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Ailanehcal 2016-07-29 1
"미안해요. 이번엔 저희 쪽 실수에요. 제가 섵불리 슬비에게 당신의 과거에 대해 말해줘서... 미안해요.
김유정은 정말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과해왔고, 티나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아니다. 너희들에게도 내 과거를 숨겨봤자 오래 가지 않아서 들켰을 거다. 정말로 클로저로써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있는 그녀에게 있어선 난 그저 살인인형에 불과하겠지."
하지만 왠지 그런 무표정 속에서 쓸쓸함이 묻어나왔다. 김유정도 인형인 그녀에게서 그걸 느꼈기에 신기함과 착찹함에 잠시 할 말을 잃고만다.
"이슬비는 어떤가?"
저 멀리 임시 의료동으로 꾸며진 블라인드 너머로 이슬비와 검은양 대원의 것으로 보이는 실루엣이 보였다.
"티나씨 덕분에 중상은 면했어요. 당신이야 말로 괜찮나요? 그 상황에서 슬비를 대리고 빠져나오느라 무리하셨을텐데..."
"난 멀쩡하다. 다만... 앞으로는 가능하면 이슬비와의 공동 작전은 삼가해주길 바란다. 이렇게 손발이 안맞는 상황에선 칼바크 턱스를 제압할 수 없다. 그는 강하다."
"알고있어요. 하지만... 제가 다시 한번 슬비를 설득해볼게요."
"...가능하다고 판단되지 않는다."
"네. 하지만 당신 말대로 칼바크 턱스는 강해요. 안드로이드들이 이렇게 대량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 검은양의 조력은 불가피해요."
티나는 잠시 사고를 회전 시키고는 입을 열었다.
"알겠다. 기다리도록 하겠다."
"네. 고마워요. 그리고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상황을..."
누구보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했다는 검은양 팀. 티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겨우 검은양팀과 불안한 공동 전선을 구축하고 칼바크 턱스를 제압하기 위해 다른 대원들이 병력들을 분산하여 막는 동안 티나와 이슬비가 대표로 칼바크 턱스가 있는 공항 폐쇄구역으로 잠입했지만, 시작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티나의 과거를 알게된 이슬비가 그녀를 적대하기 시작한 것. 티나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지만 그 부분도 그녀의 실책이었다.
칼바크 턱스의 힘은 그녀의 생각 이상이었다. 두 사람이 홀로 상대하기는 커녕 어설픈 합으로는 재대로된 공격도 하지 못한체 내내 휘둘렸다. 칼바크 턱스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분명 제압하고자 마음 먹었다면 이 곳에 돌아온 것은 한구의 시신과 한 덩어리의 스크랩이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이슬비의 적대적인 태도와 비협조가 문제가 되었겠지만... 티나는 스스로 알고 있다. 자신 역시 문제가 있었다. 이슬비의 적대적인 태도를 직면한 뒤로 그녀의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적대심을 처음 향해진 것은 아니다. 교관의 살아 생전의 전쟁에서도, 암살인형으로 활동하던 때에도.. 이제까지 수 많은 싸움터 위를 걸어온 그녀에게 적대심은 익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슬비가 적대심을 비추는 그 때부터 이상한 것을 느꼈다.
분노? 아니다. 분노라는 감정을 품은 적은 몇 있었지만 전혀 달랐다. 도대체 무슨 감정이길래 전투 내내 그녀의 사고를 어지럽히고 재대로된 판단을 못하게 한건지... 그녀도 좀처럼 알 수가 없었다.
'가르쳐달라.. 교관...'
하지만 교관도 대답은 없었다.
"꽤 고전한 것 같군.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다."
"...트레이너인가."
어느센가 다가와있는 뻐꾸기의 화면에 나타난 트레이너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건가?"
"......"
티나는 입을 열다가 닫았다. 그렇지 않아도 늑대개 대원 전원이 다시금 쵸커에 의해 위험한 상황에서 그도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도중이다. 물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상담에 응해 줄 것이다. 하지만, 티나는 지금 늑대개를 위해 분투하느라 정신없는 그의 심경을 혼란하게 하면 분명 임무에 지장이 생길거라 판단했다.
