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유정] K

페리스먼 2016-03-13 5

지구 곳곳에서 차원을 가르고 열리던 차원문의 출현이 완전히 없어지고 잠깐 반짝였던 직업인 '클로저'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던 사람들의 수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세계의 그러한 경향이 대한민국의 서울을 빗겨간 것은 아니었다. 신서울에서 활동하던 클로저들도 점점 다른 직업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 중엔 신서울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검은양' 팀도 포함되어 있었다. 검은양팀의 리더였던 이슬비는 드라마 작가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고 이세하는 기존의 삭막한 검법을 자신의 특성에 맞춰 다시 창작해 검도장을 하나 차렸다. 서유리는 한식, 일식, 중식, 양식 요리사 자격증을 모두 따내고 음식점을 하나차렸고 미스틸테인은 다시 독일로 돌아갔다. 그리고 J는...



"아이고 허리야.....오늘은 일이 들어왔나...."



예명을 J에서 K로 바꾸고 하루동안 다른 사람의 애인이 되어주는 알바를 하고있다. 다른 팀원들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때 클로저 일을 하며 모은 돈을 세하가 검도장을 차릴 때 보테고 유리가 음식점을 차릴 때 보테서 그런지 그는 돈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클로저로 일한 여파로 이곳저곳 고장난 몸에 들어가는 약의 비용도 만만치 않았기에 그의 통장은 금세 텅장이 되고도 남았다. 그래서 그는 여러가지 일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엉망인 몸으로 인해 그나마 괜찮은 일은 모두 포기하고 겨우 이런 알바나 하게 되었다.



백발이었던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위로 떠올라있던 머리를 차분하게 정리하니 꽤 동안인데다가 키도 큰 훈남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주일에 기본은 3번 가짜 애인 역할을 하러 나가야 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틀이나 쉰 제이에게 또다시 일이 들어왔다. 이번엔 꽤 높은 직급을 맞고있는 회사원의 애인 역할이었다. 날짜는 내일. 장소는 꽤나 비싼 레스토랑. 밤 7시. 제이는 가서 저녁만 먹으면 될 거라고 간단히 생각하곤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그대로 다음날 오전 10시에 깨어났다.






***






"오늘은 비싼 레스토랑이니까 정장을 입어볼까..."



여러 유형의 여자들을 상대하다보니 그 때마다 맞춰 입고 나가야 하는 옷이 필요했고 그러다보니 여러 종류의 옷을 사게되어 제이의 옷장은 저마다 다른 분위기의 옷들로 꽉꽉 차게 되었다.



제이는 옷장에 반듯하게 걸려있는 정장 한벌을 꺼내 벽에 걸어두고 재질이 고급스런 셔츠 하나를 꺼냈다. 서랍에서 속옷까지 꺼낸 그는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서 몸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은 제이는 정장을 잘 차려입고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왁스로 댄디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비싸보이는 시계를 팔목에 차고 전신거울 앞에 섰다. 말끔하게 차려입으니 30대 초반의 지적인 회사원으로 비춰졌다.



제이는 팔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오후 3시. 지금 출발하면 적당할 것 같았다. 제이는 클로저 일을 접고 신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사왔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레스토랑에 제 시간에 맞춰 가기 위해선 시간이 좀 필요했다. 게다가 미리 여자의 회사에 가서 기다릴 생각이었기 때문에 지금 출발해도 아슬아슬했다.






***







자가용을 타고 여자의 회사 앞에 도착한 제이는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회사 안의 프론터를 찾았다.



"무슨일이십니까."



"이곳에 근무하시는 김유정 부장님 퇴근하셨습니까?"



김유정, 제이에게는 익숙한 이름이지만 흔한 이름이기도 했다. 그래서 제이는 의심하지 않았다. 이 김유정이 자신이 아는 김유

정일 것이라고.



"아직 근무 중이십니다."



"그럼, 퇴근하실 때 K씨가 회사 앞에서 기다린다고 전해주시죠."



