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

현시창인생 2015-01-25 6



"괴물!"


"엄마가 너 같은 괴물이랑은 놀지 말랬어!"



손을 뻗었다.
함께 하고 싶었기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뻗은 내 손은, 언제나 누군가에 의해 거부당하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내가 원해서 얻은 힘도 아닌데.


어째서.


내가, 너희들에게 그런 소릴 들을 짓을 한 것도 아니잖아….



"네가 그 알파 퀸의 아들이구나. 그런데…."


"……이런 애가 그 알파 퀸의 아들이라고? 그럴 리가."



손을 뻗지 않은 사람들이 다가온다 싶으면, 그들은 언제나 처음 보는 어른이었다.


멋대로 나를 보며 기대하고,
멋대로 나를 보며 실망하는 어른들.


그들이 언제나 나를 보면 찾는 것은 우리 엄마였다.
그러다 나를 보면 이상하다면서 욕을 한다.


알파 퀸의 아들이, 이럴 리가 없다며.



내가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줄 알아?


나는, 당신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야.




"그래, 너는 저딴 어른들을 만족시켜주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야."




내 귓가에 속삭이는 달콤한 목소리.
시선을 돌려보면, 그 목소리를 속삭이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어두운 귀기를 흘리며, 음산한 웃음을 짓은 채로, 검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나.


이 녀석은, 큐브에서 보았던 차원종이 된 나였다.



"또래 애들은 너를 경멸해."


"어른들은 언제나 제멋대로."



그래, 그 말이 맞다.


나에겐 제대로 된 친구가 몇 없고,
내 주위의 어른들은 언제나 제멋대로 나에게 기대를 건다.


내가 아직 어리다며, 나를 언제나 제멋대로 부려먹을 뿐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네가 살아갈 이유는 뭐지?"


"굳이, 네가 인간인 채로 살지 않아도 문제없지 않을까?"



──인간인 채로.


애쉬와 더스트가 내게 내밀었던 한 마디.
너라면 강한 힘을 가진 군당장이 될 수 있다고 그들은 말했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인간인 채로 죽음을 맞이할 테냐, 차원종이 되어 강력한 힘을 얻을 테냐 물어왔었다.


그것은, 그 상황에서는 그 누가 들어도 달콤하게 다가올 한 마디였을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든, 이승에 발 붙이고 산다는 것이 더 낫다고 누군가가 말하기도 했었다.


이 녀석은, 그 상황에서 차원종으로 살아갈 것을 선택한 걸까.
그랬기에, 차원종이 되어 인간의 적이 되어버린 걸까.


나도, 그 상황에서 애쉬와 더스트가 내민 손을 잡았다면, 이렇게 되어버렸던 걸까.



"이런 세상에서, 네가 바르게 살아갈 의미는 없어."


"네가 힘을 얻고 날뛰게 된다면, 세상에는 혼돈이 찾아오지."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광기에 차 번뜩였다.



"너를 경멸했던 또래도! 언제나 제멋대로였던 어른들도!"


"공포에 가득 차 떨리는 두 눈동자로 너를 올려다 보게 된다!"


"어때? 정말로 달콤해보이는 광경이잖아?"



차원종이 된 나는 내게 손을 뻗었다.



"──자, 이세하. 인간을 포기해라."



그 녀석이 내민 손을, 나는 손을 뻗어───.











"──이세하!"



들려오는 날카로운 목소리.
순간 유정이 누나가 아닐까 싶었지만, 목소리를 다시 되짚어 보니 그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분홍 머리의 작은 체구를 가진 소녀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너였어?"



사람 김 빠지게….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슬비가 버럭 외쳤다.



"'너였어'가 아니잖아! 집합 시간 다 됐는데도 안 와서 굳이 찾아봤더니, 학교 난간에 앉아서 준비도 안 하고 대체 뭐하는 거야!"


"아니… 뭐, 사람에겐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 땡땡이 치고 싶을 때."


"적어도 나에게는 없어!"