"아니다. 방금 전에 있었던 칼바크 턱스와의 전투에 대해 분석 중이다."
트레이너는 지그시 티나를 바라봤지만 이내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반성은 나쁘지 않지.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면 말이지. 다음 지시를 내리려고 하는데 괜찮겠나."
"물론이다."
우선 당장의 문제인 안드로이드 생산 시설은 트레이너가 확인하기로 했다. 그런 사이에 티나는 유하나가 풀어준 테러리스트 잔당들을 제압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임무를 수행하는 와중에도 그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티나를 괴롭혔다.
중간에 유하나가 탈출하는 일이 있었지만, 칼바크 턱스는 그녀를 버렸고 그런 그녀를 대려온 티나는 다시금 공항 한쪽에 앉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기.. 티나 님."
레비아가 머뭇거리면서 다가왔다.
"레비아인가. 무슨 일이라도?"
"그게... 왠지 고민이 있으신 것 같으셔서..."
이번에도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던 찰나 티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실례되는 질문을 해도 되겠나?"
"아.. 네..."
"넌 예전에 늑대개 대원들을 죽였었다. 맞나?"
"...네..."
레비아의 표정이 흐려졌고, 티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너도 알다시피 난 과거에 클로저를 암살하던 살인 인형이었다."
"네..."
"그런데 오늘... 나와 검은양팀의 이슬비와 같이 칼바크 턱스를 찾아간 사실을 알고 있나."
"네. 들었어요. 칼바크 턱스가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고... 그리고... 두 분이 썩 사이가 안좋으셨다고..."
"맞다. 작전 지역에서 이슬비와 만나고나서... 이슬비는 나에게 그렇게 물어봤다. 내가 정말로 클로저들을 암살해온 악령이 맞냐고. 그리고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뒤로 그녀는 작전 내내 날 적대적으로 대했다."
"너무해요.. 그 시절의 티나 님은..."
티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레비아의 말을 끊었다.
"이슬비의 행동은 정당하다. 비록 작전 중이라는 상황에선 분명 클로저 요원으로써 바른 행동은 아니었지만, 클로저 요원으로써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있는 그녀의 적대심은 정당했다."
"그럼..."
"문제는 나에게도 있다. 그녀가 강한 적대심을 보인 이후로 이상하게 내 판단이 흐려지고 있다. 내 속에 무슨 감정이 느껴지는데... 예전보다 감정이 다소 풍부해진 나도 이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
레비아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티나를 바라보다가 다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저는.. 조금 알 것 같아요."
"정말인가?"
"그게..."
"유하나 양!!"
"다가오지마!!"
공항 내부를 가로지르는 비명소리에 대화를 나누던 티나와 레비아도 비명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정도연이나 김유정이 유하나와 대치중이었고 유하나의 손에는 무언가 금속 막대같은 것이 들려져 있었다. 그 것을 바라본 티나와 레비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티나님! 저건!!"
"기억소거장치...!"
"다가오지마! 다가오면 이걸 작동시킬거야!!"
"유하나 양 진정해요!"
"시끄러!!"
그렇지 않아도 감시를 피해 칼바크 턱스가 있는 곳까지 도망갔다가 그 자리에서 그에게서 버림받은 유하나였다. 현장에선 충격에 의해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지만 이곳으로 되돌아오더니 사고가 폭주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이내 유나하는 다소 초점을 잃은 눈으로 기억소거장치를 돌렸다. 자신을 향해.
"그래.. 이렇게 다시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할바에.. 모두 잊을거야... 칼바크 턱스님에게 버림 받은 것도... 이 나이에 범죄자가 된 것도... 내가 차원종이 된 것도 모두!!"
"유하나 양!!"
"그만둬요!!"
콰앙!!!!
두 사람의 비명을 찢어내 듯 거대한 총성이 공항 내부를 뒤흔들었고 유하나가 쓰러졌다. 소리의 근원을 바라보니 거기엔 티나가 총구에 연기를 내고 있는 대물저격총을 들고 있엇다. 공항 내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잠시 재정신을 못차리던 차, 이내 김유정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품에서 권총을 꺼내 티나를 겨누었고 방아쇠를 당겼다.
