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기사(Knight of Janus)-프롤로그

에피메테이아 2016-05-1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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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할 것들이 많은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그것들을 잃는 위기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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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강북의 한 거리.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괴물’들이 있었다.
말은 필요 없었다. 아마 할 기회가 주어졌더라도 하는 사람이나 괴물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들이댄 것은 악수가 아니라 주먹과 무기였고, 목과 입에서 나오는 것은 상냥한 목소리가 아닌 날카로운 비명과 고함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많은 것이 있었다.

피.

푸른색 등 이질적인 피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사람의 따뜻한 붉은 피… 그러나 붉은 피의 양도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1:10, 아니, 점점 숫자 차이는 절망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은 줄어만 가는데 괴물의 숫자는 늘어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민간인들은 무사히 대피했다는 게 다행일까? 하지만, 그 대가로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보전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

그들 중에 소년이 있었다. 그의 손을 감싼 장갑은 어느새 각종 피와 오물로 더럽혀진 상태. 무뎌진 그 주먹으로도 그는 수많은 괴물들을 때리고 누르고 부쉈다. 하지만 처음보다 많이 느려진 것은,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발길질도 다리가 무거워짐에 따라 날카로움이 무뎌져갔다. 저 멀리서 보이는 그의 상관이자 든든한 누님은 아직 무사해보였지만, 그녀마저도 슬슬 힘에 부치는 모습이었다.
남은 인원은 약 15명. 소년이 속한 팀만이 살아남은 상태였다.

“형님. 이거 어쩌죠?”
“하악, 학! 어쩌긴. 우리가, 어디 튈 곳은 있겠냐? 어휴. 힘들어 죽겠네.”

그리고 남은 차원종은 약 2천 여 마리…….
일당백의 정신을 발휘해도 손이 모자랄 차이가 벌어져있었다. 그리고 소년의 팀은 일당백은커녕 일당십도 제대로 해내기 힘들어보였다.

그렇다면 이대로 끝인 것일까?



[수고 많았네. 젊은 친구들. 이제 과인에게 맡기게나.]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사람들이나 괴물들이나 놀라서 엎드렸다. 그러나 공평하게 모든 것을 불태워야할 벼락은 괴물들만 골라서 그들을 불태우고 녹였다. 수십, 수백, 수천 줄기가 연달아 떨어졌다. 폭탄이 몇 만발을 터지는 것 같은, 귀청을 찢는 폭음이 귀를 괴롭혔다. 그 한 번으로, 수천에 달하던 차원종은 단번에 몰살당했다. 감히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놀랄 것 없느니라. 지원군이 왔다, 그대들에게 필요한 사실은 딱 그것 하나뿐.”

그리고 그 막강한 힘을 휘두른 존재가, 꽃잎처럼 사뿐히 땅에 내려앉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10대 여자아이처럼 고운 이목구비. 흑진주를 바른 것처럼 반짝이는 흑발에 은실로 수놓인, 머리카락을 닮은 깔끔하고도 특이한 복장… 비록 키는 작았지만 그것을 모두 상쇄케 하는 기품과 고고함이 온 몸에 깃들어 있었다. 가장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눈동자. 정말로 황금을 녹여 넣은 듯 빛나는 금색이었다. 마치 지상에 강림한 태양 같이, 그렇게 이 아수라장 가운데에서 찬란히 반짝였다.

“지원이 온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만.”
“총본부의 멍청이들은 그리 이야기했겠지. 겉으로 보이는 숫자로는 빠듯하니까. 허나 그들은 과인은 고려하지 못한 듯하다. 그러니, 그대들처럼 아까운 인재들을 어쩔 수 없다며 나 몰라라 한 것일 터이다.”

