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CheR / 조례

전속노예1호 2015-01-26 0

차원종과의 전쟁이 시작된지도 5년째가 된 크리스마스 전야의 신서울시. 도시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고층 아파트의 옥상에 한 여인이 서있다. 옆에 놓여있는 휴대용 라디오에서는 캐럴 송이 흘러나오고,
손에는 불이 붙어 쉴새없이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담배 한 개비가 들려있다. 그녀는 난간 너머로 어둠에 잠긴
신서울시의 전경을 바라보며 라디오의 캐럴 송을 따라 흥얼거리고 있었다.

-삐비빅! 

그녀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2시 정각, 동료와의 교대 시간을 알리는 알람 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계단과 통하는 문이 열리고 흑발의 소년이 걸어 들어왔다. 아직 앳된 모습의 소년이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은 확실히 전쟁에 참여하는 위상 능력자들에게 지급되는 전투복이다. 소년은 약간 졸린 듯 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중얼거렸다. 

"애도 있는 아줌마가 담배라니, 그거 엄청 보기 안좋아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이내 쓴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런 잡화에라도 의지하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티기도 힘들만큼 약한 어른이거든… 아~정말이지 어린애들은 부럽다니까!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매번 한결같은지. 그래, 너도 하나 줄까?"

그렇게 말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서 건내는 그녀의 모습에 소년은 미간을 찡그렸다.

"미성년한테 담배 권유라니 아무리 전시라지만 너무 비뚤어진거 아니에요?"
"농담이야! 귀염성 없긴…우리 세하는 너처럼 딱딱한 ** 크면 안될텐데…."
"딱딱한게 아니라 현명한 거라구요, 그보다 녀석들에게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어요?"
"아직까진 잠잠해, 또 무슨 일을 꾸미려는 건지…차라리 이대로 녀석들이 자기 차원으로 돌아가 버렸으면 좋겠다니까."

그녀의 한숨섞인 말에 소년은 말 없이 그녀의 옆에 걸어가 기대어 섰다. 잠시 간의 침묵, 이윽고 소년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거에요. 아줌마도 나도."
"…그래, 그러길 바래야지."

라디오에선 어느새 다른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오늘 밤에도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차원종과 인간의 전투가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인류의 존속을 위해. 언젠가 있을 평화로운 날을 위해 그들은 이 고요한 밤, 거룩하게 희생되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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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긴장하지 마라 하원종! 넌 할 수 있다!"

입으로 꺼내기엔 부끄러운 자기 격려를 내뱉으면서도 나는 심장이 그 어느 때보다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슬쩍 시선을 아래로 향해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7시 55분, 좋아 아직 5분 정도 시간이 있다.

오늘은 3월 1일. 전국에 있는 초, 중, 고등학교에서 새 학년의 시작을 알리는 날로. 그것은 이 '신강 고등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는 이 신강 고등학교를 교사 생활에서의 첫 학교로 발령받은 새내기 교사로, 한마디로 말하자면 지금부터 5분 후. 반 아이들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내 교사로서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게 되어 현재는 화장실에서 어떻게든 마음을 가라앉히려 시도하는 중 이었다. 

교사로서의 첫 1년을 한 학급의 담임교사로서 시작하게 된다는 생각에, 인사가 확정된 첫날에는 더할 나위 없이 기대에 부풀어 평소라면 손대지 않았을 어렵기로 소문난 각종 수업 참고서를 잔뜩 사버리고, 비싸기로 소문난 패밀리 레스토랑에 혼자 들어가 스테이크나 감자튀김 따위를 주문해놓고 먹어대며 한껏 들떠 있었지만…막상 오늘이 되어 학생들과의 대면을 앞두자 과연 내가 담임 교사로써의 재목이 될지 걱정 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눈 앞의 거울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새간에서 생각하는 일반적인 교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붉게 물든 머리카락에, 마찬가지로 붉은 눈동자와 날카로운 눈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목에는 투박한 색채의 악취미스러운 구속구가 굳게 걸려있다.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구속구를 잡아 당겼다. 

"역시 안 풀리나…."

이 구속구는 5년전, 차원종의 무리에 납치되어 있던 내가 유니온의 요원들에 의해 발견되어 구출되었을 때부터 목에 걸려 있던 물건으로. 어째서인지 내게는 구출되기 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서, 유니온에서는 이 물건이 내 눈동자와 머리색이 붉게 물든 것과 기억을 잃은 이유라고 보고 해체하여 연구하려 했지만, 물리적인 방법은 물론 위상능력자들을 동원한 방법으로도 전혀 풀리지 않는 바람에 나는, 현재도 감찰 대상으로써 주기적으로 유니온의 검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다. 그들의 말로는 이 구속구가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나.

어찌되었든, 그 날 나를 구출했던 클로저 요원의 "기억을 찾기 보다는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살아."라는 말 한마디에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드디어 교편을 잡고 아이들의 앞에 서게 되었다. 

"이렇게 있어서는 안되겠지…!"

다시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7시 58분 정도, 슬슬 시간인가. 나는 바닥에 내려둔 가방을 집어 화장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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