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용서해주세요 - 8. 죄인 -

Articulus 2016-06-10 5


국제공항부터의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국제공항 에피소드까지 클리어하지 않으신 분들 중 스포일러를 보기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이 내용은 기본적으로 클로저스의 기존 설정에 기반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많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와 마찬가지로 국제공항 이후의 스토리는 완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하므로, 본작의 에피소드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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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


  "흐으윽, 이 바보야…"

  "슬비야… 이제 그만 울어, 응?"

  "아아앙!"


  신서울역의 한 구석에서 유니온의 정식요원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울고 있다.

  분홍색의 단발머리의 한 끝을 검은 띠로 묶은 그녀, 검은양 팀의 리더 이슬비다. 그 옆에는 그녀의 같은 팀 동료이자 단짝친구인 서유리가 그녀를 달래고 있다.


  약간 거리를 둔 채 또 다른 정식요원들이 있었는데, 훤칠한 키를 가진 어른과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랜스를 한 손에 붙잡고 있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다. 제이와 미스틸테인이다.

  그들은 구석에서 울고 있는 자신들의 리더를 보면서 무척이나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 이외에 또 다른 팀원 한 명.

  전선의 가장 최전선에서 많은 힘이 되었던 그 사람, 이세하는 이제 더 이상 그들과 같은 팀이 아니다.

 

  그는 이제 차원종이 되어, 그들을 떠났다.

  정말로 거짓말처럼.


.

.

.


  "오랜만이야, 얘들아…"


  한 시간쯤 지나서 지금 시간은 오전 10시 반.

  검은양 팀의 관리요원인 김유정이 신서울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제공항 테러사건의 뒷마무리를 감당하고 있던 그녀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고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 특경대의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이곳으로 올 정도였으니 매우 급박한 상황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것이었고.

  그녀를 맞은 검은양 팀은, 그 남자 - 데이비드 리 - 가 배신했을 때의 충격보다 더욱 커다란 충격에 잠긴듯 하였다. 정말로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 남자의 배신으로부터 불과 일 주일 정도 경과했을 뿐인데, 거기에 또 다른 팀원이 그들을 버리고 - 돌아올 수 없도록 영원히 멀리 - 이탈했기 때문이다



  울먹이는 것을 겨우 가라앉힌 슬비는 아직도 눈가에 맺혀있는 물방울을 미처 다 닦지도 못한채,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보고를 했다.


  "검은양 팀, 이슬비 외 …"

 

  말이 막혔다.

  보고를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김유정이 괜찮다고 말하려고 할 무렵, 그녀는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3명. 이슬비, 서유리, 제이, 미스틸테인. 열외… 무. 총 인원, … 4명. 집합했습니다."

  "고마워, 슬비야… 그리고 모두들, 정말 고마워요, 흩어지지 않아주어서…"

  "이럴 때일수록 더욱 뭉쳐야지, 힘을 내려면."


  가장 연장자인 제이가 무겁게 말을 꺼냈다.

  배신에 익숙해진 그이기에 가능한 것일까, 오직 그만이 가장 멀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머지 모두는 시무룩했다.


  "제이 씨, 잠깐 시간좀 내주세요."

 

  김유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제이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다른 팀원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좀더 멀어지면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세하가. 세하가, 정말 차원종이 된 건가요?"

  "사실이야. 칼바크 턱스 녀석처럼 차원문 사이로 사라지는 걸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어째서… 믿지 못하겠어요."

  "나도 믿지 못했어. 하지만 그 녀석, 분명히 보라색 눈을 하고 있었으니까."

  "데이비드에 이어, 세하까지… 지금 이 상태로는 더이상 작전의 수행이 불가능해요.
  아마… 꽤 긴 시간동안 이곳 강남에 있게 되겠군요……"

 

  그녀는 말 끝을 흐리며 안쓰러운 눈초리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이미 한 번 당한 배신을, 또 당하게 된 검은양 팀. 이들의 마음을 아는 김유정이기에 쉽게 팀에게 이동 명령을 내릴 수는 없었다. 수 시간동안 그들은 이대로 이곳에 남아 있어야할테지.


  그렇게 생각하고 유정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들 무렵, 유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슬비야!"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유리를 향해 쏠렸다.