말투는 뭔가 약간 이상해보였다. 과인(寡人)이라니. 어느 사극에서 나오는 왕 마냥, 그녀는 자신을 높여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지라 그것에 딴죽을 거는 이가 없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받은 구원 앞에서, 여인이 스스로를 어떻게 높이더라도 설득력이 있었으리라. 생존자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럼 당신은 누구십니까. 요원들 중에서 본 적은 없었습니다. 유니온 소속이라면 관등성명을…….”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팀의 대장이 질문을 해왔다. 자신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인을 보며, 새로 나타난 흑발의 여인은 싱긋 웃어주었다.

“과인은 유니온하고는 관계가 없다. 허나 여기서는 그것이 중요하진 않느니라.”

거기까지 말하고서, 여인은 손을 내밀었다. 어느새 그녀는 높이 올라있는 사람에서 동등한 눈높이의 사람으로 바뀌어있었다. 그 정중한 손길을 본 대장은 머뭇거리다 손을 마주잡았다. 흑발의 여인이 지은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럼, 한동안 잘 부탁하노라. 클로저들.”



잠시 뿐이지만, 지구 최강의 팀이 결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십 수 년 뒤. 2020년.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 기사단장.). 곧 공항에 도착합니다.”

기묘하게 생긴 새하얀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요즈음 들어 차원중의 출현 빈도가 높아지고는 있었지만, 이번 비행은 아주 특별했기에 날씨가 좋아지자마자 바로 출발했었다. 출발지는 이탈리아 로마. 도착 예정지는…….

“…과인이 얼마나 자고 있었는가?”
“6시간 정도였습니다. 직항 코스로 바로 오다보니 깨실 일도 없었고요.”
“아아, 그랬었지. 과인도 못 말리겠군. 어제 급한 일이 있어서 밤을 샜어도 이렇게 푹 자버리다니.”
“긴장하신 것도 있으셨을 겁니다. 십 수 년만의 한국행이니까요.”

대한민국.

“한국에서 별도의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뉴욕 총본부에서 이사들이 단체로 결의하면 모를까, 감히 일개 국가에서 그랜드 마스터의 행보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거대한 비행기 내부에, 탑승객은 2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나름 관광지로 인기 높은 한국행치고는 뭔가 좌석이 텅텅 비어있는 기묘한 모습. 그러나 탑승객의 면면을 보면 관광이니 뭐니 하는 말이 쏙 들어갈 터였다.
보기만 해도 따갑게 날이 갈린 칼, 송곳처럼 뾰족한 창, 사람 머리만한 두께의 망치, 책상처럼 널찍한 도끼 등등… 농담으로라도 평화로워 보이지 않는 소지품들이었다. 보통의 공항이었으면 단번에 제지했을 그런 물건들을, 탑승객들은 조심스레 다듬고 매만지고 있었다.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단 둘. 마스터로 불리는 흑발의 여인과, 그녀의 비서로 보이는 은발의 남성뿐이었다.

“후후후, 너무 비행기 태우지는 말거라. 어쨌든… 도착하자마자 데이비드 군부터 만나봐야겠구나.”
“업무가 많아서 공항에서는 마중을 못 나온다고 연락했었습니다. 예의바른 친구인데, 정말로 일이 많기는 한 모양입니다.”
“그럴 수밖에. 검은양이라고 했나?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를 준비했으니 이곳저곳에서 찔러오는 사람들도 많겠지. 과인에게도 손을 벌릴 정도면 많이 바쁘긴 할 것이니라.”

둘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것은 신서울 지부의 국장 데이비드 리와, 그가 만들어낸 새 클로저 팀인 검은양이었다. 대화의 뉘앙스를 보아하니 이 비행기의 목적도 그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보였다. 손을 벌려왔다, 그렇다면 데이비드 리가 이 흑발의 여인에게 도움이라도 구한 것일까?

“허나 신경이 쓰이기는 하구나. 데이비드 군이 하려는 그 어처구니없는 프로젝트 말이다.”

잠시, 아주 잠시 여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가 어찌하여 그러는지 아는 남자는 조용히 목례를 할 뿐.