티나는 김유정이 권총을 뽑아드는 것을 보고 이미 그녀의 사격을 예상했기에 피하려 했지만 자신의 뒤에 레비아가 있는 것을 뒤늦게 알고 이를 알고 피하지 않았다. 그런데...
"......"
김유정이 쏜 총알은 티나의 왼쪽 눈 앞에서 멈춰있었다. 염동력이었다. 김유정이 놀래려는 찰나,
"언니! 멈추세요!"
"슬비?"
이슬비였다. 이슬비는 유하나 곁에서 낮게 앉아 숨을 몰아쉬며 티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유하나는..
"너... 너..."
다소 놀란 것 같지만 다행히 멀쩡 했다. 그제서야 김유정은 자신의 실수를 눈치챘다. 위협사격이었다. 그리고 티나의 표정을 본 김유정을 할말까지 잃었다. 옅게 들어난 그 표정은... 괴로움이었다.
팅...
공중에 떠 있던 총알이 땅에 떨어지자 티나는 대물저격총을 허수공간에 수납하고 천천히 유하나에게 다가갔다. 이슬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났고, 티나는 잠시 이슬비를 바라보고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이슬비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유하나는 주저 앉은체 오들오들 떨면서도 기억소거장치를 놓지 않았다.
"유하나. 그걸 내려놔라."
"싫어..."
"싫다면 강제로 빼앗을 뿐이다. 내려놔라."
"싫다고!!"
앙칼지게 외친 유하나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째서!? 왜 날 막는거야! 어차피 내 기억이야! 내가 지워버리겠다는데 네가 뭐라고 방해하는거야!"
"난 기 장치에 얽힌 많은 사람들을 봐왔다."
티나의 표정이 조금씩 짙어져갔다. 티나의 눈 앞에 그녀가 만나왔던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나에게 조언을 해줬던 사람.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던 사람. 내가 교관의 의지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려던 것을 말려주던 사람. 남이 시키는 대로 따르던 인형의 삶을 살아가던 날 이해해준 사람. 그리고 날 그런 주박에서 벗어나게 해준 사람. 모두가 날 어떻게 도와줬나 잊어버렸다. 그 중 한명은 자신과 많은 이들의 잊혀진 기억을 찾기위해 위험한 곳에서 자신의 몸을 아끼질 않고 있다. 그건... 얽힌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추악한 기계일 뿐이다."
유하나는 할 말을 잃은 체 티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이를 악물고 외쳤다.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기억을 잃어봤자 더이상 불행해질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다시금 유하나의 팔이 올라갔고 엄지가 버튼 위에 올라갔다. 하지만, 티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불행해진다."
"...뭐...?"
"약속했잖나. 방아쇠를 당기지 않은 넌 내 은인이다. 그러니 은혜를 갚겠다고. 여기서 네가 기억을 잃게 되면 난 널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이 되고 결국 불행해지겠지. 그러니까... 부탁이야. 그걸 내려놔줘.."
기억소거장치를 쥔 유하나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기억소거장치와 티나를 번갈아보다가 이내 팔을 내렸다.
"...알겠어.. 관둘게... 유정씨. 이거..."
"어? 어... 그래..."
"..소란 피워서.. 죄송해요..."
숨죽여 바라보던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하나가 자기 자신을 향해 쏘려고 해서 망정이지, 주변 사람들에게 사용하려고 해서 사용했다면 검은양팀이고 늑대개 팀이고 괴멸 당할 수도 있었다.
티나도 한숨을 내쉬었고, 김유정에게 기억소거장치를 넘겨준 유하나가 쭈뼛거리면서 다가왔다.
"저기... 고마워. 티나."
"아니다. 할 일을 한거다."
"난 좀.. 쉬고 있을게."
"알겠다."
유하나도 재자리로 돌아가고 티나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찰나 이슬비와 눈이 마주쳤다. 이슬비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자신의 할일을 하러 갔고, 티나도 레비아에게 되돌아갔다.
"티나 님! 괜찮으세요?"
"괜찮다. 이슬비가 도와준 덕에 다치진 않았다."