  그곳에서는 역의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슬비의 모습을 쫓을 수 있었다.

 

  "슬비야! 어디가!"

 

  김유정의 물음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녀는 다급히 다른 팀원에게 명령을 내렸다.


  "슬비를 따라가세요! 어서요!"




  ◆ 8-2


  정오의 하늘.

  이세하는 어느 높은 빌딩에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은 차다.

  아직 4월. 완전히 따뜻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시기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고층 빌딩의 위, 도시풍의 정면에 서있는 것은 꽤나 힘들다. 그것은 인간이거나, 차원종이라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다소 먼 곳.

  그가 불과 1시간 전만 하더라도 아주 잠깐이나마 있었던 그곳을 바라보며, 그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스스로 이 길을 선택했다.

  이 길 - 차원종 - 은 인간의 적이 되는 길이다. 그가 이 선택을 한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복수.

  그와 그가 사랑했던 여자에게 모욕을 주었던 그 남자 - 데이비드 리 - 를 잡아서 죽이는 것이다.

  제3위상력을 가지게된 데이비드를 상대하기 위해서 그가 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은 이것이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 유니온 - 무능한 이들 - 은 데이비드를 상대할 수 없다. 그에게 수배령을 내리고 수많은 현상금을 걸었다고 하더라도, 그를 잡아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희생하기로 결정했다.

  바보같다고 생각되지만, 이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최선이다.

  자신이 해야할 복수를 남에게 넘기는 것을 그는 결코 원하지 않기에, 스스로 이 길을 택한 것이다.


  그의 뒤로 보라색 섬광이 반짝였다.

  아주 잠깐 반짝인 빛음 금세 사라졌고, 빌딩의 옥상에 있는 것은 더이상 그 혼자가 아니게 되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이세하."

  "이렇게 있을 시간이 있어? 그렇게 원하던 복수는 뒤로 미룬거야?"

  

  애쉬와 더스트의 목소리.

  그에게 차원종의 힘을 불어넣어준 차원종들의 군단장. 

  힘의 종속관계에 의하면, 이세하의 주인은 그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와의 계약에서 그에 대한 주인으로서의 권리는 포기하였다. 대신 그의 곁에 머무를 수 있다는 조건은 여전히 유효했다.


  "복수는 분명히 이뤄질거야. 다만 녀석의 흔적을 찾을 때까지, 그때까지만 그저 조용히 있을 뿐이야."


  이세하의 대답에 그들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호오? 그런데 네 눈이 향해있는 방향은 놈이 있을만한 곳이 아닌걸?"

  "아직도 인간의 마음을 못 버린거야? 이세하, 설마 후회되는 건 아니지?"

 

  그들의 말에 이세하는 조용히 시선을 거두어 그들을 향했다.

  여전히 의기양양하게 소리죽인채 기분나쁜 웃음을 흘리는 둘에게 그는 말한다.

  "후회는 없어. 그저, 저 검은양 팀을 어떻게 쓰러뜨릴까 그 생각을 했을 뿐이야."


  그는 둘을 지나쳤다.

  또 다리 자리를 옮길 모양이다. 애쉬가 그의 행선지를 물으려던 차, 그보다 앞서 세하가 말했다.


  "따라오지마.

  뒤를 밟는 건, 나쁜 취미니까."



  크게 도약하여 그는 건너편의 다른 빌딩의 옥상을 향해 뛰었다.

  위상능력자인 그에게 있어서 이 정도의 사이킥 무브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곳보다는 동쪽이다. 

 

  남매는 웃음을 거두고서 말했다.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야, 이세하."


.

.

.


  "아저씨, 찾으셨어요?"

  "아니, 저곳엔 없다. 보아하니 너도 마찬가지인가보구나."

  "네… 도대체 슬비 누나는 어디로 가신걸까요?"

  "그러니까 말이다. 그렇게 눈 앞에서 놓칠 줄이야. 역시 염동능력자의 움직임을 쫓는건 예나 지금이나 어렵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미스틸테인과 심각한 표정으로 굳어버린 제이는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모른채, 우두커니 자리에 서있었다.

  그 때 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저씨! 테인아! 슬비 찾았어?"

  "말하는걸 보니 너도 허탕쳤나보구나."

  "그러면 아저씨랑 테인이도?"

