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春] 마주치다

루이벨라 2016-05-07 4

[夏] -> [秋] 순서로 이어지는 유리 시점입니다!

※ 4편 연속 새드만 써서 이번에는 약간 해피를 써볼려고요.(새드만 4번 써서 잘 쓸수 있으련지...)

※ 평행세계관입니다!(앞으로도 많이 써먹을거 같은 평행세계관, 작가가 평행세계관을 매우 좋아합니다.)





 "봄이구나."


 봄이라고 하면, 꽃놀이! 포근한 봄날씨가 되면 왠지 모르게 꽃구경을 가야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평소에 꽃구경을 싫어하는 사람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봄이니까! 꽃구경이지!"


 일부러 우렁차게 소리를 쳤지만 이래도 뒤에서 대꾸가 없다는 것에 조금 쓸쓸해졌다.


 이렇게 우울하게 집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도시락을 싸서 꽃구경을 하자! 라고 결정을 했다. 냉장고를 보니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유부초밥이 남아있는 걸 확인했다.


 신나게 유부초밥을 만들면서 슬비나 다른 팀원들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슬비야! 어어, 난데! 오늘 날씨 너무 좋지 않아? 한강 공원에서, 응응. 거기 꽃 많이 피는데. 응응. 제1강변길 맞아. 거기서 만나!"


 꽃구경, 이라는 좋은 명목 때문인지 다들 흔쾌히 와주겠다고 했다. 그렇다. 꽃구경은 아주 좋은 것이다. 젊음의 계절은 흔히들 여름이라고 하지만, 그 준비 과정을 기리는 어린 생명들, 꽃들이 나오는 봄도 난 참 좋아했다. 물론 봄에 내 생일이 있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나름 도시락을 열심히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유부초밥이 죄다 후줄근했다. 다른 사람들도 도시락거리를 챙겨온다고는 했지만 이런 도시락을 자랑스럽게 꺼내보일수는 없었다. 다시 만들기에는 재료를 사러 나갈 시간도 부족해서 하는 수 없이 사과나 깎아서 마저 넣기로 했다.


 분명 요리를 시작한지 4년이 되어가는데도 내 요리 실력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맛은 평균치이지만 비쥬얼 부분에서는 최하위 중에서 최하위. 이 후줄근한 유부초밥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지금 깎고 있는 사과도 어째서인지 여러군데 모가 생기고 있었다.


 그래도 뭐 어때. 비쥬얼은 좋은데 맛이 없는것보단 맛은 있지만 비쥬얼이 약간 떨어지는게 낫지...


 위로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럼 그전의 꽃구경 갈때의 도시락은 어떻게 했더라...참, 세하가 있었다. 준요리사급의 실력을 가진 세하가 늘 모양도 이쁘게, 맛도 훌륭한 도시락을 싸주었더랬다. 꽃구경 때만도 아니었다. 나와 세하는 출근하는 날이 다를 때도 있었는데 세하가 집에 있는 날에는 나에게 오늘은 군것질 하지마, 라면서 도시락을 건네준 적도 많았다.


 참 자상한 남편이었는데...


 지금의 난 유니온의 일은 거의 쉬고 있는 중이었다. 가끔은 유니온이 증오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세하가 죽도록 내버려둔 클로저들도 증오스럽다. 물론 그 클로저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있었다.


 세하가 그런 일을 당하고 있을 때의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지...? 아마도...잠을 자고 있지 않았을까. 그것도 집에서 속편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갈 소풍 도시락을 만들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살짝 나와버렸다. 요즘은 그래도 세하 생각이 덜 나기도 하고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안정되기는 했지만 가끔은...


 너무나 사무치게 그리울 때도 있었다.


 외출 준비를 하는데 탁장 위에 올려진 세하의 사진이 눈에 보였다. 사진 속 세하는 무표정했다. 아마도 정식요원이 된 직후, 제대로 된 증명사진을 찍었을 때의 사진 같았다. 이렇게 보니 참 잘생겼었단 말이야. 탁장 위의 사진을 조만간 바꾸어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한 나는 말했다.


 "다녀올게."




 일단 밖으로 나오니 아까 전에 있었던 우울한 기분은 다 없어져버렸다. 역시, 한동안 집안에서 너무 오랫동안 생활을 해서 그런 우울한 기분이 들었나보다. 인간도 가끔은 광합성을 해야, 기분좋게 살 수 있으니까.


 역시 꽃놀이철이라 그런지 한강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두명이 한세트인마냥 붙어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각자 한손에는 자신의 짐을 들고 있었고 자신들의 중간 사이에 있는 손은 꼭 붙어있는 상태였다. 이런 커플들을 한두번 계속 보니 저절로 지어지던 입가의 미소가 점점 사그라지는 걸 느꼈다.


 아마도 결혼한 직후의 일이었던 거 같았다.


 -세하야, 세하야! 도시락 메뉴는 뭐야?

 -서유리, 벌써부터 먹는 생각을 하는거야? 조금만 참아. 자리 잡으면 보여줄게.

 -에에...너무해! 난 지금 너무 배고프단 말이야! 그러니까...

 -참아. 모처럼 꽃 보면서 먹으려고 만든건데 말이야! 꽃을 안 보면 의미가 없지...!


 그때는 저 커플들처럼 손만 잡은게 아니라 팔짱을 끼고 있었지만 그건 지금 따져서 상관할 일은 아니니까.


 '날씨 좋다...'


 눈부신 봄햇살에 잠시 우러러보며 손가리개를 하고서 태양을 잠깐 바라보았다. 맨눈으로 태양을 직접 보는 건 위험하다고 하지만 손가리개를 하고도 태양은 눈부셨다. 잠시동안 눈앞에서 새하얀 빛이 점멸했던 거 같았다. 눈부심이 사라지자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다시 앞을 보았는데...


 '어라?'


 분명 나는 한강이 옆으로 내다보이는 강변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화사한 곳으로 오게 된거지?


 우리나라에서는 없을거 같은 은은한 하얀빛이 겉도는 벚꽃나무가 길을 만들어내고 있는 벚꽃길 한가운데에 나는 서 있었다. 분명 내가 방금전까지 걷고 있었던 한강 강변길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지? 이제는 환각까지 보이는건가? 눈을 비비고 다시 떠보았지만 내 앞에 있는 벚꽃길의 풍경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떡해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 중에, 내 반대편에서 내쪽으로 다가오는 인영 하나가 보였다. 세상에, 갑작스런 이런 상황에 당황스러운데 사람을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손을 열심히 흔들어 그 사람이 나를 보게끔 만들었다.


 "저기요!"


 그 사람은 회색빛이 겉도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내가 자신을 부르는 걸 알았는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 사람과 나의 거리는 불과 10m. 가까운 거리는 아니였지만 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거리가 조금 멀었고 후드에 가려져 전체적인 얼굴 이미지가 잘 보이지는 않았고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야윈 얼굴이었지만, 저 얼굴, 저 이목구비, 후드 사이로 약간 삐져나온 고동색 머리칼, 저 전체적인 분위기...틀림없었다.


 항상 불러보고 싶었지만 고통스러워서 제대로 부를 수 없었던 이름을 오랜만에 불러보았다.


 "세하...?"


 상대편에 있던 세하도 놀란듯이 내 이름을 달콤하게 중얼거렸다.


 "유리...?"




 -「마주치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01:2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