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자 3화

검은코트의사내 2016-05-06 0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한동안 천국으로 가는 기분으로 따라갔다. 그녀가 앞장서서 계단으로 걸어올라갈때 마치 천국으로 가는 계단으로 오르는 거 같았다. 정말 이렇게 슬비와 단둘이 손잡고 가는 사람 있었을까? 내가 처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의심이 들었다. 혹시 세하와 같이 손을 잡아본 적이 없는지 궁금해졌다. 물어볼까? 세하와 정확히 어떤사이인지 물어보고 싶다. 둘은 같은 클로저고 같은 팀으로서 항상 일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손이 잡힌 상황에서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다왔어."


슬비는 이렇게 말하고 잡은 내손을 놔주었다. 하아, 조금 더 느끼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 느낌이 계속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슬비가 나를 몇번이고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왜 그렇게 놀래? 아까 그 일때문에 그런거야?"


"으응? 아니... 아니야. 아까는 고... 고고... 고마웠..."


"감사인사는 안해도 돼. 할말이 있어서 너를 여기로 부른거야."


슬비는 나에게 옆에 앉으라고 말하고 가져온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정도의 도시락이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밥위에 콩 몇개가 규칙적으로 나열되어 마치 고양이처럼 보였다.


"귀엽다."


"끄응, 유리가 또 장난을 쳤네."


한쪽 이마에 손을 얹으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표정을 짓자 혹시나 그녀가 과로로 쓰러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금방이라도 쓰러지면 받을 준비하려고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슬비는 다른 반찬들도 꺼냈고, 나는 그 반찬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알맞게 썰어서 가지런히 놓여있는 계란말이에 소시지, 그리고 김치, 시금치, 양파까지 들어있었다. 영양소가 골고루 분배되어있는 식단이다. 역시 모범생답게 식사도 골고루 먹는 습관을 가진 듯 했다. 나는 양파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유리가 만들어 준거야?"


유리라면 분명히 같은 반의 서유리를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세하와 소꿉친구이면서 같은 클로저였으니 말이다. 슬비에게 있어서 서유리가 베스트 프랜드라고 이미 소문이 날 정도다. 슬비를 노리는 남학생들이 서로 얘기하면서 나도 주워들은 얘기였다. 하지만 슬비의 지금 기분을 보니 아닌 거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슬비는 평상시에도 이렇게 차가운 분위기를 내뿜으며 주변사람들을 경계하는 모습이 보인다. 많은 남학생들이 슬비에게 고백했다고 들었지만 전부 차였다고 들었다. 하긴 우리학교에서 제일 우수한 인재인만큼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클로저 일을 하면서도 동시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공부를 틈틈히 하는 게 쉬운일인가? 클로저 일 안하면서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슬비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클로저 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전교1등으로 알려진 이슬비, 성적 우수한 학생들은 전부 슬비와 비교되면서 집에서 꾸지람을 들을 정도일 것이다. 우리 엄마아빠도 나와 슬비를 비교하면서 꾸짖으시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애들과는 달리 오히려 이런편이 나을 거 같았다. 그녀에게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을 것이다. 1등을 유지하다가 빼앗기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나는 슬비에게 적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그럴 기회는 없겠지만 말이다. 부모님은 내 장래희망을 좋게 ** 않으신다. 당연하다. 요즘 프로게이머가 되라고 가르치는 부모가 있는가? 전부 좋은 회사에 취직하라면서 연봉을 많이 받고 살라고 가르치신다. 모두 너를 위해서라고 말이다. 이게 나를 위해서라고? 이런 소리도 지겹게 들었기에 나는 그저 슬비가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유리가 어제 우리집에 놀러왔었어. 오늘 아침에 도시락 쌌는데 살짝 장난친 모양이야."


"내가 보기에는 귀여운데..."


"물론, 고양이가 귀여운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렇게 만들면 내가 어떻게 먹겠어?"


너무나 귀여운 나머지 차마 먹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저 가만히 지켜보다가 슬비가 어렵게나마 젓가락으로 콩의 배치를 흐트려놓았고, 나에게 젓가락 하나를 주며 말했다.


"점심 아직 못먹었지? 같이 먹자. 오늘은 할말이 있어서 부른 거니까."


"으... 응. 정말로 먹어도 돼?"


"응."


나는 가슴이 떨려서 그녀가 내미는 젓가락도 어렵게 받아냈다. 슬비의 도시락이다. 손까지 잡아본 것도 모자라 도시락까지 얻어먹게 되다니... 이건 꿈이야. 꿈일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볼을 꼬집어보아도 아픈통증이 느껴지자 꿈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뭐하는 거야?"


"아... 아니야."


내가 한 행동을 봤는지 밥 한 젓가락을 입에 넣은 슬비의 볼이 조금 부풀어 오른 것을 보았다. 어쩌면 먹는 모습도 저렇게 보기 좋을까? 천천히 반찬도 조금씩 입에 넣으면서 우물우물거리는 모습을 보며 또 가슴이 뛰었다. 왜 보기만 해도 이렇게 뛸까? 아 차, 이상한 생각하면 안된다. 이쪽에서 티를 내면 슬비는 틀림없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 릴렉스, 진정하자. 옛날 영화 '쿵푸팬더' 에서 나왔던 호흡법으로 '내면의 평화' 를 반복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한 10번반복하자 드디어 심장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안먹고 뭐해? 혹시 반찬이 입에 안맞니?"


"아... 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반찬이 너무 고급스러운 거 같아서 조금 놀랐어."


"그래? 아무튼 먹어. 식으면 맛이 없어지거든. 따뜻할 때 먹는 게 좋아."


"응. 잘먹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식사를 시작했다.