하긴, 슬비한테 그럴 때가 찾아올 리가 없지. 한 달 내내 매번 똑같은 태도로 일하러 나오는데.
……어라?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거 이상하지 않아? 일단 슬비도 여자일 텐데. 하루나 이틀 정도 깐깐해지는 날이 있어도 이상하지는…… 아, 나한테는 매번 깐깐하게 구는구나.


그 사실을 떠올리니까 묘하게 납득이 감과 동시에 묘하게 슬퍼졌다. 나, 대체 슬비한테 왜 이런 취급 받고 산다니.
생각해 봐. 한창 때의 남녀잖아? 이미 몇 번 둘이서 데이트도 갔다 왔잖아요? 작전 때 게임하는 횟수도 최대한 줄였다고요? 저, 저번에 은근히 좋아한다고 몇 번 어필도 해봤습니다?


……다 문제인가. 데이트 할 때 틈틈히 게임 꺼냈었고, 최대한 게임 횟수를 줄였다고 해도 여전히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고, 마지막 건 눈치도 못 챈 거 같고.
에휴… 그래, 세상에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는 말이 있지. 나는 안 될 놈이었던 거다.



"어라 세하야! 거기 있었네?"


"이, 이세하!? 너 거기서 위험하게 뭐하는 거야!"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서 시선을 내리니, 보이는 사람들은 유리와 정미였다.
유리는 나를 찾기 위해 왔다 쳐도, 정미는 아직도 학교에서 안 나갔던 건가? 아니 그보다 위험하다고 해도 말이지… 위상능력자에게 이 정도 높이는 별로 위험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친구가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는 소리니까.



"……그런데 너."



유리와 정미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난간에서 내려오려고 할 때, 문득 슬비가 말했다.



"게임기는?"



보나마나 게임이나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슬비의 그런 중얼거림에, 나는 웃었다.









───쳐내었다.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째서냐? 왜 나를 거부하는 거지?"


"세상은 제멋대로야! 멋대로 너를 경멸하고, 멋대로 너에게 기대를 걸고, 멋대로 너를 부려먹는다고!"


"이런 세상에는, 살아갈 가치도, 네가 지켜낼 가치조차 없는 게 당연하잖아!"



그것은 마치 필사적인 발버둥처럼 보였다.
그 발버둥을 보고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녀석은, 그저 어린이다.
또래의 경멸과, 어른들의 기대에 지쳐 모든 걸 포기해버린 어린이.


그리고 나 또한, 이 녀석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어린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


이 녀석은 어떤 것을 포기했고,
나는 그 어떤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단지, 그 하나 뿐인 차이.


그리고 그 차이는, 무척이나 컸다.



"확실히 네 말대로야."


"또래 애들은 나를 경멸해왔고."


"어른들은 멋대로 기대를 걸고, 멋대로 실망해왔지."


"그런 어른들에게, 쓸모없은 아이라는 소리마저 들을 적 있어."



하지만, 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 세상이라도, 나는 살 거야."


"그런 세상이라도, 나는 지켜낼 거야."


"그런 세상이라도, 나에겐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까."



여러 시선들에 지쳤을 때, 나는 만날 수 있었다.
유리를, 슬비를, 제이 아저씨를, 테인이를.
다른 전부의 이름을 말하기 힘들 정도로, 나에게 따뜻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를 이해해주고, 알아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다.


달리 말하자면 그게 전부이지만,



"딱히, 그 외의 다른 이유는 필요없다고 생각해."



……그저,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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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만에 5강 무기로 큐브 40번 전부 돈 기념으로 쓴 이야기.


근데 누나 도와주기 위해서 다시 40번 더 돌고, 유리의 검스를 위해서 다시 40번 더 돌고, 슬비도 곧 나오니까 다시 40번에, 제저씨도 2월에 나올테니 또 40번... 미스틸도 정식 당연히 나올 테니까 또 40번......


망할, 이거 전 캐릭 다 키우라고 만들어 놓은 게임 맞는 겁니까 나딕 ㅂㄷㅂㄷ...


여담이지만 누가 이거 만화로 그려주실 분 없습니까? 세하가 세하에게 속삭이는 거 보고 싶음. 저는 손이 고자라서...

2024-10-24 22:22:1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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