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클로저스
재영이 2015-01-27 0
오늘의 날씨는 화창했다.
작은 새들의 지저귐과 이른 아침의 산들바람,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창공에 내리 쬐이는 햇살은 마치 하늘이 세영의 생일을 축복해주는 것 같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스마트폰 어플의 오늘의 운세 역시 만사형통! 모든 근심 걱정을 녹이는 봄바람 역시 아침을 반겨주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걸까?
"아, 아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치 고장난 라디오 마냥, 쥐어짜낸 성대에선 매마른 목소리만 톡톡 끊어져 나왔다.
척보기에도 사람의 몇 배는 될법한 시멘트 덩어리. 눈 앞의 현실감 없는 시멘트 덩어리에 세영은 망연자실 서있었다.
어째서? 아니 그 이전에 빨리 이걸 치우지 않으면…….
"아아, 아아아……."
있는 힘껏 시멘트 덩어리를 밀어 보았지만 당연하게도 시멘트 덩어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위를 밀어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밀고, 밀고, 계속해서 밀었다.
"아으으, 아, 아아!"
가슴을 태우는 무언가에 세영은 계속 흐끼며 시멘트 덩어리를 밀었다. 그러나 미동조차 없는 돌덩어리에 세영은 이내 쭈구려 앉아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오빠 입을 옷 없지 않아?'
여동생 아영이의 그 말에 그녀와 찾아온 영등포의 쇼핑몰. 세영의 생일을 챙겨줄 요량으로 찾아온 영등포 시간의 광장.
7년 전, 차원전쟁을 겪고 새로 수복한 신서울을 상징하는 이 거대한 쇼핑몰은 평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비록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진 않지만 마치 자기 생일마냥 기뻐해주는 동생의 모습에 세영은 실소를 머금으며 동생의 뒤를 따랐다.
그 방송이 나오기까지,
[차원종 출현. 차원종 출현. 시간의 광장에 계신 고객님들께선 지금 즉시…….]
익숙한, 그러나 낮선 경보음이 울리고 쇼핑몰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왁**껄 웅엉이던 소리는 비명과 굉음으로 뒤바뀌었고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북적이던 인파는 질서 없이 비상구로 뛰쳐나갔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정신을 차릴세도 없이, 쿵! 하고, 건물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대리석 바닥이 출렁 요동쳤다.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시멘트 덩어리. 얼핏 보아도 수천 키로그램은 족히 넘어갈 거대한 돌덩어리가 자신의 코끝을 스치며 눈앞에 떨어져 내린 것이다.
눈 앞의 아영이를 깔아 뭉갠 채…….
"아아, 으아아아!!"
시멘트를 긁으며 오열을 토해냈다.
손톱이 깨지고 붉은 혈선이 철근에 그어졌지만 바닥을 긁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바닥 아래로 붉은 웅덩이가 깊어질 수록 더욱 필사적으로 바닥을 긁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오늘은 내 생일이잖아? 오늘은 날씨도 화창했잖아? 오늘 같은 날, 어째서!!
그렇게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크르르
등 뒤로 들려온 낮선 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며 세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보라빛 가죽에 충현된 눈으로 세영을 바라보는 괴물. 흡사 도마뱀으로 보이는 그 파충류형 괴물은 자기 키만한 붉은 검을 겨누고 있었다.
차원종.
다른 차원의 괴물이자 차원의 문을 통해 인류를 도살하는 인류의 적이자 포식자.
괴물이 겨눈 시퍼런 칼날에 심장이 **듯이 요동쳤다.
"…하하, 하하하."
어째선지 웃음이 나왔다.
서슬퍼런 칼날에, 얼어붙을 것만 같은 심장에도 불구하고 마른 웃음이 흘러나왔다.
무너져내린 천장, 그 아래 내리 쬐이는 햇살은 빌어먹게도 아침과 다름 없이 화창했다.
-키이!!
뺨을 타고 눈물이 맑은 선을 그려냈다.
죽는구나. 달려드는 괴물에 질끈 감은 두 눈에 비해 담담하게 생각했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린걸까? 불과 10분 전만 하더라도 최고의 하루였는데. 최고의 생일이었는데!!
"산들바람 베기!!"
그때였을까? 낮선 목소리와 함께 살랑, 부드러운 바람이 뺨을 어뤄만졌다.
-키이이!!
괴물의 괴성이 울리고, 땡그랑! 검이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세영은 슬며시 눈을 떳다.
보라빛 코트에 회색 머리, 양 손에는 묵빛의 장검을 들고있는 청년.
"칫, C급 피라미 피가 검에 묻었잖아."
짜증스레 투덜거린 그는 그 짜증 만큼이나 거친 동작으로 검을 털어냈다.
그러다 그제야 세영을 발견한 모양인지 "응? 뭐야, 네놈은." 특유의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
"눈 깔어. A급 요원 앞이시다."
미처 뭐라 말하기도 전에 인상을 구긴 그는 칫! 혀를 차곤 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 물었다.
"그나저나, VIP가 실종된게 이 근처라고 들었는데… 뭔가 아는거 없냐?"
"하, 하하."
어째서일까? 그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마른 웃음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질문이 무시당해선지 다시금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구긴 그는 "**거냐? 갑자기 쳐 웃고있고. 지금 내 말이 들리지 않은거냐?!" 언성을 높였다.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
세영은 풀석, 하고 맥없이 풀린 다리에 그대로 고꾸라지듯 주저앉았다.
"어이, 이봐. 어디 안 좋은거야? **! 내 앞에서 민간인이 죽기라도 한다면 평가에 좋지 않다고!"
당황하는 그 모습을 뒤로 한 채, 세영은 의식을 잃었다.
*
승리의 갓기태.
그 분을 찬양하라!
Ps. 재영이는 오호박 흑막설을 지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