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기사(Knight of Janus)-10편

에피메테이아 2016-06-04 0








스토리를 참고하려고 플레이하는데 어느새 글쓰기가 뒷전이군요.(머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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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유리 누나가 많이 부끄러우셨나 봐요.”

그렇게 이미 가버린 사람의 뒷담을 하며, 두 사람은 조용히 정리를 시작했다. 유리가 본다면 ‘내가 한다고 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겠지만, 슬비는 어질러진 자리를 그냥 두고 볼 사람이 못 되었다.

“그나저나 슬비 누나는 오늘 수련 안 하시는 거예요?”
“응. 으, 응. 오늘은 몸으로 하는 수련이 아니라서.”
“우웅? 몸으로 하지 않는 수련도 있어요?”

생소한 말에 미스틸테인의 눈이 동그래졌다. 얼굴처럼 동글동글해진 눈동자를 보자니, 무표정할 때가 많은 슬비도 미소가 절로 나왔다. 설명을 하는 어조도 자연스레 부드러워졌다.

“있어. 마인드 컨트롤이라고, 마음속으로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상상하는 거야.”
“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러세요?”
“아무래도 몸으로만 해서는 그림이 안 그려지니까. 그분이 말했던 게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를 상상 속에서 그리고 나중에 몸으로 구현을 해보는 거지.”

아카데미 수석다운 정론이었다. 그녀는 하나하나 손으로 꼽아가며 친절히 마인드 컨트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고, 미스틸테인은 또래의 아이답게 기대감을 한껏 품고 이야기를 경청했다. 훈련의 열기가 가득하던 수련실에 두런두런 말소리가 대신 자리를 차지했다.

“테인이 너도 창을 휘두를 때 어떻게 휘둘러야 더 좋을지 고민해볼 때가 있지 않아?”
“예, 물론이에요!”
“그걸 그림으로 먼저 그려본다고 생각하면 돼. 도화지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그린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아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처음에는 그려본 것하고 몸으로 하는 것하고 맞지 않을 거야. 하지만 반복하다 보면 몸이 머리로 그리는 걸 따라하게 되고, 거기서 더 나아가면 상상하고 실제 행동이 같아지는 거지. 그렇게 되면 스스로에 대한 마인드 컨트롤이 완전히 끝나게 돼.”
“저도 내일부터는 그렇게 해볼게요.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설명을 다 들은 미스틸테인이 해맑게 인사했다. 슬비도 마주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고, 잠시 후에 유리가 샴푸와 비누 향기를 풍기며 돌아왔다.

“얘들아 나 왔어… 어라? 뭐야, 내가 오기 전에 벌써 정리한 거야?!”
“정리는 제때 해야 하니까. 유리 너도 앞으로는 정리부터 하고서 씻도록 해.”
“뿌! 슬비는 항상 너무 빡빡해!”

오늘도 넘어가지 않는 잔소리에 유리가 입을 닷 발이나 내밀었다. 이럴 때는 얌전한 미스틸테인보다도 그녀가 더 어린아이 같았다. 슬비는 조용히 웃으며 유리의 손을 잡았다.

“세하는 집에 가서 밥 먹는다 했고, 우리는 우리끼리라도 밥 먹는 거야. 어때?”
“찬성! 세하 녀석이 부러워하게 푸짐한 데로 가자고!”

팀원들과 함께하는 그 일련의 활동 중에도, 슬비의 머리 한 구석에서는 다른 영상이 재생되었다. 소피아가 마지막에 했던 말은 특히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항상 전력으로 전투에 임하여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유리가 드러내며 전의를 불태웠다면, 슬비는 속에서 은은하게 불을 피우고 있었다. 그녀 또한 오늘 같은 꼴불견을 보이지 않을 거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슬비야. 그러고 보니 오늘 조금 이상하지 않았어?”