세하는 오늘 하루종일 속이 안좋았는지 배를 한손으로 잡은 채로 비틀거리면서 교실안으로 들어갔다. 한석봉과 같이 밥먹으려고 했는데 아침에 잘못먹었는지 설사가 계속 나온다. 아침에 뭐 먹었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다. 석봉이가 혹시나 괴롭힘 당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의 자리를 찾았지만 석봉이는 어딘가로 갔는지 없었다. 그는 반 친구 한명에게 석봉이가 어디갔냐고 물어보자 그는 슬비가 좀 전에 데려갔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아, 속쓰려."


석봉이를 괴롭히는 준우일행이 뭐라고 서로 욕하면서 단단히 열받은 모습을 보였다. 아마 석봉이가 슬비와 같이 간 거 때문일 거라고 그는 확신했다. 마음같아서는 저들을 패버리고 싶었지만 Union의 방침으로 그들을 건드릴 처지가 못된다. 하지만 저들도 클로저를 건드릴 수 있다. 국가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공무원인데 클로저 법에 의거하여 클로저와 민간인, 서로에게 해를 끼칠 시에 징역 10년이상의 처벌을 받기로 되어있었다. 나이가 어리다해도 봐주는 것도 없다. 차원종이 빈번하게 출현하면서 국가가 위험에 항상 처하는데 이런식으로 혼란을 일으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우일행도 클로저를 보면 피해가려고 했다. 다만 슬비는 예외였지만 말이다. 그건 해를 끼치는 게 아니었으니까.




식사를 마치자 나는 배부른 척 하고 배를 한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사실 슬비 도시락을 조금밖에 안먹었다. 어떻게 남의 도시락을 많이 먹을 생각을 할까? 그건 말이 안된다. 슬비는 부족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나는 양손을 내밀어 충분하다고 답했다. 슬비가 도시락 통을 정리하는 걸 나도 도와주었고, 슬비는 물을 한잔 마시고 난 뒤에 슬슬 본론을 얘기했다.


"석봉아, 미안한데... 괴로울 수도 있겠지만, 3일전의 일을 다시 얘기해줄 수 있겠어?"


윽, 뭔가 미안해하는 표정도 왠지 귀여웠다. 그녀 주변이 꽃밭으로 빛난 것처럼 내눈에 그런 이미지가 보였고, 부드럽게 대하는 말투가 나오는 입을 보고 또 내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안돼, 티를 내면 안돼. 분명히 내 머릿속에 뇌가 이렇게 명령하는 거 같았다. 부드러운 입술이 탐날정도로 자극되는 신경, 이것을 그녀에게 보여서는 안된다. 그러면 나는 한순간에 저질이 되니까 말이다. 내면의 평화, 진정하자. 진정.


"석봉아? 괜찮아. 천천히 말해도 돼."


휴, 다행이 눈치 못챈 듯 했다. 좋아. 3일전의 일을 떠올린다. 분명히 혼자서 저녁에 집에 돌아가다가 라이칸토스라는 차원종을 만나서 도망치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의식을 잃었다. 나는 알고있는 사실을 그녀에게 전부 털어놓자 슬비는 곰곰히 생각하면서 말했다.


"음, 정말 운이 좋았는지 모르겠어. 내가 갔을 때는 석봉이 네가 기절해 있었고, 라이칸 토스는 그대로 서있는 채로 있었더라고."


엥? 그대로 서 있었다고? 그건 또 무슨소리인지 모르겠다. 차원종은 대부분 인간을 혐오하는 존재라고 알려져있다. 신문에서도 뉴스에서도 그렇게 나왔다. 게임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이 인간을 싫어하듯이 차원종들도 인간들을 싫어하는 편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니 차원종을 만나면 민간인은 전부 도망치라고 TV에서 이렇게 말했다. 슬비는 라이칸 토스가 나에게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원종이 나를 놔둔 이유가 뭘까? 도저히 이해가 안될 노릇이다. 인간을 미워하는 존재였기에 나라고 해서 봐준다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게임 주인공 버프를 먹은 것도 아니고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었다. 병원에서도 딱히 몸에 이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캐롤리엘 씨의 연구가 진행되면 곧 알게 될거야. 아무튼 알려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그런 일이 생각나게 해서."


또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내 심장이 또다시 쿵쾅거렸다. 언제봐도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건 꿈이야. 나는 슬비의 귀여운 모습을 상상하면서 넋을 잃었다. 그런 상태로 입을 벌리면서 침이 흘러나오는 것도 모른채로 말이다.


"석봉아?"


"으응? 아, 미안. 어제 게임한 게 생각나서."


나는 순간 침흘린 모습을 슬비에게 들키자 곧바로 변명거리를 생각해냈다. 들켜서는 안된다. 분명히 생각해야된다. 아, 그래, 생각났다.


"아, 그러니까, 슬비 네가 나에게 대해준 따뜻한 마음씨를 보고 마치 내가 했던 미연시 게임에서 나오는 히로인을 닮아서 말이야. 플레이어에게도 인기가 가장많은 캐릭터라서..."


"아, 그래? 딱히 대단한 건 아니야. 난 진심으로 말한 것 뿐이니까. 어쨌든 석봉이 너는 평범한 민간인이니까 그런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건 괴로워하는 게 당연하잖아? 난 사과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아무튼 오늘은 고마웠어. 하교때 보자."


슬비는 마무리도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하면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할말을 잃고, 한동안 감상에 푹 빠지면서 자리에 누웠다. 크윽, 난 행복한 놈이다. 다른사람들도 아닌 슬비가 나에게 이렇게 대해준 것만해도 행복했다. 하지만 나는 이때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오늘이 내가 평범한 삶으로 살아가는 마지막 하루가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01:2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