  "네, 누나… 하필 거기서 빨간불이 들어와서…"

 

  한숨 지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유리는 말했다.

  "이를 어쩌지, 이 넓은 신서울에서 슬비를 찾으려면 하루종일 뛰어다녀도 부족할거야."

  "우선 유정 씨에게는 보고해야지. 내가 할테니, 너희 두 사람은 대장에게 계속 연락해보라고."

  "네, 아저씨."


  휴대폰을 꺼내서 유정으로 추정되는 번호로 전화를 거는 제이, 그는 곧 전화가 연결되었는지 곧바로 통화를 시작했다. 유리도 휴대폰으로 슬비의 번호를 찾아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옆에서는 총총걸음으로 기다리는 미스틸이 제발 전화가 연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세 네번의 통화연결음이 들린 후에, 딸각 소리가 들리며 슬비의 목소리가 유리의 휴대폰을 통해서 들려왔다.

  "응, 유리야."

  "슬비야! 너 도대체 어디야?"

  "응… 미안해. 유정 언니께, 그리고 제이 씨께도, 너한테도, 미스틸에게도… 미안해.

  정말 미안한데 하나만 부탁할 수 있을까?"

  "부탁?"

  "응. 오늘 하루만, 딱 오늘 하루만, 내게 자유시간을 달라고 부탁드려줘, 유정 언니께."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도대체 슬비야, 너 어디인거야?"

  "미안… 내일 말해줄게. 징계는 꼭 받을테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

  "세하 때문에 그러는거야?"

  "……"


  뚝-

  전화는 끊어졌다.

  말 없이 슬비는 전화를 끊었다.


  유리는 왜 그녀가 전화를 끊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여자의 감은 꽤나 정확하다. 아마도 슬비는 세하를 찾으러 갔을 것이다. 그것이 유리의 생각이다. 아마 그것은 정답일테지만, 그녀는 무리해서 보고하지 않기로 했다. 실연의 아픔을 아주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그녀이기에, 부디 두 사람의 연정이 깨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 8-3


  날은 저물어갔다.

  정오를 한참이나 지난 시간, 아침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허기질 것임에도 슬비는 무언가에 홀린듯이 찾아다녔다.


  "바보야, 너는 정말 바보야, 이세하."

 

  그녀가 제일 처음 들렀던 곳은 강남 GGV 근처.

  한 때 클로저들의 거점이었던 이곳은 강남 사태 이후로 거의 파괴가 되어 지금은 복구 진행중이다. 이곳에서 그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는 없다. 그의 독특하고도 짙은 그 위상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눈시울에 맺힌 눈물을 자켓의 소매로 훔쳐내며 그녀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 그녀가 향한 곳은 G타워.

  강남 GGV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그곳에 도착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아래에서 그러했듯 그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실상 정말 이곳에 오면서 그녀는 은근히 기대를 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역시 그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녀의 직감으로는 적어도 이세하는 강남에는 없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그녀의 눈에 우연히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이기에 시야를 가리는 빌딩이 없다 - 물론 그런 빌딩이 있다고 하더라도 강남 사태에 모두 파괴되었다- . 그렇기에 아주 멀리, 심지어 강북까지도 보이는데,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높으면서도 유난히 가깝게 보이는 어느 산 위의 타워이다.

 

  왠지 저기를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세하, 제발 있어줘."


  그녀는 그대로 타워 아래로 뛰어내렸고, 위상력을 이용해 착지한 후 강북으로 향하는 버스를 탑승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분명했다, 그와 처음으로 데이트를 했던 바로 그곳 - 남산 타워 - 으로.


.

.

.


  "네, 네… 알겠습니다."


  휴대폰을 내려놓는 김유정의 모습 속에는 안도함과 불안함이 함께 서려있었다.

  검은양 팀의 현 상황을 상부 조직인 뉴욕 총 본부에 보고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지시를 하달 받기 위한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총 본부도 우선은 대기할 것을 그들에게 지시한 것이다.

  그들도 이세하의 배신에 대해서는 꽤나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럴만도 한게 그의 어머니가 인류의 영웅인 서지수라는 점에서이겠지.


  "유정 씨, 어떻게 된거지?"