"알겠습니다."



프론터의 직원은 자신의 이름을 K라고 하는 남자가 수상해 보였지만 딱히 회사에 용무가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제이가 회사 앞에 서서 10분 정도 기다리자 한 여자가 그의 뒤에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K씨?"



"아, 네....."



가만히 서서 앞을 바라보고있던 제이가 자신의 등을 두드리는 손길에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확인했다. 자신에게 애인이 되어주기를 신청한 여자의 얼굴을. 자신에겐 너무나 익숙한 그녀의 얼굴을.



"K씨...음...마중오신건가요? 친절하시네요."



김유정이 맑게 웃었다. 제이는 그 웃음에 홀려버렸다. 너무 오랜만이라...너무 그리웠기 때문에...



"네....아, 이름은 이진운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K라는 이름은 좀 그러니까..."



"아, 알겠어요."



"그럼, 가실까요?"



제이는 수백번 수많은 사람들의 가짜 애인 역할을 하며 익숙해진 웃음을 지어보이며 유정을 에스코트했다. 오랜만에 잡아본 그녀의 손은 여전히 따듯했고 부드러웠다. 그 날, 그녀를 보내고 얼마나 울었던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이제는 그녀에게 짐만 될 것이라 생각해서. 이렇게 다시 얼굴을 마주보게 되니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자신을 알아채지 못하는 그녀에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아팠다. 서로 그렇게 사랑해놓고선 이렇게 다시 만나니 나를 알아채지 못하다니...



"이 찬가요?"



"네. 타시죠."



제이는 조수석의 문을 열어 그녀를 태우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리고 차를 부드럽게 출발시켰다.



"어...K..아니, 진운씨. 오늘은 그냥 제 애인인 척만 해주시면 되요.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자면서 애인을 데려오라 해서...하

하. 잘 부탁드려요."



"네. 오늘 하루만큼 이라면 완벽하게 서비스 해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둘은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제이는 레스토랑까지 유정을 에스코트해 들어갔다. 미리 예약된 방으로 안내받은 둘은 진짜 연인인 것처럼 행동했다. 제이는 유정의 손을 부드럽게 그러쥐고 자신들의 자리에 앉았다. 이곳저곳에서 유정의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이 흘러들어왔다.



"이야...유정이 남친 완전 멋지네."



"잘생겼어, 잘생겼어."



제이와 유정이 가장 마지막에 도착했기 때문에 자리는 이미 모두 채워져있었다.



"자, 이제 유정이까지 다 왔으니까. 식사를 시작할까."



"그래. 나 배고파아...."



옷차림새와는 달리 가벼운 분위기에서 시작된 식사는 2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그동안 제이는 진짜 유정의 연인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같이 술잔을 나누기도 하고 2시간 내내 꼭 붙어있었다. 2년 전 그랬던 것처럼.



"하하, 우리 2차 갈거야?"



"2차? 안 돼. 나는 내일도 일 간단말야."



"나도."



식사가 끝나가자 자연스럽게 2차 이야기가 나왔지만 곳곳에서 터진 불평에 2차는 할 수 없게 되었다. 그에 제이의 옆에서 터지는 한숨소리가 들렸다.



"하아..."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아뇨...저 2차까지 가면 술에 완전히 취했을거 같아서....다행이네요."



"그렇군요...여전히..."



"네?"



"아닙니다."



"그럼 이만 일어날까?"



"그래."



자리를 정리한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같이 지하 주차장에 모였다.



"오늘 즐거웠어!"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넨 유정의 친구들이 각자의 차에 올라탔다. 유정과 제이도 제이의 차에 올라탔다. 유정은 조수석에 앉자마자 등을 편안하게 기대고 눈을 감았다.



"피곤하세요?"



"아...조금 피곤하네요..."



"조금 주무실래요? 집까진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



"네...집은 역삼아파트 5동 201호예요...."



