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커(Striker) - 7 (제1장 : 클로저(Closer))
남캐 2015-01-26 5
* * *
2.
우리 학교인 신강고 옥상에서 도로시라는 그 의문의 능력자를 만나고 며칠 후.
"이런 일이 있었어요."
"으음……."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자, 우리 팀의 관리요원인 유정누나의 눈가가 난감한 듯 찌푸려졌다.
김유정, 본인이 나이를 밝히는 것을 극히 싫어하므로 나이 미상(이라곤 해도 용모, 분위기, 가끔 가다 들리는 말실수에서 알 수 있는 정보 등 어딜 봐도 29, 30, 31중 하나다)의 유니온 소속 요원으로, 얼마전 급조된 우리 유소년 클로저 팀 '검은양(BLACK LAMBS)'의 관리요원직을 맡고 있는 누나다.
얼마 전 우연히 신세한탄하는 걸 듣기로는 유니온에 입사한 이후 한 번도 접힌 적 없던 엘리트의 정석형 탄탄대로가 술자리에서 만취해 상사 멱살을 잡고 난동을 부린 이후 어딘가 엉성한 우리 유소년 클로저 팀 관리요원으로 접혀버렸다는 것 같다.
아무튼, 그런 경력과 입장의 우리 관리요원 유정 누나는.
"요즘따라 슬비가 갑자기 어두워진 이유가 네가 언급한 그 아이 때문일까……? 하지만 물어봐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니……, 힘든 게 있으면 좀 말해주면 좋겠는데, 슬비는 너무 모범생 타입이라……."
너무 똑바른 것도 피곤하네……, 라고 중얼거리더니, "뭐어, 그에 비하면 세하는……." 이라면 어떤 의미인지 잠시 내 얼굴을 쳐다보며 눈을 가늘이는 유정 누나. 뭐지, 저 표정은.
"……세하야, 적어도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중에는 게임기를 좀 꺼줄 수 없니? 게임기 액정엔 눈길도 안 주고 상대랑 눈을 맞추면서도 그렇게 플레이 할 수 있다는게 신기하긴 하지만."
"아……, 얼마 안 남았는데……, 일단 알겠어요."
……게임기 때문이었나.
가능한 한 한번 게임기를 키면 갈때까지 가지 않고는 입에 가시가 돋는 성격이라 좀 찝찝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말하는데 계속 들고있기도 뭐해 맞춤 요원복 주머니 안에 게임기를 집어넣었다. 어쩐지 복실복실한 양이 떠오르는 이 요원복, 특히 자켓은 주머니가 넓어서 그런지 어쩐지 굉장히 게임기 수납이 편한 느낌이다. 이것만은 마음에 든다.
이이이이이잉~!!!
그때였다. 검은양 임시본부라고 쓰고 책상 하나에 의자 네개 들어가니 꽉차는 단칸방이라 쓰는 이 작은 방 한쪽 구석에 놓여져 있는 차원종 출현 경보 알람이 새되게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지트에 놓여진 차원종 출현 경보가 직접 울리는 경우는 한 가지 뿐이다. 우리 '검은양'의 담당 구역인 강남 일대에 차원종 출현이 감지되었을 경우다. 이는 즉시 출동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난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유정 누나,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오늘도 대기인가요……?"
"어……, 그런가 봐."
내 물음에, 유정 누나는 내 이야기를 필기하던 펜을 쥔 손을 뺨으로 가져가면서 고민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이유는……?"
"내가 물어봐도 아마 똑같은 이야기를 하겠지. 우리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
그렇다. 그 날 이후 최근 몇일동안, 우리 '검은양'팀이 출동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것은 그 '도로시'라는 이름의 알 수 없는 클로저 소녀와 신강고 옥상에서 마주친 이후부터의 일이었다. 그날 오후. 평소와 같이 검은양 임시본부에 앉아 있던 우리는 오랜만의 차원총 출현 경보에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강남 클로저 본부 부장이라는 사람한테 연락이 온 것이다.
지금부터 검은양 팀의 출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특별한 지침이 있을 때까지 계속 대기하고 있으라고말이다.
그래도 말이지…….
"지금까지 우리가 그렇게 잘 해왔는데 갑자기 왜 C급, D급 출현종 처리에까지 강남 본부 담당의 A급 요원이 출동하는지는 둘째치고 말이에요. 그 A급 정식요원 아저씨, 매번 현장 출동에 늦거나 심지어 바쁘다는 이유로 아예 안 오는 경우까지 있다면서요? 그 바람에 대처가 늦어서 출동해 있던 군경요원들이 다치는 일까지 있었다면서요. 뭔가 제대로 돌아가면 가만히 있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대체 왜 그 본부 부장인가 하는 사람은 그런 지시를 내린 거예요? 네?"
"으, 그건……."
"더러운 어른들의 사정들은 둘째치고요. 뭔가 일을 벌이면 제대로 처리해야지, 그것도 아니고, 이건 대체──"
위쪽에서의 지시 때문에 우리 검은양이 발이 묶인 상황. 그런 상황에서 본부에서 파견되었다는 A급 요원의 늦장대응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군경요원들의 직접 피해와 민간인들의 재산피해. 그것을 떠올리니 괜히 분해 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런 내 목소리를, 노트북으로 인터넷 바둑을 두고 있던 제이 아저씨가 끊었다.