  "총 본부 사무국에서는 좀더 상황을 두고 봐야할 것 같으니, 검은양 팀은 강남에서 대기하면서 상황을 예의 주시하라는 명령이에요."

  "불행 중 다행이군. 만약 이대로 국제공항에서 작전을 수행했다면, 큰 어려움을 겪었어야만 했겠지."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좋지만은 않아요. 세하가 차원종의 힘을 가지게 된 이상, 유니온에서 아무리 강력한 클로저를 보낸다고 해도 상대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그래서?"

  "총 본부는 늑대개 팀을 이용하려는 모양이에요."

  "…"


  그녀가 안도함과 불안함을 모두 가지고 있는 이유.

  안도하는 이유는 그녀와 검은양 팀이 당장 작전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며,

  불안해하는 이유는 그녀와 검은양 팀이 늑대개 팀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늑대개 팀은 지금 어디있지?"

  "램스키퍼와 함께 국제공항에서 대기 중이에요. 데이비드의 도주 이후에 대기명령을 받았거든요."

  "총 본부는 놈들을 어떻게 이용하겠다는거지?"

  "트레이너 씨의 말에 의하면 늑대개 대원 나타는 아주 잠시나마 제3위상력을 사용했었다고 해요. 물론 지금은 원래대로 제2위상력밖에 사용하지 못하지만, 차원종의 위상력을 주입하면 제3위상력을 다시금 사용할 수 있죠."

  "하지만 차원종의 위상력을 어떻게 주입하려는 거지?"

  "같은 팀의 대원인 레비아를, 사용하려는 모양이에요…"

  "후… 역시 유니온답군, 정말로."


  한숨을 내쉬는 제이.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미스틸테인이 다그쳐왔다.


  "유정 누나, 그렇게 해서는 안돼요! 레비아가…, 레비아가 그랬다간 죽는다고요."

  "나도 알아. 하지만 이것이 총본부의 결정인걸…"

  "안돼요! 전 반대에요, 반대!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나도 총본부의 생각에 대해서 완전히 수용하지는 않을 거야. 다만 그들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이 동의해야겠구나."

  "유정, 누나…"

  "어쩔 생각이지, 유정 씨?"


  제이의 낮은 물음은 상황의 진지함을 말해주고 있다.

  그녀의 생각, 그것을 묻는 제이의 말에 김유정은 우선 돌려가듯 대답했다.


  "우선은 늑대개 팀을 이곳으로 부르겠어요.

  그 때까지 여러분들은 모두 이 근방에서 쉬면서 대기하도록 하세요."


  말을 마친 후, 그녀는 휴대폰을 다시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마 그 전화가 향하는 곳은 국제공항에 있을 늑대개 팀일테지.


.

.

.

   

  강남의 대로를 통과해서 한남대교를 향해 북상하던 버스는 어느새 남산 밑의 국립극장 밑에 도착했다.

  깜빡 버스 안에서 졸았던 슬비는 눈을 비비면서 버스에서 내렸고, 그녀가 내리기가 무섭게 버스는 그녀 옆을 지나가버린다. 차량의 통행이 꽤나 많은 거리를 벗어나서 그녀는 눈 앞에 솟은 남산과 그 위의 타워를 올려다보며, 저 타워의 입구에까지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여기에서 버스를 한 번만 더 타면 저 타워의 입구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그녀는 걸어가기로 생각했다.

  혹시나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저곳에 있던 그를 놓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확실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가 이곳에 있을 것 같다는 것은 그녀의 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녀는 매뉴얼과 규칙을 중시한다.

  그런 그녀가 규칙을 무시하고, 심지어 객관적 데이터에 의거하여서만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던 그녀가 감에 의지해서 행동하다니, 평소의 그녀이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만큼 그녀는 절박하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가 이렇게 자신의 곁을 떠나는 것은 결코 놔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이세하,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등산로를 따라 계속해서 올라가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그의 기척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더 올라간다, 그러면 그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남산의 한 밤은 여전히 썰렁하다.

  생각보다 유니온의 정식요원복은 통풍이 잘되는지라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춥다. 차라리 난방에 있어서는 기존의 검은양 요원복이 더 나을 정도다. 옷을 갈아입고 올 걸 그랬나, 라고 아주 잠깐 그녀는 생각했지만, 차라리 옷 갈아입는 시간에 이세하를 더 찾아다니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내 잡념을 떨쳐냈다.