제이에게 자신이 사는 집의 주소를 알려준 유정은 잠에 빠져들었다. 제이는 네비게이션에 역삼아파트를 적어넣고 운전을 시작했다.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출 때마다 잠을 자는 유정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추억에 잠겼다. 이제 곧있으면 더 이상 만나지 못할테니.



유정의 집으로 가는 길이 아주 짧게만 느껴졌다. 일부러 길을 돌아서 가고 싶을 정도로. 제이의 그런 바람이 무색하게 제이의 차는 금방 역삼아파트에 도착했다. 제이는 아쉬움을 느끼며 유정을 흔들어 깨웠다.



"유정씨, 유정씨."



"으음...."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알겠어요."



제이는 유정이 완전히 눈을 뜨자 차에서 내려 조수석의 문을 열어줬다. 유정이 조금 느릿한 몸짓으로 차에서 내렸다.



"오늘, 즐거우셨나요?"



"네. 고마워요. 저...."



"네?"



제이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뜸을 들이는 유정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고 서있었다.



"어...그...이대로 만남을 이어갈 수 없을까요?"



"네? 아....불가능해요..저는 일회용이니까...."



"아아...일회용...이군요..."



유정은 눈에 띄게 얼굴을 굳히더니 앞니로 입술을 물었다.



"그럼, 어서 올라가보세요."



"네..."



유정은 애써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유정이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본 제이가 운전석 쪽으로 걸어갔다. 이제는 진짜로 안녕이란 생각에 눈가가 촉촉해졌다. 하늘을 바라보고 눈을 여러번 깜박인 제이가 운전석의 문 손잡이를 잡았다.



"잠시만요!"



그때 아파트에서 뛰어나온 유정이 제이의 팔을 붙잡았다.



"진운씨...아니...제이씨!"



"네, 네?"



"가지 말아요....가지 말란말이에요..."



유정은 처음 제이를 만났을 때부터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에, 목소리에 의심을 하고있었다. 이 사람이 제이씨는 아닐까. 날 그렇게 차버리더니 이런 일이나 하고 있던 것일까. 그리고 그와 헤어질 때에야 직감했다. 그는 제이씨가 맞다고. 그의 씁쓸한 표정이 말해주고있었다. 그와 일을 하면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그 표정은 분명 그의 얼굴이었다. 그래서, 잡고싶었다. 물어보고싶었다. 그 때, 왜 자신을 차버렸는지. 그래놓곤 왜 다시 이렇게....이런 모습으로 나타난건지.



"유정씨..."



"왜...왜 절 차버린거에요? 내가 싫었어요? 그래놓고 왜 이렇게 살아요? 네?""



"유정씨, 내가 다 미안해...내가 너한텐 맞는 짝이 아니라 생각했어. 미안해..미안해 유정씨...."



"흑...윽....미안해할거면 왜 찼어요...저에게 제이씨는 과분한 사람이었어요."



"미안해...미안해, 유정씨."



"그렇게 미안하면 저랑 다시 사겨주세요."



"어? 그렇지만 나는 겨우 이런 일이나 하는 사람인걸..."



"제이씨의 직업은 상관없어요. 그냥...제이씨기만 하면 되요."



유정은 눈물때문에 붉어진 얼굴로 제이와 눈을 마주쳤다. 제이는 유정의 눈빛에 당황해서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렸다.



"유정씨...."



"저랑 안 사귈거에요?"



"아....."



"나랑 안 사귀면 선보고 엄청 멋진 남자 만나서 제이씨 앞에서 데이트할거에요!"



"아 안 돼! 그럴거면 나랑 사귀어!"



"진짜죠?"



"아..."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서있는 제이를 유정이 꽉 끌어안았다. 제이는 결국 한숨을 쉬며 유정을 마주안아주었다.






=====작품 후기=====

둘이 결혼해버려!!



이런 비루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핳 내일 사탕 많이 받으실겁니다.



애//인//대//행// 왜 ****취급입니까아....

2024-10-24 22:59:5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