근처에 맛있다는 분식집으로 가는 길. 이번주에 학교에서 있던 일을 떠들어대던 유리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

“이상하다니, 뭐가?”
“오늘은 차원종 경보가 한 번도 안 울렸잖아.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유리의 지적에 슬비도 의아해했다. 훈련을 받느라 못 들었나 하면, 유정이 항상 연락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그럴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차원종이 안 나타났다는 의미가 된다. 평소에 차원종이 나타나는 빈도를 생각하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어? 그러게요. 매일 1번씩은 차원종들이 나타났는데, 오늘은 되게 조용해요.”
“글쎄… 우리한테야 좋은 일이잖아. 차원종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피해를 보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그놈들도 쉴 시간은 필요한 거겠지.”
“그, 그런가?”
“우웅.”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들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평화를 잠시나마 누리는 것이 최선일 따름.






그 시각.

“차원문이 안 열린다고?”
[네, 참모장님. 위상력을 아무리 조절해도 변곡률이 변하질 않습니다.]

사실, 차원종은 안 오는 것이 아니라 ‘못’ 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열렸던 차원문이 어째서?”

보고를 받은 애쉬의 얼굴이 왕창 구겨졌다. 성질 같아선 부복해있는 부하의 몸을 뭉개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어진 보고는 그의 보고를 조금이나마 식히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쪽의 문제는 아닙니다. 조사 결과. 우리 쪽에서 위상력을 조작할 때 반대편에서 정체불명의 힘으로 그걸 흩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정체불명의 힘?”
[네. 인간들의 위상력은 아니었습니다.]
“위상력이 아닌 힘이라…….”

원래 오늘은 대규모 공격을 해볼 예정이었다. 이것을 위해서 귀한 전력인 A급 전력 말렉도 준비했었다. 지난 대전 이후로는 제대로 열리지 않는 차원문을, 이제 슬슬 다시 열어보려는 취지로 일을 진행했던 것이다. 저쪽 인간 세계에서 새로 맞이한 종복도 그에 동참했으니, 준비는 완벽했다.
그런데 그 일이 시작부터 막혀버렸다. 종복에게서 보고가 끊겨버린 것은 덤. 나중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쪽과 신서울 사이의 통로는 ‘완전히’ 차단당했다.

“어떻게 생각해, 더스트 누나? 옛날 대전 때의 기억은 누나가 더 많이 가지고 있잖아.”
“글쎄.”

더스트의 표정도 애쉬와 별다를 바가 없었다. 상정 외의 상황은, 모든 일을 재미로 즐기는 그들마저도 당혹하게 만들었다. 꼭 다문 창백한 입술은 억눌린 분노와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고심에 잠겨있던 더스트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녀는 조심스럽게 한 가지 가능성을 언급했다.

“혹시 ‘그 여자’가 아닐까?”
“그, 그 여자?”

‘그 여자’라는 말에, 애쉬가 석고상처럼 굳었다. 혈관 속을 흐르던 피가 삽시간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애쉬는 그대로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었다. 더스트도 그의 마음을 짐작했기에 같이 침묵을 유지했다.

“확신하는 거야? ‘그 여자’라고 말이야.”

얼마 안 있어, 애쉬는 간신히 마음을 추슬렀다. 그는 아까보다 훨씬 가라앉은 어조로 더스트에게 질문했다. 더스트 또한 침중하게 대답했다.

“100%는 아니겠지. 하지만 너나 내가 경험한 것들 중에서 정체불명의 힘이라면 ‘그 여자’하고 연관된 자들밖에 없어. 지역 단위로 위상 변곡률을 고정시킬 규모라면 본인일 가능성이 더 높고. 십 수 년 사이에 제자들을 키우거나 자식을 가졌다면 또 모르겠지만. 따지자면 경우의 수는 셋이네. 제자, 자식, 혹은 ‘그 여자’ 본인.”

어느 쪽이든 그들에겐 나쁜 변수였다. 그걸 직감한 애쉬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강력한 힘에 벽 일부가 쪼개지고 갈라졌다. 산산이 무너지는 돌 더미는, 그의 혼란한 마음과 같았다.

“**. 유럽에서 죽 치고 앉아있던 여자잖아! 무슨 바람이 불어서 한국으로 온 건데?”
“방금 말했지만 가능한 경우는 여러 가지야. 물론 어느 쪽이든 좋은 의미는 아니지. 누가 왔든 ‘그 여자’의 의지가 거기에 개입했단 뜻이니까.”