  그렇게 계속 걷다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북적이는 남산 타워의 입구에까지 올라와 있었다.

  올라오면서 그녀는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 그가 있을 곳이란 바로 이 광장과 그리고 저 타워의 안.

  불안함이 그녀를 엄습해왔다. 그를 이곳에서도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까 그녀는 울컥했다. 지금은 참고 있지만, 만약 여기에서 그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녀는 정말로 그대로 주저앉아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울컥대는 감정을 추스르며 그녀는 말한다.

  "이세하, 내가 망가지면, 너가 책임져."


  들을 리 없는 그런 말을 하면서, 그녀는 인파 사이를 헤치고 나갔다.

  타워 안에 들어가려고 했던 도중, 그녀는 이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표가 있어야함을 알아차렸다. 그러했기 때문에 예전에 그녀는 이세하와 함께 오랫동안 줄을 서서 표를 사기 위해 기다렸다.


  시간을 보니 지금 시간은 9시 반.

  예전에 그와 이곳을 찾아왔을 때에도 이 시간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이렇게 줄을 서 있어야만 했다.

  우연히 그 때는 그에게 표가 생겨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의 입장시간이 11시까지이고, 그 때에 9시 반까지 들어가야했던 이유가 저녁을 먹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꼭 일찍 들어갈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안에 빨리 들어가야만 했는데, 그것은 저 안에 그가 있는지 없는지를 빨리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줄은 길게 늘어서 있고, 줄은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밤이 되면 낭만을 찾아 사람들이 더 몰려오기 때문에, 밤에는 더욱 안에 들어가기가 힘들다.

  발만 동동 구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슬비는 다시 차고있던 손목시계를 보았다. 벌써 5분이나 지났다. 하지만 전혀 줄은 줄어들지 않고 있었고, 그녀의 차례가 되면 30분은 우습게 지나갈 것이다.

 

  "이세하, 제발 어디 가지마. 제발, 부탁이니까…"

 


  "내가 어딜간다고."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었나.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서, 의심을 풀었다.

  정말로 그는 이곳에 있었다. 아침에 사라졌던 그 때의 모습 그대로, 그는 여전히 유니온의 요원복을 벗어버리지 않은 채로 말이다. 눈 색을 제외하고는 평상시의 이세하와 다를바가 없다.

  그는 두 장의 표를 그녀 앞에 내보였다.


  "저 안에 갈거지?"

  "이세하… 너…"

  "저녁은 글른 것 같고. 가서 음료수나 마시자.

  너나 나나 이야기할게 많을테니까."


  그렇게 말을 하고선, 그는 손을 내밀었다.

  "손, 잡을래?"


  어색했다.

  분명히 그녀의 앞에 서있는 것은 그녀의 남자친구인데도.

  검은 빛에 가까웠던 그의 눈은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인데도 왜일까?


  머뭇거리기만 할 뿐 그의 손을 잡지 못하는 이슬비.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건지, 그는 손을 거두어들이려는 듯 다시 자신에게 손을 가져간다. 하지만 그 전에 그녀의 손이 그의 손을 낚아챘다.

  맞잡은 두 사람의 손은 서로의 체온을 공유했다. 여전히 세하의 손은 따뜻했다.


  이후로는 말이 없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듯 발을 맞추어 타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타워 앞에서는 저번에 보았던 그 직원이 그대로 검표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저번과 같이 수다스럽지 않게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두 사람은 금세 전망대에 도착했다.

 

 


  ◆ 8-4


  "조심! 조심!"

 

  특경대원들이 수신호를 주고 소리를 질러가며 계속해서 주의할 것을 말한다.

  한 명은 지시봉을 흔들면서 거대한 전함의 저공비행을 돕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그 일대의 통제를 위해 사람들이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전함이 땅에 가까이 내려오면서 밀려난 공기가 시끄럽게 요동을 치면서, 공원 일대의 호수와 나무들을 흔들어 놓는다. 전함 - 램스 키퍼 - 의 출입문 같은 것이 열리고, 그 사이로 몇 명의 사람들이 튀어 나온다. 세 명의 인영이 튀어나와서, 전함 아래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이들의 앞에 섰다.