"그만 해라, 세하야. 유정씨가 곤란해하잖아. 유정씨한테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래도……."
"그러니 유정씨도 괜히 심란해하지 말고, 여기 와서 나랑 건강차나 한 잔……."
"계속 바둑이나 두세요. 제이씨가 더 나빠요."
제이 아저씨의 추파에 유정누나는 눈을 날카롭게 부라리면서 일갈하고는 다시 내 얼굴을 고민스런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로서도 강남 본부에서의 이번 지시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알아보니 강남을 담당하는 클로저 요원 팀은 다른 B급 차원종의 빈번 출몰 위험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바쁜 팀인 모양이야. 아마 늦장대응에는 그런 이유도 있을 거고. 확실히 그런 바쁜 A급 상당의 정식요원이 C, D급 클로저 출몰에 대응해야 하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구나. 무언가 다른 문제가 있는 걸지도…….
유정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민하는 얼굴로 눈가를 가늘였다. 유정누나가 들고 있는 펜이 책상 위에 놓여진 수첩 위에 신경질적으로 검은 점을 수북하게 늘여갔다. 그걸 지금 눈치챈 나는 그제서야 유정누나가 속으로 느끼고 있을 스트레스를 조금은 전해 느낄 수 있어서, 그것도 모르고 아까 큰 목소리를 낸 것을 조금은 반성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옥상에서 만났던 그 의문의 위상능력자 여자애도. 그리고, 본부에서 내려온 갑작스러운 지시도…….
"아니……, 잠깐만."
그리고 느낌이 온 것은 한순간이었다. 뇌리를 관통하듯 묘한 직감이 스쳐갔다. 내 중얼거림에 유정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쪽을 바라봤다. 제이 아저씨도 늘 걸치고 있는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내쪽으로 눈가를 가늘였다.
"누나……, 그 도로시라는 여자애, 적어도 유니온 요원 네크워크에는 없다고 그러셨죠?"
"응……? 아, 뭐, 그렇지. 솔직히 적발에 적안이라니……, 그렇게 튀는 용모를 가진 클로저 요원이라면 못 알아보기가 더 힘들잖니."
"그렇다면 유니온 소속이 아닌 위상능력자……, 그것도, 갑자기 A급 요원이 강남에 파견된 이유와 그 아이가 관계가 있다면요? 그냥 직감이었지만, 그 아이, 절대로 평범한 위상능력자가 아니었어요. 저희 반 교실이랑 옥상까지 한참이 떨어져 있는데 전 그 위상력의 흔적을 그렇게나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요. 심지어 교실에서 유리는 느끼지도 못했을 거리였는데 말이에요."
"어, 그건 확실히……."
순간 유정누나의 눈이 크게 뜨이고, 갑자기 유정누나는 수첩을 집어들었다.
"분명히 내가……, 꺄악?! 이 점들은 뭐야?"
"누나가 찍은 거예요."
"내, 내가?! 아니, 그건 둘째치고, 분명히 고랭크 위상능력자가 출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매뉴얼 설명을 필기해 뒀는데 이 상황과 유사했던 부분이……! 아, 여기 있다! 고위험 능력자 대처 상황 예견시 규정사항……, 해당 지역 본부에서는 위험능력자의 랭크를 고려해 요원을 파견한다……, 위험랭크 B 이상의 위상능력자 대치 상황이 우려되는 지역의 경우 반드시 해당 지역 본부의 A급 혹은 S급 요원만이 상황에 투입될 수 있다……, 설마?!"
콰과광!!!
유정누나가 눈을 크게 뜨면서 책상을 내려친 순간이었다. 갑자기 작렬한 폭음이 검은양 임시본부의 몇개 없는 창문을 날카롭게 울렸다. 유정누나는 꺅! 하고 짧은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고, J아저씨는 더헉! 하고 신음을 토해내면서 갑자기 허리를 잡았다.
"소리에 갑자기 몸이 놀라서, 허, 허리가, 허리가!"
"큭, 대체 뭐야?!"
나는 즉시 창가로 달려가 창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창 밖을 내다봤다. 저 멀리 빌딩 세 개쯤 지난 곳에서 회색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탁하고 매운 냄새가 순식간에 이쪽까지 다가와서 눈을 찌푸리며 콧가를 잡았다.
눈이 부릅뜨였다. 그 탁하고 매운 공기에는, 분명히, 느낀 적 있는 뜨거운 기운, 그것이 직감처럼 섞여 있었다.
본부 한켠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던 유리가 폭음에 놀라 깼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혹스런 목소리로 물어왔다.
"뭐야, 뭐야, 무슨 일이야?! 누가 죽었어, 내가 죽었나?!"
"뭐라는 거야……?! 그거보다 가봐야겠어요, 유정 누나!"
