
아스타로트는 무릎을 꿇고 몸을 감싸듯이 앉았다. 그리곤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위상력으로 급소로 보이는 부분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이런, 눈치챘나”
식은 땀이 흘러나오며 나는 당황했다. 아스타로트가 눈치채지 못하게 앞으로 연기를 할 생각이었지만 아스타로트는 벌써부터 내 약점을 눈치챈 것 같다. 나의 가장 큰 약점. 그것은 내가 힘을 잘 다루지 못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엄청난 양의 힘을 낭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내가 공격하고 있는 공격은 나의 힘에
거의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다. 단지 바위를 움직이는 수준에도 어마어마한 마력을 사용했다. 그뿐이랴. 그 것보다 더 큰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일을 했으니 내가
사용했을 마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마력이 사용되었다. 내가 좀더 싸움에 익숙하고 마술에
익숙해진, 정식적인 마술사였다면 좀더 효율적으로 마력을 사용했겠지만 나는 아직 어린 햇병아리. 비유를 하자면 검으로 베는 것이 아닌 검으로 때리는 행동을 하고 있는, 극히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스타로트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가장 안전한 방법. 그것은 내 마력이 떨어질 때까지 공격을 하지 않고 막고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아쉽군.
좀더 일찍 싸움에 익숙해졌다면 네가 승리했었을지도 몰랐을 것을”
아스타로트는 아쉽다라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가 나를 조롱하기 위해서 내뱉은 말인 것 같았지만 이내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은 나를 인정하는 눈빛. 처음에 나를 그렇게 못마땅하게 여기는
눈에서 어느새 나를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군”
아스타로트의 말대로다. 앞으로 내가 필드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3분 정도. 길어봐야 4분에서 5분정도다. 하지만 아스타로트가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양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두 배는 될 것이다. 승산이 없을 것이다.
“어떡…하지”
힘은 빠져나가고 아스타로트는 버티고 있다. 여유가 사라진다.
***
주먹으로 오른쪽 얼굴을 강하게 쳤다. 버서커는 그것에 한발도 물러서지 않은 채 내가 행동한 것을 그대로 되돌려 주었다. 정말 쓰디쓴 주먹이다. 이번에는 버서커가 먼저 검을 휘둘러 내 왼쪽
허리를 노린다. 나는 손으로 성급히 막았다. 살이 베이는
느낌이 섬뜩하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나는
검의 손잡이 부분을 버서커의 얼굴을 강타해 멀리 날려보냈다.
“으아아아!”
버서커는 날아가다 궁중에서 회전해 땅에 착지
후 검을 들고 나에게 돌진해온다. 나도 거기에 맞춰서 검을 잡고 그의 검무에 맞추어서 검을 휘둘렀다. 서로 한번도 뒤로 물러섬도 없이 계속해서 검무를 이어갔다.
“아!”
“이런!”
서로의 무리가 부른 결과인 것일까? 서로 검무를 이어가던 도중 거의 정확한 타이밍에 서로의 검이 동시에 부러져 버렸다. 서로 무기를 잃었다. 우리는 우선 거리를 벌렸다. 적어도 우리가 평범했다면 말이다.
“받아라!”
나는 내가 하는 행동과 버서커가 하는 행동을 보고 서로 정신 나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느 샌가 한손에는 부러진 검을, 한 손에는 부러진 칼날을 손에 들고 있었다. 우리는 칼날을 휘두르며 손에서 칼날이 미끄러지면 부러진 검으로 대항했고 다시 칼날을 잡고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계속해서 싸워 나갔다.
계속해서 죽이기만을 목표로 한다면 이 싸움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좀 더 확실한 목표를 가져야만 한다. 어디를
노려야 하는가?
심장 꿰뚫는다? 안 된다. 우린 서로 몸통을 중심으로 방어를 하고 있으므로 심장을
노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적어도 팔 중 하나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하다.
몸통 전체를 베어버린다?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서로의 힘이 비슷한 상태에서 상대가 먼저
방어를 해버린다면 상처를 줄지언정 녀석을 쓰러뜨릴 수 없을 것이고 오히려 역공으로 내가 당할 것이다. 애초에
그럴 만큼 내가 힘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럼 머리?
녀석은 이번에도 입으로 물어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하나의 선택지. 목을 노린다. 목표를 하나로 만들자 내 공격은 매우 깔끔하게 바뀌었다. 내 공격은 전부 목을 향했다. 버서커가 내게 주는 급소 이외의 상처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한 부위만 노리면 되니까. 버서커는
공격을 하다 내가 자신의 목을 노리고 공격하는 것을 눈치를 챈 것인지, 아니면 순전히 직감인지 공격보다는
목의 방어에 좀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가능성이 보인다.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을 가능성이. 공격을 하면서 중간 중간 틈이 생길 때 마다 슬비가 있는 쪽을 보았다. 슬비와 아스타로트의 싸움은 아직까지 슬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듯하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