  김유정을 선두로 그녀의 뒤에는 세 명의 검은양 팀원들이 섰고, 그녀의 앞으로 나아온 회색 코트 차림의 남성의 뒤로 두 명의 늑대개 대원들이 섰다.

  "늑대개 팀원, 집합했소."

  "한 명이 비는 것 같은데, 하피 씨는 어디에 있죠?"

  "그녀라면 저 위에 있소. 일단 저 전함은 위상능력자가 없이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니까 말이오."

  "우선 먼 길을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우리가 할 일을 하는 것 뿐이오. 작전에 관해서 말해주겠소?"


  회색 코트 차림의 남성 - 트레이너 - 의 말에 김유정은 잠깐 머뭇거렸다.

  하지만 곧 답을 그에게 주었다.


  "오늘은 너무 늦었기 때문에 작전의 지속이 불가능할 것 같아요."

  "작전의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도 동감하는 바이오. 검은양 팀에도 팀원이 두 명이나 비는 것을 보면, 그쪽도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니 말이오."

  "자세한 것은 내일 아침 8시에 강남 GGV에서 브리핑하도록 하죠. 그 때까지는 쉬고 있도록 하세요."

  "알겠소. 나타, 레비아, 이만 철수한다."


  고분고분 그의 말을 따르는 두 남녀는 그를 따라 다시 전함으로 올라간다.

  그들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전함은 곧바로 하늘 높이 다시 솟아올랐다. 단 램스 키퍼의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꽤나 높은 상공에서 그대로 정지비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저 전함은 당분간은 저렇게 저곳에서 있을테지.

  민간인들도 곧 익숙해질테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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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로 가득찬 전망대.

  시끄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고요하지도 않은 이곳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신서울의 야경을 감상하고 있다. 시간 상 가족이 오기보다는 연인들이 주로 찾는 지금은, 거의 둘씩 짝을 지어 흩어져있다.

 

  보통 사복을 입고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유니온의 정복을 입고 이곳을 찾은 두 남녀는 유독히 눈에 띄었다. 이세하와 이슬비는 자판기에서 뽑은 캔 음료를 앞에 두고서 저 멀리 어둠으로 가득찬 강남을 쳐다보고 있다.


  "어째서 녀석들에게 복종한거야?"

 

  슬비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던 세하는 탁자에 올려둔 캔음료를 터서 한 모금 목으로 넘기고서야 입을 열었다.


  "내 선택이야."

  "왜 그런 길을 선택한건데."

  "다른 방법이 있어?"

  "있을지도 모르잖아. 적어도 시간은 더 낼 수 있었어."

  "유니온에서는 해답을 얻을 수 없어."

  "아니, 그건 착각이야. 유니온도 분명히 데이비드를 체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분명히 해결책을 마련할거야. 그러니까, 세하야. 돌아와 줘, 제발."


  바로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세하는 다시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신다.


  슬비는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이 문제는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다. 그녀는 진심으로 말했고, 그 역시 그녀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인 것은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는 바이다.



  "너무… 늦었어."

  "아니, 아직 늦지 않았어. 그 녀석들 - 애쉬와 더스트 - , 예전처럼 다시 마음을 품을 수도 있잖아."

  "아니, 이번에는 저번과 같이 해주지는 않을거야. 게다가 난… 너희에게 돌아갈 마음은 없어."

  "…"


  말이 다시 끊어졌다.

  

  아직도 할 말이 많은 그들임에도, 그들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애쉬와 더스트 - 대화중단자 - 에 의해 세하는 이다지도 변한 것일까? 슬비는 오히려 세하의 이러한 매정한 태도에 놀랐다.

  그녀가 아는 세하는 이 정도로 매몰차지는 않았는데.

 

  "날 사랑했던건 다 거짓말이었던거야?"

  "그건…"

  "날 사랑하지 않아도 좋아."

  "이슬비."

  "하지만 난… 못 하겠어. 너를 포기하지 못하겠어. 너가 나를 버린다고 해도, 난 널 포기 못해."


  뭔가를 말하려던 세하는, 금세 입을 다물었다.

  말하기를 머뭇거리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하려는 말은 자기에 대한 변호였으리라.

  하지만 그 변호가 통할리 없기에, 그는 말하기를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대신 다른 말을 덧붙였다.