"어, 어라?! 세하야, 잠시만! 우리 팀은 본부에서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그런게 무슨 상관이에요! 사람이 다쳤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본부 한쪽 구석에 며칠째 계속 놓여만 있던 보급형 건 블레이드를 움켜쥐고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유정누나가 "세하야! 세하야!" 하고 부르는 소리와, 유리가 "츄, 츄릅, 여긴 어디야?!" 하고 내뱉는 헛소리와, 제이 아저씨의 "좋을 때구만……." 하는 의미 모를 쓴웃음이 순서대로 들려왔다.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는 그 순간에, 때마침 본부로 들어오고 있던 슬비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인사따윌 나눌 여유가 발을 놀리는 지금의 내게는 없었다.
그런데, 착각일까.
순간 난 봤다. 슬비의 눈이, 일순 파랗게 질리는 것을.
"이, 이세하?!"
슬비의 목소리가 경악으로 찢어졌다. 그 이상한 목소리는 내 착각인가 하는 의문이 왜 저런 목소리를, 하는 의아함으로 바뀌게 만들었다. 혼자 어딜 그렇게 뛰어가냐는 잔소리인가. 그런 생각에 나는 왼손을 아무렇게나 흔들면서 말했다.
"너도 조금 전에 그 폭음성 들었지? 분명 차원종 출현 주의보가 울린 장소랑 한참이나 떨어졌는데 그런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고! 느낌도 안 좋아! 그러니까 잠시 다녀올게!"
"이세하, 안돼……, 거긴……!!!"
순식간에 계단을 박차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래,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순식간에 옥상 위쪽으로 질주해, 여전히 회색 연기가 자욱히 피어오르고 있는 방향을 주시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우리 임시본부 인근의 강남 한복판으로 점점 모여온다. 그걸 인지하자 마자 옥상 난간을 박찼다. 연청색 위상력이 다리를 휘감아 몸을 고속으로 튕겨올렸다. 순식간에 빌딩 하나를 도약하고, 주머니 속의 게임기를 떨어지지 않게 움켜쥔 채 착지하자 마자 다시 한 번 발을 튕겼다. 다시 한 개, 또 다시 한 개. 세 번의 점프로 순식간에 빌딩 세 개를 넘자 회색 연기가 시커멓게 변해갔다. 연기가 흑색으로 탁해지면 탁해질수록 알 수 없는 직감과 같은 불안감은 점점 강렬해졌다. 눈 앞이다.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공기가 탁해진 시커먼 연기 속으로 뛰어내리며, 손에 쥔 건 블레이드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연기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연기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걷혀갔다. 마치, 이미 하늘로 다 떠나간 석탄 기차의 증기와도 같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 탁한 공기에 섞인 회색 연기는 눈 앞을 따갑고 흐리게 만들었다. 그 안에서 인영이 일렁였다. 그 모습을 알아채고 건 블레이드를 더 강하게 고쳐쥐었다. 일순 인영의 실루엣이 내 방향으로 멎었다. 아무래도 상대도 날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난 거기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두려울 정도로 넘실대는 무시무시한 양의 위상력을.
"그쪽이냐!!!"
그대로 이를 악물고 정면으로 내달렸다. 인영이 양 팔을 살짝 내리고 무언가를 올려들었다. 그에 맞서 올려든 건 블레이드를 정면으로 쥐고 눈 앞의 인영에게 그대로 도달…….
"엥?"
"칫, 베어버릴 뻔 했잖아……, 운 좋은 줄 알라고, 애송이. 그나저나 뭐야, 이 꼬맹이는? 너, 왜 이런 곳에 있는 거냐?"
몸이 멈칫, 하고 굳었다. 폭연 안쪽에 있던 것은 사탕을 입에 문 채로 헛웃음을 흘리고 있는 경박하며 니힐한 인상의 남자였다. 어딜 봐도 클로저 요원이라는 느낌이 들진 않지만, 허리에 달려 있는 클로저 요원 명찰이 이 남자의 신분을 증명하고 있었다. 신서울 지부 강남 본부 소속, A급 요원, 김기태.
"……그나저나 짜증나는구만, 귀찮아 죽겠는데 공기까지 탁해서 사탕 맛이 안 나잖아, 제엔, 장."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등 뒤에서 쌍검을 양손에 뽑아들고는 마치 가벼운 대파를 휘두르듯 가볍게 교차해서 휘둘렀다. 순간, 태풍을 연상시키는 맹렬한 폭풍이 사방에 자욱한 검은 연기를 그대로 흩어냈다. 그 바람에 탁한 공기가 내 쪽으로 몰려와서 얼굴 전체가 따가워져 그대로 목을 잡고 콜록거렸다. 눈도 엄청나게 따가워져서 눈물이 났다.
"무슨 짓이에요!"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이 남자에게 분해 눈가를 닦으며 노려봤지만, 남자는 내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고 있었다. 김기태라는 이 클로저 요원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한 방향은 내 뒤의 빌딩 옥상쪽. 그 곳엔.
"어머나……, 왠지 기분 나쁘고 더러운 아저씨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반가운 얼굴도 있네. 이렇게 빨리 다시 볼 줄은 몰랐는걸, 안 그래, 세하 오빠?"
손에 붉은 위상력을 움켜쥔 채 나를 향해 장난스레 키득이고 있는, 도로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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