더스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 여자’를 언급할 때마다 치가 떨리고 속이 쓰려왔다. 지난 대전에서 그들이 겪은 실패를 세어봤을 때, ‘그 여자’에 의한 실패는 그중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단순히 전투에 의한 것이라면 알파퀸 서지수도 만만찮았지만, ‘그 여자’는 전투 말고도 그들에게 각종 민폐를 끼쳤었다.

“누나.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계획을 다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그 여자’가 얽혀버린 일이야. 좋게 끝나긴 글렀다고.”

급기야 애쉬는 계획의 수정을 요구해왔다. 더스트는 동생의 말에 강렬한 유혹을 느꼈다. 허나 이를 갈아대며 그걸 이겨내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요구를 거부했다.

“안 돼. 너무 오랫동안 진행해왔어. 이제 와서 멈춰봤자 우리에게 손해만 끼칠 뿐이야.”
“잘못하다간 군단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손해 보는 쪽이 낫겠어, 아니면 아예 쪽박을 차는 쪽이 낫겠어?
“다른 간부들이 우리가 이러는 걸 알면 참 좋아하겠구나. 명심해, 애쉬. 우리 군단은 지금도 간부들의 대립 때문에 지난 대전만한 힘을 못 내는 상황이야. 당장 그 망할 용의 군단도 처리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계획 수정은 불가능했다. 대전 때 수많은 간부를 잃고도 무너지지 않았던 군단이, 살아남은 간부들의 아귀다툼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분’은 아직도 묵묵부답. 그러므로 일을 저지르지 않으면 정체될 뿐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그 여자’야! 알잖아? ‘그 여자’한테 갈려나간 군단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거.”
“우리가 언제부터 몸을 사려가며 일을 했지? 착각하지 마. 일을 시작한 이상 너나 나나 발을 뺄 구석은 없어. 그렇게 벌벌 떨고 있느니, ‘그 여자’를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막을까 고민을 해봐.”

혈육에게도 가차 없는 독설에, 애쉬가 신음성을 흘렸다.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누나가 이러는 이유를 이해했다. 더스트라고 ‘그 여자’가 상대라는데 태연할 수 없었다. 아니, 자신보다도 대전 때의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으니 무서움은 더할 것이었다. 물러서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녀는 그걸 이겨내는 방법으로 차라리 강하게 나가는 쪽을 택했다. 누나의 마음을 안 애쉬는 발을 한 번 구르고 돌아섰다.
물러설 수 없다면, 더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차원문들을 복구하는 게 우선이야. 연결을 복구하자마자 연락할게.”
“서두르는 게 좋아. 칼바크 그놈이 이럴 때 다른 마음이라도 먹으면 곤란하니까.”
“알았어.”

애쉬가 부하들을 대동하고 자리를 떠났다. 더스트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보랏빛 위상력으로 오염된 그곳은, 폭풍이 몰아치듯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수백 년간 살아와서 익숙한 하늘이었지만, ‘그 여자’에 대한 가능성을 알아버린 오늘은 그녀 자신의 마음을 보듯 기분이 심란했다.

“하필 또 ‘그 여자’라… 우리도 참 운이 없구나.”



‘이게 끝인가? 큰 군단의 간부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실망이 크구나.’
‘아니! 아니야. 곧 동맹을 맺은 군단들이 몰려올 거야. 그때면 네놈도!’
‘군단들? 아아, 과인이 여기 오기 전에 전멸시킨 놈들을 말하나 보구나.’
‘뭐? 말도 안 돼. 1만이 넘는 숫자를 혼자서……?’
‘그렇게 되었다. 그놈들이 여기 올 일은 없을 것이야. 아참. 네놈이 죽으면 다시 만날 수 있기는 하겠군. 말한 김에 만나게 해주랴?’
‘웃기지 마. 누가 네놈 따위에게!’



‘썩어죽을 여자 같으니라고!’

더스트의 두 손이 꽉 쥐어졌다. 창백한 피부 위로, 보랏빛 핏줄이 위태롭게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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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떡밥(?)을 투척한 1편이었습니다.



그럼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2024-10-24 23:02:0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