 

  "지금은 내가 이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적어도 지금은 인간의 모습이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난 너의 적이야. 너는 내 적이고."

  "아니, 너는 내 적이기 전에, 먼저 내 남자친구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얼마가지 못할거야."

  "아니, 절대 변하지 않아. 너가 도망치더라도 난 너를 계속 쫓을거야. 그리고 너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게 만들거야."

  "…"


  다시 말이 없어지는 이세하.

  슬비는 아직도 그에게 마음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가 차원종이 된 이유, 그것은 그녀를 짓밟은 그 남자 - 데이비드 - 를 쓰러뜨리기 위함이었다. 그 남자를 이기고, 그를 슬비 앞에 무릎꿇리는 것, 그것을 위해 세하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결국 모든 것은 이슬비 - 연인 - 를 위한 것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슬비가 슬퍼할 것을 뻔히 아는 그이기에, 그는 슬비가 자신을 더이상 사랑해주지 않기를 원했다. 그녀의 부모님을 죽인 원수 - 차원종 - 와 한 편이 되면 그녀가 자신을 미워하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그를 미워할 마음따윈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어서는 그가 차원종이 안되는 만 못하다. 자신의 결심이 흔들릴 수도 있음을 안 그는 매몰차게 그녀에게 상처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되어서 자신을 포기하도록.

  평범한 아픔의 말 따윈 소용없다. 더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


  "하나만 부탁할게."

  "말해줘."

  "내가 언젠가 이성을 잃고 너를 알아 보 지 못하게 되면…"


  세하의 감정이 북받쳐올랐다. 쉽게 말을 잇지 못한다.

  겨우 심호흡을 하고선, 그는 말을 잇는다.


  "그땐 니 손으로, 내 심장을 찔러줘."

 

  그 말은, 슬비의 마음을 찢어놓기에 충분했다.

  절대 어떤 말에도 상처받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마음에 상처내는 말, 그것은 자신을 직접 죽여달라는 청유였다. 사람을 손으로 죽인 적도 없는 그녀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이것으로 끝이라고 세하는 생각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 없이 작별하려고 했던 그였지만, 그것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리에서 떠나가려던 그의 왼팔을 그녀는 움켜쥐고서 놓아주지 않았다.


  "놔."

  "못 놔."

  "이쯤하면 너도 포기할 만 하잖아."

  "내가, 포기할 것 같아?"

 

  그녀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대 그의 팔을 놓지 않을 생각인가보다.


  "이대로 놓으면 도망칠텐데, 어떻게 놓으라는거야?

  절대 못 놔. 가려면 나도 데리고 가."


  그녀의 억지는 이기지 못한다.

  그것은 그가 인간이었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조차도. 하지만 그는 이겨야만 했다.


  "놔."

  "못 놔."

  "놓아라고 했어."

  "못 놔줘, 절대."


  말로 해서는 안될 것 같아, 그는 등에 걸어두었던 건블레이드를 뽑아들어 그녀에게 겨누었다.

  건블레이드의 날카로운 끝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을듯 가까이 다가왔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깜짝놀라며 그들의 주위에서 떨어졌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떨어져서 이 모습을 보기만 하고 있었다.


  자신의 턱 바로 아래에까지 다가온 날카로운 검의 냉기가 느끼면서도 슬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태연하게 말했다.

  "죽이려고? 그래! 죽여! 그러면 갈 수 있을테니까."

  "이슬비, 손 쓰게 만들지마."

  "절대 못 놔줘.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정말로 그녀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곳에서 떠날 수 없을 것이다.

  말로는 결코 그녀를 떨어뜨려 놓을 수 없다. 그녀의 집념을 알기에 건블레이드의 끝을 땅에 떨어뜨리고는 그는 힘없이 말했다.

 

  "나, 가야만 해."

  "안 보내줄거야. 다시는 안 돌아올거잖아!"

  "약속할게… 내 일이 끝날 때까지 내가 이성을 잃지 않으면, 꼭 돌아올게, 이곳으로."

  "어떻게 믿으라는거야."

  "너의 남자친구로서, 약속할게. 꼭, 그 때가 되면, 꼭, 다시 돌아올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때까지만. 나를 기다려줘."

 

  슬비도 알고 있었다.