"다행이에요..."
"그보다.. 아까의 이야기 말인데..."
"아, 네. 그거.."
"조금 알 것 같았다.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 미안하군. 괜히 안좋은 일을 이야기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사실... 트레이너 님께서 보내셨어요."
"트레어가?"
"네. 자신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말을 안하는거 같으니까 대신 가봐달라고요..."
티나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트레이너를 속이는건 역시 무리였나 보다. 무감정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흘러나오는 감정을 알아내기 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도 사태는 바쁘게 돌아갔고, 티나는 생각들을 정리하며 한결 편한 기분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금 칼바크 턱스를 몰아 넣었고 다시금 칼바크 턱스를 제압하기 위해 늑대개 팀과 검은양 팀이 합동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왔군. 이슬비."
이슬비는 공중에서 빠르게 내려와 우아하게 착지했다. 실제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위상력은 다른 늑대개 팀의 몇몇 이들과 비교하면 대단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실적은 리더인 그녀가 우세했다. 재능이 없는 이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힘든 노력을 해야하는지는 티나.. 그녀의 교관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클로저라는 사명에 그만큼 긍지를 갖고 버텨냈겠지.'
어쩌면.. 지금 이슬비의 모습은 자신의 교관이 꿈꾸던 그 모습이 아닐까? 티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티나 씨. 가도록 하죠."
"그 전에. 한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무엇인가요?"
티나는 살짝 눈을 감았다 뜨고 말했다. 옷깃에 붙어있는 마이크를 끈다.
"우선 내 과거 행적에 대해 사과를 하고 싶다. 미안하다."
"......"
"하지만, 나로썬 이정도로 사과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그러니 부탁이 있다."
"부탁..이요?"
"여전히 내가 밉다면, 칼바크와 함께 나를 파괴해라."
"....!!"
의외의 말에 이슬비는 할말을 잃었다.
"그.그게 무슨..."
"그리고 그 책임을 칼바크에게 돌려라. 괜찮다. 이 것은 나의 판단이고 트레이너를 비롯한 어느 늑대개팀도 모르고 있다. 그 칼바크 턱스는 충분히 강한 상대.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던 이슬비는 이내 입을 열었다.
"...생각 해보겠어요. 시간이 없으니 가도록 하죠."
"알겠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무말 없이 칼바크 턱스가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맨처음에 비하면 두 사람의 합은 다소 불안불안 해보여도 잘 맞았다. 체계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이슬비의 공격과 그런 이슬비의 공격 사이사이를 매꾸어주듯 정확하게 쏘아져나가는 티나의 공격에 그 둘을 막아서던 안드로이드들은 철저하게 파괴되어갔다.
그리고 칼바크 턱스.
늑대개 팀이나 검은양 팀만큼이나 많은 일을 저지르느라 지칠법한대도 그의 힘은 강력했다. 하지만, 다소 지친 그의 힘은 아까에 비해 합이 맞춰진 두 사람의 힘을 이겨낼 정도는 아니었다.
"크윽... 결국 같이 싸우는 법을 터득 했나..."
칼바크 턱스가 크게 흔들리자, 그 때를 놓치지 않고 티나가 달려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위상력으로 만들어진 로프가 생겨나 칼바크 턱스를 휘감았다. 위상력 로프를 쥐어 칼바크 턱스를 포박한 티나는 이슬비를 향해 외쳤다.
"지금이다 이슬비!! 네가 할수있는 가장 강한 공격을..!!"
"무슨..!"
티나의 외침에 공중에 떠있던 이슬비는 티나를 잠깐 바라봤다. 아주 잠깐 갈등이 그녀의 얼굴을 스쳐지나갔지만 이내 결심한 듯 표정을 짓자, 그녀의 주변에 떠돌던 나이프 두자루가 칼바크 턱스 향해 쏘아져갔고, 티나가 쥐고있던 위상력 로프를 스쳐지나갔다.
"...!?"
자신이 쥐고있던 로프가 끊어지자 티나는 그녀 답지 않게 당황했고, 그 사이에 이슬비가 손을 다소 거칠게 휘두르자 칼바크 턱스가 염동력에 의해 옆으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이슬비 무슨!"
