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지던 그 날 : 스캐빈저 이야기

세하느 2015-01-26 28

인간이 어떤 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인지가 있는 생명체란 무릇 그 습성이 비슷하기 마련이다. 먹고, 자고,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하고, 유흥을 즐긴다. 그리고 이런 일상적인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일을 한다.

ㅡ이건, 나의 과거의 일에 관한 짧은 이야기다.

벚꽃 지던 그 날 W세하느

우리 스캐빈저 종들은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곤 기본적으로 몸이 약한 축에 속했다. 대신 다른 차원종보다 높은 지능을 가져 마법을 익힌 자들이 많았다. 그 들 말고도 뛰어난 판단력으로 훌륭한 군사 작전을 세운 우리 스캐빈저 종들은 점점 군단장님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고, 그 대가로 일반 스캐빈저 종들도 거대 차원종인 마나나폰을 조련하는 일을 맡아 여러 세대를 대대로 풍족히 보내게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마나나폰종들은 책에서의 설명에 따르면 힘이 세지만, 인지 능력이 부족한 종족이었다. 엄마도, 아빠도 모두 마나나폰 한 마리씩을 길들이고 있어 어렸을 때부터 마나나폰들을 자주 봐온 나는 이 일을 하는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마나나폰들은 내가 보기엔 너무 짐승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군단장들에게 반항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과 별반 다른 게 없었으니까.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기를 몇 년, 나도 나이가 차 내 짝이 될 마나나폰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나와 만난 마나나폰은, 일반적인 마나나폰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너무 예민했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했고,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지 재채기도 잦았으며 아주 작은 벌레여도 잡으려 들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저 앉아 울기 일쑤였고 감정의 기복이 심했다. 그래, 그는 너무 어린 아이같은 모습을 보였다. 나조차 그에게 다가가기가 많이 힘들었다.

그를 달래고, 또 달래고, 겁을 먹고 무서워하는 걸 다독여도 그는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다. 마나나폰의 조련사 일은 달이 차오를 때마다 심사를 받았는데 난 늘 낙제점이었고 말이다.

그 날도 어김없이 낙제를 받아 내가 울고 있었을 때였다. 이대로면 나는 이 일의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명되어 일을 그만두게 된다. 먹고 살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마나나폰을 맡지 못한 스캐빈저는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 때, 마나나폰이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밟힐 지도 모른단 생각에 벌떡 일어났는데 그는 대뜸 몸을 숙여 나를 어깨에 올라탈 수 있게 해줬다.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나는 나의 마나나폰과 교감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보내면서, 나는 그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했다. 점점 나를 알아보고, 나를 따르는 게 감격스러울 정도로 기뻤다. 그는 내게 정원의 꽃도 꺾어주고, 가끔 나오는 별미를 남겨주기도 했다. 그와 나는 그렇게 둘도 없는 소울메이트가 된 것이다. 심사에서도 늘 좋은 점수를 받아 보너스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를 위해 장난감을 하나씩 샀다. 그는 기뻐했고, 나를 웃게 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나의 마나나폰이 안쓰러웠다. 왜 우리는 이렇게 태어나서, 윗 사람들의 명령에만 복종하며 살아야할까. 우리가 뭐가 부족해서. 언젠간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널 나의 마나나폰이 아닌, 내 친구로 모두에게 말할 날이 올까. 말 없이 마나나폰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는 늘 고개를 가만 끄덕였다. 마치 날 모두 이해한다는 듯이.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4차원의 세상인 지구로 파병을 나가게 되었다. 심사에서 고득점을 획득한 팀부터 뽑힌 것이라 했다. 이른 아침부터 불려나간 차원문 앞에는 나 말고도 다른 스캐빈저와 마나나폰 종들이 짝지어 서 있었다. 군단장들의 지구 침략이 사실이었어. 침을 꼴깍 삼켰다. 우리가 전쟁에 참여하게 된 거야. 나는 나의 마나나폰을 바라보았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여느 때와 같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처음 와 본 인간의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우리같은 이차원의 생명체가 망가뜨리기엔 너무도. ㅡ이 곳도 그렇게 나쁘진 않지? 마나나폰은 종종 꽃길을 뛰어다니는 내 머리 위에 벚꽃잎을 올려주곤 했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녀석이라 걱정했는데, 이차원의 꽃이라 그런지 심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그래, 여기 있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군단장들이 적으로 여기는 용족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진 몰라도 이곳만큼은 평화로웠다.

평화로웠다,고 생각했다.

달이 몇 번 지고 난 후였다. 갑자기 위상력을 쓰는 인간, ㅡ그들은 클로저라고 불린다한다.ㅡ 들이 들이 닥쳤다. 그들은 나와 마나나폰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언젠간 이런 일이 있을 걸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 일렀다. 적응도 마치기 전이다.

내 예상대로 마나나폰은 마구 날뛰었다. 하지만 고작 우리 둘로, 이차원의 땅에서 이차원의 적을 상대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나는 그의 어깨에만 바들바들 매달려있었다. 우리 꼭 살아서 돌아가기로 했는데, 우린, 꼭.

인간들은 너무 강했다. 이미 치명상을 입은 마나나폰은 죽어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너무 한심했다.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내 발목을 잡았다. 처음 그에게 올라타려는 시도를 했을 때 몇 번 내팽겨쳐진 적이 있을 때 빼곤 처음이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거야,

마나나폰은 마지막 힘으로 나를 멀리 집어던졌다. 설마, ㅡ설마 나를 구하기 위해서인가. 그리고 녀석은 다시 인간에게 돌진했다. 수풀로 던져진 나는 덜덜 떨며 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마나나폰의 사투를 지켜볼 수 조차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사방이 조용해졌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는 풀린 다리로 엉금엉금 기어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쓰러져있는 마나나폰에게 다가갔다. 아직 호흡은 하고 있었으나 가망이 없어 보였다. 내가 미안해, 미안해ㅡ 정신없이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데 마나나폰이 고개를 돌려 날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려 떨어진 벚꽃잎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다시 나를 바라보고 내 머리 위에 벚꽃잎을 올려주었다. 차오르는 눈물을 어찌할 바를 몰라 눈을 깜빡였다. 깜빡일 때마다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죽지마, 죽지마. 그는 계속 우는 내게서 시선을 떼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는 한참동안 그의 곁을 떠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심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않았더라면. 우린 달라졌을까. 달라질 수 있었을까. 애초에 너와 내가 스캐빈저와 마나나폰이 아니었다면. 우린.

대답 못할 질문들조차 내뱉지 못하고 나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곧 다른 차원종들이 우리를 대신할 것이다. 마나나폰을 잃은 스캐빈저 조련사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네가 없는 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단 말이야. 그러니 나도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겠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벚꽃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내 머리 위이 벚꽃잎 하나도 나폴 하고 바닥에 내려앉았다. 나는 주저앉아 울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까지 날 생각해준 너와 달리 난 내 생각밖에 하지 않았구나.

그렇게 나는, 매인 목으로 보고를 마치고 차원문을 통해 다시 우리의 차원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캐빈저의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킨 나의 목숨을 쉽게 버리면 그 녀석을 볼 낯이 없어진다. 어떻게든 난 살아야했다. 내 명이 다하고 그 때 하늘로 가면 다시 너의 어깨에 올라 탈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그 녀석이 보고싶다. 툭하면 터지는 눈물에 그 때를 자주 회상하진 못하지만, 나는 잊지 못한다.

벚꽃이 지던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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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왔다 ㅇ0ㅇ!! 님들 이거 웃으라고 쓴 개그글인데 다 진지하시네요 세무룩 ._.
2024-10-24 22:22:1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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