“생각이 없는 친구는 아니니까요. 직접 물어보시고 판단하셔도 늦진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 알고 있다. 생각은 깊은 친구이지. 다만 그 생각이 사람을 향한 것인지는 모르겠구나.”

여인이 한숨을 깊게 쉬었다. 주름 하나 없던 이마가 미미하게 구겨졌다. 검은양 프로젝트, 어린 위상능력자들을 양성하는 일종의 조기 현장학습 계획… 차원전쟁 시절을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계획 자체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과거 그때로 족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곧 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손님들은 빼먹으신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시고 안내에 따라…….]
“아! 도착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좁은 유리창 사이로 공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통의 공항이 아닌 전투기와 수송기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곳. 바로 군용 공항인 서울공항이었다. 민간인들이 이용하는 공항과는 전혀 다른 삭막함과 긴장감이 건물과 비행기들을 통해 느껴지는 듯했다.

“민간 공항에 내려도 별로 상관은 없는데.”
“신서울 지부와 가장 가까운 공항이 그곳 하나여서 말입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면야.”

여인은 조금 아쉽다는 눈치로 공항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왁**껄함과 많은 사람들 그 자체를 좋아했다. 바쁜 일만 아니었다면 공항에 내리고서 이것저것 먹는 것도 즐기고 사람들도 즉흥적으로 만나고 했겠지만, 오늘은 놀러온 것이 아니라 일을 하러 온 것. 어쩔 수 없다 자조하면서 내릴 준비를 했다.
공항 위에 다다른 비행기가 모습이 변해갔다. 날개 아래에 달린 엔진은 차츰 출력을 줄이고 날개 자체에 달린 팬이 움직이면서, 그 움직임에 따라서 천천히 속도가 줄어들었다. 마침내 완전히 멈춰선 비행기는 아래를 향해 천천히 내려앉았다. 거대한 비행기가 전투기마냥 수직으로 내려앉는 모습은, 장엄하다 못해 주변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기야, 일반 공항에서 이 비행기를 봤으면 대서특필했을지도 모르겠구나.”
“아직 상용화도 안 된 기종이니까요. 착륙이 곧 끝날 테니 그랜드 마스터께서도…….”

쿵!

“?”

그때였다. 비행기 바깥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바깥을 본 은발의 남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랜드 마스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엇이 말이냐?”

은발의 남자를 따라, 흑발 여인도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비행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공항은 어느새 아수라장으로 변해있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군용 수송기 몇몇이 부서지거나 파손되었고, 공항을 돌아다니던 군인들은 사방팔방으로 은엄폐를 하면서 어느 한곳을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그들이 총을 쏜 방향에는 사람이 아닌 어떤 것들이 보였다.

“차원종입니다. 기사단, 전투 준비.”

은발 남자의 대응은 신속했다. 그것들이 차원종임을 알아보자마자 다른 탑승객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기사단이라 불린 탑승객들은 그보다 더 빨리 무기를 꼬나 쥐고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들을 막아서는 손길이 있었다.

“전군 대기. 가만히 있으라.”
“마스터?”
“나서지 않아도 된다. 과인이 직접 처리하겠다.”

흑발 여인이 한 손을 펼쳐들었다. 거기에는 컴퓨터 회로처럼 복잡한 빛의 선들이 얽히고설키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던 여인은 주변의 사람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과인에게 도움을 청한 이들의 나라이니라. 이번 기회에, 과인이 믿을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여인의 금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에 따라서 손에 들린 빛의 선들도 그 밝기를 더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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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어쩌다 보니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뭐 이리 소심한 소개야?)



공모전도 끝나고 해서 시간이 쪼매 남아서 시작한 팬픽입니다. 조아라에서 혹시 보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한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P.S: 뭔 소설인지 요약하자면... [듬직한 오리캐의 힐링물/혹은 극단적인 시리어스물/부정기 즉흥 연재]<-대충 이 정도 되겠습니다.(어이!)






2024-10-24 23:01:4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