"아직 안끝났어!"
그 말에 티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뽑아들어 벽에 처박힌 칼바크를 향해 사격을 했다. 하지만, 칼바크 턱스는 어느센가 그 자리에서 피해 공간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칫..."
티나는 혀를 차고 총을 겨눴지만 스스로도 이미 저 상태라면 잡기는 글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역시나 칼바크 턱스는 앞으로 한번의 복음이 남았다는 평소대로의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물러났다. 칼바크 턱스가 사라지자 이슬비도 땅으로 내려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래도 크게 다쳤으니.. 멀리 도망가진 못할 거에요."
"왜 그랬지, 이슬비?"
"네?"
"아까 너의 능력이라면 칼바크 턱스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을 터. 왜 그런 행동을 했지?"
"그 전에.. 저도 한가지 묻고 싶어요."
"...뭐지?"
"티나 씨... 당신... 죄책감을 느끼고 있죠?"
"......"
티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고 이슬비가 이어서 말했다.
"아까 하나가 자신의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할 때.. 난 티나 씨의 얼굴을 봤어요. 그리고 듣게 되었어요. 늑대개 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당시 늑대개 팀의 감시관이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지웠다고요. 그리고 당신은... 그걸 정말로 괴로워하고 있었죠.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기억을 잃은 일이 괴로웠었죠? 그랬기에 하나를 말린거고요. 심지어 유정 언니가 쏜 총도 뒤에 있는 동료가 맞을까봐 피하시지도 않았죠. 그리고 지금은... 클로저들을 암살한 일에 죄책감을 느끼시는 거고요. 저한테 당신을 공격하라고 한건 속죄를 위해서 인건가요?"
"그래... 하지만 그게 당신이 날 처리하지 않은 이유가 되지 않아."
"그래요. 하지만 난 알아버렸는걸요. 당신이 과거에 악령으로써 클로저들을 죽였지만.. 지금은 암살자가 아닌 클로저의 마음을 갖고있다는 걸요."
그 말에 티나는 다시 한번 자신의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분노도.. 자신을 괴롭히던 죄책감도 아니었다.
"나.. 나는... 클로저가 아니다. 그냥 위상력을 가진 인형일 뿐이다."
"알아요. 하지만 전 확실하게 말할게요."
이슬비는 티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당신은 어엿한 클로저에요. 소중한 사람들의 고통에 괴로워 하고 동료 소중히 여기고 과거에 저지른 일에 죄책감도 느끼는...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의 클로저요. 그러니.. 당신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했어요. 내 눈으로 확인하고 당신을 판단하기 위해."
알 것 같았다. 기쁨이었다. 전쟁을 막기 위해 미약한 위상력임에도 불구하고 클로저가 되어 차원 전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같이 않았다. 거대한 힘 앞에서 자신.. 교관은 그저 개미와 같았고 짖밟히듯 죽어야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소망으로 되살아났지만 테러 조직에 끌려갔고 창조자는 살해 당했다. 그럼에도 머릿속 마음속에서 절규하는 교관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고 싶었던 클로저를 죽여왔다. 트레이너에게 제압당해 그 것도 끝날 줄 알았지만 자신의 여전히 명령에 복종 할 수 밖에 없는 인형이었다. 그 명령 아래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 자아를 찾았지만, 이미 수 많은 일들이 지나간 뒤였다.
잊으려 했지만 그 것들은 죄책감이 되어 그동안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물론 그 것이 죄책감이라는 걸 깨달은 건 얼마 전이었지만 말이다.
한 때 클로저를 꿈꿔왔던 교관도 그리고 자신도 이슬비의 말을 듣고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이걸로 그녀의 행위들이 전부 용서 받은 것은 아니다. 이슬비 이상으로 그녀를 증오하거나 혐오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티나는 이슬비의 말에서 희망을 느꼈다.
이슬비는 가만히 서있는 티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불러본다.
"티나..씨?"
"고맙다."
"네?"
"고맙다. 그렇게 말해줘서. 나도. 교관도 다시 한번 너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렇게 말하는 티나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져 있었다. 그것도 약간의 물기 어린 미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