  주위의 시선으로보아 아마도 그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이미 유니온 신서울지부와 특경대에게 신고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하를 체포하기 위해 엄청난 수의 위상능력자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그를 붙잡고 있다고 한들, 그와 그녀의 생각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그리고 계속 이렇게 있다가는 세하는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쓰러뜨릴 수밖에 없을테고, 그렇게 되면 세하가 나중에 인간으로 돌아오게 되더라도 그 죄값을 치르어야만 한다.


  그를 보내주고, 그의 약속을 믿는 것만이 이제 그녀에게 남은 최후의 수이다.

  그녀는 그의 팔을 가만히 놓아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바로 도망치는 일은 없었다.

  대신 그는 매우 사랑스럽게 대답해주었다.


  "고마워, 믿어줘서."

 

  그는 웃음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그는 사람이었다. 차원종이 힘을 가졌을지라도, 그는 분명히 인간임을 그녀는 직시할 수 있었다.


  그녀도 웃음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여전히 이세하이기에. 그가 그녀를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붉은 불빛도 멀리서 보이는 걸보니, 이곳으로 특경대가 들이닥치고 있는게 틀림없다. 이제 정말로 이별이다.

  두 사람은 이별을 그저 맞이하지 않았다.


  약속이나 한듯 두 사람은 서로를 안았고, 서로의 입술을 포갰다.

  10초 정도, 아주 짧게 두 사람은 눈을 감고 서로의 따스한 숨결을 느낀다.


  욕망 따윈 없는 사랑어린 입맞춤이 끝나고 두 사람은 스르르 떨어졌고, 서로에게 손을 흔들었다.

  사이렌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리고,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가 가까운 데서 들렸다. 몇 대의 경찰 헬리콥터가 이 전망대 안을 조명등으로 비추었고, 금세 빛들은 일제히 이세하를 향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곳으로 진입하지 못한다. 이곳으로 진압하기 위해서는 상층부에서 내려오거나 하층부에서 올라올 수밖에 없기에, 그를 체포하기 위해서는 더 시간이 소요된다.

  그 시간을 기다려줄 세하는 아니었기에, 그는 자신의 힘으로 차원의 균열을 일으켰다.


  보랏빛의 섬광 안으로 그는 몸을 숨기듯이 사라져갔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그가 사라질 때까지 슬비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눈의 색은 달랐지만, 그 시선만큼은 어느 때와도 똑같았다. 다를 바 없이 정말로 똑같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끝까지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세하가 완전히 차원의 균열 사이로 사라지자 그제서야 맞보던 둘의 시선은 흩어졌다.

 

  차원의 균열로 발생했던 보라색의 빛이 완전히 사라질 쯤이 되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무장한 특경대 대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슬비 요원님, 괜찮으십니까!"

  "이세하는 어딨습니까!"

 

  그녀의 안부를 물어옴과 동시에 세하의 행방을 찾는 특경대 대원들이지만, 두 질문다 부질없었다.

  슬비에게는 아무런 일도 없었고, 세하는 이곳에 없기 때문에.


  그녀는 세하가 이곳에서 이미 사라졌음을 설명했고, 자신도 괜찮다고 말했다.

  특경대원들은 그제서야 긴장을 풀고서 총을 내려놓았다.


  상황이 정리되자 특경대원들과 함께 그녀는 이곳에서 철수했다.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문 앞에 선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자켓의 주머니로부터 꺼낸 휴대폰에 찍힌 번호는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아니 이것은 번호가 아니었고, 마치 공중전화에서 걸려온 번호처럼 길게 숫자가 나열되기만 한 번호였다.


  우선 전화를 받아보기로 한 그녀는 휴대폰을 귓가로 가져왔다.

  "이슬비입니다."

  "크후후후하핫. 오랜만이로구나, 길 잃은 어린 양이여."

  "칼바크…, 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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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에 올렸네요.

이렇게 연재주기가 길어지면 안되는데... 스퍼트를 내보겠습니다...


대학생활이 너무 힘드네요, 4학년인데도...ㅋㅋㅋ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번 화가 추천글로 올라갔더라고요.

추천과 댓글 남겨주셨던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더 열심히 양질의 소설로 보답하겠습니다!


다음화에서 뵈어요!




2024-10-24 23:02:1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